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같은 남자가 있다. 그는 호색한이다. 나의 많은 모습을 하나같이 사랑하는 일관성 없는 남자. 단지 그의 심지 하나만으로도 나의 모든 값어치에 맞먹는다. 견딜 수 없어서 갈라지기로 했다. 그야말로 나와 그가 아닌, 나와 나의 그림자같은 관계가 되고 만다. 그것은 마치 피터팬의 그것과도 같다. 나는 항상 그를 볼 수 없지만, 그는 내가 앞을 볼 때 필연적인 듯 내 뒷모습만을 본다. 때때로는 허상이 아닐까 생각하게끔 만들지, 그렇다면 고고하게 사랑하는 그는 구름임이 틀림없다. 늘 밝고 세상의 빛을 등진 듯 반투명하며 희미하던 그가 어두워졌을 때였다. 어느새 내 속에서 구름이 된 그는 비를 눈물처럼 쏟아내며 하루종일 나의 창틀을 두드린다. 내 꽃밭은 쓰다듬어진 고양이처럼 헤집어져있었고, 그를 보고 약간 전율한다. 저 흙더미 위의 꽃들도 나로 인식한 채 쓰다듬고 지나간 것이다. 그는 나를 꽃에 빗대는데 스스럼이 없다. 이렇게 되어서야 도리가 없다. 나는 망가진 것처럼 울기 시작한다. 한 마디 발설의 댓가가 그림자를 잃어버린 비참함이어선.
나는 채비를 한다. 만발한 꽃은 나였고, 이제는 단지 비루하게 진 꽃봉오리일 뿐이다. 당신이 등으로 받아내던 세상이 얼마나 뜨거운 곳이었는지 점점 생생해진다. 여행을 하자, 당신이 있는 세계로.
저 이글거리는 태양을 맴도는 빛 속의 난운들은 구름이었던 당신의 편린이다. 이전과는 비견할 수 없이 비좁은 사랑의 조각들을 위안삼아 겨우겨우 차가움을 찾아 헤집어 구태여 느끼고, 느끼곤, 느낀다. 흐느낀다. 내 이름 석 자 한 번만 더 불러준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