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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와르: 1년 후, 모든 기억 삭제
작가 : 긴장감
작품등록일 : 20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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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의 사정
작성일 : 18-02-10     조회 : 292     추천 : 0     분량 : 7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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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배를 다 태우고 사무실로 돌아와보니 사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김광규 조장은 어디론가 나가고 없었고, 한 녀석은 입가엔 피를 묻힌 채 얼굴 전체가 시퍼런 멍으로 부어있었다.

 

 바닥에는 조장이 평소 애지중지하던 도자기 파편들이 떨어져 있었으며, 무거운 가죽 소파가 제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이리저리 삐뚤어져 있었다.

 

 대부분 녀석들은 골프채 따위로 엉덩이를 맞았는지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엉망이 된 사무실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조장이 그저 애들 벌 정도 세우는 줄 알았던 터라 이 광경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나는 떨어져 있는 도자기 파편 하나를 주워들었다.

 

 그 파편들이 방향성을 갖고 먼 곳까지 퍼져있는 것으로 보아 떨어뜨렸다기보다는 둔기 같은 걸로 후려쳐 깨진 것이 분명했다.

 

 본래 몇 천 만원대의 도자기라고 들었는데, 그것을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어놓을 정도로 김광규 조장이 분노했던 것이었다.

 

 빗자루로 바닥을 쓸던 한 녀석이 문 앞에 서있던 우리를 발견하고 얼른 달려왔다.

 

 

  “오셨습니까, 형님들. 김광규 조장님은 외출 중이십니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다른 녀석들도 하던 일을 멈추고 허리를 굽혔다.

 

 박휘원이 말했다.

 

 

  “아, 우리들은 신경 쓰지 말고 다들 하던 대로 청소 해. 그나저나 이게 무슨 일이야? 왜 김광규 조장님이 이렇게까지 화를 낸 거지?”

 

 

  “그, 그게……. 조장님이 당장 이번 달부터 본부에 내는 상납금을 열 배로 늘리라고 하셨는데, 진태성 형님께서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셨다가 이 지경이 되었습니다.”

 

 

  “뭐? 그럼 지금 진태성 형님께선 어디 계셔? 김광규 조장은?”

 

 

  “아마도 형님은 ‘그 창고’에 끌려가신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진태성 형님께선 기절하신 채 끌려가셨습니다.”

 

 

  “뭐, 이런…….”

 

 

 눈 앞이 아찔했다.

 

 진태성 형님은 김광규 조장이 가장 신뢰하는 오른팔로서 만일 그가 ‘그 창고’에 끌려간 게 사실이라면 몸 어느 한 부분은 성하지 못하게 나올 것이 뻔했다.

 

 김광규 조장은, 해가 지고 거리에 술에 취한 남녀들의 웃음소리가 거리를 가득 메울 즈음이 되어서야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불안하게도 그의 옆에 항상 비서처럼 서 있던 진태성 형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김광규 조장은 깨끗하게 정리된 사무실로 거만한 걸음걸이로 들어와 가죽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습관처럼 두꺼운 시가를 꺼내 들었다.

 

 그의 주위로 예를 갖추고 서 있는 우리들은 긴장으로 몸이 잔뜩 굳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입이 바싹바싹 타들어가고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생각하자니 속이 메스껍기까지 했다.

 

 그런 우리들을 쭉 훑어보던 김광규 조장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내일 나는 ‘일신회’ 간부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나뿐만 아니라 ‘일신회’에 속해있는 각 조장들과 이웅조 회장님까지 모두 모이겠지.

 

 너희들도 알다시피 우리가 있는 세계는 일반인들이 사는 세계와는 아주 달라. 사람 한 명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릴 수 있어. 특히나 일반인이 아닌 같은 ‘일신회’ 조직원이라면 이야기는 더 쉬워진다. 즉! 하루하루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언제 송장 꼴이 될지 모른다는 거야!”

 

 

 목소리가 높아진 그는 격해진 감정을 달래기 위해 시가를 한 모금 쭉 빨아들인 뒤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 우리 조직도 혁신을 위한 개편이 필요하다. 그 동안 진태성이 내 오른팔로 있었지만, 앞으로는 ‘채범기’가 내 오른팔 역할을 맡는다. 범기가 진두지휘 해서 이번 달부터 일신회에 내는 우리 조 상납금을 열 배로 올린다. 다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형님!”

 

 

  “그리고, 정민. 네 녀석은 오전에 찾아온 석은하를 맡아라. 뒷조사 해서 그 여자의 신상정보와 무슨 이유로 기억을 지우려고 하는지, 이웅조 회장과는 어떤 관계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어떻게 그렇게 큰 돈을 갖고 있는 건지 다 알아내. 오늘 받은 돈은 보증금인 셈 치고 앞으로 더 뜯어낼 테니까 얼마나 더 뜯어낼 수 있나 알아보라는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형님.”

 

 

  “좋아. 채범기는 내 방에 따라오고 나머지는 각자 자기 일들 보도록. 해산.”

 

 

 김광규 조장은 근육과 지방으로 된 무거운 몸을 일으켜, 거인과 같은 키를 자랑하는 채범기 형님과 함께 개인 집무실로 들어갔다.

 

 

  “이야, 채범기 형님이 진태성 형님 자리를 꿰차는구나.”

 

 

 그들이 방 문을 굳게 닫은 것까지 확인한 박휘원이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했다.

 

 

  “진태성 형님이 진짜 ‘제갈공명’ 같은 책략가 스타일이었는데, 말을 안 들으니까 힘으로 밀어붙이는 ‘장비’에게 일을 맡겨버리네. 저 인간, 저번처럼 애들 두들겨 패면서 무조건 압박하겠어. 사기만 떨어뜨리는 일이지.”

 

 

 박휘원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실 당시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오로지 진태성 형님의 안위와 ‘그 창고’에 대한 생각만 내 머릿속을 가득 메워 박휘원의 목소리가 꿈속에서 듣는 것처럼 왕왕 울렸다.

 

 

  “야, 너 왜 그래? 조장님은 방에 들어가셨어. 왜 아직도 그 자세야?”

 

 

 당황한 그가 물었다.

 

 나는 여전히 땅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한 채 그에게 물었다.

 

 

  “진태성 형님은 어떻게 되는 거지? 형님이 만약 진짜 그 창고에 끌려간 거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 그야 너도 알다시피 반 불구가 되어서 나오시지 않을까? 형님이 걱정되어서 그런 거야?”

 

 

  “형님이 위험해. 혀, 형님을 만나 뵈어야겠어.”

 

 

  “뭐? 미쳤어? 조장이 대놓고 은밀하게 넘어가려는 일을 네가 왜 신경 쓰려고 해? 정신차려!”

 

 

 내 눈 앞에는, 가죽소파 옆에서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진태성 형님의 모습이 환영처럼 아른거렸다.

 

 그의 시뻘겋게 충혈된 눈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으며, 그의 입이 작게 내 이름을 불렀다.

 

 진태성 형님은 자신의 조카가 나와 닮았다며 나를 때론 아버지처럼 챙겨주기도 했고 때론 형처럼 짓궂게 장난도 걸어주던 남자였다.

 

 내 팔을 붙잡으며 만류하는 박휘원을 뒤로 하고 나는 김광규 조장과 채범기 형님이 있는 집무실 문을 다짜고짜 벌컥 열었다.

 

 그리고 바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진태성 형님께서 계신 곳을 알려주십시오, 조장님. 부탁 드립니다.”

 

 

 나는 큰절 자세로 이마를 땅 위에 대고 숙였다.

 

 이런 나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다들 놀란 듯 사무실 전체가 일순간 고요해졌다.

 

 집무실 근처까지 따라온 박휘원의 안타까운 한숨 소리와 유리로 된 테이블 위에 찻잔을 내려놓는 소리만이 소름 끼치도록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렇게 몇 십 초가 지났을까.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채범기 형님이 벌떡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이 멍청한 자식이 감히 조장님 앞에서 무슨 행패야? 썩 안 꺼져?”

 

 

 그는 손짓으로 내 뒤에 서있는 박휘원에게 나를 당장 끌고 나갈 것을 명했고, 휘원은 겁먹은 쥐새끼 마냥 덜덜 떨면서 나를 붙잡아 일으키려고 하였다.

 

 

  “너 정말 왜 그래?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하지만 내 몸은 요지부동 일어날 줄을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집착과 용기가 나왔나 싶을 정도로 그때의 나는, 진태성 형님의 이름만 큰 소리로 외쳐대며 자리에서 버티고 있었다.

 

 

 “아아, 됐어. 그만하고 놔줘.”

 

 

 문득 김광규 조장이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터뜨리며 박휘원에게 말했다.

 

 당황한 박휘원은 채범기 형님과 김광규 조장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서서히 내 몸에 두른 팔의 힘을 뺐다.

 

 김광규 조장은 앞에 놓인 찻잔의 끝을 손가락으로 느릿느릿 문지르며 말했다.

 

 

  “정민, 이 녀석, 그렇게 안 봤는데 참으로 충성심이 넘치는군. 진태성 그 놈이 너를 참 많이 귀여워하고 아꼈었지? 너는 주인을 지키는 충성심 강한 개가 되었구나.”

 

 

 그는 내가 잘 볼 수 있게 문지르던 찻잔을 테이블 위로 들어올렸다.

 

 그가 잔을 기울이자 뜨거운 차가 유리테이블 위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끔 말이야. 충성심이 지나치게 차고 넘치는 개들 중에서는 가끔 자기 주인이 누군지 헷갈려 하는 애들이 있어. 지 입에 먹이를 넣어주는 진짜 주인은 따로 있는데, 누가 자기 좀 예쁘다고 쓰다듬어주면 그 사람이 주인인줄 착각하고 그 놈한테 충성을 다 하는 거야. 진짜 주인이 질투가 나서 견딜 수가 없도록.”

 

 

 그가 말하는 사이, 차는 전부 테이블 위로 흥건하게 쏟아졌고 김광규 조장은 비어있는 잔을 부셔버릴 기세로 우악스럽게 쥐었다.

 

 

  “그럼 주인은 화가 나잖아. 힘들게 돈 벌어서 기껏 먹여 살렸더니 다른 놈 품 안에 안겨있으니까. 정민, 네 생각엔 주인은 어떻게 할 거 같으냐? 주인은 슬프지만, 그 개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도록 그 놈에게 줘버릴까? 아니면 어차피 주인 떠난 개, 아무도 품에 안지 못하게 없애버릴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찻잔은 바닥에 내동댕이 쳐져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내가 그 주인이라면 내 개를 유혹한 그 놈을 없애버릴 거야. 나는 아직 내 개를 사랑하니까 그 개에게 해코지 할 수는 없거든. 그 놈만 없어지고 나면 내 개도 나를 다시 주인으로 받아들일 것이고 그러면 우리 둘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겠지. 유치하지만 나는 그래.”

 

 

 분명 내 두 손은 바닥을 단단히 짚고 있었으나, 그것의 기둥과 같은 내 두 팔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도 떳떳하게 들지 못한 채 잔뜩 겁에 질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는 김광규 조장님의 충실한 개입니다. 단지 진태성 혀, 형님께서 무사하신지……. 그것만 알고 싶습니다.”

 

 

  “…….”

 

 

  “어떡할까요, 조장님?”

 

 

 채범기 형님은 아직까지도 제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서서 조장의 눈치를 살폈다.

 

 김광규 조장은 여유로운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태성이는 무사하다. 원한다면 만나게도 해줄 수 있어.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야. 조직이 와해될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내게 대들어 위계질서를 어지럽혔으니 그만한 대가는 치러야지.”

 

 

 나는 김광규 조장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다면 언제쯤……. 언제쯤 진태성 형님을 뵐 수 있을까요?”

 

 

  “……정민아. 내 눈을 봐라.”

 

 

 김광규 조장이 오랜만에 늙은 늑대의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마치 내 속을 꿰뚫어보는 듯한 눈빛이라 마주하기가 힘들었지만 나는 침을 삼키며 그 시선을 겨우 받아내었다.

 

 

  “내가 너에게 내 준 숙제가 있었지? ‘석은하’라는 여자를 조사해 오는 것. 내 촉은 좀 정확한 편인데, 그 여자한테서 엄청나게 많은 돈 냄새가 나. 네가 만일 나를 만족시킬만한 정보를 가져온다면 그때 만나게 해주마.”

 

 

  나는 당장 고개를 넙죽 숙였다.

 

 

  “아……. 알겠습니다.”

 

 

  “꼴사납게 그만 엎어져 있고 나가봐.”

 

 

  산전수전 다 겪은 늙은 늑대의 기에 눌려, 맹수 앞의 작은 짐승이 된 나는 황급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렇게 겁을 잔뜩 집어먹은 채 자리를 뜨려는 찰나, 나를 조장이 다시 불러 세웠다.

 

 

  “아, 참. 정민아. 내가 잊고 말하지 않은 게 있다.”

 

 

  “……예?”

 

 

 김광규 조장이 두 눈을 치뜨고 새로운 찻잔으로 얼굴을 반쯤 가린 채 말했다.

 

 

  “나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개도 없애버린다. 내가 개 치우는 일은 없게 만들어라.”

 

 

  그의 왼쪽 손에는 피우다 만 시가가 조용히 타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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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날, 박휘원과 나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피곤한 몸을 이끌고 허름한 여관에 도착했다.

 

 우리가 카운터를 지나 익숙한 걸음으로 계단을 오르려고 하자 여관 주인 할머니가 화를 내며 방 안에서 뛰쳐나왔다.

 

 

  “총각들, 한 번만 더 여관에서 소란스럽게 싸움질 했다가는 방 뺄 줄 알아! 계단에 있는 난간까지 다 부수고! 장기투숙객이라고 이제 봐주는 거 없어. 알겠어?”

 

 

 그녀는 자다 나왔는지 입은 옷들이 다 형편없이 늘어져 있었다.

 

 박휘원은 그녀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대충 대꾸했다.

 

 

  “예, 예, 할머니. 좋은 밤 되시고요. 만수무강하십시오.”

 

 

 기분 참 더러웠다.

 

 계단을 올라가는 내내 그 생각을 했다.

 

 김광규 조장은 진태성 형님을 볼모로 나를 개로 만들어버렸다.

 

 기억 좀 지워달라고 찾아온 그깟 여자 따위가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내 표정을 읽은 박휘원이 걱정스러운 듯 내게 물었다.

 

 

  “아직도 그 생각이냐? 계속 그래서야 오늘 잠 잘 수 있겠어?”

 

 

 우리는 가장 꼭대기 층, 가장 구석진 방 문 열쇠를 따고 들어갔다.

 

 싸구려 여관답게 습하고 탁한 공기가 밀려와 기분을 더 잡치게 만들었다.

 

 나는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정장 옷을 벗지도 않고 방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벌레 시체가 잔뜩 담겨있는 전등 빛이 눈부셨다.

 

 내가 말했다.

 

 

  “김광규 조장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 나를 손바닥 위에서 가지고 놀 수 있다는 표정이었어.”

 

 

  “네 녀석도 참……. 그럼, 넌 진짜 네가 조장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였냐? 아서라. 머리로나 힘으로나 넌 절대 조장을 이길 수 없다.”

 

 

  “…….”

 

 

  반박할 수 없는 박휘원의 말에 화가 솟구쳐 오른 나는 턱 근육이 바깥으로 두드러질 만큼 어금니를 우두둑 씹었다.

 

 

  “그나저나 부럽다, 정민. 여자 뒷조사나 하는 임무를 맡고. 그 여자 제법 귀엽던데?”

 

 

 박휘원이 셔츠 단추를 하나 하나 풀어 내려가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귀엽다고? 어쩐 일이냐. 너는 화려하게 생긴 여자들만 좋아했잖아.”

 

 

  “아냐. 원래는 수수하고 귀여운 여자를 더 좋아해. 맨날 술집에서나 여자를 만나니까 주위에 화려한 여자들밖에 없어서 그렇게 보였던 거야.”

 

 

  “그랬어? 그것 참 의외군.”

 

 

  “하여튼 부럽다. 나도 그런 꼬맹이 뒷조사나 하고 다니면 좋겠네. 혹시 친해지면 나도 같이 만날 수 있게 해줘.”

 

 

  “싫다. 네가 지 곱상한 면상만 믿고 여자들 앞에서 설치는 꼴은 더 이상 봐주기가 힘들어.”

 

 

  “뭐? 이 자식…….”

 

 

 나는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휘원은 시답잖은 여자 얘기나 꺼내며 히죽히죽 웃고 있었으나 내 머릿속은 오로지 진태성 형님에 대한 걱정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당시엔 석은하고 뭐고 다 필요 없으니 형님의 목소리만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 원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려면 결국 석은하에게 관심을 가져야 했지만…….

 

 

  “자냐?”

 

 

 박휘원이 눈을 감고 누워있는 나에게 물었다.

 

 

  “안 자.”

 

 

  “내일 점심때 미동역 근처 볼링장 옆 골목에 좀 서 있어. 공무원인 내 친구 만나게 해줄게. 그 녀석이라면, 석은하, 그 여자에 대한 간단한 신상정보 정도는 줄 수 있을 거야.”

 

 

  “뭐?”

 

 

  “공짜 아니야. 대신 친해지면, 진짜 나랑 그 여자랑 사적으로 만날 수 있게 해줘.”

 

 

  “맙소사. 너 진짜 그 여자한테 빠졌냐?”

 

 

  “빠지긴! 그냥 첫인상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그래. 어떻게 그 무서운 김광규 조장 앞에서 하나도 주눅이 안 들고 미소까지 지을 수 있었나 물어보고 싶어. 게다가 김광규 조장이 다른 사람 앞에서 그렇게 예의 갖추는 건 처음 봤거든.”

 

 

  “……하기야 나도 그게 신기하긴 했지.”

 

 

  “나는 김광규 조장 처음 봤을 때 진짜 너무 무서워서 바지에 오줌까지 쌀 뻔 했었어. 진짜 그 사람 얼굴보고 ‘와, 역시 건달들은 생긴 거부터가 다르구나’라고 생각했었다니까? 너는?”

 

 

  “나도 무서웠지. 얼굴에 칼 자국까지 있었으니까.”

 

 

  “물어 볼 거야. 직접 얼굴보고 답변을 듣고 싶어. 도대체 뭐 때문에 그렇게 여유가 있었던 건지.”

 

 

  “…….”

 

 

 박휘원은 셔츠 단추를 마저 풀기 시작했다.

작가의 말
 

 저는 참고로 영화나 소설, 드라마를 볼 때 '긴장감'과 '일주일 이상은 가는 여운', '적당한 유머'. 이 세 가지를 가장 중요시 하지 않나 싶습니다. ㅎㅎㅎ

 제 작품에서도 이런 점이 잘 드러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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