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와, 니벨룽. 당신의 의식은 저 멀리 유폐되어있지만, 존재 자체는 이곳에 머물고 있지.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야? 아, 너무나도 아름다워! 구역질이 날 정도로 말야. 그거 알아? 당신은 우리나라의 구원과도 같은 존재야! 이미 알고 있겠지만 말이야!”
…아름다움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보통 구역질이 난다는 표현과 함께 쓰일 단어였던가? 아주 훌륭한 예술 작품의 경우에는 감상한 사람에게 비슷한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는 연구가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 이곳에 해당되는 상황은 아니었다. 좁은 원통의 수조, 그 안에 둥둥 떠 있는 나체의 몸. 그 목 위에 미형의 얼굴, 이 있다면 좋았겠지만.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스스로의 존재가, 너무나도 아름답다고.”
그 말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곳엔 지금 말하고 있는 한 사람밖에 없었지만, 그 말고 누가 있었다 해도 웬만해서는 동의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수조 안의 몸뚱아리에는 머리가 달려있지 않았다. 그나마 남은 몸의 곡선이 유려하다는 것이 그 말에 대한 설득력을 조금은 올려주고 있었지만, 그 몸에는 입이 없었다. 만약 입의 개수를 가지고 인수를 센다면, 그 자리엔 두 사람이 더 있었겠지만, 그들에게도 의사는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도 말을 꺼냈던 사람은, 그 둘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머리 없는 몸이 들어있는 수조 양 옆에 기생체, 혹은 보조기관처럼 보이는 작은 수조가 한 개씩. 그 안에는 또 서로 전혀 다른 인상의 머리통 한 개씩.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누구의 눈에든 미형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힘든. 시선조차도 받지 못한 그 두 머리는 각자의 눈도, 입도 닫은 채 고요히 수조 속에 떠 있을 뿐이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단지 잠든 듯이.
“우리에게 끝없는 마력의 가호를 내리는 그대에게 영광을! 이 업적을 이루어 낸 나에게도 찬사를! 당신에게 돌아갈 영광도 결국은 내가 가져와버렸지만!”
비명을 지르듯 외치고서 수조 앞에서 핑그르르, 돈 것은 남자였다.
“당신은 영광 따윈 바라지 않잖아? 그래서 스스로도 내버렸으니, 당신의 모든 영광을 내가 가져갔다고 해도 당신은 불만을 말하지 않겠지. 말할 자격도 없고!”
즐거워하는 듯한 목소리는 이내 웃음소리로 바뀌었다. …광기와 즐거움은 본디 한 줄기에서 갈라져 나온 감정이었던가. 아니면 그 어떤 감정이라도 극에 이르면 광기로 귀결되던가. 혹은, 그에게는 둘 다였던가. 있지도 않은 상대와 무도회에서 춤추듯 빙글빙글, 몇 번이고 같은 자리에서 돌던 이는 누구와 마주치기라도 한 듯 움직임을 뚝 멈추었다. 물론, 이곳에 있는 사람, 은 여전히 그 혼자뿐이었고.
“옛날 옛날에 사악한 마왕이 살았습니다.”
노래가사를 흥얼거리듯 뱉은 뜬금없는 말은 이 자리의 그 누구에게도 의미를 갖지 못하고 허무하게 퍼져 사라졌다.
“마왕은 마력과 횡포를 휘두르며 사람들을 괴롭혔고….”
완전히 곡조의 형태를 띤 중얼거림은 그렇게 사라지기 위해 퍼져-
…그 때, 그 장소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어느 숲.
지클린. 시적인 감성이 넘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나이가 있는 사람이라면 으레 니벨하임의 가장 서쪽 끝에 펼쳐져 석양이 대지에 불을 놓는 것을 막는 푸른 방벽, 이라고도 이르는 거대한 숲. 아무리 크다 해도 숲 치고는 상당히 거창한 이명을 지닌 곳이었지만, 이름값 정도는 하겠다는 듯이 이 숲은 숲을 차지한 국가인 니벨하임을 다른 나라로부터 지키는 방벽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우선은, 숲 내부에 허락하지 않은 사람들을 들여보내거나, 들여보내더라도 다시 내보내지 않는 식으로.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흔히 숲에는 정령이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들 했다. 진위 여부는 대부분의 민담이 그렇듯 확인할 수는 없었으나, 이야기에 따르면 숲의 정령은 니벨하임의 사람들에게는 퍽 너그러웠으므로 가장 깊은 곳의 결계 안으로만 들어가지 않는다면 임산물을 풍족하게 내어 준다고들 했다. 실제로 지클린 숲의 동물들은 모두 살이 통통하게 올라 있곤 했다. 아니, 사실은 동물들뿐만 아니라 식물들도, 유난히 파릇파릇하고 생육의 속도도 빨랐으며…. 모든 것이 건강해서 사냥하기도 힘들고, 어린 순을 제 때 따지 않으면 너무 자라 시시때때로 숲을 들락날락해야만 한다는 것만 제하면 지클린 숲은 그야말로 천혜의 환경이었다. 부근에서 태어나 그것들을 먹고 자란 인근 마을 사람들도 모두 건강했기에 그 때문에 곤란할 일은 없다고 봐도 좋았지만.
숲은 주민들에게만 은혜로운 것은 아니었다. 역시나 깊은 곳으로만 들어가지 않는다면, 도망자들에게도 그 너른 품을 선뜻 내어주곤 했다. 숲 내부의 복잡한 구조 덕분인지, 아니면 정말로 정령이 있는 건지, 숲까지 도망쳐 온 피난자가 그를 쫓는 자에게 잡혔다는 말은 적어도 최근 수십 년간은 한 번도 들려온 적이 없었다. 그래서 붙은 또 다른 이명은, 피난자의 장막. 그 이명 덕에 이곳은 누가 봐도 수상쩍게 여길 사람들이 자주 찾아오곤 했다. 그들이 다시 나갔다는 말은 이상하게도 그다지 들리지 않았지만.
방금 숲에 들어온 자도 평소 그 이명을 주의 깊게 들어두었던 것일까. 누가 봐도 수상한 차림, 로브에 달린 후드를 깊게 눌러 쓴 사람의 품에는 보자기로 싸인 어떤 물건이 들려 있었다. 소중한 물건이었을까? 그러나 조심스럽게 보듬어 안은 그 물건을, 로브를 쓴 인물은 커다란 나무 밑에 놓아두었다. …눕혀 두었다. 그건 아기였다. 태어난 지 백 일은 되었을까 싶은.
…이쯤이면 됐겠지.
작은 속삭임과 함께, 아기를 내려둔 사람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원래부터 그 자리엔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이, 아기만 남기고.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저 멀리서 한 거대한 인영이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며 다가왔다. 용사들의 손에 쓰러진 간악한 마왕은-
노랫소리가 뚝 그친 것은 다가온 이가 아기를 본 직후였다. 아니, 봤나? 제 3자로서는 그가 아기를 봤는지 아닌지, 뭘 보긴 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엥?”
눈이 없었으니까. 덧붙여 입도, 그것들이 달려 있어야 할 머리통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