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요새 누가 저런 데서 옷을 맞춰?”
이차선 좁은 도로 양쪽으로 오밀조밀 늘어선 허름한 상가들.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낡아 보이는 양장점 앞. 그 앞에서 20대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5~60대로 보이는 한 아낙네에게 무언가를 투덜거리고 있었다. 엄마라고 부르는 걸로 봐서는 모자 지간인 것 같은데, 아들로 보이는 남자의 얼굴은 불만에 가득 차 보였다.
“보기엔 저래도 싼 값에 옷을 아주 잘 만들어 준다고 소문 난 곳이라고 하더라. 요새 3만원에 양복 한 벌 맞출 수 있는 곳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니?”
“채소 파는 김씨 아줌마 얘기지? 내가 그 아줌마 말 좀 듣지 말랬잖아. 헛소리만 찍찍 해대는 그런 사람 말을 왜 자꾸 듣는 거야? 그리고 설사 3만원에 해 준다고 쳐. 그 옷이 오죽하겠어? 봐봐, 여기 쇼윈도에 걸려있는 옷들 꼬라지를. 이런 걸 입고 지금 면접을 보러 가라는 거야? 아예 떨어지라고 고사를 지내, 고사를!!”
아들의 불평에 엄마로 보이는 여자의 얼굴은 남루한 행색만큼이나 더욱 어둡고 힘들어졌다.
“미안하다 애야. 나도 마음 같아선 백화점에 가서 우리 아들한테 좋은 양복 사주고 싶다만 지금 우리 형편이...... 미안하구나....... 어쨌든 면접은 봐야 되잖아. 어렵사리 얻게 된 기회인데 청바지에 티셔츠 걸치고 가서 볼 수는 없잖니?”
엄마의 풀이 죽은 모습을 본 아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엄마 말이 맞다. 이번 달 월세마저 밀린 지금 그들의 형편으로는 백화점에서 양복을 산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 그렇다고 소위 지잡대 출신으로 수십 번의 응시 끝에 겨우 따낸 면접의 기회를 이대로 날려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지금 그에겐 이 양장점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끼이이익.
문을 열자 낡은 문에 어울릴 법한 듣기 싫은 소리가 두 사람을 반겼다.
안으로 들어서자 퀴퀴한 원단 냄새가 콧속으로 파고들어 저절로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하아. 이런 데서 참 잘 만들기도 하겠다.’
어쩔 수 없이 엄마를 따라 들어오긴 했지만 아들의 얼굴엔 불만과 불신이 더욱 강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문소리를 들었는지 가게 안 쪽에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나타난 한 남자. 목소리만 들었을 때에는 40정도로 예상되었으나 생각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아 보였다. 못 먹어도 70은 되어 보이는 노년의 남성은 다리가 성치 않았는지 걸음걸이마저 불편했다.
이 모습을 본 아들은 속으로 기원했다.
‘제발 주인이 아니길.’
하지만 이런 그의 바램은 채 몇 초도 지나기 전에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양복 맞추러 오셨구만. 제가 이 가게의 주인장이오만. 쿨럭쿨럭.”
젊고 세련된 스타일의 디자이너까지 기대한 건 절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70대 노인을 예상한 건 더더욱 아니었다. 세상에 이런 노인네가 무슨 양복을 만든다는 건지. 자기 몸 건사하기도 힘들어 보이는 왜소하고 병색이 완연한 이런 노인네가 말이다.
엄마 역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인 듯, 옆에 서 있는 아들의 눈치를 살폈다.
“네, 저기 우리 아들이 일주일 후에 면접이라서요. 양복 하나 해 주려고요.”
“그러시군요. 쿨럭.”
연신 터져 나오는 기침 소리가 몹시 거슬렸다.
“면접을 보신다구? 쿨럭. 그럼 더 신경 써서 만들어 드려야지. 쿨럭쿨럭.”
노인의 기침 소리가 들려올수록 아들의 얼굴은 더욱 더 일그러져만 갔다.
그러나 노인은 그런 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한동안 아들의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노인의 눈길에 기분이 상한 아들이 한 소리를 내 뱉으려고 하는 순간.
“아니. 제 얼굴은 왜 자꾸 쳐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노인의 말이 자르고 들어왔다.
“다 됐어요. 주소 적어 주시면 내일 배송해 드리죠.”
“네?? 치수는 안 재세요? 원단이랑 색상도 고르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닌가요?”
“치수는 이미 다 쟀어요. 색상은 곤색을 원하시니 그렇게 맞추면 되고 원단은 최고급으로 해 드릴 거니까 특별히 보실 필요까진 없는데. 굳이 원하신다면 지금 보여 드리고. 쿨럭쿨럭.”
아들과 엄마는 서로의 얼굴만 멀뚱히 쳐다 보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순간 엄마의 머리 속에도 아들과 같은 똑 같은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다.
[속았네 속았어. 그 여편네 또 헛소리를 한 거구만.]
엄마는 아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또 다시 자신에게 날라올 불평 불만이 신경 쓰여서가 아니었다. 아들에게 양복을 해줄 수 있겠다는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이 곳을 찾아왔건만 이렇게 그 희망이 허물어 지고 말았으니. 그저 앞이 캄캄해질 뿐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분노. 이런 곳에는 단돈 3만원도 아깝다. 그 돈이 우리에게 어떤 돈인데.
기대가 허물어지고 난 뒤에 찾아온 허탈함과 분노를 가득 담아 노인에게 한 마디 쏘아 붙이려고 하는데......
이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노인네는 주소를 적을 종이와 볼펜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입을 열었다.
“돈은 안 받을 테니 걱정 마슈. 그 옷 입고 합격하면 그걸로 내 할 일은 다 했수다. 쿨럭쿨럭.”
열흘 후. 또 다시 엄마와 아들은 그 양장점을 찾았다.
하지만 가게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문 앞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더 이상은 일을 할 수가 없을 것 같군요. 다들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이를 어째. 그 분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지 모르겠구나.”
“그러게, 엄마. 감사하다는 인사를 꼭 드리고 싶었는데.”
양장점 앞에서 한동안 떠나지 못하고 서 있는 두 사람.
아들은 말끔하고 멋지게 양복을 차려 입고 있었고, 엄마의 손에는 꼬깃꼬깃 접은 3만원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서 있는 머리 위에는 칠이 다 벗겨져 낡아버린 간판이 하나 걸려 있었다.
[희망 양장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