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서울, 대한민국-
뙤약볕에 얼굴이 까맣게 타고 땀이 속옷까지 적시던 한 여름이었다.
9살 소녀 서로는 귀엽게 땋아 내린 양 갈래 머리를 폴랑이며 아빠를 향해 달려갔다. 서로를 번쩍 들어 올린 아빠는 트럭 조수석에 앉은 엄마의 팔에 안겨 주고서야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서로는 엄마와 오빠 틈에 살을 비비고 앉아 자리를 잡았다. 1.5톤이나 되는 아빠의 트럭엔 그 동안 가족 모두가 애지중지 키워 온 제법 몸집이 큰 누렁이도 있었다.
서로는 신이 났다.
가족들이 다 같이 외숙모네 사과 농장으로 놀러 가면 새해가 아니어도 용돈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서로는 용돈을 받으면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싶었다.
날이 참 더웠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푸른 잎사귀들이 햇빛에 반짝이며 흔들거렸다. 차는 어느덧 지그재그 흙길에 들어섰고 저 멀리 과수원의 팻말이 보였다.
-끼익
차가 목적지에 정차하자마자 서로는 문을 열고 폴짝 뛰어내렸다. 뜨겁고 습한 바람이 콧속으로 훅 들어왔다. 주변을 둘러본 시골의 전경은 여름에 그 경치가 절정에 달한다. 매미소리, 개구리 소리, 시냇물 소리와 함께 어우러진 사과 농장이 정겹게 느껴졌다.
어른들은 고스톱을 치고 서로는 여느 아이들처럼 사과 농장에 모여든 친척 아이들과 함께 놀았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술래잡기를 하고 남자 아이들이 말뚝박기를 안 시켜준다고 투덜대기도 하며, 서로와 아이들은 더위도 잊은 채 그렇게 놀이에 빠져들었다.
아이들이 한창 놀이에 집중해 배고픈 줄도 잊은 오후 무렵, 어느 순간 서로와 그 아이들의 코를 찌르는 아주 지독한 냄새가 연기와 함께 피어올랐다. 코가 찡그려지고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그 정체 모를 냄새가 무엇인지 찾으러 나섰다.
서로는 그 냄새가 너무 지독해 근처에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혼자 남기는 싫어 할 수 없이 주변 친구들처럼 두 손가락으로 코를 꽉 잡았다. 잔뜩 구겨진 얼굴을 한 채 다른 한 손으론 오빠의 옷자락을 잡고 등 뒤를 졸졸 따라갔다. 아이들은 피어오르는 연기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폐타이어가 잔뜩 널브러져 있는 공터 같은 곳을 지날 때였다. 한 쪽 구석엔 썩었거나 알이 튼실하지 않은 사과들이 제멋대로 굴러다니고 기분 나쁘게 꿈틀거리는 벌레들이 눈에 띄었다.
한 남자 아이가 장난을 치고 싶었는지 유난히 날 파리 떼가 우글거리던 폐타이어 하나를 뒤집었다. 그 안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가축의 썩은 사체가 납작하게 뻗어 있었다.
“으악!”
“엄마야!”
놀란 몇몇 아이들이 소리를 질렀고 날 파리 떼의 소리는 더욱 거슬리게 주변을 웅웅거리며 맴돌았다. 그때 가까운 어딘가로 부터 어른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다시 발길을 돌렸다.
그곳은 요란한 사육제가 벌어진 것 같았다.
둥그렇게 모여 선 어른들은 왁자하게 떠들고 있었고 그들 한 가운데에선 아이들을 여기까지 오게 한 지독히도 역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물녘이 다 되어가는 여름 하늘의 붉은 노을이 그을음으로 덮여갔다.
서로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어른들의 다리 틈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 순간 서로의 눈 속으로 상상조차 못했던 처참한 장면이 들어왔다.
서로가 목격한 것은 바로 누렁이었던 것이다.
코 속을 비집고 들어온 역한 연기는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어린 소녀에게 한 번 더 각인 시켜주고 있었다.
서로가 밥을 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가끔은 하소연도 하곤 했던 누렁이는 온갖 힘을 다 해 두 눈을 찡그려 감은 채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서로는 그 충격적인 장면에 할 말을 잃었지만 급기야 눈물을 터트린 건 또 다른 개의 목에 감긴 밧줄을 온 힘을 다해 잡아당기는 아빠의 모습을 본 순간이었다.
오빠가 서로의 얼굴을 감싸주었다. 그리고 어린 동생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애들은 이런 거 보는 거 아니야.”
오빠는 서로보다 고작 한 살이 많을 뿐이다.
서로는 잡고 있던 오빠의 옷자락을 뿌리치고 무작정 도망치기 시작했다. 오빠는 그 뒤를 따라 달렸다.
어느 덧 밤이 왔다.
서로는 창고 안의 사과가 담긴 상자들 사이에 몸을 숨기고 어두운 밤이 찾아오도록 그저 이 모든 것이 꿈이기를 간절히 바랬다.
어리고 작은 소녀 옆엔 다행히도 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살포시 안아주는 작은 소년이 함께 있었다.
“애들은 그런 거 보는 거 아니라니까......”
서로의 오빠도 겁에 질렸을 것이 분명한데 어린 동생 앞에서는 그것을 감추고 있었다.
“서로야! 서준아!”
어른들의 소리가 창고 안까지 들려 왔다.
그 목소리들 중에는 엄마의 애타는 목소리와 아빠의 답답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도 있었다.
-쾅!
창고 문이 열렸다.
“서로야! 여기 있니?”
“얘네 들이 어디 있는 거야? 대체!”
“서준아! 어디 있니? 대답 좀 해.”
아이들을 찾는 다급한 어른들의 소리가 창고 가득 울려 퍼졌다.
-파다닥!
둔탁한 소음이 나자 모두들 큰 들쥐가 지나가는 줄로만 알았다.
“서로야!”
서로는 쏜살같이 창고 밖으로 뛰쳐나가 어둡고 황량한 시골의 돌담길을 빠르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서준이 급하게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일어섰지만 서로가 달려가며 밀쳐 떨어뜨린 사과 상자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그대로 주저앉은 서준은 그 아이의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서준이 무릎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자 엄마가 서준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괜찮니?”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니 괜스레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서로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