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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100번의 환생
작가 : 디버스대도서관
작품등록일 : 2016.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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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작성일 : 16-08-23     조회 : 255     추천 : 2     분량 : 4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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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

 

 꽤나 강하게 목을 눌렸던 듯 숨쉬기가 불편했다. 시야는 흐릿했다.

 

 눈앞의 남자는 얼핏 보기에 붉은 끼가 도는 금빛 머리카락을 하고 있었다. 루비 블론드. 처음 보는 색인데 화려하고 예뻤다.

 

 그는 제복에 망토를 두르고 있었는데, 곧 그 망토를 풀더니 내게 감싸 주었다. 딱 봐도 가슴이 드러날 정도로 옷이 뜯어진 나를 위한 배려였다. 나는 망토를 그러모아 쥐고 일어서려 들었다. 그러자 그는 나를 부축했다.

 

 끔찍한 일을 당할 뻔 했다. 나는 잘 쉬어지지 않은 숨을 고르며 그를 보았다.

 

 "그래요. 죽을 때 죽더라도 이건 아니죠. 고......."

 

 고맙다고 말하려는 순간 남자가 더 흐릿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

 

 "찾으셨습니까?"

 

 "아아. 그래. 이번은 위험했어."

 

 문득 남자들의 목소리가 귀에 들렸다.

 

 "찾으셨어도 싹 다 처분합니까?"

 

 뭘 어찌해? 가물가물하던 나는 좀 전에 있었던 일이 기억났다. 아 맞다. 레단의 돌변으로 하마터면 꼴사납게 죽을 뻔 했었지. 웬 기사님이 나타나 구해줬던 것 같고. 그러고 보니 못 보던 기사님이었는데, 오가는 말로 미루어 보아 아마 분쟁의 주기에 태어난 여자들을 잡으러 온 사람일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방금 남자가 한 질문은 문양의 있는 여자들의 처분을 묻는 것이다.

 

 "그래. 이 마을에 있는 '분쟁의 주기' 여성들은 전부 처분하고. 이후 다른 마을에서 발견되는 것들도. 아직 숨은 놈들이 더 있을 거야. 그 목과 손에 포상금을 걸고 병사를 더 풀어."

 

 "뭐라고요?"

 

 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치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러자 두 남자는 내 쪽을 보았다. 내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서 팔짱을 끼고 앉아있는 남자는 아까 보았던 루비 블론드의 남자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짧은 포니테일을 한 갈색 머리의 기사가 한명 서 있었다.

 

 "여, 여기가 마지막 은둔의 마을이라면서요. 희생양이 될 여성이 없었어요? 그 여성이 있으면 나머진 일단 산다던 걸요!"

 

 어차피 죽는대도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일단 살아남고 나중에 수를 봐야 하는데, 빠짐없이 다 죽이라니.

 

 "......."

 

 그들은 할 말을 잠시 잃은 듯 눈이 동그래져서 나를 보았다. 하긴 놀라기도 했을 거다. 기절한 줄 알았는데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항변을 하니 말이다. 그래도 그 얘기를 옆에서 바로 듣고 어떻게 가만히 있냔 말이다.

 

 "난 타고난 문양 때문에 죽고 싶지 않거든요?"

 

 난 루비 블론드의 기사에게 절박함을 담아 말했다.

 

 "아까 죽을 때 죽더라도 이건 아니잖아. 라고 저한테 말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죽이려고요?"

 

 "크읏!"

 

 그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날 보다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았다.

 

 "크흠! 흠!"

 

 그는 헛기침을 여러 번 하더니 내게 말했다.

 

 "걱정 마. 넌 안 죽어. 죽는 건. 흠!"

 

 그는 내가 죽음의 불안으로 떠는 걸 눈치 챘는지 내가 죽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이어 무언가를 말하려던 그는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표정이 변하더니 헛기침으로 말을 끊었다. 그의 말 끊음이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게 느껴졌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 마을에 제 또래 여자들은 다 어디 있어요?"

 

 질문에 두 기사는 눈을 잠시 굴리더니 서로 눈치를 보았다. 그들의 대답이 없다. 루비블론드의 기사가 눈짓하자, 갈색 포니테일의 기사는 먼저 밖으로 나갔다.

 

 "......."

 

 이후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내게 말했다.

 

 "그, 옷이 아직 그런 상태니 좀 가리는 게 좋겠군."

 

 그 말에 아직도 내게 그 망토가 덮여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얼른 그 망토를 그러잡아 둘렀다. 그 때 아까 레단이 회관으로 오라는 얘기가 생각났다.

 

 그래. 이 남자의 말대로 일단 난 안 죽는다면 지금 여기서 이럴 때가 아니었다. 나는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다.

 

 "엇. 어디 가."

 

 루비 블론드의 기사가 내 손을 재빨리 잡았지만, 나는 소리쳤다.

 

 "놔요!"

 

 순간 잡혔을 때 느낌으로는 순순히 놔주지 않을 것 같은 힘이었다. 하지만 그는 내 한마디에 바로 손을 놓았다. 나는 그의 행동이 의아해 잠시 그를 보다가 곧 문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회관으로 달렸다. 그도 곧 뒤따라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루비 블론드의 남자는 곧 나를 따라잡았고, 내 옆을 달리며 물었다.

 

 "꼭 가야겠어? 안 가는 게 좋겠는데."

 

 "뭐라고요? 다들 거기 있을 거 아녜요!"

 

 

 "......."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난 뛰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러자 그도 따라 멈추었다.

 

 "설마, 저에요?"

 

 "......."

 

 "그 희생양이 저에요?"

 

 "희생양?"

 

 기사는 무슨 이야긴지 모르겠다는 듯 내게 되물었다. 나는 큰 소리로 그에게 다시 물었다.

 

 "한 명은 꼭 살아남는다고 하던 걸요! 그 망할 왕의 광기를 짊어지고 3년은 살아남는 그 한 명! 그게 저냐고요! 아까 그러셨잖아요? 전 안 죽는다고요!"

 

 숨이 차올랐다. 희생양이 만일 나라면 같은 마을에 있는 친구들은 우선 살아야 정상이다. 그런데 다 죽인다고?

 

 "그래요? 혹시 그게 다른 사람으로 바뀌기도 해요?"

 

 기사는 잠시 나를 보다가 조심스레 입을 떼었다.

 

 "아니. 그건 결정되어 있는 거야. 그리고 다른 얘긴 모르겠지만, 꼭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은 네가 맞아."

 

 "꼭?"

 

 내 확인하는 질문에 그는 대답했다.

 

 "꼭."

 

 "무슨 일이 있어도?"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말에 난 확신했다.

 

 "제가 희생양이 맞네요. 그럼 나머진 적어도 제가 죽을때까지는 안 죽어야 정상 아니에요? 이제까지 그랬다면서요."

 

 "그거야......."

 

 기사는 무언가를 더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내 직감으론 지금 길에서 대화를 주고받을 만한한 시간이 없었다.

 

 나는 그의 대답을 듣지 않은 채로 회관 쪽으로 달려가 문을 힘껏 열어 젖혔다. 그러자 회관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든 눈이 내 쪽으로 쏠렸다. 나는 숨을 멈췄다.

 

 촌장님. 기사로 보이는 남자들. 아까 먼저 나갔던 갈색 포니테일의 남자. 같이 자란 저주받은 19명의 친구들. 아니. 그 중에 9명은 이미 바닥에 쓰러져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달려갔다. 누워 있는 사람 중 하나를 들어보려 했다.

 

 딱딱하게 굳은 그 몸. 이미 그녀의 삶이 끝났음을 내게 알리고 있었다. 나는 입술을 질끈 물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대체 왜 이래요! 찾았다고 했잖아요! 나라고 했잖아요! 이제까지는 희생양이 나오면 나머진 안 죽었다고 했잖아요!"

 

 내 기세에 눌린 듯 기사들은 한두 발짝 물러섰고, 살아남은 또래들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내 주변에 모여 들었다. 회관으로 따라 들어와 내 외침을 들은 루비 블론드의 기사는 이마에 손을 짚었다. 그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미치겠구만."

 

 다른 기사들은 루비 블론드의 기사를 보았다. 아마 그의 명령을 기다리는 듯 했다. 문득 내게 둘러진 그의 망토가 눈에 들어왔다. 아까 처음 만났을 때 전달된 그 배려. 지금 보니 그는 이 기사들의 상위권자 같았고 왠지 내 요청을 들어줄 것 같았다.

 

 "기사님이 여기 상위권자 맞죠?"

 

 그는 잠시 나를 보다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래."

 

 "여기 있는 아이들 다 살려주세요. 제발요."

 

 그러자 그는 단호하게 바로 대답했다.

 

 "안 돼."

 

 나는 있는 대로 신경을 곤두세운 채 그와 주변 기사들의 눈치를 보았다. 주변 기사들은 내 눈치와 그의 눈치를 번갈아가면서 보는 듯 했다. 나는 '한 여자가 그의 모든 광기를 짊어지고 갔다.'는 얘기를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은 그 여자가 바로 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난 여기서 살아남는다고 했다. 저 기사의 말에 거짓이 없다면 말이지. 그래서 나는 그 점에 도박을 걸기로 했다.

 

 "저 살려가야 되는 것 맞죠? 저 여기서 죽으면 곤란한 거 아니에요?"

 

 ".......죽게?"

 

 문득 느껴지는 그의 서늘한 음성에 긴장이 되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무, 물론 그러고 싶진 않지만, 내 친구들을 죽인다면 저도 같이 죽어버릴 거에요. 그럼 당신은 미친 전하 앞에서 곤란할 걸요?"

 

 "......."

 

 그러자 주변의 기사들은 루비블론드를 한 기사의 눈치를 보았다. 그는 말 없이 입술을 깨물더니 잠시 후 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 쯤 하면 됐다. 모두 입성시키도록."

 

 그러자 다른 기사들이 바로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그는 먼저 회관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남은 기사들이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 살아남은 친구들은 하나 둘씩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휴우.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러고 나니 문득 그에게 고마워졌다. 그도 명령을 지켰을 뿐인데. 내 협박에 어쩔 수 없이 수긍한 듯 보였다.

 

 나는 재빨리 따라 나가 그를 불러 세웠다. 그는 어딘지 모르게 지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고, 그 얼굴을 막상 보니 좀 미안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랴. 이쪽은 목숨들이 걸려있는 걸.

 

 "저기.......그."

 

 순간 그의 깊고 짙은 루비색의 눈동자가 나의 눈과 바로 마주쳤다.

 

 어? 순간 심장이 두근거리며 무언지 모를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어, 그러니까. 고마워요. 음.......저기 이름이 뭐에요?"

 

 그는 그런 나를 보다 살짝 미소 지었다. 얼굴에 살짝 열감이 느껴졌다. 아. 뭐지?

 

 "루스. 라고 부르면 되겠군."

 

 그는 자신의 이름을 대답한 후, 다시 등 돌리고 걷기 시작했다. 그의 뒤를 보며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심장 부근에 손을 대었다.

 

 순간 가슴이 뛴 것 같았는데. 착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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