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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와르: 1년 후, 모든 기억 삭제
작가 : 긴장감
작품등록일 : 20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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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겐 어울리지 않아
작성일 : 18-02-11     조회 : 311     추천 : 0     분량 : 7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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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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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로부터 이틀 후, 나는 얼떨결에 석은하와 카페에서 마주 앉아 있었다.

 

 뜨거운 아메리카노가 담긴 하얀색 머그잔을 앞에 두고, 내 손가락들은 카페 배경음악에 맞춰 나무 테이블을 빠르게 두드려댔다.

 

 시선은 도대체 어디에 둬야 할 지 모르겠기에 그저 검은 아메리카노 위에 떠 있는 갈색 거품만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녀 앞에서 티를 내고 싶지는 않았지만 당장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딸기와 딸기잼이 가득 담긴 우유 한 잔을 금방 비워낸 석은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제 뒷조사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시죠?”

 

 

 그녀는 첫만남 때와 같이 연신 웃음기를 머금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그녀는 나를 두려워하거나 부담스러워하지도 않았다.

 

 벌써 내 귀에선 주변 다른 여자들이 내 존재에 대해서 수근수근거리는 소리를 여러 번 들렸음에도 말이다.

 

 

  “네, 네. 석은하씨 거주지에 대해서는 저희 쪽 정보망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젠장, 여기 카페 분위기가 나에게 어울리지 않게 너무 여성스러웠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은 죄다 동화 속 공주님이나 입을 법한 귀여운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카페 벽지는 온통 분홍색과 하트 무늬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일본의 ‘메이드 카페’를 연상시키는 분위기의 이 카페에서는 남자가 오로지 나 하나뿐이었다.

 

 석은하가 지나가는 아르바이트생 한 명을 불렀다.

 

 

  “저기요!”

 

 

 검은색 머리를 토끼처럼 양 갈래로 묶은 아르바이트생이 뒤를 돌아 우리 테이블로 곧장 다가왔다.

 

 

  “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공주님?”

 

 

 순간 내 입에서 크게 한탄의 한숨 소리가 터졌고, 석은하는 즐거워하며 들고 있던 메뉴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얼음 공주님의 몽환적인 딸기 빙수 하나 주세요.”

 

 

 내 머릿속은 번뇌로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녀는 웃는 얼굴로 나를 고문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 같은 놈에게 ‘얼음 공주님의 몽환적인 딸기 빙수’라니…….

 

 만일 어쩌다 박휘원이 여기 있는 나를 발견한다면 최소 한 달 정도는 놀림감이 될 것이었다.

 

 

  “계속 말씀해보세요.”

 

 

 석은하가 고개 숙인 내 눈을 쳐다보기 위해서 허리를 낮추며 말했다.

 

 나는 두 손을 들어 얼굴을 반쯤 가리고 대화를 시작했다.

 

 

  “사실 저희 쪽에서 가장 우려를 하는 부분은 석은하씨가 의뢰를 번복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1년 뒤의 일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석은하씨께서는 저희에게 본인이 도망가더라도 꼭 붙잡아서 강제로 기억을 삭제해달라고 부탁하셨죠. 그러기 위해서는 저희도 석은하씨의 행동반경에 대해서 미리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하, 그래서 정민씨가 저희 집 앞에서 알짱대다 저랑 마주친 것이로군요.”

 

 

  “네. 그렇게 놀라게 해드릴 생각은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

 

 

 내가 고개 숙여 사과하자 석은하는 팔짱을 낀 채 그런 나를 묵묵히 지켜보았다.

 

 우리 둘 사이에는 잠시 동안의 정적이 흘렀다.

 

 그러자 옆 테이블에 앉은 두 여자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박. 남자가 저 여자 스토킹 했나 봐. 그래도 여자는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은데?”

 

 

  “남자 얼굴 때문이지 않을까? 좀 무섭게 생기긴 했어도 키도 크고 정장도 멋있고……. 깡패 역할 맡은 영화배우 같다, 야.”

 

 

  “헐. 나도 방금 그 생각했는데! 진짜 잘생긴 깡패 같아. 정장핏 보니까 운동도 많이 한 몸이네. 저런 남자 품에 안겨보면 한이 없겠다.”

 

 

 나는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듯한 기분이 들어 더 이상 이 자리에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잠시 담배를 피우고 오겠다고 석은하에게 양해를 구한 뒤 건물 밖으로 나갔다.

 

 

  “이제 숨 좀 트이겠군.”

 

 

 나는 건물 입간판 앞에 서서 박휘원이 놀리던 그 얇은 담배 하나를 꺼내 들었다.

 

 손가락 사이로 담배를 끼고 거리의 사람들을 여유롭게 구경하니 비로소 불안했던 마음이 안정되는 듯 했다.

 

 이 거리엔 유독 연인들이 많았다. 남녀 쌍쌍이 팔짱을 끼고 뭐가 그리 즐거운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손장난 치는 모습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그런 모습들이 다른 세계의 모습인양 멀뚱히 지켜보았다.

 

 나도 한때는 저렇게 눈만 마주쳐도 심장을 뛰게 만드는 여자가 있었다.

 

 대략 5년정도의 긴 시간 동안 그 여자 하나보고 살았었는데, 내가 하는 일이 항상 위험이 따르고 생활습관이 불규칙하다 보니, 실제로 만난 횟수는 적고 연락하고 지낸 시간 또한 그리 길지 못했다.

 

 그래도 그땐 서로를 참 많이 의지하며 풋풋한 사랑을 가꿔왔었다.

 

 

  “오빠랑 있으면 세상 무서울 게 없어. 나 괴롭히는 놈들 있으면 오빠가 다 때려줄 거잖아.”

 

 

 함박눈이 내리던 겨울 밤, 그녀가 내 허리를 뒤에서 와락 껴안으며 이런 말을 했었다.

 

 나는 그때의 벅찬 기분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서로의 사랑이 완벽하다고 믿었고, 누가 뭐라 해도 우리의 사랑은 영원할 줄 알았다.

 

 

  “나는 돈, 명예 이런 거 다 필요 없어. 누가 나한테 으리으리한 집과 멋진 차 그리고 대통령과 같은 높은 지위를 준다고 해도 만일 네가 불행하다면 난 그런 거 다 포기할 수 있어. 네가 행복한 게 나는 더 좋아.”

 

 

 지금 생각하면 참 낯뜨거운 대사였지만 어쩐지 그녀 앞에서는 그런 말들이 너무 쉽게 나왔다.

 

 그리고 진심이었다. 매일 매일 어떻게 하면 내 진심을 그녀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그것을 고민했다.

 

 이불을 덮고 잠자리에 들면 항상 내가 그녀에게 덜 준 것이 있는지, 내일은 뭔가 더 줄 수 있는 것은 없는지 그것만을 고민했다. 그녀는 나에게 있어서 전부였으니까.

 

 

  “담배, 다 피웠어요?”

 

 

 이런저런 회상에 빠져 멍하니 길거리를 바라보고 있을 즈음, 어느새 석은하가 카페에서 나와 내 옆에 서 있었다.

 

 

  “아, 미안해요. 이제 카페 다시 들어가죠.”

 

 

 당황한 내가 뒤돌아서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그녀가 내 팔을 붙잡았다.

 

 

  “괜찮아요. 짐 다 챙겨서 내려왔어요. 아무래도 정민씨 카페에서 표정이 너무 안 좋더라고요. 이제 그만 놀려야 할 거 같았어요.”

 

 

  그녀는 내 앞에서 짓궂은 미소를 보였다.

 

 

  “하지만 빙수는 어떻게…….”

 

 

  “그거! 이렇게 포장해달라고 하니까 드라이아이스 왕창 넣어서 주시더라고요. 30분 정도는 들고 다녀도 괜찮을 거 같아요.”

 

 

 석은하의 손에는 드라이아이스가 가득 담긴 두꺼운 비닐 봉투가 들려있었다.

 

 그것을 들고 내 앞에서 자랑스럽게 흔들어 대는 그녀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살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어쨌든 오늘은 여러모로 실례가 많았습니다. 빙수도 원래 제가 사드렸어야 했는데 그냥 나와버렸네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제가 오자고 했으니 당연히 제가 샀어야죠.”

 

 

  “그럼 댁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그럴래요?”

 

 

 그녀는 문득 두 볼을 붉혔다.

 

 나는 이 신호를 놓치지 않았다.

 

 생각보다 그녀에게서 필요한 정보를 쉽게 빼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다.

 

 

  ‘조금 비열한 방법이지만 남자친구로서 접근해서 정보를 빼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나는 진태성 형님의 얼굴을 떠올리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함께 걷는 내내 불편하긴 하겠지만, 그녀가 내 옆에서 조금은 긴장감을 느낄 수 있도록 굳이 말을 먼저 건네지는 않았다.

 

 그러면서도 종종 그녀의 표정을 살피는 척 힐끗힐끗 바라봐 호감의 표시를 드러내는 일도 잊지 않았다.

 

 

 카페에서 그녀의 집까지는 가까웠다.

 

 다만 언덕 위에 있어 차를 가져오지 않는 한 올라가기가 힘들었다.

 

 오늘도 수수한 차림으로 나타난 석은하는 낮은 구두를 신고 연두색 원피스를 입은 채 그 언덕을 익숙하게 올라갔다.

 

 그래도 그녀의 걷는 속도는 좀 느린 편이었기에 나도 함께 천천히 걸으며 그 언덕을 올랐다.

 

 그녀가 사는 동네는 주택가였다.

 

 그러나 한 눈에 봐도 돈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주택가였다.

 

 붉은 벽돌집이 주를 이뤘고, 여기저기서 큰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으며, 색이 바랜 옷을 입은 어린 아이들이 싸구려 플라스틱 장난감을 들고 뛰놀았다.

 

 그들이 어찌나 흥분해서 뛰어다니는지 중간에 하마터면 한 녀석과 부딪힐 뻔 하였다.

 

 석은하가 사는 집은 좁은 골목으로 깊숙이 들어가다 보면 나타나는, 담장 밖으로 감나무가 늘어진 주택이었다.

 

 그곳은 연립주택으로, 여러 가정이 사는 것처럼 보였으며 마당에 있는 장독 뚜껑을 누군가가 열어놨는지 근처에서 매운 고추장 냄새가 진동하였다.

 

 마당 앞에는 맨홀이 있었는데 언제 버렸는지 시기를 알 수 없는 쓰레기들이 사이사이 껴 있었고 근처에 가로등이 몇 개 없는 것으로 보아 밤에 여자가 혼자 다니기엔 다소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여기가 제 집이에요. 맨 위 옥탑방에서 살아요. 참고로 옥상에는 주인 아저씨가 큰 개를 두 마리나 키우니까 조심해야 해요. 자주 보는 사람 아니면 엄청 짖거든요. 제가 그 개들을 돌보는 조건으로 방세를 조금 깎아주셨어요.”

 

 

 나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이제야 갑자기 드는 생각이지만 나같이 낯선 사람을, 그것도 불법대부업체 직원인 나에게 이렇게 쉽게 거주지를 알려줘도 되나 싶었다.

 

 누가 보면 비웃을만한 오지랖인가 싶었어도 나는 그녀에게 충고 하나를 던졌다.

 

 

  “앞으로는 가족이나 남자친구가 아닌 이상 남자들에게 이렇게 쉽게 자기 거주지를 말하지 마세요. 특히나 이 근처는 골목이 많은데다 가로등도 몇 개 없어서 밤에 많이 위험할 거 같습니다. 저야 뭐, 일 때문에 어차피 주소를 갖고 있지만.”

 

 

 나를 올려다보는 석은하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제가 정민씨는 믿어도 될까요?”

 

 

  “……너무 많이는 믿지 마세요.”

 

 

 나는 뒷머리를 손톱으로 긁적였다.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아, 그리고 은하씨. 휴대폰 좀 잠깐 주세요.”

 

 

  “네? 아, 여기요.”

 

 

  “……이건 제 개인번호 입니다. 아마 조만간 다시 뵐 일이 있을 거예요.”

 

 

 그녀의 휴대폰에 내 번호를 찍어주자 그녀의 볼이 다시금 붉어졌다.

 

 그녀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뜬금없이 고맙습니다, 라는 말을 남겼다.

 

 

  “그럼 전 이만…….”

 

 

 나는 허리를 숙여 정중하게 인사한 뒤, 길을 나섰다.

 

 언덕을 내려오는 길에도 담배 하나를 물고 근처를 살폈는데 서울에도 이런 오래된 주택가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동네는 허름했다.

 

 아마도 김광규 조장의 촉이 빗나간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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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은 밤이 되자 박휘원이 피곤에 찌든 얼굴로 숨을 헐떡이며 여관방에 들어왔다.

 

 나는 보던 텔레비전을 끄고 그에게 얼굴을 돌렸다.

 

 

  “뛰어왔어?”

 

 

  “응? 아, 아니. 자, 봐봐. 오늘도 한바탕 했다.”

 

 

 박휘원이 정장 소매를 내려 팔뚝에 생긴 시퍼런 멍을 보여주었다.

 

 아마 누군가가 각목 같은 무기로 내려치는 것을 팔로 막은 모양이었다.

 

 혹시 뼈에 이상은 없는 거냐고 묻자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겨우 이 정도로 무슨 뼈가 다쳐? 오늘 진짜 힘들었어. 룸살롱 열 군데 돌았다.”

 

 

  “채범기 형님이랑 같이?”

 

 

  “아니, 그 인간은 조장하고 같이 사무실에 남았어. 나하고 애들만 모아서 보호비 명목으로 돈 엄청 뜯어냈지. 그런데 마지막에 어떤 웨이터 놈이 나무 의자를 들고 휘두르면서 미친 듯이 반항하는 거야. 그 놈 막다가 이렇게 됐어. 그리고 그 놈 앞에서 그 룸살롱 지배인 얼굴 두들겨 패고 왔지. 원래 때릴 생각 없었는데 네 놈 때문에 지배인이 맞는 거라면서.”

 

 

  “그래서, 오늘 할당량은 다 채웠어?”

 

 

  “응. 오늘은 다 채웠어. 그런데 문제는 앞으로야. 이제 돈 뜯어낼 명분이 거의 없어. 양주 같은 걸 매입해서 우리 구역 술집에 강제로 팔아 넘겨야 하나 의논하고 있다.”

 

 

  “골치 아프네.”

 

 

  “너는? 오늘 석은하 집에 찾아간다고 했지?”

 

 

 박휘원의 눈빛이 돌연 초롱초롱해졌다.

 

 그는 내 앞에서 똑바로 앉아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해달라고 재촉했다.

 

 

  “원래 그냥 위치만 확인하고 올 생각이었는데 우연히 집 앞에서 만났어. 나는 민망해서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려고 했는데 먼저 팔을 붙잡더라고.”

 

 

  “오, 그래서?”

 

 

  “진짜 뜬금없이 자기가 자주 가는 카페가 있는데 함께 가자고 하더라. 나도 이 참에 친해지면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많을까 해서 따라갔지. 그런데 그 여자 나를 엿 먹이려고 그 카페에 데려간 거더라고.”

 

 

  “에? 왜?”

 

 

  “그 카페, 완전 공주 카페였어. 이상한 드레스 입은 여자들이 커피 가져다 주고 거기 있는 메뉴들 이름도 다 오그라들더라. 특히 그 여자 일부러 내 앞에서 이상한 메뉴 시켰어. 뭐라더라? 얼음 공주의 몽환적인 딸기 빙수?”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박휘원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야! 그 여자 약간 또라이 아냐? 왜 너를 그런 곳에 데려가? 와, 사람 대여섯 명은 그냥 패고 다니게 생긴 녀석을 그런 곳으로 데려갔다고?”

 

 

 나는 얼굴을 붉혔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수치심은 잊을 수가 없었다.

 

 

  “다시는 안 갈 거야. 그런 곳.”

 

 

  “하하하. 들어보니 오늘 나보다는 네가 더 고생한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캔 맥주를 좀 사왔지!”

 

 

 박휘원이 묵직한 검은 비닐 봉지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는 곧 맥주 두 캔과 안주거리로 사 온 마른 오징어 한 마리를 꺼냈다.

 

 

  “자, 건배하자.”

 

 

 그가 직접 딴 맥주를 내게도 건넸다.

 

 우리는 캔을 부딪힌 후 시원하게 들이켰다.

 

 오늘따라 달게 느껴지는 맥주가 탄산과

 함께 목을 시원하게 적셨다.

 

 나는 묵묵히 그의 표정을 살폈다.

 

 분명 웃고는 있었지만 그는 오늘 매우 힘든 하루를 보냈던 게 분명했다.

 

 그는 유독 괴롭고 힘들었던 날만 이렇게 여관방으로 술을 사오곤 했었다.

 

 하지만 그런 내색을 전혀 하지 않는 그는 그저 웃으며 내게 오징어 다리 하나를 또 내밀었다.

 

 

  “우리는 앞으로 행복할 거다, 이 자식아.”

 

 

  “건달이 행복은 무슨……. 바랄 걸 바라야지.”

 

 

  “왜? 우리도 사람인데 행복하면 안돼?”

 

 

  “행복 같은 걸 바랄 거면 이런 밑바닥까지 기어 내려오면 안 되지.”

 

 

 나는 위로를 바라는 듯한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닥에 벌러덩 누웠다.

 

 언제나 생각하지만 박휘원, 이 놈은 건달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놈이었다.

 

 

  “왜? 왜 건달은 행복하면 안 돼?”

 

 

 그가 재차 물었다.

 

 그러나 내가 대답이 없자 신경질이 났는지 괜히 옆에 있던 내 양말 뭉치를 벽에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건달도 행복할 수 있어! 우리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젠장!”

 

 

  “…….”

 

 

 술도 거의 안 마신 놈이 벌써 취한 듯 보였다.

 

 나는 몸을 일으켜 맥주 한 모금을 쭉 들이킨 후 무거운 입술을 열었다.

 

 

  “진짜 행복하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우리 조직을 떠나. 너나 나나 이 조직 안에서 첫 살인을 치른 이후부터는 절대 행복할 수 없어.”

 

 

  “……친구라는 놈이 해줄 말이 겨우 그거야?”

 

 

  “친구니까 하는 소리야.”

 

 

  내가 남은 맥주를 끝까지 마시는 동안 박휘원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꽁냥이 18-04-09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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