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할 만큼이나 짙은 어둠.
그 어둠 속에서 인영이 움직였다.
작은 창으로 달빛이 새어 들어왔다. 인영이 고개를 들었다.
무서워. 이 어둠이, 너무나도 무섭다.
인영이 달빛으로 다가갔다. 짙은 흑발의 소녀가 달빛에 비춰졌다. 앙상한 다리가 움직였다. 철쇄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작은 소녀는 자신의 발을 묶어두고 있는 철 고리들을 가볍게 끊었다. 소녀는 고개를 돌려 어둠 속에 걸린 큰 그림을 보았다. 짙은 흑발의 소년이 그려져 있었다. 소녀의 작은 손이 그림을 잘게 쓰다듬었다.
소녀는 방을 나왔다.
어두운 하늘에서는 새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깨끗한 설원에 작은 발자국들이 찍혔다, 아주 작은, 아주 작은 발 이었다. 소녀는 작은 발을 끊임없이 움직였다. 흔들리는 다리가 위태로워 보였으나 결코 멈추지 않았다. 소녀가 고개를 들었다. 몸이 잘게 떨려 왔다.
흐릿한 시야에 새하얀 설원과 어둠 말고 무언가가 들어왔다. 온몸으로 전율이 흐르는 것 같았다. 소녀의 하얀 손이 잘게 떨리더니 자색 눈동자가 이채를 띄었다.
“..아..아...”
작게 벌어진 입으로 신음이 흘러 나왔다. 안 돼는데, 이러면 안 돼는데.. 소녀의 작은 몸이 움직였다. 가볍게 뛰어오른 그녀는 날카로운 손톱으로 자신의 시야에 들어온 것을 거칠게 파헤치기 시작했다. 피가 튀겼다. 새하얀 설원에 새 빨간 피가 물들었다. 시린 바람이, 피 비린내를 불러와 소녀의 코를 자극 했다. 소녀의 하얀 피부에 피가 튀겼다. 그녀가 입고 있던 새 하얀 원피스가 붉게 물들었다.
“아, 아...”
누가 좀 도와줘.
제발, 누가 날 도와줘.
‘넌 괴물이 아니야.’
소년의 따스한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소녀가 새하얀 설원을 달리기 시작했다. 중간에 넘어져서 무릎에 상처가 났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벌떡 일어나 다시 달렸다.
‘절때 이 방을 나오면 안 돼. 알았지?’
위험해, 위험해, 위험해.
‘그래, 넌 착하니까-’
소녀의 숨이 거칠어졌다.
‘응? 약속하는 거야.’
어서, 어서, 어서.
작은 발이 멈추었다. 소녀는 방문을 열고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자신을 묶었던 끊어진 철 고리들을 다시 몸에 둘렀다. 소녀의 앙상한 손이 덜덜 떨렸다. 아직 핏물이 흥건했다. 이렇게 하면, 이렇게 말 잘 들으면..
‘금방 올게.’
금방 올거야.
소녀의 작은 몸이 다시 어둠에 물들었다.
부스럭-
문 밖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음에 어둠 속에 있던 인영이 움직였다.
‘있지, 누가 여기로 찾아오면-’
소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꼭 숨어야 해. 숨바꼭질 기억나지? 나랑 했었잖아.’
소녀의 몸이 움직였다. 달빛에 살짝 비춰진 그녀는 전 보다 더 말라져 있었다. 이내 소녀가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문이 삐거덕 소리를 내며 열렸다.
“뭐야, 아무도 없는데?”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녀가 숨을 죽인 채 눈을 감았다. 피가 끓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참아야 한다, 참아야-
“잘 봐. 혹시 누가-”
말을 끝 마치기도 전에 소녀가 몸을 날렸다. 그녀는 날카로운 손톱으로 문을 연 남성의 얼굴을 할퀴었다.
“으, 으아악!”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소녀가 바닥으로 나동그라진 남성의 얼굴을 움켜쥐었다.
우두둑-
소녀의 작은 손에서 두개골이 부셔지는 소리가 들렸다. 남성의 신음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뜨끈한 물이 흘러나왔다. 소녀는 그 느낌을 감상하며 뒤에 서 있는 다른 남성을 보았다.
“흐, 흐익! 괴물!”
남성이 덜덜 떨리는 발로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어딜 가려고. 소녀가 그를 무서운 속도로 쫓기 시작했다. 그리고 몸을 날려 남성의 머리칼을 잡고 바닥으로 내리쳤다.
쾅-
남성이 신음을 흘렸다. 소녀는 그의 목을 움켜 쥐었다. 목 뼈가 부서지는 스산한 소리가 들렸다. 고요가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