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틀레야는 지금 굉장히 심란했다. 오늘, 자신과 같은 방을 쓰는 평민 여자애가 기분이 아주 저조했다. 원래는 평민 여자애 기분 따위 알게 뭐라며 코웃음 칠 그녀였으나 항상 바보같이 실실 웃기만 하던 렌이 풀이 죽어있자 기분이 별로였다. 자신까지 저기압이 되는 것 같았다. 렌은 신기한 매력이 있었다. 그녀가 웃으면 옆에 있는 저까지 웃게 되고, 슬퍼하면 자신도 뭔가 찜찜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말이지..’
어제까지도 자신과 투닥 거리며 잘 놀았던 것 같았다. 그러므로 기분이 나쁜 것은 자신 때문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뭐지? 아침에 비가 와서 그랬나? 그러고 보니 아침에 악몽을 꾸었다고도 했지. 그 때는 진짜 놀랐다. 자던 애가 갑자기 식은땀 흘리고 막 눈물까지 흘렸다. 그리고 계속 뭐라고 중얼거렸다. 가지 말라고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그녀의 예쁜 녹안이 가늘어졌다.
“렌.”
자신의 앞에 있는 이는 멍을 때리고 있었다. 아주 심하게.
“렌 드레야.”
“어,어, 어?”
그제야 렌이 고개를 들며 흐리멍텅한 분홍색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흠, 참 예쁜 색깔이긴 했다. 분홍색이라니. 독특하기도 하고. 그러나 자신보다는 아니라 자부했다.
“너 오늘 대체 무슨 꿈을 꾼 거야?”
그러자 렌이 분홍색 눈동자를 데굴 데굴 굴렸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티 나게 하는 거야.
“어.. 남자애 꿈..?”
마침내 그녀가 대답을 했다. 그러자 카틀레야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뭐! 남자!”
그러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닿았다. -말해주자면, 이 곳은 도서관이었다. 렌이 책을 보겠다며 왔지만 지금 책을 거꾸로 들고 있다- 카틀레야는 잠시간 창피함에 얼굴을 붉히다가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뭐, 남자? 너 지금 남자 때문에 이러는 거야?”
카틀레야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그러자 렌이 그녀를 보더니 말했다.
“그렇긴 한데, 네가 뭘 생각하든 일단 그건 아냐.”
“..내가 뭘 생각했는데.”
그녀의 말에 렌이 잠시 생각하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상한 생각.”
그리고 거꾸로 뒤집힌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카틀레야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얘 진짜 골 때리는 애다. 도대체 저 책을 읽을 수나 있는 건가.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끊질기게 렌에게 말을 걸었다.
“자, 어서 말해보렴. 언니가 또 남자를 잘 알잖니.”
“...아닌 것 같은데.”
렌이 자신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순간 또 소리치를 뻔 했다.
“그래서, 걔 잘생겼어?”
카틀레야가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뭇자 렌이 그럴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 엄-청. 에드몬드보다 더.”
“에에? 말도 안돼! 거짓말 치는 거지!”
“안 믿을 거면 믿지 마라, 흥.”
“...이름이 뭐야?”
“저리가 안 말해 줄 거거든.”
카틀레야가 렌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그러자 렌이 얼굴을 찌푸리며 놓으라며 팔을 흔들었다.
“아, 알려줘~”
“싫어, 저리가! 저리 가라고 했어!”
렌은 책을 놓고 얼른 카틀레야를 피해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카틀레야는 그녀가 가는 곳 마다 졸졸 집요하게 쫓아갔다. 결국 그들은 도서관에서 추격전을 벌이다 사서에게 된통 혼이 나고 도서관에서 퇴출 당했다. 그러나 그 일 이후 다시 렌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띄어졌다는 것은 카틀레야만이 아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