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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센의 아이.
작가 : 은아
작품등록일 : 2018.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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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세계라고? (1)
작성일 : 18-01-27     조회 : 250     추천 : 0     분량 : 4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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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신 라센의 의지에 따라 그의 축복이 깃든 대 제국, 카이샨. 그리고 카이샨의 주인 황실 로이칸과 5대 공작가 중 황실 로이칸과 맞먹을 정도로 역사가 깊은 공작 가문 아르제. 로이칸 황제에게 엎드리고 그에게 잘 보여 권력을 사고, 그에 따른 권력을 입은 다른 공작 가문들과는 다르게 아르제 공작 가문은 대 제국 카이샨이 시작 했을 때부터 존재하며, 황실 로이칸을 만든 귀족 중에 귀족이다. 이른바 600년의 역사가 깃든 대 귀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빛을 뿌린 듯한 은색 머리칼에 신비한 보랏빛 눈동자는 오로지 아르제 공작 가문의 혈통이다. 26세의 젊은 나이에 가주가 된 아인리히 실버스텐 아르제는 그 누구보다 화려한 은빛 머리칼과 선명한 보랏빛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다.

 

 

 

 “신탁이라…”

 

 

 아르제 공작 가문의 영지는 제국 카이샨에서 북쪽에 위치해 있는 로스테스. 겨울이 무척이나 긴 땅이다. 그러나 어느 영지보다 부유하고 부족함이 없는 땅이기도 하다.

 

 일 때문에 수도에 올라갔다가, 영지로 돌아온 지 이틀이 지났다. 아인리히는 집무실에서 서류를 보다 말고 몇 일 전, 갑자기 저택에 방문하여 신세를 지겠다는 신관 떠올리며 미간을 좁혔다. 신탁을 운운하던 젊은 신관. 귀찮았지만 신탁이라는 말에 어쩔 수 없이 방 하나를 내어주었다. 그리고 오늘, 갑자기 저택 내부에 존재하는 숲으로 나가버렸다. 아인리히는 손에 든 서류를 내려놓으며 턱을 문질렀다.

 

 

 

 [태양신 라센의 피조물, 다섯 번째 가지의 신탁입니다! 라센의, 태양신 라센님의 아이가 다섯 번째 가지의 인도를 받아 오십니다!]

 

 

 

 

 “귀찮아 지겠군.”

 

 

 어떤 신탁인지, 신의 아이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여러모로 귀찮아질 게 분명하다. 하필이면 받은 신탁의 위치가 아르제 공작 가문이라니.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신성국 쪽과 황실 쪽에서 여러 가지 귀찮게 굴게 분명하다. 아인리히는 인상을 찌푸리며 검지를 세워 책상을 툭툭 두드렸다.

 

 그러다 문득, 기묘한 위화감이 그를 감쌌다.

 

 등골에서부터 시작되는 오싹한 무언가에 창을 등진 채 의자에 앉아있던 아인리히가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봤다. 딱히 변화는 없다. 고개를 기울이다 말고, 시선을 올려 하늘을 바라봤다. 깊은 밤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새까만 어둠에 잠긴 저택은 고요했다. 약간의 구름이 몰려 있어, 환하게 빛나는 달을 가리고 있던 밤하늘이 어느새 활짝 열렸다.

 

 그래. 그것은 마치 하늘의 문이 활짝 열린 것과 같아 보였다.

 

 달을 가리고 있던 구름이 순식간에 일제히 달에서 멀어졌다. 유독 빛을 내뿜는 둥근 두 개의 달. 항상 묘하게 겹쳐 있던 두 개의 달이 처음으로 서서히 멀어지며 거리를 벌렸다.

 

 서로 맞물리기 전으로 돌아가 것처럼 거리가 생기더니, 그 중심으로 제법 큰 황금빛 구체가 두둥실 나타났다. 하늘이 열리고, 달의 문이 열림과 동시에 나타난 황금빛 덩어리는 두둥실 떠 있다가 빠른 속도로 숲으로 낙하(落下)하면서 빛줄기가 숲 전체를 감싸며 퍼졌다.

 

 저택이 황금빛에 휘감기다 서서히 그 빛이 사그라든 후에야 아인리히는 정신을 차렸다. 자신도 모르게 멍하니 그 이질적인 형태를 보고 말았다.

 

 쯧, 하고 가볍게 혀를 찬 아인리히는 재빠르게 자신의 검을 챙기고 겉옷을 두른 후 집무실을 벗어났다. 긴 복도를 성큼성큼 걸으며 저택을 나와, 숲으로 향했다. 그가 움직이자 자연스럽게 그의 호위 기사들이 기척을 숨기고 따랐다. 그 빛 덩어리가 낙하한 지점에 도착하자마자 아인리히와 그 호위 기사들이 본 것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모아 눈물을 뚝뚝 흘리는 젊은 신관과 그 시선 아래 흙과 풀 바닥에 가지런히 누워있는 한 사람.

 

 본적 없는 특이한 옷에 말라붙어 있는 검붉은 색의 피. 바닥에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긴 머리카락. 옷과 마찬가지로 본 적 없는 형태의 검. 투명하다고 할 정도로 하얀 피부. 젊은 신관, 라세드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떨궜다.

 

 

 

 “드디어… 드디어 뵙는군요.”

 

 

 

 드디어 뵈어요, 하고 중얼거리지만 그 중얼거림은 아인리히나 그 호위 기사들에게 닿지 않았다. 그저 반쯤 정신을 놓은 채, 바닥에 곱게 누워 있는 이질적인 존재를 바라봤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듯하다. 여기도 저기도 특이한 가운데 온몸에 칠해진 검붉은 피는 마치 시체를 연상하게 해서 이상했다. 이 이질적인 존재가 신의 아이인가 뭔가 하는 그런 존재인가? 하고 의문이 드는 가운데, 라세드만이 눈물을 흘리며 엎드려 절할 기세로 기뻐하고 있었다.

 

 뭐라 말을 꺼내야할지 모르는 상황에, 바닥에 힘없이 늘어져있던. 마치 시체 같았던 존재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길고 하얀 손이 먼저 움찔 거리며 움직였다. 그림자를 드리운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일자형으로 굳게 닫혀 있던 얇은 입술이 살며시 벌어졌다. 그 하나하나가 각인 되듯 아인리히의 눈에 새겨졌다.

 

 

 

 눈꺼풀이 올라가고 그 안에 둥글고 큰, 마치 흑요석처럼 새까만 눈동자가 드러나는 순간, 아인리히는 숨을 멈췄다.

 

 

 

 

 * * * *

 

 

 

 

 인간의 생명, 그 존엄성을 누구보다 깊이. 고귀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인가. 어째서 무고한 사람의 생명을 간단히 빼앗고, 그 피를 손데 묻히는 걸로 모자라 온 몸에 덕지덕지 묻히면서 살아가는 것인가.

 

 이유는 없다.

 

 아니,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나지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어떤 이유가 있든, 그것을 선택하고, 그 길을 걸은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다. 누구의 강요가 깃들었고, 협박이 깃들었고, 희생이 깃들었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자신이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후회하지 않았다.

 

 처음에야 두렵고 무섭고, 그 죄악이 목을 조여 와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지만 그 뒤로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자신의 손으로 빼앗은 이들에게 죄책감을 가지되 슬퍼하지도, 후회하지도 않았다.

 

 그런 것이 오히려 사치스럽다고 여겼고, 오만하다고 여겼다. 이러쿵저러쿵 어떤 말을 한다고 해도 죄는 죄고, 그것을 가볍게 해주는 것은 없다. 후회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으며, 설령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것을 선택하고, 똑같은 짓을 저지를 거란 건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기에 소용없는 짓이며 그것이 더 사치스럽고, 죽은 자들에게 더 미안한 짓이다.

 

 

 ─ 굳이 당신이 그래야 했습니까? 굳이… 아니요. 그럼 한 가지.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 언제였을까.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언젠가 누군가가 그렇게 물어왔던 것이 떠올랐다. 아마도 그 물음에 자신은 웃었다. 무척이나 재미있는 소리를 들은 것 마냥 그렇게 웃고 웃으며 아니라고 대답했었다.

 

 굳이 자신이 해야 했던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이 정한 길이다. 스스로가 선택한 길. 그 길 위에 서 있는 이상, 후회도 없으며 도망이란 건 더더욱 없다.

 

 

 

 ‘하지만 이제 끝났으니까.’

 

 

 

 모든 게 끝났다. 자신을 포함한 그 모든 것이. 그런데 뭘까, 이건. 온 몸이 뻐근하다. 머리는 욱신욱신 거리다 못해 뇌가 흔들렸다. 뭔가 멀미 비슷한 증세에 유는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귓가에 잠시 소란스러운 소리가 박혀 들어왔다. 누군가의 울음소리도.

 

 뭘까, 이건. 죽은 게 아니었나? 아, 설마 지옥인가?

 

 

 무겁게 내려앉은 눈꺼풀에 힘을 주어 억지로 눈을 뜨자, 생전 본 적도 없는 것이 시야에 박혀 들어왔다. 깨끗할 정도로 새까만 하늘. 촘촘히 박힌, 마치 보석이라도 박힌 듯이 반짝거리는 별이 가득한 가운데 두 개의 둥근 달이 보인다. 서로 살짝 겹쳐 진 채 서로 색만 다른 두 개의 둥근 달. 킁- 하고 숨을 들이키자 싱그러운 녹음 냄새가 났다.

 

 유는 천천히 시선을 굴리다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다 순간 어질 거리는 머리에 손을 뻗어 제 머리를 짚었다.

 

 아프다. 머리가 아프다. 몸도 아프다.

 

 뭐지?

 

 머리를 짚었던 손을 내려, 목을 만졌다. 매끈한 목에 어떠한 상처도 만져지지 않았다. 급히 자신의 몸을 훑어보자, 손에 쥔 검과 옷차림새는 기억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똑같다.

 

 하지만 풍경이 변했다.

 

 더 더욱 자신은 굉장히 멀쩡하다.

 

 죽지 않았다.

 

 

 

 “…왜…?”

 

 

 

 유는 혼란스러운 머리에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눈을 꾹 감았다 떴다. 행여나 작은 변화가 있으리라는 작은 기였으나 변함없다. 본적도 없는 하늘과 두 개의 달. 본 적도 없는 자연환경. 본 적도 없는 외국인들.

 

 혼란스러운 가운데 새하얀 사제복을 입은 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지닌 남자가 두 손을 마주 잡으며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환하게 웃는 괴기스러운 얼굴을 하고서 유를 바라봤다. 물기로 인해 반짝거리는 눈동자와는 다르게 히죽이며 웃는 입술을 정면에서 마주하니, 새삼 그 괴기스러운 표정이 무섭다고 유는 그렇게 느꼈다.

 

 

 

 

 “아아…! 라센의 아이시여…. 드디어 미천한 종이 고귀하신 당신을 뵙나이다.”

 

 

 

 

 ………응?

 

 

 

 “저는 태양신 라센의 다섯 번째 가지. 일테의 종이며 그를 모시는 신관. 라세드라고 합니다. 라센의 아이시여. 아, 이쪽은 제국 황실, 로이칸의 5대 공작가 중 하나이며 그 기둥. 아르제 공작각하입니다. 라센의 아이시여. 당신을 보호하고 지킬 분이니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뭐래, 이 미친놈이?

 

 

 유가 황당하다는 듯 라세드를 보다, 시선을 돌리자, 보랏빛 눈동자와 마주쳤다. 선명한 보랏빛 눈동자는 마치 보석 같아, 저게 진짜 사람 눈인가 싶어 자신도 모르게 뚫어지게 쳐다보자니, 그 눈동자의 주인인 이가 조심히 바닥에 한 쪽 무릎을 꿇으며 앉았다. 그 뒤로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건장한 사내들이 그와 같이 무릎을 꿇었다.

 

 

 

 “어서 오십시오. 라센의 아이시여.”

 

 

 

 ……뭐야 여기. 뭐야, 너희.

 

 

 뭐라는 거야, 이 미친놈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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