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어둠의 태동. 04-
안성국의 눈이 끓어 올린 엄청난 푸른빛이 보현스님을 향해 사력을 다해 공격했고, 보현스님의 몸은 그 빛에 의해 형체도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새카맣게 타버렸다.
휘이잉!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보현스님은 한 줌의 재로 변해 버렸다.
마을 입구 까지 단숨에 내달린 해담스님은 급히 차에 올라타고 있었다. 순간 현기증이 몸이 휘청 일정도의 현기증이 일어났다.
지잉!
보현스님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해담스님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올라왔고, 그것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이었다. 그 때 보현스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주야. 부탁한다. 아이를 꼭 지켜내야 한다. 끝까지 함께 못해 미안하구나. 부디 몸조심 하거라.”
마지막 힘을 다해 보현스님은 해담스님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해담스님에게는 그것이 보현스님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음을 의미했다.
“보현스님......극락왕생하십시오.”
오늘 새벽 자신을 깨웠던 목소리도 자신이 떠나는 길을 배웅하는 목소리도 보현스님이라는 것을 그제야 깨닫고, 해담스님은 주먹을 꼭 쥐었다.
‘걱정 마십시오. 보현스님의 목숨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석호는 병실에 누워서 꼼짝도 하지 않는 유민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이었다.
“얼마 전까지는 병원에 있기 싫어서 난리더니,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으셨기에! 의사가 퇴원하라는 데도 안 해! 어!”
석호의 성화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이불 속에서 얼굴을 빼꼼이 내민 유민이 슬며시 웃으며 몸 여기저기를 만져댔다.
“하하. 내가 생각보다 뼈가 부실한가 봐. 여기가 콕콕 쑤신다.”
“그거, 늙어서 그런 거다.”
“야! 넌 선배가 아프다는데도 꼭 그렇게 싸가지 없게 말해야겠냐!”
“내가 살면서, 선배만큼 통뼈도 못 봤거든. 언제였지? 작년이었나? 그래. 그 때, 선배 술 먹고, 100세 계단에서 계단 100개에서 굴러 떨어졌을 때도 멀쩡했었잖아. 의사가 다 신기해할 정도로! 그 때 선배도 그랬잖아. 집안 대대로 뼈는 타고 났다고! 통뼈라고!”
“이거 봐. 후배님. 내 나이가 되면, 한 해, 한 해가 틀려요. 작년에 몸이랑 올해 몸이랑 차원이 달라.”
“어련하시겠어요. 됐고! 얼른 퇴원하자. 나이롱환자로 보험 회사에 찌르기 전에!”
“어이구! 저 새끼는 진짜! 후배가 아니고, 웬수야! 웬수! 그런데. 오늘은 왜 왔냐?”
“어머니 부탁으로 왔지. 내가 언제 자발적으로 오는 거 봤어?”
“아오. 씨! 저걸 그냥 확!”
유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석호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려쳤다. 마침 회진을 돌던, 유민의 담당 의사가 유민을 보고 득달같이 달려왔다.
“이렇게 활기차신 분이 왜 퇴원을 안 하십니까? 제가 이렇게 좀 부탁드립니다. 제발 퇴원 좀 하세요.”
담당의사는 울상을 지으며 유민에게 애원하다시피 매달렸지만, 유민은 특유의 능글능글한 미소를 지으며 오히려 더 뻔뻔하게 굴었다.
“아이고, 우리 선생님 왜 이러실까. 입원하라고 하실 땐 언제시고, 또 퇴원을 하라고 그러신데요.”
“제가, 어떻게 해드리면 퇴원 하실래요? 서유민 환자가 하시고 싶다는 거! 제가 다 해드릴 테니. 제발 퇴원 좀 해요! 서유민 환자 때문에 병원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어요!”
“헤헤.”
유민은 그 날, 시신이 사라졌다는 말을 들은 이후로, 퇴원시기가 지났는데도 억지로 들러붙어 있는 중이었다. 의사들을 따라 다니며, 집요하게 구는 유민 때문에 담당의사는 몇 차례 위에서 압박을 받아온 터라 어떻게 해서든 유민을 퇴원시키고 싶어 했다.
“오늘 까지 안 하시면 강제 퇴원 조치시키겠습니다.”
“퇴원. 해드릴게요. 아까. 뭐든 지 다 해주신다고 하셨죠?”
유민의 말에 의사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옆에서 지켜보던 석호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유민이 얼굴에 만연의 미소를 지으며 병원을 나오고 있었고, 뒤를 따르는 석호가 그런 유민이 못마땅하다는 듯 쳐다보다 못 참겠는지 입을 열었다.
“사람 꼭 그렇게 곤란하게 만들어야겠어? 진짜 이기적인 사람이야. 선배는. 자기 밥 그릇 지키기 위해서는 남은 안중에도 없지?”
“네가 볼 땐 그렇게 보이지만, 이게 결국 모두의 밥그릇을 지키는 일이야. 미시적인 관점에서 보지 말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좀 보란 말이야.”
“그래서, 뭐 좀 알아냈어?”
“왜 이제 와서 궁금하냐? 네가 도와 줬으면 내가 이렇게까지 고생 안 했을 거 아냐! 쨔샤! 내가 누구냐! 강호일보의 떠오르던 샛별이었던 서유민 기자님 아니야! 알아냈지. 사라진 두 구의 시신! 두둥! 시신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런 걸 병원에서 이야기 해주겠냐? 너 바보냐? 갑자기 순진한 척은! ”
“알아냈다며!”
“그런 이야기를 기자인 나한테? 해준다고? 총 맞았냐? 나라도 안 해준다. 병원 문 닫을 일 있어? 아주 조금 알아낸 게 있긴 한데. 내가 원하는 정보는 아니고, 도움이 어느 정도 되는 정도지 뭐. 내가 좀 더 알아내면, 그 때 가르쳐 주지. 훗! 이 동물적인 내 감각이 그게 단순 추락사고가 아니라고, 무언가 더 있다고 말하고 있어. 킁킁. 뭔가 냄새가 나. 냄새가.”
“그래. 냄새가 나겠지. 머리를 일주일이나 안 감았는데. 이 안 생겼음 다행이다.”
“야! 저게! 진짜!”
붉은색 문, 방안에서 기륭은 그림 속의 하리님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림 속의 하리님 얼굴이 처음보다 더 생기 있어졌고, 하리님의 머리카락이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물결치는 모습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이호영과 안성국이 기운을 바꾸는 일에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둔 것은 분명해 보였다.
“하리님.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나 봅니다. 허허. 곧 만나 뵐 수 있겠습니다.”
기륭은 붉은색 문, 방에서 나와 거실로 들어섰고, 그 곳에는 이호영이 기다리고 서 있었다. 기륭이 자리에 앉아서 이호영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래. 아이는?”
“죄송합니다. 아직 못 찾았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 그 아이를 잡아 와야 우리 하리님의 몸이 되어 줄 건데. 이것들이 어디에 꽁꽁 숨겨 놓은 건지. 답답하구나. 성국은?”
“그게. 부상을 당했습니다.”
“음. 하리님이 온전히 힘이 다 돌아오시지 않으셨으니, 너희들이 부상을 당해도 회복이 빨리 되지 않을 거다. 한시가 급하다. 기운의 문이 열리는 날까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이를 찾아와야 한다.”
“네.”
이호영은 기륭에게 인사를 깍듯이 하고는 기륭의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음..... 그것들도 슬슬 눈치를 차리기 시작하겠군. 그래도 이번엔 안 될 것이야.”
기분이 좋아진 기륭이 누런 이를 한 껏 드러내며 웃다,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전화기를 들어 성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 딸깍.
“네. 할아버지.”
“다음 계획으로 넘어가자꾸나.”
유민은 병원에서 의사가 알려 준 말만 믿고 산을 오르고 있는 중이었다. 두 구의 시신이 어디로 사라진지는 자신들도 모른다며, 한 가지 돌고 있는 소문을 유민에게 알려주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가정이라는 걸 꼭 알아두세요. 그리고 우린 서유민 기자님께 이런 말 한 적도 없는 겁니다.”
“알죠! 알죠! 비밀보장! 계속해 봐요!”
“떨어졌을 때의 근육의 긴장 정도를 봤을 때에도 마음먹고 떨어졌다는 게 내 생각이에요. 더 정확하게 알아보기 위해서 이 시신들이 떨어진 곳에 제가 직접 가봤어요.”
“대단하시다! 그래서요?”
“떨어진 포인트는 딱 한 군데인데. 거긴 한솟대바위라는 곳인데. 알아요?”
“아니요. 몰라요.”
“제가 잠시 등산에 관심이 있었던 적이 있어서 아는데, 거기 한솟대바위라는 곳이 산세가 험하고, 암벽들도 많고, 올라가기 까다로운 곳이라 일반 사람들은 엄두도 못내는 곳이고 베테랑 산악인들도 올라가기 힘든 코스라 정평이 나 있는 곳이에요. 그리고 무엇보다 길을 잘 못 들면 길 찾는 데 애먹는 코스에요.”
“그런 곳에 올랐다는 건, 그 사람들이 전문적으로 산을 타는 사람이라는 거네요.”
“맞아요. 사망 시간을 추정했을 때, 이 사람들 새벽에 그곳에 오른 거예요. 해가 중천에 떠도 찾아가기 힘든 길을 이 사람들은 새벽에 간 거죠. 이 사람들은 프로 중에 프로라는 거죠. 그런데 이상한 게 한 두 개가 아니에요. 그 사람들 맨 몸으로 발견되었다고 그랬거든요. 어떻게 그 시간에 그런 험준한 산을 오르면서 맨 손으로 올라요?”
“왜 맨손으로 올랐을까요?”
“분명 맨손으로 오르진 않았을 거예요. 가방을 메고 갔는데 떨어지는 도중에 뭐 다른 곳에 떨어졌을 수도 있고, 만약 무슨 목적이 있어서 올라갔다면 일부로 버렸을 수도 있고요.”
“진짜 이해가 안 되네요. 무슨 이유로 새벽에 그 험준한 산을 올랐으며, 그들은 그 곳에서 자살을 했을까요? 밤이니까 잘 안보여서 발을 헛디뎌서 떨어져 죽은 게 아닐까요?”
“아니요. 또 제가 좀 알아봤는데. 거기서 떨어져 죽을 수는 없데요. 한솟대바위라는 큰 바위가 낭떠러지입구를 막고 있어서 일부로 올라가지 않는 이상 떨어질 일은 없다는 게 산림청의 이야기였어요.”
“그럼. 선생님은 일부러 떨어졌다라고 생각하시는 군요.”
“제 생각은 그래요. 하지만, 아닐 수도 있죠. 의문점이 하나 둘이 아니지만. 제가 형사도 아니고, 기자도 아니고.”
유민은 의사의 말을 듣고, 점점 더 이 사건이 궁금해졌다. G.R과 전문산악인 두 명의 죽음, 그리고 그 두 명의 시신이 사라졌다. 무조건 이 사건은 대박사건이다. 다른 기자가 냄새를 맡기 전에 유민이 먼저 이 사건의 전말을 알아내야 했다. 유민이 재기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석호 이 새끼! 지가 안 알려주면, 내가 못 알아낼까봐! 흥! 어떻게 서든 내가 알아낸다! 기필코!”
유민은 누군가가 흘려놓고 갔을지도 모를 단서를 찾기 위해 산을 올랐다. 얼마나 갔을까? 더운 날씨와 그간 관리하지 않은 체력 때문에 벌써부터 종아리가 당겨왔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헉. 헉. 이놈에 저질체력! 술 마실 땐 생생하기만 하더니.”
도저히 안 되겠는지, 유민은 앉을 곳을 물색하다 편편한 돌덩이 위를 발견하고 힘없이 털썩 주저앉았다. 가방에서 물을 꺼내들어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햇빛에 무엇인가 빤짝 거리는 것이 보였다.
“저게 뭐지?”
반짝 거리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데, 발을 헛디뎌 그만 산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악!!!!!!!!!”
비탈진 산 아래를 한 참을 굴러 떨어지던 유민이 무엇인가에 걸려 간신히 멈추어 섰고, 굴러 떨어진 충격 탓에 신음 소리가 입에서 절로 흘러나왔다.
“아.....나 죽네. 병원에서 퇴원한지 얼마나 됐다고. 아이고. 아이고.”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세우며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손으로 땅을 짚고 일어서려는 손에 무엇인가 만져졌다.
“이게 뭐지?”
나뭇잎을 치우자, 나뭇잎 속에 가려져 있던 물건이 형체를 드러냈다.
“뭐야. 가방이네. 누가 여기에 이런 걸 버린 거야?”
가방의 상태를 둘러보니 오래 되어 보이지 않아서 유민은 가방을 확인하기 위해 가방을 드는데, 묵직한 것이 짤랑짤랑 소리를 냈다. 궁금함에 유민은 얼른 가방을 열어보는데, 가방 안에 든 것은 실망스러움 그 자체였다. 가방 안에는 연장들과 종이 한 장이 들어져 있었다.
“에이 씨. 그럼 그렇지. 쓰레기네. 난 또 돈이라도 들었는지 알았네. 내가 그렇지 뭐. 하! 그나저나! 또 저기 까지 어떻게 올라 가냐. 으악! 내 팔자야.”
하지 않던 운동을 한 탓일까? 유민의 장이 격하게 운동을 하면서 신호가 왔다.
“아! 배야. 뭐 먹었다고 배가 아프냐! 가지가지 한다.”
주위를 둘러보는데, 굴러 떨어지지 않는 이상 오기도 힘든 곳이었고, 그냥 봐도 아무도 올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유민은 망설임 없이 바지를 내렸다. 급한 마음에 바지부터 내렸지만 뒤처리를 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생각 좀 하고 살자! 어!”
다시 주위를 둘러보는데, 조금 전 가방에서 종이를 본 것이 기억이 났다. 얼른 가방을 집어 들어 종이를 꺼내드는데 이상한 표식들이 적혀져 있었다. 유민의 오랜 기자 생활의 직감이 이 종이가 그냥 종이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끄응. 이건, 끄응. 그냥 종이가 아닌 거 같은데.”
유민과 석호는 대학교에서 산악회 동아리에 있었다. 그래서 산의 지도와 지형을 보는 방법에 대해서 배웠었다.
“이거...혹시 지도야? 이건...위치상 저기 위 한솟대바위인 것 같고......이 점은 뭐지? 하나, 둘......열두 개인데. 열두 개?”
그 순간, 유민의 뇌리를 빠르게 스치는 생각, 이 사건에 대한 정보를 이야기 해주던 의사가 했던 말이 기억이 났다.
“너무 궁금해서 한솟대바위에 가봐야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 친구 중에 전문 산악인이 있거든요. 걔랑 같이 한솟대바위에 갔는데, 진짜 아무나 가는 데는 아니더라고요. 어쨌든 한솟대바위에 우여곡절 끝에 올랐는데. 아직도 그 충격적인 모습이 눈에 선해요.”
“뭘 보셨기에?”
“한솟대바위에 자그마치나 12개의 말뚝이. 어후. 보는 순간 눈살이 찌푸려지더라고요. 누가 그랬는지는 몰라도. 진짜 기분 나빠서, 왜 일제시대 때 일본이 우리나라 산 마다 다니면서 민족의 정기를 끊어 놓으려고 말뚝을 박아놨었다고 하잖아요.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거 보고 나니까. 궁금증이고 뭐고 싹 사라지더라고요. 그래서 씁쓸한 기분에 얼른 내려 와 버렸어요.”
유민은 빠르게 두뇌를 회전시켰다.
“12개의 말뚝, 이 종이에 표시된 점들도 12개. 설마! 이 가방 혹시 그 시신들 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