-제3화. 어둠의 태동. 03-
성민의 말에 민선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민은 안성국과 이호영을 일으켜 세우더니 지시를 내렸다.
“한솟대바위로 순간이동!”
팟!
순식간에 성민과 나머지 시신들이 사라졌고, 민선생은 텅 빈 영안실을 두리번거렸다. 처음 보는 광경에 민선생은 두 손을 맞잡고, 감격에 겨워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하하.”
그 시각, 유민은 밤이 되도 그칠 줄 모르는 아줌마들 수다에 정신이 혼미해져 오고 있었다. 가만히 누워만 있으니 더 병이 날 것 같아서 몸을 일으켜 살그머니 병실 문을 열고 나가려는 데, 한 아줌마가 유민을 불러 세웠다.
“아줌마. 나갈 거야? 그럼, 저기 화장실 불 좀 끄고 가. 어떤 여편네가 뒤가 저렇게 길어.”
“저. 아줌마 아니거든요. 아가씨거든요.”
짜증이 난 유민이 자신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머, 성질 하고는 저래서 시집 못 갔나 봐. 호호호”
“에이 씨.”
유민은 화장실 불을 끄고, 병실 문을 열고 나왔다. 병실 밖으로 나오니, 간호사 한명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이때가 기회다 싶어 조심조심 복도를 걸어가던 유민은 코너를 돌아오던 석호와 딱 마주쳤다.
“헉!”
“어딜 가시나. 이 오밤중에 환자가?”
“너 뭐야! 네가 왜 여기 있어?”
“그러게, 나도 내 소중한 오프에 이러고 싶지 않거든. 뭔 짓을 하려고 한 진 모르겠지만. 다시 제자리로!”
“너도 알잖아. 나, 폐쇄 공포증 있는 거. 갑갑해 죽을 것 같아. 밖에 나가서 잠시만 바람 좀 쐬자? 응?”
“이렇게 넓은 공간이 좁게 느껴지는 것도 병이긴 하다. 그래. 오래 참았다. 서선배 성격에. 그럼. 밖으로 나가 볼까?”
“역쉬! 지 후배 밖에 없어! 헤헤!”
잠시 후, 석호와 유민은 병원 하늘 공원에 서 있었다. 유민이 눈을 어디까지 흘기면서 석호에게 구시렁댔다.
“여기가! 어디가 밖이야! 어!”
“아니! 그럼 여기가 밖이지. 안인가? 기껏 데리고 나와 줬더니.”
“우이씨! 진짜 짜증나네. 이 새끼 이거! 팰 수도 없고! 아오 *나 짜증나게 하네.*발”
“선배 자꾸 옛날 생각 하나 본데. 학교 나온 지가 언젠데. 이러는 거야. 그리고 선배도 낼 모래면 나이가 마흔이다. 말 좀 예쁘게 해. 입에 걸레 물었어? 무슨 여자가 입만 열었다 하면 욕이야. 남자들은 여자가 욕 하는 거, 별로야.”
퍽!
유민이 석호의 정강이를 사정없이 걷어찼고, 석호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읍!”
“이게 진짜, 선배 알기를 개똥으로 아나! 그리고 네가 나 욕하는 데 보태준 거 있어! 야! 나 아직 서른여섯밖에 안 됐거든! 내일 모래 같은 소리 하네! 어! 지석호! 너 진짜 내가 다리만 낫기만 해. 내가 다리를 다쳐서 이 정도다! 어!”
유민에게 맞은 정강이가 많이 아픈지 석호는 다리를 연신 문질러댔다.
“아오! 진짜 저 성질 머리하고는! 선배는 그 성질 머리 좀 죽여! 언젠가 그 성질머리 때문에 큰 코 다치는 날이 올 거다!”
“너 정신 못 차렸지! 하늘같은 선배님한테! 저주를 퍼부어!”
유민이 다시 발길질을 하려 하자, 석호가 저만치 달아났다.
“알았어! 그만! 그만! 이러다 또 다치면 어쩌려고. 선배 어머님 오늘 못 오신다고, 나한테 부탁하셨는데 나랑 있을 때 다치면 안 돼지!”
“역시 그런 거였어. 네가 네 발로 올 리가 없지! 하늘같은 선배님한테 이 자식 대하는 거 보소. 내가 널 잘 못 가르쳤다. 내가 죄인이야.”
풀이 죽은 유민이 의자에 ‘털썩’ 하고 앉더니 테이블에 고개를 푹 숙이고 엎드렸다. 석호가 경계 태세를 풀지 않고 맞은편 의자를 당겨서 앉았다.
“선배, 그거 알아? 요즘 애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는데. 후배들이 1년 선배를 부를 때는 하늘, 그리고 2년 선배는 애들이 뭐라는 줄 알아?”
“뭐라고 하는데?”
“화.석. 하하하하.”
석호는 자신이 한 농담에 웃겨 죽겠다는 듯 박수까지 쳐가며 웃었다. 유민이 잡아 죽일 듯한 눈으로 석호를 바라봤고, 그 모습을 본 석호는 웃음을 '뚝'하고 그쳤다.
“재미있냐? 재밌어? 내가 너한테 화석이라는 그 말이네. 하늘같은 선배소리 집어치우라 이거지. 그래. 돌덩어리 따위가 무슨 선배겠어. 그래 나 같은 게 뭐라고. 능력 없는 선배가 무슨 선배겠니. 늙어서 후배한테 이렇게 도움이나 받으면서 사는 데. 잉여 인간이다. 잉여 인간. 서유민 너 어쩌다 이렇게 됐니? 그냥 죽자. 왜 사냐? 왜 살어.”
“에이! 또 왜 그러실까. 서선배 답지 않게.”
“화석이 하는 말을 누가 듣겠어. 내가 너무 오래 살았네. 늙은 것도 서러운데, 화석이란다.”
유민이 자꾸 혼잣말로 구시렁대자 그 꼴이 보기 싫었던 석호가 체념한 듯 말했다.
“알았어. 뭐! 뭐! 그냥 원래대로 해. 못 봐주겠으니까.”
석호의 말에 유민은 눈을 반짝이며 깁스한 다리를 힘겹게 끌고 석호 옆으로 다가가 다정하게 석호를 바라봤다.
“오늘 뉴스에 등산객 두 명 죽었다고 나오던데. 너희 소방서에서 출동했더라. 뉴스에선 실족사라고 했는데, 내가 오늘 병원에서 의사들이 하는 말을 우연히 들었는데. 실족사가 아니래. 자살이래.”
“그래서?”
“의사들이 봤을 때는 분명 자살인데. 위에서 실족사로 처리하라고 했다는 거야. 네가 현장에서 봤을 때. 어떤 거 같았어? 직접 뛰어 내린 거랑, 실수로 발을 헛디뎌서 떨어진 거랑 뭐가 달라? 어떻게 아는 거야?”
“저기요. 서기자님. 그거 개인정보거든요. 함부로 발설할 수가 없습니다.”
“야. 뉴스에도 나온 일인데. 뭐가 개인정보야. 그냥 네가 볼 때는 어땠냐는 거지. 누가 그 사람들 신상 가르쳐 달래? 그냥 네 생각이 난 궁금하다는 거지. 너랑 나 사이에 서로 생각도 공유 못하냐? 어. 말해 봐. 어서.”
“안 돼. 절대 안 돼.”
석호가 끄덕도 하지 않자, 유민은 애원하다시피 매달렸다.
“아! 지후배님! 아니 지대원님! 나 한번만! 살려주라. 나 이번에도 뭐 없으면 지금 잘릴 판이야. 나 잘리면, 누가 제일 괴로울까?”
“이거, 협박이지? 그래도 안 돼.”
“야!”
다음 날 새벽, 유민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퀭한 눈을 하고는 석호가 끝까지 알려주지 않은 것이 분한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치사한 새끼.”
답답한 마음에 유민은 병원 복도를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데 그 때, 갑자기 의사들이 다급하게 어디론가 뛰어갔고, 유민은 무언가 이상한 낌새에 그 의사들을 몰래 따라갔다.
엘리베이터 앞에 선 의사들이 초조하게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길 기다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수트 차림의 남자가 내려섰다. 의사들이 수트 차림의 남자에게 깍듯이 인사를 했다. 수트 차림의 남자는 굉장히 화난 얼굴을 하고 있었고, 화난 마음을 그대로 드러냈다.
“얼빠진 놈들! 시신이 사라지는 걸, 아는 사람부터 파악해!”
“네”
“입단속 잘 하고!”
“네.”
수트 차림의 남자가 사라지자, 의사들도 해산했다. 유민은 의사들이 지나가자 얼른 몸을 숨겼다. 의사들이 저만치 가는 모습을 보고, 유민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시신이 사라져? 오호! 점점 흥미로워 지는데.”
깊은 산사의 절 백주사에서 잠을 자고 있던 해담스님은 꿈에서 자꾸만 누가 부르는 소리에 얼굴을 찡그렸다.
“영주야. 그들이 오고 있다! 어서 일어나 거라! 어서!”
잠을 자고 있던 해담스님이 그 소리에 벌떡 일어나 앉았다.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리지만 방 안에는 해담스님 혼자뿐이었다.
“꿈이었나?”
그 순간, 방 밖에서 바람 소리와 함께 또 다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선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주야. 위험하다. 어서 피해라! 그들이 오고 있다. 어서!”
해담스님은 법명(승려가 되는 사람에게 종문(宗門)에서 지어 주는 이름)을 받은 이후로 잊고 지냈던 자신의 본명을 누군가 계속 부르자 이상한 기분에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오백나한전으로 들어선 해담스님은 인기척이 느껴지자 자리에 멈추어 섰다. 어둠 속에서 눈이 익숙해지기만을 기다리며 조심스럽게 다가서는 데, 보현스님이 불상을 치우고 있었다. 너무 놀란 해담스님이 말을 잊지 못하고 있자 보현스님이 먼저 알은체를 했다.
"해담아. 왔니."
“보현 스님이 어째서?”
“해담아. 떠날 준비를 해야겠구나.”
“네?”
“느낌이 좋지 않다.”
해담스님은 절의 주지스님인 보현스님의 묵직하고 깊은 목소리에 드디어 때가 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네. 준비하겠습니다.”
불도 켜지 않은 어둠 속에서도 두 사람은 그것을 아주 오래 전 부터 해온 일처럼 능수능란하게 움직였다.
보현스님이 불상 아래에 있는 비밀스런 상자를 하나 꺼내자, 그 안에는 낡은 가죽 가방 하나와 칼 하나가 들어 있었다.
보현스님이 그것들을 조심스럽게 꺼내 해담스님에게 건넸다.
“마을 입구에 차가 준비되어 있다. 그 차를 타고 떠나거라. 마을 입구까지 내가 함께 할 것이다.”
보현스님과 해담스님은 어두움이 짙어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산길을 바쁜 걸음을 재촉하며, 뛰다시피 내려갔다.
보현스님이 이상한 기운에 발걸음을 멈춰 섰고, 앞서 가던 해담스님도 걸음을 멈춘 보현스님을 돌아보았다. 보현스님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해담스님을 향해 먼저 가라는 손짓을 했다.
그 표정을 보자 마지막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해담스님은 보현스님께 큰 절을 올렸다. 해담스님에게 아버지 같았던 보현스님, 해담스님은 뒤 돌아 보지도 않고 산 아래로 내달렸다.
산 아래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수상한 빛이 순간이동을 하는 듯 빠른 속도로 보현스님 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 빛이 스쳐지나갈 때 마다, 나무와 풀들을 베어져 나가며 힘없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청월광하!”
이호영이 그렇게 소리치자, 푸른 불빛이 이호영 눈에서 뿜어져 나왔다. 조금 전부터 보이던 푸른 불빛은 이호영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던 불빛이었던 것이다. 이호영이 점점 거리를 좁혀가는 모습을 확인한 보현스님은 품속에 숨겨둔 단검을 꺼내 들었다.
“청월광하!”
이호영은 혼자가 아니었다. 옆에 안성국도 함께 있었다. 둘은 무슨 대화를 나누더니 갑자기 이호영이 순간이동을 하고 사라져 버렸다.
팟!
이호영이 사라진 자리에 안성국은 홀로 남아 무언가 찾는 눈치였다. 안성국이 어떤 낌새를 눈치재고 다가서자 보현스님은 숨을 멈추었다. 나무를 하나 사이에 두고 선 안성국과 보현스님 사이에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여기에 계셨군요.”
안성국이 먼저 보현스님을 알은체 했고, 보현스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은 죄다. 어서 네 자리로 돌아가라!”
“자연의 섭리? 하리님의 힘이지요.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다스리는 힘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렇게 잘 다스린다면 왜 잠재웠겠나!”
“원래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강한 것을 두려워하는 법이지요. 두려운 겁니다. 너무 강하니까.”
“강한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은 잘못된 것이라 말하는 것이다.”
“훗! 과연 그럴까요?”
두 사람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보현스님이 먼저 안성국을 향해 공격을 가했다.
“이야!!!!!”
칠십이 넘는 나이의 보현스님이 나이를 무색하게 하는 빠른 공격에 안성국은 잠시 놀라는 눈치였으나 곧 순식간에 순간이동을 해 보현스님 뒤에 섰다.
“이런, 이런. 그렇게 굼뜨셔서 어디 개미 한 마리라도 잡겠습니까?”
“무고한 개미를 잡을 필요 없지. 네 놈을 잡아야지.”
“얼마든지.”
보현스님은 안성국이 빠르게 순간 이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목에 걸었던 염주를 꺼내들어 안성국이 움직이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염주를 정확히 던져 안성국의 목에 걸었다.
“컥!”
안성국이 염주에 목이 감겨 꼼짝하지 못하는 틈을 타, 보현스님은 안성국의 한 쪽 눈을 정확하게 단검으로 찔렀다. 안성국의 눈에서 파란 빛의 액체가 흘러나왔고, 안성국이 목에 걸린 염주를 뜯어내고 보현스님을 한 손으로 가볍게 밀쳐냈다. 보현스님은 공중으로 한참 오르더니 힘없이 툭하고 떨어졌다.
“크허헉!”
안성국은 쓰러져 있는 보현스님 쪽으로 걸어가며, 눈에 박힌 단검을 뽑아들었고 살은 바로 감쪽같이 아물었다. 보현스님은 누워서 고통에 신음했고, 안성국은 보현스님의 다리를 바라보면서 소리쳤다.
“청월광하!”
안성국의 눈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갔고, 그 불빛에 보현스님이 다리가 사라졌다. 보현스님은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 염불을 외웠다.
“나모라 다나 다라 야야...”
“그런 건 예전에나 통하던 것이지. 지금은 통하지 않습니다.”
“옴 살바. 바예수....”
“아이는 어디에 숨겨 놨습니까?”
“내가 네 놈에게 그런 걸 말해줄 거 같은가?”
“말하시게 될 것입니다.”
“아이는 어디 있습니까. 보현.”
“허허.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들이. 이승을 이렇게 돌아다니면 쓰나. 넌 전생에도 그리 살더니 이생에도 사람이 아닌 것으로 사는 구나. 불쌍하다. 참으로 불쌍해.”
“아이는 어디 있습니까?”
“너희들은 그 아이를 절대로 찾지 못한다.”
안성국은 한 손으로 보현스님의 목을 잡아들어 올렸다.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아이는. 어디. 있습니까.”
“컥! 절대 못 찾는 대두.”
보현스님은 그렇게 말하고, 다리에 숨겨둔 단 검을 꺼내 들어 있는 또 한 번 기회를 엿봤다. 있는 힘껏 안성국의 심장을 찌른다.
“가거라. 네가 있어야 할 곳으로.”
단검이 박힌 안성국의 몸에서 다시 푸른 액체가 흘러나왔고, 조금 전 보다 더 심한 불빛을 일으키며 보현스님이 꽂은 단검을 푸른 액체가 나와 밀어냈다. 보현스님은 단검을 쥔 손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 애쓰며 마지막 힘을 쥐어짜냈다.
“언제든지....또....와...라.....매번......이렇게....상대....쿨럭!....해..줄테니...쿨럭!.....”
“그럼요. 저도 언제든지. 상대해 드리죠. 청월광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