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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100번의 환생
작가 : 디버스대도서관
작품등록일 : 2016.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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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듯 아닌 듯
작성일 : 16-08-27     조회 : 78     추천 : 1     분량 : 7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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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

 

 루스경은 곧 콘솔 옆에 놓인 나팔 모양 배관 앞에 섰다. 배관 옆에 버튼을 누르자 딸랑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나팔 모양의 배관에선 곧 어떤 사람의 목소리가 나왔다.

 

 "네. 말씀하십시오."

 

 "식사는 룸으로."

 

 "네. 알겠습니다."

 

 와. 뭐지. 저건. 추측컨대 건물 안의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도구인 것 같다. 간략한 대화가 끝난 루스경은 나를 돌아보더니 입맛만 살짝 다셨다. 표정과 조합해 봤을 때 '또, 또 촌스럽게 놀라고 있군.' 이라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동시에 무언가를 포기한 느낌이다. 뭐지?

 

 한참 그를 관찰해도 도무지 알 수 없는 표정에 왜 그러는지 물어볼까 하는 순간, 곧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루스경이 문을 열자, 이 곳의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가 음식들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들은 테이블위에 정갈하게 그것을 차려놓은 후, 인사를 공손히 하고 다시 나갔다.

 

 마을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수준의 음식들이다. 마을에선 보통 며칠 된 빵과 스프, 간단한 샐러드. 투박하게 구운 고기가 주로 먹는 음식들이었다. 거기다 스프를 제외하면 거의 한 접시에 담았었다.

 

 그런데 이건 뭐랄까. 각양각색의 형태의 식기 안에는 다 따로 담겨져 있었다. 음식이라기보다는 예술?

 

 여하튼 따끈하게 김이 올라오고 있는 음식들을 보고 있자니 절로 침이 넘어갔다.

 

 루스경은 손짓으로 내게 음식 앞에 앉을 것을 권했다. 그에 나는 머리에 두른 수건을 풀고 덜 마른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대강 빗어 내리며 그 앞에 앉았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손짓으로 내게 먹으란 의사를 표했다. 나는 우선 포크를 손에 들었다. 그러자 그도 손에 포크를 들었다. 테이블 위의 음식들이 한 번 더 눈에 들어왔다. 배는 고팠지만 마음에 망설임이 생겼다. 음식들은 먹기가 너무 아까울 정도로 예뻤기에.

 

 아. 이거 진짜 먹어도 되는 거야? 나는 문득 루스경의 얼굴을 살폈다. 그는 내가 먼저 먹기를 기다리는 듯 보였다. 손이 저절로 주춤거리긴 했지만, 일단 빵을 집어 들었다. 헉. 예상 못한 촉감이 손에 닿았다.

 

 "왜 그래?"

 

 내 표정이 의아한 듯 루스경이 물었다. 나는 너무 감탄스러워서 그를 보며 웃었다.

 

 "빵이 말랑해요. 세상에나. 거기다가 따뜻하기까지 하네요?"

 

 그러자 루스경의 고개가 한쪽으로 살짝 기울여졌다.

 

 ".......그걸 왜 감동하는데? 빵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당연하지. 처음 먹어보는데.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빵은 촌장님의 집에서 구경만 해 봤다. 잘 살면 항상 먹는다더니 호텔에서 자는 것도 그렇고 마차도 그렇고. 아무래도 루스경은 잘 사는 모양이었다.

 

 "아니. 저 있는 마을에선 항상 굳어있는 상태였었거든요. 이거 진짜 저 먹어도 되는 거예요?"

 

 순간 그의 표정이 은둔마을의 빵처럼 굳었다.

 

 "마을을 돌다 보니 은둔 마을은 촌장이 음식이나 의복 같은 걸 제공해줬던 거 같은데?"

 

 "네. 주셨죠. 솔직히 우리가 자급 자족해봐야 한계가 있었으니까요. 부모님 같은 좋은 분이세요."

 

 그는 잠깐 이마를 만지작거리다 내게 말했다.

 

 "그래? 음. 일단 마음껏 먹어. 필요한 만큼 나오니까."

 

 그 말에 나는 조심스럽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아. 폭신폭신한 게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이런 맛이었구나. 갑자기 허기가 치고 올라오자, 나는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내가 먹기 시작한 걸 본 루스경은 자신도 식사를 시작했다. 아, 맛있는 걸 먹으니 행복감이 밀려왔다. 아까 생사를 넘나든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세상에. 고기가 이런 맛도 있군요. 거기다가 막 구워서 따뜻해요."

 

 "무슨 소리야? 고기가 고기지. 거기다 방금 구웠는데 따뜻한 건 당연한 거고."

 

 "아. 샐러드에 이런 소스를 뿌리는 방법도 있었네요."

 

 난 먹다가 신이 나서 루스경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떠들었다.

 

 "......."

 

 그는 식사를 하다 말고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아. 알죠. 원시시대 촌뜨기.

 

 "시골 촌년이라고 해도 맛있는 건 맛있는 거예요. 아, 도시란 게 말로만 들었는데 되게 좋은 곳이네요."

 

 갑자기 그는 기침을 했다.

 

 "아무리 그래도 말의 품위는 좀......."

 

 아마 촌년이란 부분이 걸린 것 같다. 하긴. 기사나 귀족들은 언어를 좀 품위있게 쓴다고 듣긴 했었다. 나는 머쓱해져서 혀를 살짝 깨물며 웃었다.

 

 식사가 끝나고 나는 소파에 늘어지게 기대앉았다. 아까의 마을에서 있었던 일들이 마치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평온한 분위기. 저절로 눈이 감겼다.

 

 "잘 거면 침대로 가."

 

 그의 말에 나는 하품을 하며 일어섰다. 침대에 앉았는데 푹신한 쿠션감이 왠지 몸을 편하게 받아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넘어지듯 침대에 누웠다. 부드럽게 튕기는 반동이 기분 좋았다.

 

 그렇게 나는 그대로 깜박 곯아떨어진 것 같았다.

 

 언뜻 들린 말소리에 잠깐 깨었으므로. 루스경이 누군가와 두런두런 작게 대화하는 소리에 나는 떠지지 않는 눈을 살짝 떴다. 흐릿한 눈에 소파에 앉은 루스경과 갈색 꽁지머리의 기사가 들어왔다. 루스경은 뭔가 분노한 듯 나직하게 이를 갈며 그에게 말했다.

 

 "괘씸한 놈들. 죄다 사형에 처해."

 

 나는 그 바람에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벌떡 일어나려 했지만. 아우, 몸이 내 몸 같지가 않다.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간신히 일어났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루스경과 갈색 꽁지머리의 기사의 눈이 내게 향했다. 꽁지머리가 루스경의 눈치를 보자, 그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말했다.

 

 "무슨 소리냐고? 뭐가?"

 

 "뭘 사형에 처한다고.......혹시 데리고 온 마을 처자들을?"

 

 그러자 그는 고개를 저으며 일어났다.

 

 "아니, 그 얘기 아니야."

 

 그러더니 그는 내게 가까이 다가와서 내 머리를 살짝 쓰다듬더니 나를 천천히 눕히곤 이불을 다시 덮어주었다.

 

 "뭘 잘못 들은 모양이네. 피곤할 텐데 얼른 다시 자."

 

 문득 귀에 들린 그의 목소리는 무척 다정하게 들렸다.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다시 잠이 마구 쏟아져서 나는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

 

 띵. 띠딩. 띵. 맑고 청아한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아, 나 이거 뭔지 알아. 오르골이다. 귀에 익은 음에 속으로 그 음을 따라 흥얼거렸다. 그러다 잠결에 숨을 한번 들이켰다 내쉬니 어디선가 민트 향이 느껴졌다. 상쾌한 향. 이어 눈에는 낯선 천장이 슬그머니 들어왔다.

 

 "아."

 

 의식이 또렷해지자, 내가 어디 있는지 생각이 났다. 나는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 안엔 아무도 없었지만, 침대 머리맡에 놓인 오르골은 청명한 소리를 울리고 있었다. 작은 금빛의 오르골. 나는 그걸 들어 살펴보다가 작은 버튼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

 

 별 생각 없이 눌렀더니 오르골 소리가 그쳤다. 그리고 침묵이 찾아왔다. 왠지 아쉬운 마음이 들어 다시 한 번 눌렀다. 그러자 오르골은 천천히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순간 나는 고개가 기울여졌다.

 

 "이게 무슨 노래였더라?"

 

 분명 귀에 익은 음악 같은데, 생각해보니 오늘 처음 들었다. 오르골을 내려놓고 침대에서 내려오자 침대 발치에 옷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걸 들어 이리 저리 보았다. 하의는 왼쪽이 오픈되어 있는 긴 스커트였는데, 상의는 좀 짧다는 느낌이 들었다. 검은 색에 심플한 디자인 같아 보였지만 재질은 확실히 좋아 보였다. 곧 옷의 아래 깔려있는 속옷도 발견했다.

 

 루스경이 새 옷을 준비해 주겠다는 말이 떠올랐다. 아마 이 옷이 그 옷일 것이다.

 

 나는 우선 세수부터 마친 후, 바로 가운을 벗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화장대 앞에 서서 거울을 보았다.

 

 얼굴 붓기는 확실히 많이 가라앉았다. 원래 이렇게까지 빨리 가라앉지 않는데, 도시는 목욕물이 다른가?

 

 속으로 중얼거린 나는 이어 옷맵시가 어떤지 살펴보았다.

 

 입은 옷이 작정이라도 한 듯 몸에 딱 달라붙었다. 상의는 목과 가슴 부근을 가리고 있었다. 목에 들은 멍이 가려진 건 좋았으나 상의는 가슴 아래부근에서 그 길이가 끝났다. 덕분에 복근의 가운데 일자 라인. 배꼽. 그리고 양 옆의 잘록한 허리 라인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

 

 다행히 스커트는 길었지만 왼쪽 라인이 트여 있어 크게 움직이면 왼쪽 허벅지까지 노출되었다.

 

 "아, 뭐랄까 이건."

 

 내가 예쁜 건 알고 있었지만, 몸매가 괜찮다는 건 어제 알았다. 그리고 이 옷을 입고 거울을 보니 어딘가 섹시한 듯도 보였다. 이리 저리 돌아도 보고 움직여 보았다. 예상 외로 속옷 노출 같은 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움직이기 불편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뭐랄까.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 조심히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나자 화장대 앞에 앉았다. 나는 머리를 빗어 설렁 설렁 하나로 엮어 땋았다. 아무리 봐도 내 귤빛 머리카락은 내 스스로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부모님이 누군지 몰라도 머리카락 하나는 진짜 기가 막히게 물려줬다. 거울에 생글 웃어주고는 내 신발을 놓아두었던 곳에 눈을 돌렸다.

 

 "어?"

 

 침대 옆에 가지런히 벗어 두었던 내 신발은 어디에도 없었다. 신발 대신인 건지 침대 밑에는 여성용 구두가 한 켤레 놓여있었는데, 그걸 본 나는 한손으로 입을 가린 채 구두를 들어 올려 보았다. 생긴 건 예쁜데 뭔가 복잡해 보였다. 그리고 굽이 굉장히 높았다. 눈대중으로 재어봤다. 대강 8센티 정도?

 

 "뒷 굽은 왜 이렇게 생겼대. 이거 신으라고 만든 거야?"

 

 달칵.

 

 그때 문이 열렸다. 나는 깜짝 놀라 신발을 내려놓고 그 쪽에 시선을 돌렸다. 루스경이었다. 무언가를 손에 들고 들어 온 그는 위 아래로 내 옷차림을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뭔가 만족한 표정이 되었다.

 

 "일어났군."

 

 "노크도 안 해요?"

 

 "자는 줄 알았지."

 

 무덤덤하게 대답한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걸 건네주었다.

 

 "이게 뭐에요?"

 

 "오다 주웠는데....... 뭔가 싶어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상처 치료제라더군. 때마침 필요한 것 같아서 가지고 왔지."

 뭐래니. 루스경.

 

 나는 받아든 걸 열어보았다. 크림이 들어있었는데 순간 상큼한 향이 확 끼쳤다. 아침 잠결에 맡았던 향과 같았다.

 

 "이건......."

 

 어이가 없어 그를 빤히 보았다. 그가 자연스럽게 내 눈을 피해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렸지만 알 수 있었다. 아마 내가 잘 때 얼굴에 약을 발랐던 것 같았다.

 

 "모두 출발 준비가 끝났다. 그만치 준비 됐으면 금세 나갈 수 있겠군."

 

 나가잔 얘기였다. 내가 그를 물끄러미 보고 있자 그는 의아해했다.

 

 "왜?"

 

 "신발 다른 거 없어요?"

 

 그러자 그는 그 희한한 구두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거기 있잖아."

 

 "너무 높아요. 또......."

 

 어떻게 신는지 모른다고 하면 또 촌뜨기 취급 할 텐데.......생각 끝에 다른 핑계를 대기로 했다.

 

 "이건 불편해서 싫어요."

 

 그러자 그가 살짝 코웃음을 쳤다.

 

 "신어 봤어?"

 

 "그. 그건 아니지만요."

 

 내 눈을 그가 빤히 들여다본다. 아. 설마 이런 구두는 신을 줄 모른다는 걸 들켰나?

 

 그는 바닥에 있던 구두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내 손을 잡더니 침대 위에 앉혔다.

 

 "?"

 

 순간 나는 열이 확 오르며 작은 비명을 토했다.

 

 "앗. 저기 잠깐만."

 

 "가만히 좀 있어봐."

 

 나를 침대위에 앉힌 그의 표정은 시크해보였다. 하지만 내게 느껴지는 행동은 절대 시크하지 않았다.

 

 그는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어 한 손으로 내 발을 감싸 잡고 그 높은 굽의 구두를 신겼다. 뒤쪽에 고리를 위로 죽 올리더니 앞의 끈을 들어 매듭을 지었다. 이어 다른 발도 마찬가지로.......누군가 내 발을 이런 식으로 만진 적이 없다. 더구나 그 손길 끝에 무언가 소중히 다루는 느낌이 전해져 오니 어찌해야 좋을지 모를 지경이 되었다. 미묘한 기분으로 괜히 뛰기 시작한 심장이 진정이 되질 않는다. 그는 내게 구두 신기는 행동을 마치자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이제 걸어 봐."

 

 이 높은 굽을 신고 걸으라고? 나는 눈만 움직여 서 있는 그를 올려 보았다.

 

 "너무 높은데......."

 

 그러자 그는 조소를 띄웠다.

 

 "그럴 리가 없어. 지레 엄살떨지 말고 일단 걸어 봐."

 

 나는 눈을 굴리다가 조심히 일어났다. 어라? 허리에 쭉 힘을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의 눈치를 살피자 그는 내게 걸으라는 듯 눈짓했다.

 

 한 발짝. 두 발짝. 세 발짝.

 

 "어?"

 

 분명히 처음 신는 건데? 원래 신던 것보다 오히려 이게 더 익숙하고 걷기 편했다. 그리고 더 예뻤다. 새로운 기능을 가진 신발인가? 내가 신기한 표정으로 그를 보자 그는 한쪽 입 꼬리를 올렸다. 그거 보라는 듯이.

 

 내가 잘 걷는 것까지 확인한 루스경은 아무것도 장식되어 있지 않은 한 벽으로 다가섰다. 그는 벽 한 쪽에 있는 무언가를 만졌다. 그러자 이변이 일어났다.

 

 벽이 반으로 갈라져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동시에 어디선가 묵직하게 울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벽이 완전히 열리니 커다란 통유리가 나왔고, 이어 내 눈에 가득 들어오는 건 어제 멀리서 보았던 것이었다. 어제 봤던 것과는 외관이 달랐지만 말이다.

 

 눈앞에 있은 것은 루클러스 왕의 문장이 박힌 거대한 비공정.

 

 루스경이 어딘가를 잡아당기자 원래 그 곳에 있었던 듯 양문이 활짝 열렸다. 열린 공간을 통해 맑은 바람이 세게 들이쳤다. 그리고 비공정에서 무언가 돌아가는 소리도 더 크게 들어 왔다.

 

 곧 비공정 쪽도 출입구 한쪽이 열리더니 네모난 통로 같은 것이 튀어나왔다. 그 통로는 비공정과 이 방의 입구를 연결하여 길을 만들어냈다.

 

 그는 나를 그 길로 안내했다.

 

 "이제 가지. 루클러스의 탑으로."

 

 그의 루비 블론드와 기사 망토가 들이치는 바람처럼 휘날렸다. 나는 멍해져서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 들어갔다.

 

 비공정 안에 들어서니 그 안에서 일하는 듯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양 옆에 늘어서 있었다. 그들은 허리를 45도 굽힌 채로 있었는데 우리가 완전히 지나갈 때까지 그러고 있었다. 그들은 정중했다. 그리고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유리창. 원목 패널로 이루어진 벽. 카펫이 깔린 바닥.

 

 중간 중간 눈에 띄는 루클러스 왕의 문장.

 

 나는 두리번거리면서 그 화려함을 눈에 담았다. 감탄이 저절로 나오려고 했지만, 그랬다간 루스경이 또 촌뜨기 소리할 것 같아 꾹 참았다. 이제 그에게 그런 소리를 듣지 않으리라.

 

 루스경의 안내를 따라가자 앞 쪽으로 걸어갔다. 우리가 있을 곳으로 보이는 장소에 도착하자 촌뜨기 소리에 대한 내 결심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와아."

 

 커다란 유리창 밖으로 펼쳐진 거대한 도시의 전경. 끝없이 높게 펼쳐진 푸른 하늘. 이제 봤더니 내가 묵었던 호텔은 엄청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창에 가까이 다가가 넋을 놓고 보았다. 촌뜨기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런 나를 보던 루스경은 이번만큼은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날 수 있긴 하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 높이는 쉽지 않지."

 

 곧 비공정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점점 멀어지는 호텔을 보던 나는 무언가 잊은 듯한 생각이 들었다. 뭐지? 고개를 갸웃거리다 잘 생각이 안나서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푹신한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문득 한 손의 문양이 눈에 들어왔다.

 

 "아!"

 

 내가 뭔가 생각난 듯 외마디 소리를 내자, 옆이 의자에 편하게 앉은 루스경은 밖에 보이는 하늘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했다.

 

 "분쟁의 주기 처자들 때문이라면 걱정 마. 하나도 빠짐없이 다 탑승했으니."

 

 "......."

 

 곧 비공정 수행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책을 가지고 와 루스경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그는 그걸 받아들고 편하게 의자에 기대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의 옆모습을 보았다. 유려한 옆모습. 아까 그가 구두를 직접 신겨주던 게 생각나자, 또 괜히 얼굴이 달아올랐다.

 

 내가 그를 계속 보고 있자, 그는 책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입만 떼었다.

 

 "여기서 8시간 걸려. 자던지, 놀던지, 먹던지 밖을 구경하던지 간에. 필요한 건 저쪽 수행원한테 얘기하면 다 해 줄 거야. 여하튼 도착할 때까지 문 밖으로 나가지만 않으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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