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어둠의 태동. 05-
“헉헉!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지도를 발로 그렸나! 아오! 진짜!”
유민은 의사가 말한 한솟대바위에 올라가보기 위해 종이에 그려진 위치를 찾아 산을 몇 시간째 헤매고 있었다. 가방에서 찾은 지도가 지름길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한 유민은 종이에 표시된 대로 움직였는데, 어떻게 계속 돌고 도는 느낌이 들었다.
해는 저물어가고 있었고, 점점 산세는 험악해져갔다. 유민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길을 잃은 게 분명해 보였다. 자존심 상하지만, 날이 더 저물기 전에 석호라도 불러야 할 판국이었다. 핸드폰을 찾는데, 그 어디에도 핸드폰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좀 전에 굴러 떨어질 때 같이 떨어졌었는지.
“아오!!!!! 할부도 한 참 남았는데, 이제 어쩌지! 에이 씨. 시체 찾으려다 내가 시체 되게 생겼네. 힝! 여기 어디야. 으앙!”
그나마 산을 내려갈 수 있었던 희망이 사라지자 유민은 큰 소리로 울어 댔다. 그 때, 갑자기 풀숲에서 무엇인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고, 유민은 눈이 빠지도록 눈을 크게 뜨고 다가오는 물체를 알아보기 위해 정신을 집중시켰다. 어찌나 속도가 빠른지 달려오는 속도에 맞춰 유민의 심장도 더 빠르게 뛰었다.
‘설마! 멧돼지?’
팟!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생명체에 놀란 유민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자빠졌다.
“으악!!!!!!”
멍멍! 멍멍!
풀숲에서 나온 건 다름 아닌, 귀여운 웰시코키였다.
“돌석이! 돌석이! 야! 아이고! 이놈아! 천천히 가라니까. 왜 여기 똥이라도 있든?”
개의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개를 안고는 귀여운 웰시코기를 쓰다듬다 유민을 발견하고 흠칫 놀랬다. 주저앉아 울고 있는 유민의 얼굴이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서 거지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으아!!!! 뭐야! 웬 미친년이 있어!”
“훌쩍! 다행이다. 아! 살았다. 아저씨 저 미친년 아니에요. 힝!”
유민은 산을 내려가던 등산객의 도움으로 다행히 무사히 산을 내려올 수 있었다. 허탈했다. 호기롭게 오른 산에서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일이 뜻한 대로 되지 않자, 심란해진 유민은 단골 술집으로 향했다. 주인이 유민의 몰골을 보고 깜짝 놀라했다.
“아이고! 놀래라. 꼴이 이게 뭐야? 어디 전쟁터라도 다녀 온거야?”
“저 말할 기운도 없어요. 늘 먹던 걸로요.”
“김군아! 소맥에 육포! 안되겠다. 좀 씻고 와라. 손님들이 네 얼굴 보고 다 도망갈라!”
“그럴 기운 없다니까요.”
어쩔 수 없이 주인은 물수건을 가져다주었고, 유민은 물수건으로 대충 얼굴과 손을 닦고는 테이블 위에 오늘 주우 물건들을 올려다 놓았다.
“의미가 있는 것 같은 종이, 연장도구가 든 가방, 한솟대바위에 열두 개의 말뚝, 사라진 두 구의 시체. G.R. 뭐냐고 진짜. 하! 미치겠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네. 아오!!!”
머리를 벅벅 긁으며 술잔을 단숨에 들이키는 유민 앞에 언제 왔는지 석호가 나타나 술잔을 가로챘다.
“잘한다! 잘해! 퇴원 한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술을 마셔! 진짜 제정신이야?”
석호 손에 있는 술잔을 다시 뺏어 든 유민은 다시 술을 들이켰고, 석호는 못마땅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기어코 소맥 한잔을 다 비우고 잔을 탁! 하고 내려놓은 유민이 애꿎은 석호를 노려봤다.
“야! 내가 여기 가게에 있는 술 다 마셔도 속이 풀리지 않을 것 같으니까. 건드리지 마라. 어!”
유민이 연거푸 술잔을 기울이자 석호는 술병을 뺏어들면서 유민의 술잔에 담긴 술을 대신 마셨다.
“왜? 또 뭐 땜에 그러는 건데? 아직도 그 사라진 시체 찾으러 다니는 거야?”
“내가 시체를 찾든, 사람을 찾든 네가 무슨 상관이셔! 관심 끄셔! 그리고 여긴 어떻게 알았어? 너 스토커야?”
“주인아저씨가 진돗개 둘이래. 제발 좀 와달고 부탁하셔서 왔다. 왜!”
“내가 무슨 이 가게에 어! 무장공비야 뭐야! 사장님! 그러심 안 돼요! 네!”
“이럴까봐. 쯧쯧. 고급 정보 주려했더니. 정보를 받을 기본자세가 안 되어 있군.”
석호는 아쉽다는 듯 자신의 술잔에 술을 따르려 하자, 유민이 잽싸게 술병을 빼앗아 살살거리며 석호의 잔에 따라 주었다.
“우리 후배님! 왜 이렇게 성격이 급하실까! 내가 언제 안 듣겠데? 자! 자! 일단 한 잔 쭈욱! 들이키시고, 천천히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백주사라고 작은 절이 있는데, 아주 산 속 깊이 있는 작은 절이야. 거기 스님 두 분이 지금 실종 되셨는데. 그 곳에는 스님 다섯 분이 기거를 하고 계시는데, 그래서 그 다섯 분은 일거수일투족을 다 아시는 사이야. 뭐 어디 나가실 때 항상 서로서로에게 알리고 나가시거나, 아무도 없을 때에는 메모를 남겨두고 나가시는데.”
목이 탄지 맥주를 몇 번 들이 킨 후에 석호는 말을 이어 나갔다.
“자고 일어나니 스님 두 분이 안 계시더래. 그래서 이상한 느낌에 거처를 다 확인했는데. 짐은 모두 다 그대로이고, 몸만 빠져 나간거야. 어딜 갈 사람들이면 짐을 챙기는 게 보통인데. 무슨 급한 일이었기에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았냐 말이지. 절대 그렇게 말도 없이 사라지실 분들이 아니라고. 실종신고를 하셨어. 그런데 너도 알지만 24시간이 지나지 않으면 실종신고 접수가 안 되잖아. 특히나 혈연관계도 아니시니 실종신고는 더 어렵고.”
“그래. 알지. 그런데 그 스님들도 좀 오버지 않냐? 아무리 베프였다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무슨 실종신고야.”
“그렇지. 그런데, 실종신고도 신고인데, 인근에서 일어난 이상한 현상들이 있는데 그 현상과 두 스님들의 실종사건이 연관되어 있는 거 같아. 더 걱정된다는 거야.”
“무슨? 무슨 일? 어떤 이상한 현상? 뭐 외계인? 아님?”
“거 참. 말하는데 끼어들지나 말고 들어. 수십 그루의 나무들이 쓰러져 있었고 피가 그 일대에 온 사방에 튀어서 피 냄새가 바람을 타고 올 정도로 심각한 현장이라는 거야.”
“피? 나무가 왜? 벌목꾼들인가? 그래서 스님들이 막! 자기네들끼리 너무 심심하니까. 이제 이야기도 지어내고 그런다니?”
“선배나 이야기 지어내지 말고, 그런 이야기를 경찰이 안 믿으니까 답답한 스님이 사진을 찍어 보내셨나봐. 그 찍어 보내 준 사진을 보고, 그냥 하는 말이 아니란 걸 안 경찰들이 우리 소방서직원들에 협조를 부탁해서 경찰 둘이랑 소방서 대원 둘이 함께 나갔지. 엄청나게 산골자기에 절이 있어서 찾는 데 애를 먹었지. 그렇게 올라가던 경찰들과 우리소방대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어.”
“왜? 왜?”
유민이 궁금해 죽겠단 눈빛으로 석호 쪽으로 바짝 당겨 앉자 석호가 멀찌감치 떨어지며 말했다.
“나무들이 한 두 개가 아니라, 그 일대에 있는 몇 십 그루, 어림잡아 거의 오십 그루는 넘게 나무가 베어져 있는 거야. 피는 그 일대에 온 사방에 뿌려져 있는데. 얼마나 피가 많이 뿌려져 있었던지 현장에서 맡은 피 냄새가 아직도 가시질 않는다. 누가 일부로 거기에 막 뿌려놓은 것처럼. 그랬어.”
석호가 그 장면이 생각이 나는지 인상을 찌푸렸고, 유민은 석호 쪽으로 더 몸을 기울이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
“시체? 시체가 있었어? 그 정도 피면 사람이지? 그렇지?”
“모르겠어. 태어나서 그런 건 또 처음 보는 거라. 사람시체는 없었어. 그냥 그렇게 많은 나무가 아무렇게나 잘려져 있는데. 이건 자연현상도 아니고, 벌목꾼의 소행도 아니야. 피가 그렇게 튀려면 뭘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는 거지?”
“그 절에 스님들은 뭐래? 그렇게 나무가 많이 잘려져 나갔을 정도면 소리가 엄청났을 텐데! 전기톱으로 잘랐을 거 아니야.”
“그게 제일 이상해! 스님들은 그 곳을 매일 지나다니시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나무가 그렇지 않았대. 그렇다면 밤사이에 그렇게 된 거란 말인데. 밤사이에 그게 가능해? 그런 일이.”
“피! 피 검사는?”
“그게, 누가 봐도 이상한 현장을 경찰들은 대수롭지 않게 보는 거야. 사람이 이정도의 피를 흘렸음 근처에서 발견되거나 피를 흘리며 이동한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어. 그 일대를 샅샅이 뒤졌거든. 해가 저물기 전까지. 그런데 뭐 아무것도 없어.”
그 때 일이 기억이 나는지 황망한 눈을 하고 석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한숨을 쉰 뒤 다시 말했다.
“만약 누군가 죽임을 당해서 끌고 어디론가 갔다고 하더라도 끈 흔적이나 어떤 흔적이라도 있을 건데. 아무것도 없는 거야. 그러더니. 머리가 아픈지 경찰들이 그냥 동물들 피일 거라고. 스님들도 그냥 실종으로 처리해 버렸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부분이 한 두 가지가 아니야. 스님 두 분이 사라지셨고, 그 일대의 나무들이 그렇게 훼손이 되었으면 경찰들이 정식으로 나와서 수사를 진행해야지.”
화가 난 석호가 맥주잔을 들었고, 유민도 얼른 맥주잔을 들어 석호를 따라 마시면서 석호가 어서 다음 이야기를 하기 만을 기다렸다.
“내가 자꾸 귀찮게 캐물으니까. 경찰들이 나보고 경찰도 아니면서 경찰놀이 하지 말라는 거야. 아무것도 모르면 입 다물고 있으라고. 그 딴소리를 하는 데 어떻게 가만히 있겠어! 결국 경찰이랑 싸우다가 스님들이 말려서 참은 거야. 진짜! 일을 그딴 식으로 처리 할 거냐고! 진짜 누가 죽은 거면 어쩌려고! 열불 나 죽겠다!”
“일을 그런 식으로 처리하면 안 돼는 거지. 그래 너 나한테 잘 말했다. 언론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자고! 그딴 식으로 일 처리한 놈들 옷 벗을 준비하라고 그래! 이 서유민 기자님이 나가신다고! 헤헤!”
석호는 유민이 섬뜩하게 웃는 모습에 괜히 말했나 싶은 후회가 들었다.
“너, 내일 오프지. 거기 스님들이 있는 절. 네가 안내 좀 해줘.”
“알았어.”
유민은 벌써부터 들뜬 얼굴을 하고 있었고, 석호는 술을 홀짝 거리며 걱정스런 눈빛으로 유민을 바라봤다.
해담 스님은 한 성당 앞에 서 있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성당 안으로 들어섰고, 신부님이 성당 안으로 들어오는 해담스님을 보고 스님이 무슨 일로 성당에 들어오고 있냐는 눈을 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사람을 찾으러 왔습니다.”
“베로니카 수녀님이라면 지금 이 곳에 없습니다.”
“네? 그럼 어디로?”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신부님은 해담스님을 고해성사실로 안내했다. 고해성사실에 들어서자 신부님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보는 눈이 많아서 죄송합니다. 이런 곳에 모시게 돼서.”
“아닙니다. 제가 너무 불쑥 찾아 와서 결례를 범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시급한 사안이라. 전 백주사에서 온 해담입니다. 이렇게 인사를 드려 죄송할 따름입니다.”
“압니다. 해담스님이신지. 사실 이상한 자들이 와서 베로니카 수녀님을 찾았습니다.”
신부의 말에 놀란 해담스님은 다급하게 물었다.
“그들이! 그들이 베로니카 수녀님을 뵈었나요?”
“아니요. 뵙지 못했습니다. 이미 한 달 전, 제게 한 통의 편지가 왔고 그 후로 보현스님이 오셔서 간곡하게 부탁을 하셨습니다. 베로니카 수녀님을 안전한 곳으로 모셔달라고, 그래서 제가 안전한 곳으로 모셔놓았습니다.”
“다행입니다. 그럼 베로니카 수녀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제가 나가고 나서 5분 뒤 여길 나오세요. 성당 뒤 쪽 느티나무가 있는 곳에서 뵙겠습니다.”
“네. 좀 있다 뵙겠습니다.”
신부님이 먼저 나가고, 해담스님은 시간을 확인했다. 해담스님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입으로 베로니카라는 이름을 말 한 적도 없는데, 그 신부는 어떻게 자신이 들어서자마자 베로니카 수녀님을 찾으러 온 것을 안 것일까.
‘함정이다.’
해담스님은 가방에 들어 있었던 청색의 옥으로 된 염주를 손에 쥐고 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질 않았다. 그 때, 고해성사 실이 ‘끼긱 끼긱’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해담스님이 앉았 있는 고해성사실이 공중으로 뜨며 심하게 요동쳤고, 해담스님은 고해성사실문을 발로 박찼고 나왔다. 허공에서 떨어진 해담스님은 가볍게 바닥에 착지했다.
탁!
해담스님이 안정적으로 바닥에 착지를 하고 뒤를 돌아보는데, 고해성사실 간이부스를 해담스님 쪽으로 던지는 이호영이 보였다. 해담스님은 청색옥염주를 휘둘렀다.
“아라청!”
날아오던 고해성사실 간이부스가 해담스님이 휘두른 청색옥염주에 의해 산산이 부서졌고, 부서진 잔해 사이로 빠른 속도로 이호영이 다가왔다. 어느 세 코 앞까지 다가온 이호영이 해담스님을 가볍게 들어 엄청난 힘으로 바닥으로 꽂았다.
“크헉!”
순식간에 당한 공격에 해담스님은 고통의 신음 소리를 뱉어냈고, 이호영이 다시 해담스님 쪽으로 다가오는 모습에 해담스님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소리 질렀다.
“아라청!”
해담스님은 가지고 있던 청색옥염주를 들어 바닥을 내리쳤고, 바닥에 균열이 일어나면서 이호영이 바닥 속으로 사라졌다. 비틀대며 일어난 해담스님이 바닥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 이호영을 향해 호통 쳤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이, 왜 이런 곳에 돌아다니고 있느냐!”
“당신을 없애기 위해서."
이호영은 언제 바닥을 차고 올라왔는지, 균열된 틈 사이로 빠져나와 해담스님의 반대편에 멀찌감치 섰다. 해담스님을 아무런 표정 없이 쳐다보던 이호영이 눈에 푸른빛을 장전하기 시작했다.
“스님이 절에 있어야지. 성당에 있으면 쓰나? 청월!광하!”
지이잉!
이호영의 눈에서 나온 푸른빛이 엄청난 파괴력을 일으키며 해담스님 주위를 모두 파괴시켰고, 해담스님은 빛을 피해 성당 입구로 향해 달려갔다.
쿠궁! 쿠궁!
성당 안이 순식간에 파괴되고, 성당 입구에 다다른 해담스님이 문을 열려고 하는데, 문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문이 열리지 않아 당황한 해담 스님 뒤에 선 이호영이 조용히 다가섰다.
"절이 아닌, 저승으로 보내주지! 청월광하!“
지이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