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아- 너 뭐해?”
“말 시키지 마. 나 바쁘다구.”
카틀레야가 삐진 듯 흥 콧방귀를 꼈다. 렌은 소피에게 보낼 편지를 쓰고 있었다. 소피도 분명 낯선 수도에 올라왔기에 힘들 것이 분명했다. 렌은 최대한 정갈하게 편지를 쓰려 노력 했다.
-소피에게.
안녕, 소피. 저는 아카데미에 잘 다니고 있어요. 까칠하지만 카틀레야라는 친구도 생긴 것 같고, 세익스루어 라는 교수님이랑도 대화를 나누어 보았어요. 이 곳은 온통 신기한 것들 뿐이에요. 소피도 저처럼 즐거웠으면 좋겠는데.. 소피는 어떻게 지내나요? 무엇을 하던지 그게 소피 자신을 위한 것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또 편지 쓸게요. 안녕.
렌 드레야 올림-
“편지 써?”
어느 새 고개를 들이밀고 있는 붉은 머리의 소녀를 보고 렌이 깜짝 놀라 인상을 찌푸렸다.
“깜짝 놀랐잖아!”
“네가 둔한 거거든~”
카틀레야가 얄밉게 말하고는 다시 거울 앞에 앉아 머리를 빗기 시작했다. 렌은 편지를 서랍 속에 고이 넣어 두고는 카틀레야에게 다가갔다.
“나 오늘 올리비아 만났다.”
“뭐! 그 계집애를 만났다고?!”
“아 깜짝이야. 어. 근데 착해 보이던데?”
렌의 말에 예쁜 녹안이 일그러졌다.
“넌 걔가 하는 말 다 믿어?”
싸늘한 말투에 렌이 조금 몸을 움찔했다.
“..아니.”
렌은 겉으로는 아니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남을 경계 했다. 옛날의 그 기억들은 약간의- 트라우마 같은 것이라서, 애써 노력 해봐도 쉬이 나아지지 않았다.
“그렇지? 아 넌 역시 그럴줄 알았어!”
카틀레야가 언제 그랬냐는 듯 발랄하게 돌아왔다.
“아무튼 그 계집애, 진짜 조심해야 돼.”
렌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예쁜데, 행동은 참.
“아, 그나저나 올리비아 그 년, 엄청 재밌는 일이 있었던데-”
카틀레야의 녹안이 예쁘게 휘였다. 렌이 그녀의 모습에 입을 헤 벌렸다.
“글쎄, 올리비아 걔가 에드먼드 리인 아칼리스 한테 고백했다가 차였다고 하더라고! 하하, 진짜 꼴 좋다. 내가 그걸 봤었어야 되는데!”
붉은 머리 소녀의 얼굴에 아쉽다는 표정이 지어졌다.
“에, 에드먼드?”
“응. 왜? 알아?”
“혹시 그 흑발에...”
“어, 너 걔 알아? 맞아. 그 흑발에 황금색 눈동자인 잘생긴 남자애.”
렌이 입을 틀어막았다. 어, 걔가 걔 맞는 것 같은데...?
“나랑, 같은 수업..들어서.”
“아아, 그렇구나. 걔 진짜 잘생겼지 않니? 내가 봐도 잘생겼더라.”
그랬던가?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루벤을 닮은 흑발만이 기억났다. 루벤, 루벤...
“얘, 너 또 멍 때리니? 너 진짜 멍 자주 때리는 구나?”
“내, 내가..?”
“응. 니가.”
렌은 고쳐야 겠다며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 거렸다. 그렇구나.. 그런 그녀의 모습에 카틀레야가 피식 웃었다.
“왜 웃어?”
“푸하하하, 너 방금 진짜 바보 같았어.”
카틀레야의 말에 렌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내가 뭘!”
둘은 투닥 거리다 지쳐 잠에 들었다. 창 밖으로 달빛이 새어 들어왔다.
‘렌, 렌.’
누구야? 누가 날 부르는 거야?
고개를 돌리자 흑발에 붉은 눈동자를 한 소년이 서 있었다. 렌이 달렸다.
‘루벤! 루벤!’
그러나 소년은 그런 그녀에게 등을 돌리고 멀리 떨어졌다.
‘안 돼! 가지 마! 제발!’
눈물이 하염 없이 흘렀다. 가슴이 아파 왔다.
“-레야! 렌 드레야!”
누군가의 목소리에 렌이 눈을 떴다. 창에서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카, 카틀레야..?”
“세상에, 이 땀 좀 봐. 너 도대체 무슨 꿈을 꾼 거야? 어머, 눈물도 흘렸네.”
렌이 손등으로 눈가를 닦자 물기가 베어 나왔다. 오랜만에 꾸는 루벤의 꿈이었다.
“아..그냥.. 악몽이었어..”
악몽. 스스로 내뱉은 말에 스스로 상처를 받았다. 루벤은 나에게 악몽인가.
“그래? 어쨌거나 얼른 정신 차려. 수업 준비 해야지.”
“응..”
렌은 손으로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대답했다. 창으로 보이는 하늘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마치 루벤이 자신을 떠났던 그 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