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 비가 오는 구나. 빨래 걷는 것 좀 도와주겠니?”
“네 소피.”
그 날도 평화로운 날이었다. 소피와 렌은 밖으로 나가 빨래를 서둘러 걷었다. 비가 거세게 쏟아지고 있었다.
“소피! 나머지는 제가 할 테니 먼저 옷 들고 들어가세요!”
“알았다, 너도 빨리 하고 오렴!”
렌은 빗방울 때문에 흐려진 시야를 손으로 문질렀다. 비는 멈출 줄 모르고 흘렀다. 그녀가 서둘러 빨래를 널었던 줄을 걷기 시작했다.
쏴아아-
빗소리가 안개를 갈랐다. 저 멀리 흑발의 남성이 보였다. 렌이 줄을 걷던 손을 멈추었다.
“루벤?”
빗소리 때문에 들리지 않은 건지 남성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소녀는 물기로 가득한 눈을 문지르고 그 남성에게로 달려갔다. 물 웅덩이가 첨벙거리며 그녀의 신발을 적셨다.
“루벤? 왜 여기서....”
루벤은 비에 잔뜩 젖어 있었다. 그의 짙은 흑발은 잔뜩 물기를 머금어 무거워져 있었고, 붉은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는 소년의 모습에 렌이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야! 말 좀 해봐!”
빗소리에 렌이 조금 크게 말을 꺼냈다. 소년의 붉은 눈이 마침내 그녀에게 닿았다.
“....렌..”
그의 목소리는 잔뜩 갈라져 있었다. 소년의 흰 손이 덜덜 떨려왔다.
“...형이 죽었어.”
그의 말에 렌이 숨을 들이켰다. 비 때문에 소년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가 내가 죽인 게 틀림없다며 소리쳤어. 내가 형을 시기해서 죽인 거라고... 괴물이 자기 아들을 잡아 먹었다고... 나를 죽이려 했어... 내 목을 조르고...조르고...”
루벤이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었다.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래서.. 내가.. 어머니를...”
붉은 눈이 짙은 흑발에 반쯤 가려져 있었다. 그의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 했다.
“내가.. 어머니를.... 죽였어....”
그 말을 내뱉고 붉은 눈이 애처롭게 렌에게 닿았다.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살인. 소년은 사람을 죽였다. 자신의 어머니를. 소년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난 괴물이야... 어머니가 맞았던 거야!”
“..루벤, 하지마. 루벤. 그러지마..”
소년이 자신의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얇은 살이 갈라지고 피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루벤은 그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자각하지 조차 못했다.
“난 괴물이야... 난 괴물이야.... 난, 난...”
그가 자신을 보호하듯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루벤의 눈에 초점이 사라져 있었다.
“루벤, 제발.. 정신 차려! 그만하라고!”
렌이 그의 뺨을 내리쳤다. 마침내 루벤의 눈이 그녀에게 닿았다. 붉은 눈이 고통에 일그러져 있었다. 이미 그의 입술은 짓이겨지고 갈라져 피가 흥건해져 있었다. 렌이 그의 입술을 바라보며 울음을 터트렸다. 그의 상처가, 아프다.
“제발.. 그만해...”
루벤의 붉은 눈에서 눈물이 툭하고 떨어졌다.
“....내가 너까지 죽이면 어떡하지?”
“무슨 소리야! 그럴 리가 없잖아!”
“난 괴물이야.. 괴물... 너를.. 해칠지도 몰라..”
루벤이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렌이 그런 그를 붙잡았다. 아냐, 나에게서 멀어지지 마. 그러지 마. 너마저, 너마저...
“나에게서 멀어져야 해! 렌! 나는 괴물이야...”
그가 자신의 하얀 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다시 렌을 보았다.
“..난 괴물이야.”
그 말을 내뱉은 뒤 루벤은 그녀에게서 달아났다.
“루벤! 가지마! 돌아와!”
렌이 그를 따라 뛰기 시작했으나 그는 이미 멀리 사라진 후였다.
“안 돼,.. 안 돼! 루벤! 돌아와! 제발!”
짙게 깔린 안개만이 렌의 시야에 비칠 뿐이었다.
“루벤!”
제발. 나를 떠나가지 마. 나를 처음으로 사랑해준 사람. 내가 처음으로 사랑한 사람. 당신 마저 나를 떠난다면, 나는..
쏴아아-
돌아오는 건 멈추지 않는 빗소리 뿐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