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들렌은 푸른 지붕 집에서 이틀을 머물다 갔다. 그녀가 간 후로 소피의 눈빛은 더욱 매서워 졌다. 렌은 어서 제임스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으나 그는 삼일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렌! 뭐하는 거니! 그거 하나 제대로 못해서 되겠어?”
소피는 닭장에서 달걀을 꺼내지 못하고 안절부절 하고 있는 렌을 꾸짖었다. 렌은 결국 부리로 쏘아 대는 닭을 피하지 못하고 손에 상처를 입었다. 그렇지만 결국 달걀은 꺼냈기에 그녀는 다시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손에 생긴 상처가 따끔 거렸다.
“머리카락 좀 묶고 다니렴! 이게 뭐니? 바닥에 질질. 어휴, 더러워.”
소피의 말에 렌의 몸이 움찔거렸다. 그러나 이내 다시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죄송합니다, 소피.”
“렌, 시장에 다녀올 테니 얌전히 있어라.”
소피는 음식이 다 떨어지자 시장으로 갔다. 렌은 그런 그녀를 배웅했다. 소피는 마지막까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렌을 바라보았다. 소피가 집을 나가자 렌은 적적해진 집을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섰다. 목장으로 가서 젖소와 말의 여물을 다 주고 나서도 소피는 돌아오지 않았다. 렌은 문득 집 옆에서 보았던 예쁜 꽃들을 떠올렸다. 렌은 콧노래를 부르며 숲을 거닐었다. 여러 색깔의 꽃이 그녀 곁에 수 놓아졌다. 문득 그 꽃을 보며 렌은 소피에게 화관을 만들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작은 꽃들로 수놓은- 그곳. 아름다운 그곳으로-”
렌은 노래를 부르며 예쁜 꽃들을 골라냈다. 그리고 화관을 만들기 시작했다. 능숙한 손길에 꽃들이 이리저리 휘어지며 엮였다.
“별빛과 달빛마저 사라진 그곳을, 그대와 함께-”
렌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예쁜 화관이 완성 됬다. 그녀는 잠시 소피의 머리 둘레를 가늠해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꽃을 좋아하던 소녀가 떠올랐다. 눈부시게 환했던, 렌의 하나뿐인 친구였던, 아름다운 소녀가.
렌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그녀는 얼른 무릎에 있던 잎들을 털어내고 몸을 일으켜 집으로 달려갔다. 예쁜 화관이 손에서 흔들거렸다.
“소피!”
집 밖으로 마중 나온 소피가 보였다. 렌이 그녀를 부르자 소피가 그녀에게 곧장 달려왔다.
“망할 계집애! 네가 훔쳤지?”
소피가 그녀에게 소리쳤다. 렌의 분홍색 눈동자가 흔들렸다.
“무, 무슨 소리에요, 훔치다니요!”
“거짓말 마라! 내 은 목걸이가 사라졌어!”
말을 하며 소피가 렌의 작은 몸을 뒤지기 시작했다.
‘쓸모없는 것 같으니!’
그날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는 것 같았다. 렌이 소피의 손을 뿌리쳤다.
“저는 아니에요! 저는 아니란 말이에요!”
그녀의 분홍색 눈이 일그러졌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찰싹-
렌의 고개가 돌아갔다. 익숙한 고통이 몸을 휩쌌다.
‘너를 데려오는 게 아니 였는데!’
“너를 데려오는 게 아니 였는데..”
렌의 분홍색 눈이 흐려졌다. 제임스를 따라 마차를 타고 오던 날. 이번에는 절대 듣지 않을 거라 다짐했던 말이 다시 그녀에게 돌아왔다. 더 깊은 상처를 내며. 깊게, 아프게.
“난.. 난...”
조그맣게 말을 내뱉던 그녀는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뒤에서 소피가 뭐라 소리치는 게 들렸으나 멈출 수가 없었다. 숨이 가파 왔으나 멈출 수 없었다.
“앗!”
돌부리에 걸려 렌이 넘어졌다. 무릎이 아팠다. 한 쪽 신발의 밑창이 너덜너덜 해져 있었다. 그녀는 한 쪽 신발을 주워 들었다. 고개를 들자 그제야 주변이 보였다. 울창한 숲이 보였다. 꽤 멀리 안으로 들어온 듯 했다. 소녀의 손에는 꽃이 시들어진 화관이 힘없이 들려 있었다. 난 이걸 왜 만든 걸까. 이런 걸 준다고 소피가 날 봐줄리가 없는데. 바람이 빠지는 듯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너 여기에서 뭐하냐.”
“...너는..”
렌이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짙은 흑발에 붉은 눈동자. 그 소년이었다. 전에 마주쳤던. 그의 흰 뺨에 있던 생채기는 다 나아있었다. 소년이 렌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는 그녀에게로 곧장 다가섰다.
“너, 맞았냐?”
어딘가 살벌한 그의 말에 렌의 분홍색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쩌면..”
잠시간의 침묵 후 렌이 입을 열었다.
“어쩌면 네가 맞는지도 몰라. 나는, 항상 상처 받는데도, 이번에는, 이번 만큼은 다를 거라며 기대를 하고.. 미소를 지어. 항상 그래왔어. 하지만, 나는.. 나는 말이야..”
그녀의 분홍색 눈동자에 물기가 서렸다.
“..너처럼 남에게 상처를 줄 수조차 없어... 나는.. 내가 마음을 먼저 열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 걸. 아무도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 걸..”
마침내 억눌러 놓았던 감정이 터져 나왔다. 그녀의 흰 뺨에 눈물이 흘렀다.
“흐윽, 흑.. 그런데..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상처는 계속해서 덧난다. 상처 위에 다른 상처들이 계속해서 더해진다.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아...”
렌의 상처는 이미 너무 덧나고 곪아서, 건드릴 수조차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