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햇살이 작은 창으로 눈부시게 들어왔다. 렌은 눈을 떴다. 아래층에서 맛있는 팬케이크 냄새가 진동했다. 그녀는 작은 발을 움직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나무 판자에서 삐꺼덕 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 소피가 보였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소피.”
“그래.”
짤막한 답변이 날아왔다. 렌은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제임스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제임스를 찾아 밖으로 나갔다. 주방에서 궁시렁거리는 소피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임스는 집 옆에 작은 닭장에 있었다.
“제임스?”
“오, 렌! 일찍 일어났구나.”
그가 다정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얀 수염들 때문인지 그는 인자한 할아버지 같은 모습이었다. 제임스의 손에는 달걀이 쥐어져 있었다.
“달걀이에요?”
“그래. 오늘 아침에 낳은 거란다. 만져보겠니?”
“네.”
렌은 밝게 웃으며 세 개의 달걀을 제임스에게서 건네 받았다. 달걀은 갓 나아서 아주 따뜻했다.
“렌. 너무 속상해 말거라.”
“...그럼요. 저는 괜찮아요.”
“소피는 1년 전 아들 루를 잃었어. 아이가 그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딱 네 나이 대겠구나. 루는... 아주 착한 아이였어. 귀엽고.. 사랑스러운...”
“....”
“소피를 너무 나쁘게 생각 말아라. 곧 루의 그림자에서 벋어날 거야. 그때까지 우리가 좀 이해해 주자 꾸나.”
“네, 제임스.”
렌은 제임스에게 웃어보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총총 걸어갔다.
“소피, 제임스가 주셨어요.”
“...그래.”
“.....”
렌은 아무 말 없이 그녀에게 달걀을 내밀었다. 소피도 말 없이 그것을 받아 들고는 다시 요리를 시작했다.
“제임스에게 오시라고 해라.”
“네, 소피.”
아침 식사는 달콤한 팬케이크에 계란 후라이였다. 렌은 맛있는 냄새에 미소를 머금었다.
“참, 렌. 정식으로 소개를 못했구나. 이쪽은 소피란다. 내 사랑스러운 아내지.”
제임스는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소피는 아직도 그에게 화가 난 건지 묵묵히 식사를 했다.
“오늘부터 내 목장 일을 좀 도와주겠니?”
“물론이죠, 제임스.”
렌은 활짝 웃어보였다. 마치 꽃이 핀 듯 만개한 미소였다. 식사를 마친 뒤 셋은 목장으로 향했다. 제임스는 마구간으로 갔고, 소피와 렌은 젖소가 있는 곳으로 갔다.
“거기를 누르렴.”
렌은 열심히 소피가 말한데로 우유를 짰다. 처음 본 젖소는 예뻤다. 그녀는 젖소의 긴 속눈썹과 우물거리는 입을 한참 쳐다보다가 소피에게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이거, 가져다 놓거라.”
“네.”
소피는 그녀에게 우유가 담긴 병을 두 개 건넸다. 렌은 병이 부서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다. 큰 병을 양손에 들자 작은 소녀인 렌은 보기에도 버거워 보였다.
“....이리 내. 그냥 내가 들고 가는게 낫겠어.”
“제, 제가 들 수 있어요.”
렌은 병을 꼬옥 쥐었다. 마치 그게 자신의 목숨줄 처럼 소중하게. 소피는 그녀를 잠시 쳐다보다 마음대로 하라며 다시 젖소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소피가 소에게 먹일 여물을 만드는 사이 렌은 우유 병을 들고 파랑색 대문 집으로 향했다. 조금 위태 위태 했으나 렌은 이를 악 물며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어!”
그때 어떤 형체가 렌을 치고 지나갔다. 그녀는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렌은 쓰러지자마자 다시 병을 보았다. 다행히 병은 뚜껑이 닫혀져 있었고 쓰러지면서 렌이 몸으로 감쌌기 때문에 무사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 형체를 다시 보았다. 작은 소년이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소년의 흰 뺨에 생채기가 가득했다.
“나, 나 때문에 다친 거야?”
렌이 벌떡 일어나 소년의 뺨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소년이 그녀의 손을 거칠게 쳤다.
“더러운 게. 어딜 만져.”
소년의 붉은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렌이 빨개진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품에서 뒤적거리며 무언가를 찾았다. 소년의 붉은 눈이 가늘어졌다.
“아, 여기 있다.”
렌은 품속에서 작은 병을 꺼냈다. 그리고는 소년에게 내밀었다.
“이거 되게 비싼 건데, 내가 자주 다쳐서 의사 선생님이 주신거야. 이거 바르면, 아픈 게 바로 나아! 너도 이거 상처에-”
소년이 렌에게서 병을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병뚜껑을 열고 내용물을 보란 듯이 바닥에 부었다. 그리고는 비릿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때? 기분이?”
“....”
소년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비웃음을 흘렸다. 명백한 조소였다.
“그렇게 하면-”
뜻밖에 말에 소년이 렌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렇게 하면 뭐가 좀 더 나아져?”
“....뭐라고?”
“남에게 상처받기 전에 상처 주는 거, 네 상처를 더 덧나게 만드는 거야.”
렌의 분홍색 눈이 소년에게 닿았다.
“못되게 구는 게 얼마나 힘든데. 나도 해봐서 알거든. 많이 힘들고 아프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