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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국(鐵國)
작가 : 우장
작품등록일 : 2018.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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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국(鐵國)
작성일 : 18-01-23     조회 : 446     추천 : 0     분량 : 2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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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불놀이(611)

 

 

 

 

 

 

 

  한 대의 불화살이 날았다.

  석양에 물드는 하늘에서 길게 포물선을 그은 불화살은 강 건너 쪽 비석암 밑에 치쌓은 장작더미에 꽂혔다. 백사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 입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아."

  "와."

  불화살이 꽂힌 비석암의 장작더미에 불이 붙었다.

  해마다 춘삼월 그믐밤에 다갈촌(多曷村)에선 불놀이를 했다. 쇠를 다루는 야장(冶匠)들이 불의 소중함을 알리는 행사였다. 야장들만이 아닌 인근 촌락 사람들도 함께 어울렸다. 강변 모래톱에 술 항아리와 음식상을 펼쳐 놓고 먹고 마시며 놀았다.

  고구려에선 천신(天神)께 제사를 드리는 제관(祭官)과 야장들은 특수 신분이었다. 특히 야장들은 돌멩이를 녹여 쇠를 뽑고 유용한 도구를 만드는 기술을 지녀서 선망의 대상이었다.

  야장촌의 우두머리는 야좌(冶座)인데 다갈촌은 고구려 야장방의 시원이라 야좌가 위에 철장(鐵長)이 있었다. 고구려 전체에 한 명 뿐인 철장은 야장들의 정신적인 지주로 존경을 받았다.

  야장들은 무기를 만들지만 검술(劍術) 연마에도 힘을 기울였다. 무예를 지니는 것도 긍지로 여겨 다갈촌은 무문(武門)까지 있는데 그 명성은 타국에까지 소문이 났다.

  봄이라지만 북국(北國)의 밤은 기온이 몹시 찼다.

  비석암의 불길은 더욱 거세게 타올라 용틀임을 치며 암벽 전체를 휩싸고 들었다. 어둠을 대낮처럼 밝혀놓은 가운데 다갈촌의 야좌인 양신(陽辰)이 누구를 찾는 듯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런 양신 앞으로 젊은이 두 명이 다가들었다. 한 사람은 백제에서 온 계백(階伯)이고 또 한 사람은 신라에서 온 해론(奚論)이었다. 두 사람도 이번 검술대회에서 양신과 더불어 진석(眞席)에 든 영광의 주인공들이었다.

  다갈촌의 검술대회는 1, 2, 3등을 진석(眞席)으로 쳤다.

  그런데 금년은 고구려, 백제, 신라 순으로 10대 후반이 진석을 휩쓸었다. 그 바람에 해마다 진석에 들었던 돌궐의 흑발(黑魃)은 4등, 장안성 왕실 검사단(劍士團)의 구조리(臼鳥利)는 5등으로 밀려났다.

  해론이 입을 열었다.

  "양신님, 여기서 뵙게 되는군요?"

  양신은 나란히 선 두 사람을 기이한 듯 바라보았다. 오래간만에 불놀이에 참가한 백제와 신라 야장들은 어디서도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의외란 시선을 던졌다.

  "계백님, 해론님, 저녁 식사들은 하셨습니까?"

  양신이 묻자 성격이 활달한 계백이 대꾸했다.

  "다갈촌의 내장탕이 별미라 번번이 두 그릇씩 먹게 됩니다. 노늘도 많이 먹어서 배가 터질 지경입니다."

  "다행입니다. 저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까 걱정이었습니다."

  양신의 대답을 해론이 받았다.

  "순대 맛이 어찌나 좋은지 식사 때마다 번번이 과식을 합니다. 저는 순대가 그처럼 맛있는 음식인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과찬들을 해주시니 고맙습니다. 두 분은 지금 산책 중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양신님을 찾아 백사장을 돌아다녔습니다."

  "저를 무슨 일로 찾아다녔단 말씀입니까?"

  양신이 묻자 계백이 받았다.

  "양신님, 우리 셋은 이번 대회에서 진석에 들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만?"

  "각자 나라는 다르지만 젊은이들끼리 어울려보고 싶었습니다."

  계백의 말을 해론이 받았다.

  "오늘로 검술대회는 마쳤습니다. 이대로 헤어지기가 너무 섭섭했습니다. 그래서 저녁 식사 후 계백님을 찾아갔더니 계백님도 저와 함께 양신님을 만나 의중을 떠 보자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양신이 반기는 기색을 보이자 해론과 계백이 한 마디씩 했다.

  "우리들의 제안을 양신님은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저도 같은 생각이므로 대 찬성입니다."

  그런 말을 나누는 세 사람은 마치 죽이 맞는 친구처럼 보였다.

  "양신님, 선뜻 응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계백의 말에 양신은 내심 미안함을 금치 못했다. 자신이 먼저 꺼냈어야 할 말이었는데 불놀이 행사를 주관하는 책임을 진 몸으로 무척이나 바빠서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었다.

  "두 나라 야장님들께 세세한 배려를 못한 점 부끄럽습니다."

  "양신님, 그런 말씀을 하시면 저희들이 도리어 송구합니다."

  아무튼 간에 세 사람은 함께 활짝 웃었다.

  양신은 내심 잘 되었다는 생각이었다. 울적함을 달랠 길 없던 참에 두 사람의 출현은 내심 구원받는 심경이었다. 함께 술도 마시고 세상 얘기를 나누다 보면 괴로움을 잊을 같았다.

  "지금부터 두 분과 어울릴 자리를 갖기로 하겠습니다."

  양신의 대답에 두 사람은 기쁜 듯 어깨들을 으쓱해 보였다.

  어느 새 비석암의 장작더미가 다 타서 어마어마한 참숯불더미로 변했다. 사람들은 북소리에 맞춰 화축가(火祝歌)를 합창했다.

 

  불꽃이 인다, 불길이 오른다.

  불씨를 구하러 허여여 산으로 간다야

  불길을 잡으러 발가가 산으로 가누나.

  푸러러 물길 따라 누러러 땅을 누비며

  검어어 쇠를 캐어 녹이는 대장장이들

  연년세세 불씨를 지켜 내리라.

 

  밤하늘은 다시 야음으로 돌아가고 불에 달구어진 비석암이 유백색 의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강 건너서 이글거리며 토해내는 열기는 이쪽에 있는 세 사람들에게도 전해졌다.

  계백과 해론은 거대한 참숯불더미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처음 보는 장관이었다. 비석암의 황홀한 빛에 사람들은 취하듯 신음 같은 소릴 흘려내며 그 쪽을 향해 수없이 절을 했다.

  양신은 넋 나간 사람처럼 서 있는 계백과 해론에게 말했다

  "두 분도 비석암에 소원을 빌어보시지요."

  "뭘 빌까요?"

  "비석암이 빛을 발하고 있을 때 빌면 소원이 이뤄진답니다."

  "나는 예쁜 처녀들이 많은 다갈촌에서 장가들게 해달라고 빌까?"

  해론의 말에 계백이 낄낄 웃으며 말했다.

  "나도 약혼자가 없으면 그럴지도 모르겠소."

  "두 분 다 엉큼하신 걸?"

  양신의 말에 계백이 갑자기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양신님, 혹시 제가 낮에 드린 부탁을 잊지는 않으셨겠지요?"

  "무슨 부탁을 말씀입니까?"

  "다갈검법을 한 수 지도받고 싶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습니까?"

  양신은 약간 안색이 굳어들었다.

  "저는 계백님이 농담으로 하신 말씀으로 알았습니다."

  "양신님, 농담할 게 따로 있지요."

  "그럼, 진정이셨습니까?"

  "물론입니다. 지금이라도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이번 검술대회에서 양신과 계백은 최종 결승전에서 붙었다. 양신은 마지막 승리를 거두고 패자인 계백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려고 다가들자 계백이 그런 말을 했다.

  양신은 처음에 엉뚱한 청으로 여기고 웃음만 지었다. 그랬더니 계백이 거듭 말했다. 양신은 난처해서 고개만 끄덕이게 되었는데 계백은 그걸 승낙으로 알았던 모양이다.

  '한 수 배우려는 게 아니고 재대결을 원하는 속셈이군?'

  양신은 그런 생각을 하며 계백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엔 결승전에서 패한 아쉬움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했다. 무예로나 패기로나 남에게 지고는 못 견딜 성미 같았다.

  "양신님, 거듭 청해도 되겠습니까?"

  양신은 슬며시 오기가 치밀었다.

  "그럼, 잠시 시간을 내기로 하지요."

  "양신님, 감사합니다."

  계백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양신은 강의 상류 쪽을 가리켰다.

  "계백님, 저 위에 있는 숫돌 칸을 아시지요? 거기서 기다려 주십시오. 저는 철장님을 만나 뵙고 그리로 가겠습니다."

  양신은 돌아서 큰 장막을 향해 걸었다. 그러나 장막 안에는 대면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무거워지는 발걸음을 멈추고 비석암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제발, 여선이 장안성으로 끌려가지 않게 해주길 빕니다."

  양신은 그렇게 빌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 저었다. 어려서부터 여선(餘鮮)을 아내로 맞게 해달라고 수없이 빌었지만 효험이 있기는커녕 이젠 영영 헤어지게 되었다.

  눈물이 흘러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어려서 괴질로 부모를 잃은 고아였다. 그런 그를 철장인 여준(餘準)이 거둬 키워서 여선과는 오누이처럼 자랐다. 그러다보니 미운 정 고운 정이 들고 나이가 차면서 이성 간의 감정도 싹텄다.

  여준은 그걸 눈치 채고 둘을 혼인시킬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 장안성에서 대형(大兄) 고덕(高德)이 왕실 검사단(劍士團)과 동행해서 다갈촌에 왔다. 마을에선 그가 오래간만에 불놀이에 참가한 백제와 신라 야장들을 감독하려고 온 걸로 알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왕제(王弟)인 건무(建武)가 여선을 첩실로 맞겠다는 혼사 통보를 하러온 왕실 사자(使者)였다.

  여선은 장차 왕위를 잇게 된 건무의 첩실로 들어가지만 나중에 비빈(妃嬪)으로 승격할 수도 있었다. 왕실과 혼사는 최대 경사가 아닐 수가 없으므로 다갈촌은 말할 것도 없고 이웃 마을들까지 경사가 났다며 축하 차 여준의 집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양신과 여선은 너무도 큰 충격에 빠졌다. 두 남녀는 하루아침에 절망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양신은 처음에 여선을 빼앗기게 되는 것을 제대로 인식을 못하고 얼떨떨해 했다. 불놀이 행사를 주관하는 책임을 맡고 일에 매달리느라 제대로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 뒤늦게 분노와 반발심이 서서히 일었다.

  여준은 속이 숯덩이처럼 타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어찌해야 좋을지 난감했다. 그러나 왕실과 혼사는 불가항력적인 일이므로 감히 거부할 수가 없어 여선을 보내야 하지만 양신이 문제였다.

  괴로움과 절망에 빠진 양신이 어디로 떠나버릴지도 몰랐다. 경거망동한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해서 여러 가지로 궁리를 했다. 그러다가 생각해낸 점은 이번 검술 대회에서 양신이 대망의 3연패를 달성하면 밀두도(密頭刀)를 상으로 내리기로 했다.

  밀두도는 철장이 대대로 물려받는 상징성을 지닌 칼이었다. 그것을 물려주겠다는 것은 철장직을 물려주겠다는 뜻이었다. 여준은 모두에게 공언을 했고 양신은 대망의 3연패를 달성했다.

  검술대회 시상식에서 여준은 약속한 대로 밀두도를 넘겨주려고 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인을 잃게 된 양신은 모든 게 다 부질없었다. 밀두도를 받기를 극구 사양했지만 여준은 완강히 넘겨주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었다. 그러나 만사가 귀찮은 양신은 남들로부터 축하를 받는 것도 싫어 혼자서 비석암 밑으로 숨어들었다.

  해질녘부터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강변 백사장에 꽂힌 깃발들이 나부끼고 강물에 떠내려 오는 얼음장들이 물결을 타고 번쩍거렸다.

  양신은 혼자서 시간을 보내다 해가 지기기 시작하자 불놀이를 시작할 시간이 다 되었다고 생각했다. 강 건너 쪽 백사장엔 에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서 붐비고 있었다.

  그 때 둥구미를 든 여선이 양신 앞에 나타났다.

  "여선아, 무슨 일로 여길 왔냐?"

  며칠 새 몰라보게 얼굴이 핼쑥해진 연선은 그런 말을 하는 양신을 보면서 아릿한 아픔이 가슴 속에 배어들었다. 그녀는 양신 곁으로 가서 앉으며 눈을 흘겼다.

  "오라버닐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알기나 해요? 오후 내내 속을 태우면서 찾아다녔어요. 그런데 여기서 혼자 있을 줄 누가 알았어요?"

  양신은 속으로 미안했지만 딴청을 떨었다.

  "내가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을 까봐 걱정이라도 되었냐?"

  "그래요. 그런데 왜 여기서 혼자 청승을 떨고 있어요?"

  "오후 내내 장작더미를 점검하고 있었는데 청승을 떨다니?"

  여선은 괜한 소릴 하는 양신의 속을 모르지 않았다. 대꾸도 없이 둥구미 속에서 김이 나는 국밥이 담긴 목판을 꺼내 놓았다.

  양신은 미인송(美人松) 장작더미가 풍기는 은은한 향기와 더불어 여선의 체취를 느끼며 절로 한숨이 터지게 되었다.

  "이제 저녁을 먹으러 가려던 참인데, 네가 저녁을 챙겨 왔구나?"

  "이제 가면 먹을 게 남아 있겠어요? 국밥은 벌써 동이 났어요."

  "음식 준비는 넉넉하게 하라고 시켰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왔는가? 저녁을 못 먹은 사람이라도 있으면 안 되는데."

  "별 걱정을 다 하네요. 먹을 게 국밥뿐인가요? 육포랑 떡이랑 지천인데 남 걱정은 말고 오라버니나 잘 챙겨 먹어요. 요즘 끼니때마다 뜨는 둥 마는 둥 한다고 주방 어멈이 걱정하고 있어요."

  "주방 어멈은 쓸데없는 말을 다 하는구나."

  양신은 장안성 사자가 온 뒤로 밥을 통 못 먹고 있었다. 때문에 두 뺨이 움푹 들어가고 턱에 돋은 터럭들이 더욱 뻣뻣해졌다. 여선은 그 속내가 짐작되어 가슴이 아팠다.

  "어디, 출출하던 참에 뜨듯한 국물로 배를 채워 볼까?"

  양신은 짐짓 명랑한 투로 말하고 목판을 내려다보았다. 푸짐하게 말은 국밥과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순대가 한 접시 곁들여져 있었다.

  "여선아, 너도 같이 먹을래?"

  숟가락을 집어주는 여선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오라버니처럼 지금까지 아무 것도 먹질 않았을 것 같아요?"

  여선은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고 해서 두 눈을 지르감았다. 양신도 그녀의 속눈썹이 촉촉이 젖어드는 걸 보면서 가슴이 미어졌다.

  양신은 식욕이 없지만 여선의 성의를 생각해 국밥을 한 숟가락 듬뿍 떴다. 거기다 순대까지 얹어 입에 퍼 넣고 볼이 미어지게 씹었다.

  여선은 식사 때마다 양신의 소담스런 밥숟가락을 두고 식탐이 많다고 놀려댔다. 그러나 지금은 양신이 우정 그렇게 하는 것 같아서 몰래 눈물을 훔치고 뜬금없는 말을 했다.

  "오라버니의 3연패는 마을 처녀들이 응원한 덕분인 걸 아세요."

  양신은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오라버니를 좋아하는 처녀들이 많아서 좋겠어요."

  여선의 말에 양신은 쑥스러운 듯 대꾸했다.

  "너는 별 소릴 다 한다."

  양신은 마침 여선이 잘 왔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아도 왕실과 혼사 건을 놓고 단 둘이 얘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마주 하고 보니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

  여선도 같은 심정이었다. 너무 엄청난 일을 당하고 보니 말을 꺼내기조차 두려웠다. 기껏 한다는 게 딴 소리만 흘려냈다.

  "해론님과 계백님도 오라버니와 같은 또래 총각들이라지요?"

  "그걸 네가 어찌 알게 되었냐?"

  "마을 처녀들은 두 분에 관한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몰라요, 그런데 왜 나라고 모르겠어요? 마을에선 두 분에 대한 관심들이 매우 커요."

  "마을 처녀들의 관심이 그렇게 큰 줄은 몰랐다."

  "인물이 좋은 데다 무예까지 뛰어났으니 왜들 안 그러겠어요?"

  "우리 마을 총각들이 야단난 걸!"

  "왜요?"

  "마을 처녀들이 딴 데다 마음들을 빼앗기고 있으니 그렇지."

  여선은 혀를 날름 뽑더니 혼잣말처럼 쫑알거렸다.

  "나는 해론님을 응원했는데 겨우 3등에 그쳐서 보람이 없네요."

  "여선아, 나도 궁금한 게 있다."

  "오라버니는 뭐가 궁금한데요?"

  "우리 마을 처녀들이 계백님과 해론님에게 관심이 많다면 네가 보기에 둘 중에서 누굴 더 좋아하는 것 같으냐?"

  "해론님은 미남이고 계백님은 사나이다워서 두 패로 갈렸어요."

  "두 패로 갈렸다?"

  "그런데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는 걸 아세요?"

  "무슨 소문이냐?"

  "계백님과 해론님은 어쩌면 야장들이 아니라는 말을 해요."

  "야장이 아니면 뭐라는 소리냐?"

  여선이 정색을 했다.

  "오라버닌 그 분들 정체를 한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나요? 두 사람은 야장들 틈에 끼어든 군인이래요. 고구려 내부 사정을 정탐하려는 첩자들이라고 마을 사람들은 수군거리고 있어요."

  양신은 아녀자들 입에서까지 그런 말들이 나오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수국(隋國)과 전쟁이 박두했다는 소문이 돌아서 그만큼 위기의식이 커졌기 때문이었다.

  "백제와 신라 야장들은 오래간만에 발길을 다시 잇게 되었다. 손님들에게 그런 의심을 품는 건 도리가 아니니 네가 나서 줘야 하겠다."

  양신이 엄한 표정을 짓고 말하자 여선은 반문했다.

  "나보고 무슨 일로 나서라는 말인가요?"

  "아녀자들 입에서 그런 말들이 나오지 않게 단속을 해라."

  두 사람은 얘기를 나눴지만 막상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했다. 이내 다같이 무거운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양신은 답답함을 참지 못하듯 여선을 향해 불쑥 물었다.

  "여선아, 오늘밤에 넌 뭘 할 거냐?"

  여선은 손가락으로 모래바닥을 콕콕 찍다가 뜨악해서 물었다.

  "내가 뭘 하다니? 그게 무슨 말예요?"

  양신은 갑자기 말을 더듬었다.

  "이를테면 혼처가 정해졌으니 수의를 지을 건지 탈춤을 출 건지."

  여선은 두 눈썹을 치켜세우고 몸을 발딱 일으켰다.

  "그러는 오라버니는 누구하고 탈춤을 출 건가요?"

  앙칼지게 받아친 여선은 한동안을 분한 듯 양신을 노려보았다. 양신은 몸을 홱 돌려 그 자리를 떠나는 그녀를 잡으려고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내가 지금 무슨 소릴 지껄인 거야? 속이 오죽이나 괴로울 것인데 빙충맞게 송곳으로 가슴을 찌를 소리나 하다니."

  양신은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팍팍 쳤다. 뒤늦게 후회했으나 이미 엎지른 물이었다. 양손으로 머리카락을 있는 대로 움켜쥐었다. 그러나 왕실과 혼사 건을 거론할 수는 없었다.

  다갈촌 처녀들은 불놀이 밤에 두 패로 갈리게 된다. 혼처가 정해진 처녀들은 따로 모여 수의(壽衣)를 짓는 날이고 그렇지 않은 처녀들은 총각들과 어울려서 탈춤을 추었다.

  고구려 여인들이 가장 중요시 하는 혼수품은 남편이 될 사람의 수의(壽衣)를 짓는 일이다. 전쟁에 나갈 때 남정네는 갑옷 밑에 수의를 입는데 아내가 만든 수의를 입고 전사(戰死)하면 사후(死後) 세상에서도 계속 부부의 연이 이어진다고 믿고 있었다.

  이제 혼처가 정해진 여선은 수의를 짓는 곳에 끼어야 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아닌 양신으로부터 수의를 짓겠느냐는 질문을 받자 너무도 기가 막히고 야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양신도 그만 불놀이 준비를 시작할 때가 되어 도강선을 타고 강 건너 쪽으로 건너갔다. 비석암에 불화살을 쏜 뒤 여선을 찾고자 백사장의 사람들 틈을 돌아다니다 계백과 해론을 만난 것이었다.

 

  큰 장막 속엔 고덕과 여준이 상좌에 앉고 각처에서 온 야좌들이 그 밑으로 죽 늘어앉았다. 양신은 내키지가 않으나 안으로 들어갔다.

  여준은 양신을 보고 큰 소리로 외쳤다.

  "양신아, 오늘처럼 네가 장하게 보인 적은 없었다."

  "사부님, 혹시 시킬 일이 없으신지 여쭤 보려고 들렸습니다."

  "너는 이제부터 젊은 축들끼리 어울려 신명나게 춤판이나 꾸미렴."

  왕실 검사단의 우두머리인 선도해(先道解)가 입을 열었다.

  "철장님, 춤판이 제대로 이루어질 것 같지 않습니다. 다갈촌 젊은이들이 어디에 처박혔는지 전부 코빼기조차 볼 수가 없다는 군요?"

  곁에 앉은 구조리가 맞장구를 쳤다.

  "금년 검술대회에서 다갈무문은 양신을 빼면 전체적으로 참패를 당한 셈입니다. 때문에 어디서들 홧술께나 퍼 마시고 있을 겁니다."

  구조리 말마따나 다갈무문의 성적은 매우 저조했다. 양신의 3연패로 그나마 체면을 세웠지 나머지는 10등 안에 든 자가 없었다. 때문에 한창 소란을 떨 백사장이 예년과 다르게 조용했다.

  여준은 심기가 편찮아서 혀를 끌끌 찼다.

  "검술대회가 금년뿐인가? 더욱 정진해서 내년을 기약해야지."

  그렇게 말은 했으나 속으론 미안함을 금치 못했다. 지난해부터 건강이 좋지 못해 도장에 자주 나가보지 못했다. 지도는커녕 관심도 제대로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부님,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오냐, 나가서 신명나게 놀아보렴."

  양신이 몸을 일으키는데 선도해가 한 마디 했다.

  "양신, 올 해도 자네 해가 되었군. 대단해."

  선도해의 말투는 어딘지 야시랑 대는 구석이 있었다.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고구려의 대표 검인이다. 그러나 3년 전 검술대회에서 처녀 출전한 양신에게 패한 뒤로 다시는 출전하지 않았다.

  고덕은 양신과 선도해가 나누는 말을 듣고 여준에게 말했다.

  "철장, 나는 양신이 있는 다갈무문을 여간 부럽게 여지지 않소."

  "대형님,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과찬이 아니요. 양신이 왕실 검사단에 들면 좋겠는데 어떻소?"

  여준은 손사래를 쳤다.

  "거긴 촌구석 사람들이 감히 넘겨다 볼 수가 없는 뎁니다."

  고덕은 여준의 대꾸가 겸양의 말로 들리지 않았다.

  "철장, 양신은 이제 왕실과 인척이 될 것이니 왕실 검사단에 들 자격은 충분하오. 이번 기회에 내가 장안성으로 데려 가겠소."

  "대형님, 말씀은 고마우나 다갈촌은 벼슬을 바라지 않습니다. 저는 문생들에게 권력 밑에 든 칼은 불의에 쓰이기 쉽다고 가르쳤습니다."

  여준의 정중한 거절에 고덕은 양신의 의향을 직접 물었다.

  "양신 야좌는 어떻게 생각하나? 철장과 같은 생각은 아니겠지?"

  "대형님, 저도 사부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양신마저 서슴없는 거부에 고덕은 음성이 뻐드름해졌다.

  "야좌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지 이유를 알고 싶네."

  "저는 장안성으로 가고 싶지 않습니다."

  고덕은 이제 화가 나서 한마디 쏘아붙였다.

  "뭐라고? 장안성엘 가고 싶지가 않다고? 우직한 자로군!"

  선도해는 머쓱해 하는 고독에게 말했다.

  "대형께선 너무 섭섭해 하지 마십시오."

  "선도해 조의, 자네가 한 번 설득해 보게나."

  고덕의 말에 선도해는 정중하게 대답했다.

  "대형의 말씀도 감히 듣지 않는데 소관의 말은 오죽하겠습니까?"

  "조의와는 경우가 다르지. 양신은 조의에게 감사해야 할 사람이다."

  양신은 가뜩이나 장안성에 대한 반감이 큰 데 고덕의 입에서 이상한 말이 흘러나오자 반발하듯 물었다.

  "제가 선도해 조의에게 감사할 게 뭐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양신은 모르고 있는가?"

  "제가 뭘 모른다는 말씀입니까?"

  "자네 누이동생이 왕실의 은의를 입게 된 게 누구 덕인지 아는가?"

  양신은 안색이 서서히 굳어들었다.

  "그게, 누구 덕이라는 말씀입니까?"

  "허, 정말로 모르고 있었군? 이번 혼사는 선도해 조의가 전하께 천거해서 이뤄졌네. 그걸 안다면 자네가 그럴 수는 없는 일이지."

  선도해는 그 말을 듣고 양신에게 묘한 웃음을 날렸다.

  그는 3년 전 자신의 체면을 구겨놓은 양신에게 앙심을 품고 골탕을 먹일 궁리를 했다. 그러다가 여선의 미모가 뛰어난 것을 알고 건무에게 후궁으로 삼을 것을 권했다.

  건무는 그걸 받아들였고 그것으로 선도해는 양신에게 복수를 한 셈이었다. 그런 사정을 알 턱이 없는 양신은 선도해를 노려보며 지난 해 그가 술자리에서 한 말을 떠올렸다.

  "양신, 여선 낭자하곤 피를 나눈 남매가 아니라지?"

  양신은 그 말에 낯만 붉힐 뿐 대꾸를 하지 않았다.

  "양신, 귀신은 속여도 내 눈은 못 속이지. 나는 남매가 서로 은애하는 사인 것을 벌써부터 눈치 채고 있었지. 철장께서도 내게 두 사람을 짝 지워 주겠다는 말씀을 하셔서 확인이 되었지."

  선도해는 침묵만 지키는 양신에게 한마디 더 했다.

  "양신, 사부께 얼른 혼례를 올려달라고 조르게나. 왜냐하면 사람의 앞일이란 도무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게 되는군."

  선도해는 그런 말까지 하고 뒷구멍으로 딴 짓을 했다. 양신은 치미는 분노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마음 같아선 가증스러운 선도해의 목을 치고 싶지만 고덕과 사부 앞에서 무람되이 굴 순 없었다.

  장막을 나온 양신은 분노로 가슴이 벌렁거렸다. 거친 숨결을 토하면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자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계백과 한 약속을 떠올리고 걸음을 떼었다.

  다갈촌 야장방은 주로 무기를 생산하는 곳이었다. 때문에 다른 데선 볼 수 없는 시설들이 많았다. 그 중엔 창칼을 대량으로 가는 특별한 숫돌이 있었다. 강물을 끌어다 폭포를 만들고 물의 낙차를 이용해 물레방아를 돌리고 거기에 연결된 숫돌로 가는 시설이 있다.

  양신은 숫돌 칸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도저히 대련을 할 기분은 아니었다. 그러나 약속을 어기고 싶지가 않아 터벅터벅 당도하자 계백이 달려 나왔다.

  "양신님, 와 주셨군요?"

  "계백님,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한 것 같습니다."

  "떼를 쓴 게 미안하지만 저로선 한 수 지도를 받아보겠습니다."

  양신은 그냥 앉아서 술이나 실컷 퍼먹고 싶었다. 그러나 남의 속도 모르는 계백은 벌써 대결 자세를 취했다. 양신은 울분에 찬 심경으로 대신 칼이라도 휘두르기로 했다.

  "계백님, 지도는 당치않고 저도 백제 검법을 한 수 익히겠습니다."

  양신은 칼을 뽑아들다가 그게 밀두도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사부가 강제로 메어준 대로 지고 있으면서 그걸 의식해 보지는 못했다. 갑자기 야릇한 호기심이 일었다.

  계백은 스스로 대결이라고 다짐하며 뽑은 칼자루를 이마 높이로 치켜세웠다. 왼쪽 발꿈치를 슬쩍 치켜들자마자 기합성을 터뜨렸다.

  "에, 잇."

  "야, 잇."

  양자 간의 기합성과 더불어 대결이 시작되었다. 얽혀든 두 개의 칼날이 허공에서 쨍강대는 금속성을 일으켰다. 밤하늘에 무수한 섬광(閃光)이 수를 놓는 듯 어지러이 일었다.

  계백은 공격 일변도로 나갔지만 양신은 방어 위주로 맞섰다. 한 순간 계백의 칼날이 정수박이로 파고들고 양신은 맞받아쳤는데 상대의 칼날이 회돌이를 쳤다.

  "흑."

  양신은 찰나적으로 어깨를 움츠러들였다. 그리고 자신의 몸에서 떨어져나간 천 조각이 허공에서 너울거리는 것을 보았다. 왼쪽 어깨 죽지 동달이가 베어져 나갔다.

  검술에서 대련은 정(定), 활(活), 변(變)의 순서로 펼치게 되었다. 그런데 계백은 정과 활을 접고 곧장 변용으로 건너뛰었다. 너무 정도를 벗어난 공격을 받은 양신은 상대를 이윽히 바라봤다.

  계백은 조급증을 내고 있었다. 양신은 그 점에 큰 부담감을 느꼈다. 어깨 죽지를 조금만 덜 움츠렸다면 큰 부상을 입을 것이었다. 혀를 찰 뻔하다가 그럴수록 마음을 차분히 먹기로 했다.

  검술은 상대의 눈빛을 보며 대응을 해야 했다. 한 순간의 눈빛이라도 놓치면 모든 것을 잃고 만다. 그런데 별빛을 의지해선 상대의 표정을 제대로 살필 수가 없었다.

  양신은 자신의 어깨에서 베어져 땅바닥에 떨어진 천 조각을 또 보았다. 몸이 좀 떨린 것은 야기(夜氣) 때문만은 아니었다. 공격을 멈춘 계백을 다시 응시하게 되었다.

  계백은 상대의 어깨동달이를 전부 베어내려고 했는데 절반만 베어졌다. 그런데 그 이유는 상대가 어깨를 자로 잰 듯 절반쯤 움츠려 들였기 때문이었다. 상대는 자신의 기량을 과시하고 이쪽 체면도 슬쩍 세워 주준 것이었다. 그러나 절반의 공격으로 끝난 자신의 자존심도 절반쯤 베어져나간 것이었다. 그런 기분에 울컥해서 반사적인 공격을 펼치려다 그만 두고 말았다.

  양신도 미동을 않고 서 있는 상대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상대의 칼을 몸으로 피한 것은 만용이었다. 상대를 무시하는 처사가 될 수도 있으므로 반성했다.

  "계백님, 이번에는 제 차례입니다."

  양신의 말에 계백은 칼끝을 약간 숙여보였다. *

  "야, 잇!"

  기합성과 함께 양신은 공격을 펼쳤다. 또 다시 두 개의 칼날이 얽혀들고 밤하늘에선 차가운 금속성과 섬광이 명멸했다. 그런데 계백은 한 순간 몸이 기우뚱 흔들리며 중심을 잃었다.

  계백도 힘이라면 누구한테도 밀리지 않는 자부심이 있는데 그마저도 밀려서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굴욕감을 참을 수가 없어 기합성을 지르며 다시 공격을 시도했다.

  "에, 잇."

  "야, 잇!"

  양신도 기합성을 질렀지만 방어로 전환했다. 상대가 연속적인 공격을 펼쳤지만 너무 약점을 노출시키고 있었다. 한 순간 그 틈새를 포착하고 번개처럼 칼을 후렸다.

  계백은 급히 물러 선 뒤 눈길을 내렸다.

  "어?!"

  자신의 허리띠 잠금 쇠가 감쪽같이 떨어져나간 것을 보고 흠칫 놀랐다. 어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상대는 기검체(氣劍體)가 일치되는 고수임을 알았다.

  계백은 그처럼 정교한 검술을 지닌 상대와 더 맞설 기분이 아니었다. 갑자기 몸을 솟구쳐 허공에서 한 바퀴 회전시킨 뒤 땅바닥에 내려서 칼집에 칼을 세차게 꽂았다.

  "양신님께 절검합니다."

  계백이 거친 숨결을 토하듯 말하자 양신도 대답했다.

  "계백님, 저도 절검합니다."

  절검(絶劍)은 앞으로 서로가 대적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절검을 선언한 계백은 차라리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기 분이었다.

  "양신님, 정법을 생략하고 활용으로 건너 뛴 점 미안합니다."

  "계백님, 저 역시 외도를 쓴 점 부끄럽게 여깁니다."

  두 사람이 그런 말을 나누자 해론이 끼어들었다.

  "저도 두 분께 절검합니다."

  세 사람은 다 같이 절검을 선언하고 손을 잡았다.

  "이제부터 술도 마시고 얘기도 나누는 시간을 가집시다."

  양신의 말에 계백과 해론은 흔쾌히 동의했다.

  세 사람은 나란히 강의 상류 쪽으로 향해서 걸었다. 얼마쯤 걷자 외진 자리에 누가 손도 대지 않은 음식상이 있었다. 세 사람이 자리를 잡자 양신이 술병을 들고 잔들을 채웠다.

  세 사람은 다같이 술잔을 높이 쳐들고 말했다.

  "천신께 감사드립니다."

  천신을 받드는 것은 삼국인의 유일한 공통점이었다. 세 사람은 천신께 감사를 드리는 복창을 세 차례하고 술잔들을 비웠다. 양신이 두 사람을 향해 입을 열었다.

  "올해는 백제와 신라에서 참가한 뜻 깊은 불놀이가 되었습니다."

  해론이 그 말을 받았다.

  "삼국의 야장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게 12년 만이라지요? 저는 이번 불놀이에 참가할 수 있게 된 것을 행운으로 여깁니다."

  계백도 맞장구를 쳤다.

  "저도 영광으로 여깁니다."

  세 사람은 그런 말을 나누자 비로소 친근감이 생기는 것 같았다.

  "삼국인이 함께 술자리를 하는 건 매우 드문 일이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간에 저는 두 분을 만나게 된 걸 큰 인연으로 여깁니다."

  "서로 흉금 없이 얘기를 나누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모두가 진지한 태도로 한 마디씩 한 뒤 해론이 화제를 돌렸다.

  "솔직히 말해 저는 고구려와 백제 사람을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두 분을 만나보니 그게 잘못된 생각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로선 이번 기회에 고구려에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입니다."

  계백도 동의하는 말을 했다.

  "저 역시 고구려와 신라 사람은 상종하기도 싫었습니다. 그런데 다갈촌에서 며칠간 지내다 보니 제 마음이 옹졸했음을 반성하게 됩니다. 삼국 사람은 말이 통하고 사는 모습도 비슷합니다. 그런데 그토록 적대시하며 지내는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말문들이 트이자 더욱 기탄없는 대화로 이어졌다. 젊은이들이라 그런지는 모르나 경계심들을 금세 허물어뜨리는 분위기였다.

  다갈촌 불놀이는 천년이 넘는 세월을 두고 이어져 온 행사였다. 처음엔 국적과 명리를 따지지 않고 한삼국(韓三國) 야장들이 순수한 정리(情理)로 시작된 교류의 장이었다. 그러나 삼국 간에 끊임없는 전쟁이 이어지며 왕래가 끊기다 이어졌다 했다. 그런 반복은 근래에 와선 더욱 심해져서 이번 회동은 무려 12년 만이었다.

  양신은 평소에 생각했던 점을 놓고 두 사람과 애길 나누고 싶었다.

  "우린 같은 야장들입니다. 삼국 간에 전쟁이 너무 심한 점을 놓고 두 분과 얘길 나눠보고 싶습니다. 저는 전쟁이 영토 확장보다 철산지를 차지하려는 목적이 더 크다고 봅니다. 그에 대해서 두 분은 어떻게 생각을 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계백은 해론과 눈길을 나누고 먼저 입을 열었다.

  "철은 무기를 만드는 전략 물자라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철보다 더 중요한 물자가 있겠습니까? 철은 한 국가의 존망을 좌우하므로 어느 나라건 철산지를 많이 차지하려고 들 수밖에 없습니다."

  세 사람은 철 때문이란 데는 모두 이의가 없었다.

  "나는 고구려가 처한 사정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양신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만 끄덕거렸다.

  "고구려는 영토가 넓으나 기후가 한랭해서 농사를 짓기에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자연 산물이 부족해서 일찍부터 철산지를 개발하고 철제품을 만드는데 힘을 써서 기술이 발달했습니다. 철로 타국과 교역을 해서 나라의 재정을 지탱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근래 사정이 어렵게 된 이유는 중원 땅에 새로 들어선 수국 때문입니다."

  계백이 그 말을 받았다.

  "이해가 가는 말씀입니다. 수국의 국사력은 중원 역대 왕조 중 가장 막강하다는 소문입니다. 해론님은 그 점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해론은 그런 질문을 받고 좀 부담스런 표정을 지었다.

  "신라도 수국이 고구려를 침공할 조짐을 보여서 예의 주시하게 됩니다. 4년 전인가 수국 황제가 돌궐을 순행하다 고구려 사신과 마주쳤답니다. 그 때 고구려 사신에게 너희 국왕이 입조하지 않으면 계민 가한을 앞세워 징벌하겠다고 협박을 했는데 저는 그게 빈말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계백은 해론의 말에 보태려고 했다.

  "수국은 북방의 강대국인 돌궐을 복속시킬 만큼 군사력이 강합니다. 고구려 국왕이 입조하지 않으면 침공에 나설 것으로 봅니다."

  양신은 그 말에 반발했다.

  "입조란 당치도 않을 말입니다. 고구려는 수국의 침공에 대비해 전쟁 물자를 충분히 비축했고 군사력을 증강시켜 두렵지 않습니다. 두 분도 보셨지만 우리 야철소는 무기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양신의 말은 해볼 테면 해보라는 투였다. 그러나 계백과 해론은 어림도 없는 소리로 치부하고 있었다. 아무튼 간에 세 사람은 그런 대화를 나누고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수국은 백성들의 수가 4천여 만 명에 이르는 대국이었다. 때문에 주변국들이 모두 두려워하며 복속을 했다. 그런데 고구려만은 머리를 숙이질 않아서 수국이 그냥 놔둘 것으로 보지 않았다.

  고구려의 영토는 사방으로 3천 여리에 이르는 대국이었다. 그러나 인구수는 6백여 만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백성들 중 절반은 잡다한 이민족으로 구성되었다. 그 중엔 고구려에 우호적인 종족도 있지만 그렇지가 않은 종족도 있었다. 때문에 수국의 침공을 받을 경우 협력과 배반할 종족들이 생겨나게 될 것이었다.

  양신이 침묵을 깼다.

  "고구려는 영토 내 이민족의 향배에 따라 전세가 달라질 수가 있지만 그보다 더 우려가 되는 점은 배후에서 보일 움직임입니다."

  양신은 고구려가 수국의 침공을 받을 때 배후에서 백제와 신라의 동태로 어려움이 더 커질 수 있음을 말한 것이었다. 그러나 계백과 해론은 심기가 매우 불편해질 수밖에 없는데 양신이 또 사족을 달았다.

  "만약에 고구려가 망하면 백제와 신라도 무사하지 못할 것입니다."

  양신은 술기운이 돌아서 직설적인 표현을 했다. 계백과 해론은 다분히 경고성을 띤 말을 듣고 그냥 들어 넘길 수가 없었다.

  "양신님, 말씀이 좀 지나치십니다. 백제는 비록 영토가 좁아도 평야가 넓어서 농사가 잘 됩니다. 산물이 풍족해서 중원과 왜국은 물론 멀리 남방까지 교역을 합니다. 때문에 삼국 중 재정이 가장 튼튼해서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하며 자부심도 매우 큽니다. 그런 백제가 뭐가 아쉬워서 고구려의 어려움을 틈타 어부지리를 취할 생각을 하겠습니까?"

  양신은 아무 말도 못하고 계백이 말을 이었다.

  "이왕에 말이 나왔으니 한 마디 더 하겠습니다. 삼국간은 잦은 전쟁으로 어느 나라건 백성들이 편안히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 고통을 안겨주는 전쟁이 잦은 원인을 한수 유역 때문이라고 봅니다."

  해론은 즉각 반발하듯 입을 열었다.

  "계백님, 한수 유역이 어떻기에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한수 유역은 본래 백제 땅입니다. 한 때 고구려에 빼앗겼다가 지금은 신라의 차지가 되었으나 전처럼 백제로 돌려져야 합니다."

  해론은 더욱 강경한 태도로 반박했다.

  "계백님 말씀은 언어도단입니다. 그 땅은 본래 누구의 땅으로 정해졌던 게 아닙니다. 백제가 힘이 있을 땐 백제 땅이었고 고구려가 힘이 있을 땐 고구려 땅이었습니다. 지금은 신라 땅이 되었고 생명 줄이나 다름없이 중요한 땅이라서 힘이 닿는 한 지켜낼 것입니다."

  계백과 해론이 한수유역을 놓고 민감한 반응을 보이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각자의 조국이 다르듯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불놀이는 한삼국 야장들이 친목을 도모하고 야철 기술을 교환하는 자리로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각자의 이익만 추구해 자기 기술은 감추고 남의 것만 얻으려고 들었다. 그로인해 지금에 와선 불놀이가 검술대회를 위주로 하는 행사로 변질되었다.

  그러나 고구려가 이번에 백제와 신라 야장을 불놀이 행사에 초청한 것은 절박한 상황 때문이었다. 수국의 침공 앞에 배후의 양국을 무마시킬 목적으로 화해의 손길을 내민 것이었다.

  백제와 신라도 고구려가 유화책을 쓰려는 의도를 모르지 않았다. 때문에 이런 기회에 고구려의 내정을 살피려고 했다. 그래서 백제는 군관(軍官)인 계백이, 신라는 화랑도인 해론이 야장 행세를 하며 끼어든 것이었다.

  양신도 계백과 해론을 야장으로 보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검인(劍人)으로 공동의 관심사를 나누는 기회로 삼을 뿐이었다. 그런데 대화를 나눌수록 화제가 껄끄러워져 갔다.

  "젊은이끼리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자니 서로 간에 상충될 문제를 건드리는 말이 많아지게 됩니다. 이제부턴 다른 얘기를 합시다."

  계백과 해론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나 세 사람은 말없이 술잔만 부지런히 기울였다. 마땅한 대화거리를 찾으려면 모두가 관심이 큰 검술에 관한 것이어야 했다.

  "저는 다갈촌 검술대회의 명성을 오래 전부터 들었습니다. 그런데 참가해보니 타국의 검인들까지 참가하는 대회인 줄은 몰랐습니다."

  해론의 말에 계백이 맞장구를 쳤다.

  "양신님의 등에 진 장도는 그 유명한 밀두도가 아닙니까?"

  "예."

  양신은 짧게 대꾸했고 계백이 청했다.

  "양신님, 밀두도를 제가 한번 만져볼 수는 없겠습니까?"

  양신은 말없이 밀두도를 등에서 벗어 넘겨주었다. 밀두도를 받아든 계백은 손잡이를 잡고 칼집에서 칼날을 천천히 뽑아들었다.

  "과연 천하의 명도인 만큼 광채가 범상치 않게 뿜어집니다."

  해론은 계백에게 손을 내밀어 밀두도를 받아들었다. 양손으로 받쳐 들고 장도의 날을 찬찬히 살피다가 양신에게 물었다.

  "다갈촌에서 만든 명품은 밀두도 말고 또 있다지요?"

  "예, 일월검도 있습니다."

  "일월검은 어디에 있습니까?"

  "장안성 궁궐에서 보관 중인데 저도 본 적이 없습니다."

  양신은 두 사람에게 그에 대한 설명을 했다.

  전에 고구려는 개로(開爐)라는 철장이 있었다. 그는 명장(明匠)으로 일월검(日月劍)과 밀두도를 만든 걸로 알려졌다. 광개토왕(廣開土王)은 그에게 왕실의 권위를 상징할 검을 만들라고 명령했다. 개로는 그 명을 받들어 강, 중, 약의 세 가지 정철(精鐵)을 가지고 1년간 제작에 매달린 끝에 완성했다.

  개로는 사람의 몸을 뼈와 살과 정신의 삼위일체로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그래서 칼도 그런 원리(原理)를 적용해서 만들었다. 먼저 중간 철로 뼈대를 삼은 뒤 그 위에 무른 쇠를 씌워서 체형(體型)을 만들고 거기에 강한 쇠로 날을 박았다. 그런 형체에 단조(鍛造)를 가해서 불순물을 완전히 제거하면 무게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그렇게 만든 검과 장도가 바로 일월검과 밀두도였다.

  일월검은 의장용으로 길이가 3척(拓) 9촌(寸)이다. 햇빛을 받으면 칼날이 눈을 찌를 광휘를 발했고 달빛을 받으면 용(龍)의 껍질처럼 무늬가 드러났다. 그에 비해서 밀두도는 실전용으로 길이가 3척 3촌이다. 칼자루를 용머리로 만들어 용두도(龍頭刀)란 별명이 붙었다.

  계백은 매우 부러운 표정으로 입을 떼었다.

  "도검의 생명은 강함과 날카로움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바위도 벤다는 밀두도를 만들자면 특별한 비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양신은 두 사람이 야철 지식이 없음을 알만 했다.

  "두 분도 야장이니 잘들 아시지 않겠습니까? 좋은 칼을 만들자면 단조와 담금질 기술로 좌우됩니다. 개로라는 분은 쇠의 성질에 따라 불의 세기를 조절하는 독특한 단조 기술을 구사했습니다. 그 때문에 칼날은 생물체처럼 탄력성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양신님도 그런 칼을 만드는 기술을 지니셨습니까?"

  해론이 묻자 양신은 씁쓸히 웃었다.

  "저는 명색만 야장입니다. 검술을 연마하느라 야장방엔 거의 들어가지 않습니다. 식칼조차 제대로 못 만드는 야장입니다."

  계백과 해론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면서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데 계백이 양신에게 느닷없는 질문을 던졌다.

  "여동생 분이 이번에 고구려 왕실과 혼사를 맺는다지요?"

  양신은 안색이 변한 채 머뭇거리듯 대꾸했다.

  "예."

  해론도 자못 흥미를 느끼듯 물었다.

  "여동생께선 천하절색 미인으로 소문이 나셨다지요?"

  "그런 편입니다."

  양신은 건성 대꾸를 하는데 두 사람은 축하의 말까지 했다.

  "양신님, 축하를 드립니다."

  "얼마나 큰 영광이고 경사입니까?"

  그런 말을 듣는 양신은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양신님은 앞으로 높은 자리에 오르시게 되셨습니다."

  계백의 말에 양신은 자기도 모르게 벌떡 몸을 일으키고 말았다. 그러나 취기로 인해 도로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데 계백과 해론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몸들을 일으켰다.

  양신은 이상하게 생각하며 뒤를 돌아보다가 흠짓 놀랐다. 어느 새 나타난 여선이 비석암 쪽의 불빛을 비껴 받고 서 있었다.

  "여선아, 네가 여길 어떻게 왔냐?"

  여선이 나직이 대꾸했다.

  "오라버니께 전할 말씀이 있어서 왔어요."

  "사부님이 날 찾기라도 하시냐?"

  "여기 계신 두 분께 전하는 말씀이 있어요."

  "계백님과 해론님께?"

  "장안성 사자로부터 지시가 내렸어요."

  "무슨 지신데?"

  "백제와 신라의 야장들은 예정을 앞당겨 내일 여길 떠난답니다."

  양신은 다시 자리를 박차 듯 일어섰다.

  "예정을 당기다니 무엇 때문에 그런단 말인가? 멀리서 오시게 초청해놓고 내쫓듯 보내려고 들다니 그건 너무 무례한 태도가 아닌가?"

  양신은 분개하는데 해론이 계백을 돌아다보았다.

  "계백님, 낼 떠날 준비를 하자면 그만 숙소로 돌아가야 합니다."

  계백은 여선의 얼굴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비척거리듯 여선 앞으로 다가섰다.

  "주랑 낭자, 대체 여기엔 어떻게 오셨소?"

  당황한 여선은 몸을 모로 틀고 섰다.

  "주랑 낭자가 맞지요?"

  양신은 계백이 너무 취해서 그런다고 생각했다.

  "계백님, 사람을 잘못 보셨습니다."

  "잘못 보다니요? 낭자는 백제국 장군님 따님이십니다."

  "계백님, 너무 취하셔 사람을 잘못 보고 계십니다."

  "내가 취해서 잘못 보는 게 아닙니다. 주랑 낭자가 분명합니다."

  계백이 단정하듯 우기자 양신은 어이가 없었다.

  "제 여동생입니다. 백제에 닮은 분이 계신가 보군요?"

  계백은 여선에게 직접 확인을 하려듯 다그쳤다.

  "주랑 낭자, 왜 아무 말도 하지를 않습니까?"

  여선은 할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여선입니다. 백제 사람이 아니고 이곳 태생입니다."

  계백은 그 답변을 듣고 매우 당황해 했다.

  "죄송합니다. 무례를 끼쳤습니다."

  해론은 사과하는 계백의 팔을 얼른 잡고 끌었다.

  "양신님, 작별 인사는 내일 드리고 이만 헤어지겠습니다."

  계백은 해론에게 끌려가면서도 여전히 못 미더운 눈길을 여선에게서 뗄 줄을 모르고 있었다.

  "해론님, 계백님, 편히 들 주무시오."

  양신은 마을 쪽으로 걸어가는 두 사람을 우두커니 지켜보기만 하는데 곁에 서 있던 여선이 입을 열었다.

  "오라버닌 언제까지 여기에 서 있기만 할 거예요?"

  "그럼, 너는 나보고 어찌 하란 말이냐?"

  양신은 반문하며 여선을 바라보았다. 여선은 별빛을 받고 여느 때보다 더욱 창백해진 얼굴로 대답했다.

  "그 말은 저도 스스로에게 하고 싶어요."

  양신은 갑자기 비석암 쪽을 향해 목청껏 외쳤다.

  "장안성 놈들아, 그럴 수는 없다. 나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

  여선은 그런 양신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만 지었다.

작가의 말
 

 이 소설은 저자가 수년간에 거쳐 썼음. 많은 분들이 읽어 주실 것만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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