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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 드레야
작가 : 아이스티
작품등록일 : 20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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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작성일 : 18-02-10     조회 : 345     추천 : 0     분량 : 2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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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렌은 손가락에 통증을 느끼며 눈을 찌푸렸다.

  “아...”

 손가락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예감이 안 좋은데, 아침부터.. 렌은 그런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점심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탁탁탁-

 구두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순간 렌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

 렌이 고개를 들자 그 곳에는 소피아라고 불렸던 것 같은 귀족 영애가 서 있었다. 그녀가 자신을 비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발을 건 건가? 렌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어머, 추하게. 평민이라 그런지 몸가짐도 천박하군요.”

 그녀의 뒤에 서 있는 소녀들이 키득거리는 게 보였다. 렌이 벌떡 일어나 치마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그럼 저는 수업을 하러 가야 돼서, 이만.”

 렌이 분홍색 눈동자를 휘며 인사한 뒤 다시 가던 길을 갔다. 그 것을 본 소피아 영애의 얼굴이 붉어졌다. 수치심이었다.

  “처, 천박한 게! 감히!”

 정말 애쓰네. 렌은 그렇게 생각했다. 진심으로, 그녀의 도발은 귀여울 정도였다. 귀족들은 다 그런 건가. 발에 걸려 넘어지면 수치심이 들까? 그럼 머리채가 잡히는 건? 수많은 발들에 짖밟히는 건, 뺨이 부어올라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맞는 건 어떨까. 그런 것들을 당하고도 고작 발에 걸려 넘어지는 게 수치심이 들고 모욕적이라 생각될 수 있을까.

  “감히 날 무시하다니, 각오해야 될 거라고요!”

 뒤에서 소피아가 소리치는 게 들렸다. 렌은 그것을 무시한 채 걸음을 계속했다. 올리비아가 시킨 걸까? 그렇다면 골치 아파지는 데.. 그녀의 생각이 틀리지 않은 것을 보여주듯, 올리비아의 무리들은 그녀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어머, 발이 미끄러졌네요.”

  “손을 놓쳐서.. 어쩌지? 물에 홀딱 젖으셨네요, 푸흡.”

  “호호, 너그럽게 용서해 주실거라 믿어요.”

 그들은 차례를 돌아가면서 렌을 골탕 먹였고 그때마다 그녀들은 모여서 낄낄 대며 비웃었다. 만약 올리비아가 자신에게 존댓말을 쓰지 않았다면 그들은 아마 그녀에게 거친 욕을 해대지 않았을까. 고귀한 귀족 가 영애가 하는 욕이면 뻔 하겠지만.

  ‘피곤하네.’

 피곤했다. 정말로. 그저 그것 뿐 이었다. 렌이 부은 발목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같은 발목에 여러 번 발을 걸다니. 하지만 묵묵히 당할 수 밖에는 없었다. 그들은 귀족이었고 렌은 평민이었으니까. 렌은 절뚝거리며 방을 나섰다.

  ‘발목 다쳤어?’

 붉은 머리의 소녀가 묻던 게 떠올랐다. 렌은 그녀에게 별 것 아니라며 미소를 지었었다. 하지만 눈치가 빠른 그녀는 아마 알았겠지.

  “렌.”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다. 분홍머리의 소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올리비아.”

 렌이 밝은 미소를 지었다. 마치 그녀의 횡포 따위는 전혀 몰랐다는 듯이.

  “아 참, 제가 소개 했었나요? 새 친구를 사귀었거든요.”

 올리비아가 렌의 말에 눈썹을 들어 올리더니 다시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안나? 이리 오렴.”

 그녀의 말에 백갈색 머리의 소녀가 주춤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렌의 밝은 미소에 금이 갔다, 저 소녀는...

  “렌과도 인연이 있죠? 인사해요. 안나, 뭐해. 인사 해야지.”

 오래 전 보았던 소피의 친구라던 마들란 부인과 그녀의 딸인 작은 소녀가 떠올랐다. 맙소사.. 올리비아는 렌의 금이 간 미소를 보며 더더욱 미소를 지었다.

  “안나. 뭐하냐고.”

  “아,아.....”

 안나의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와들거렸다. 그 때 소녀의 몸이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뒤에 서 있던 귀족 가 영애의 발이 범인이었다.

  “어머, 죄송해요. 올리비아 백작 영애. 평민 따위가 감히 올리비아 영애의 말을 무시하길래 저도 모르게 그만..”

  “아니에요, 루틴 영애. 이해해요.”

  “맞아요. 감히 평민 주제에 아주 버릇없게..”

  “호호, 저 쓰러진 폼 좀 보세요. 추하기는.”

 렌의 분홍색 눈이 흔들렸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안나의 눈이 그녀의 분홍색 눈과 마주쳤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눈이 말하고 있었다.

  ‘..도와줘...!’

 안나의 치마 자락을 밟은 귀족 영애가 맑은 웃음 소리를 냈다. 역겨워, 역겨워.. 역겨웠다. 어떻게 저런 표정을 지으면서!

  “...치워요.”

 렌의 미소가 싹 사라졌다. 분홍색 눈동자가 분노로 일그러졌다.

  “무슨 상관이시죠? 저는 귀족이고 이 계집은 평민이에요. 고로, 저에게 행동을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뭐라고?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귀족이고 평민이면, 사람을 때려도 된다는 거야? 괴로움에 몸부림 쳐도, 아무도 도와주지 못한 다는 거야? 왜?

  “렌 드레야.”

 올리비아가 말했다. 그녀는 렌의 귓가에 속삭였다.

  “대접해 준다고 네가 귀족이라도 된 줄 알아? 천박한 피 주제에. 감히 푸른 피가 흐르는 내게 모욕감을 줘?”

 올리비아는 자신의 태생에 대한 자부심이 높았다. 그녀의 아비는 이름 높은 샤르딘 백작 가의 인정받은 가주 였으며 그녀의 할머니는 황녀의 하나 뿐인 딸이었다. 즉, 올리비아의 몸에는 황실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렌이 그것을 알 턱이 없었다. 그저 그녀의 말을 되새길 뿐. 귀족? 난 그런 거 바란 적 없어. 단 한번도. 일주일을 굶어서 정신을 잃었을 때도, 입양된 집에서 온몸에 든 채 방에서 숨죽여 울먹였을 때도, 자신의 희망이 계속해서 짖밟혔을 때도. 자신이 평민이라서 원망스러운 적이 없었다.

  ‘푸른 피?’

 그런 게 어디 있어. 사람이 어떻게 푸른 피를 가져. 말이나 된다고 생각해?

  “...잘 알았으면 네 주제를 알고 당장 꺼져.”

 올리비아가 속삭였다. 그리고 그녀가 렌에게서 몸을 떨어뜨렸을 땐, 얼굴 만면에 아름다운 미소를 지은 채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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