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날 아침. 모두가 잠에서 깨어나 간단히 아침을 먹고 있었다. 물론 나도 어제 먹다 남은 햄을 잘 달궈진 넓적한 돌 위에 얹혀 놓고서는 서서히 익기를 기다렸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니 햄은 자연스럽게 기름을 내뱉으면서 서서히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익어가고 있었다. 모두가 그 냄새에 신경이 쓰였는지 밥을 먹고 있는 도중에도 주위 아이들은 내가 조리하는 햄을 보면서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대부분 3일 이라는 시간을 대수롭게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그들의 식사는 잘 보니 조촐하였다. 먹다 남은 빵과 유리병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잼을 빵으로 겨우겨우 찍어먹으면서 살고 있는 반면에 우리 조의 식사는 그나마 정상적이였다. 햄을 구운 다음에 빵에 끼운 다음에 남은 기름으로 채소를 살짝 볶아 불과 고기맛. 그리고 아삭거리는 식감의 채소를 같이 넣어 먹으니 최고였다.
"평민. 너, 검보다는 요리사를 하는게 더 어울리지 않냐. 우리 주방장이랑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데."
의의로 금발 귀족은 내 요리 솜씨에 대해 뭐라고는 하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였다. 아무리 그래도 내 17년 인생 동안의 내 요리 솜씨를 부정이라도 다했다면 정말로 쓸모없는 녀석이 되어버리니까.
"그보다, 아직까지는 별 일이 없어서 다행인건가."
우물우물 거리면서 내게 말을 거는 금발 귀족. 입 안에 있는 음식을 삼키고 나서는 무언가 더 말하려 한다.
"하룻밤 자기는 했지만, 이 델브란의 숲에서 기괴한 생물들로 가득 차있는 숲이라서 처음엔 바짝 겁먹었는데, 뭔 별 것도 아니군."
기세등등하게 말하는 금발 귀족. 그러나 새벽에 가끔 짐승이나 괴수의 이상한 울음소리가 들려오면 몸을 흠칫 떨면서 망토를 꼭 부여잡은 그의 모습이 생각났더니 괜스레 웃음이 나와버렸다. 그래도 꽤나 길게 들린 울음소리였다. 그것도 여러마리의.
"뭐가 웃긴거냐, 평민?"
"아, 아니야. 아무것도."
모두가 바라보는 아침 식사를 간단히 마치고 나서야 잠시 정비라도 하는지 모두 검을 손질하거나 숲의 외곽을 둘러보면서 경계를 선다.
"하찮군. 이봐, 평민. 어차피 내일까지만 버티면 되니까 우리도 한 번 구경이나 해볼까?"
"무슨 소리야?"
"당연히 숲 안 쪽까지 구경하는 거지. 의외로 신기한 게 있을 수도 있고."
"위, 위험할 것 같은데."
"걱정마라. 여차하면 너를 미끼로 내가 살아남을테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 녀석. 천진난만하게 얘기를 꺼내지만 그게 더 무서웠다. 그러고 보니, 꼬마 고양이는 잘 있을까. 다시 간다고 말하긴 했지만 기다리고 있을까. 아닐거다. 그 아이는 숲의 맹수이니까. 자기가 살 길은 자기가 알아서 살겠지. 사람의 손을 타면 별로 좋지 않다고 책에서 언뜻 본 것 같았다. 내가 없어도 잘 살겠지. 자기보다 큰 맹수도 죽인 아이인데.
"어이! 뭔 생각을 하냐!"
"어!?"
"평민. 미끼로 안 쓸테니까, 쫄지는 마라. 하여간에 겁을 더럽게 많아가지고선!"
제멋대로 판단을 하면서 화를 못이겨 은색제 검을 들고서는 성큼성큼 숲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도대체 검 하나만 들고 숲으로 뛰어가다니. 나도 뒷일은 생각조차 하지도 않은 채로 금발 귀족의 뒤를, 조금 남은 햄과 희한한 검을 들고서는 쫓아갔다.
"으스스하구만."
머리를 벅벅 긁으며 한쪽 손은 상의에 걸쳐서는 한가하게 풀을 씹으면서 걷고있는 한 남자. 긴 흑발을 한 번에 넘겨 깔끔히 묶은 말총머리가 오늘은 부스스한 산발로 펼쳐져있었다.
"그보다도 이녀석들 꽤 맛이 없구만."
류월랑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생고기를 보면서 이따금 휙 집어 던졌다. 손에 묻은 비릿한 핏물을 탈탈 털어내면서 자신보다 더 강한 괴물을 만나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기보다는 정치없이 떠돌아다니다가 우연찮게 얻어걸린 장소였다.
처음에는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마냥 숲을 신기하게 돌아다녔지만, 금세 질리고 말았다. 처음에는 달려드는 녀석들이 재밌기는 하였으나 예상외로 김이 빠졌다. 하나같이 자신의 터전을 위협하는 인간인 줄 알았던 것인지 괴수 무리들은 무리하게도 자신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면서 나를 죽이려고 했다지만. 그런 걸로 죽을 내가 아니다. 그렇게 죽이고 죽여서 걷다보니 얼추 숲의 중심까지 오게 된 것인데, 왠지 모를 기대를 품고서는 서서히 걸어가는 류월랑이였다.
"이봐, 평민…. 물있냐?"
"물은… 없는데."
"…목 말라…."
우리가 있는 장소는 델브란 숲의 안쪽 지역이였다. 처음에는 금발 귀족은 신이 나듯 이곳 저곳 나무나 잔디 그리고 희한하게 생긴 동물을 보며 우와라는 감탄사를 내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몇 번, 처음보는 동식물을 뇌에 각인을 시킨 후에 슬슬 나가려고 몸을 돌릴 준비를 하였다. 그때였을까. 가까운 어딘가에 기괴스러운 울음소리가 또렷히 들려오고 있었다. 처음 듣는 기분 나쁜 소리에 서둘러 자리를 뜨려고 했다.
금발 귀족도 아까 전의 호기심 가득한 표정이 아닌 잔뜩 겁을 먹은 얼굴로 떠는 손은 검의 손잡이를 잡고 있었고. 나도 되려 그 모습에 겁을 먹어 똑같이 검을 잡은 채로 계속해서 들리는 울음소리의 근원지를 집중하고 있었지만, 알 수 없는 존재의 괴물이 크나큰 하울링을 내면서 금발 귀족은 순식간에 도망을 쳐버렸다. 그것도 자신이 지나온 길의 반대방향으로, 즉 숲의 중심부까지 헐레벌떡 뛰어가버린 것이다.
그리고 지금. 두 명은 아침부터 물도 마시지 않은 채 긴 달리기를 어쩔 수 없이 하였고, 심각한 목마름에 허덕이고 있었다.
힘없는 걸음걸이에다가 언제 어디서 닥쳐들어 올지도 모르는 괴물들의 습격에 온 신경을 집중한 채로 힘없이 걸으니 기운이 나지 않았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이 곳의 숲은 햇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아 한치 앞도 잘 보이지도 않았기에 둘은 이미 숲에서 조난을 당한 상태였다.
그렇게 둘은 울음소리가 안들리는 이 틈을 타서 잠시 앉아 휴식을 취했다.
"미치겠다…."
금발 귀족이 작은 목소리로 욕을 하면서 자신을 저주하듯이 내뱉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자신의 탓이라고 말을 해도 무엇 하나 바뀌지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말을 하면 할수록 상황은 나락의 끝으로 떨어지기만 할 뿐.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려나."
무의식적으로 혼잣말을 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이봐! 나를 탓하는 거냐, 평민…!?"
"그건 아닌데…."
"내, 내가 물론! 바보같이 소리에 놀라서는 숲으로 더 들어오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 울음에 놀라서 온 거야! 알았지?!"
어린애다운 변명을 하는 금발 귀족은 계속 횡설수설하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손으로 크게 흔든다. 하지만.
"미안…."
"응? 지금 뭐라고?"
"미안하다고! 평민! 내 실수로 여기까지 와버렸잖아!"
힘없이 내뱉는 소리에 깜짝 놀랬다. 콧대 높은 귀족이 자신에게 사과를 하다니. 태어나서 처음 받는 충격이였다.
"아, 아니야. 굳이 사과할 필요는 없어. 오히려 우리는 2인 1조이니까. 같은 팀이잖아. 그러니까 이 숲도 어떤 방법을 찾아서 나가보자. 그리고 외곽에는 아이들이 꽤 있으니까 우리를 찾아 내려고 할꺼야."
"아니, 평민. 그럴 일은 절대로 없다. 오히려 녀석들은 좋은 기회라고 하면서 가만히 있을걸. 그것도 아니라면 벌써부터 입을 맞추겠지."
"이, 입을 맞춰?"
루크의 얼굴이 아주 질색이라는 표정을 드러냈다. 금발 귀족도 처음에는 이해가 안되었지만 곧장 얼굴을 붉히며 성난 목소리와 함께 지른다.
"야, 이 망할 평민놈아! 그런 뜻이 아니라! 우리가 죽었다는 가정하에 녀석들은 가짜를 진짜로 만들려고 한다는 거라고!"
"그러니까, 우리가 죽는 것을 가정하고, 그리고 자기들이 알아서 협작한다는 거야?"
"그래!"
"하지만 같은 반의 친구잖아?"
"잊었냐, 평민? 여기는 검술 학원이지만 귀족들이 다니는 학원이야. 온갖 계략과 음모는 수두룩하다고. 너 하나 죽어서 아무런 이득은 없지만. 내가 죽는다면 우리 가문이 큰 타격을 입겠지."
"그, 그래?"
"평민의 눈에는 사이좋게 지내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달라. 우리들은 친구라는 우정에 묶여 있지 않아. 단지 미래의 적이 되지 않도록 어울리는 것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