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릉~ 쾅쾅~~ 콰르르르릉~~~~
잠을 청하고 있던 어느 노부부가 엄청난 폭발 소리에 놀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니, 대체 이게 무슨 소리래요??”
머리가 헝클어진 채 자리에서 일어난 할머니가 물었다.
노부부가 사는 곳은 폭발이 일어난 현장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숲 속, 인가로 허가 받지 않은 곳에서 오두막 하나 지어 둘만의 오붓한 노후를 꾸려보고자 지내던 곳이었다.
할머니는 일찌감치 알츠하이머 병을 앓았다. 노인은 그런 아내를 위해 남은 날들 만이라도 남의 눈치 볼 필요 없이 살고 싶었던 것뿐이다.
그런데 방금 어디선가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정겹게 지내던 노부부는, 정확히 말하자면 할아버지는 감지할 수 있었다.
더 이상은 이곳이 평화로운 그들의 터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뿐만 아니라 어쩌면 골칫덩이를 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 까지도.
“아이고, 머리야......”
노인의 주름 가득한 얼굴에 선한 눈이 찡그려졌다.
이곳에 온 후로도 할머니의 병은 갈수록 심해졌다.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할아버지 앞에 천사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과학자로 위장한 천사가 나타나 아내를 위한 묘약을 선사 했던 지난여름 밤의 특별한 기억이 떠올랐다.
어린아이들처럼 넓다란 호수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짙은 안개 속에 서 있던 그는 숲에서 걸어 나왔는지 물밑에서 올라왔는지 혹은 날갯짓하며 하늘에서 내려왔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모습은 마치...... 천사 같았다. 아니, 천사였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하얗고 커다란 날개를 가진 이라면 천사밖에 더 있을까, 분명 그런 날개를 가진 이가 그곳에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과학자라고 했다. 그의 등에서 뻗어 나온 날개가 보인다고 말하면 혹시라도 약을 주지 않고 하늘로 올라가 버릴까봐 노인은 날개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건 꿈이 아니야, 꿈이 아니었어.”
혼잣말을 하던 할아버지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잠시잠깐 할아버지는 자신이 환상에 빠졌던 것은 아닐까 혹은 아내처럼 알츠하이머에 걸린 것을 아닐까 스스로를 의심해보았다. 하지만 이내 그의 눈은 선반 위에 놓인 약 꾸러미에 도달했다. 날개를 가진 과학자가 준 약, 그것을 먹고 할머니의 증상은 하루가 다르게 확연히 호전된 것이 사실이다. 불과 몇 시간 전에도 이 약을 복용했는데 부정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
자신을 봤다는 말을 하지 말라던 그의 말이 불현 듯 떠올랐다. 그런 말을 해봐야 누가 믿겠냐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는 자신보다 할아버지의 안위를 걱정하여 한 말이라고 했다. ‘그 말을 믿을 이가 있다는 뜻이었구나!’ 뒤늦은 깨달음이 슬쩍 뇌리를 스쳤다.
할아버지의 느낌이 정확하다면 앞으로 정부에 속한 수 십 명의 사람들이 달려와 숲의 출입구를 차단할 것이다. 하늘에서는 첨단 기계들이 날아다니며 빛을 쏘아 댈 테고 그러다 오두막을 발견한다면 그 즉시 몇몇 사람들이 달려와 집 주변을 둘러치고 그들을 붙들어다 심문을 해 댈게 분명하다. 이곳 주변이 단순히 자연과 더불어 지내기에는 다소 불편한 곳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지만 생각할수록 귀찮은 일이다.
아직도 묘약은 필요한 만큼 있으니 일단 이것만 챙겨서 할머니를 들쳐 없고 숲 속을 빠져 나간다면…… 하는 생각과 동시에 그 전에 붙잡힌다면…… 노인은 자리에서 다급히 일어섰다. 더 이상 주저해선 안 될 것 같았다.
“여보 갑시다.”
그의 목소리는 어딘가 비장했다.
“어딜 가요 어딜 가? 난 싫어요. 가기 싫어.”
아기처럼 떼를 쓰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니 조금은 후회가 들었다. 이곳을 빨리 떠나라는 그 과학자의 마지막 말을 들었어야 하는 건데 말이다.
“여보 마누라. 도망가야 해. 우리”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양 볼을 비비며 아기 달래듯이 타일렀다. 그는 남은 약봉지를 할머니의 가슴 사이로 쑤셔 넣고는 그대로 보쌈을 한 채 험준한 숲 속으로 달려 나갔다.
***
어두움 속에서도 하얀 숲 속, 얼어붙은 넓은 호수와 오래되어 보이지만 견고하게 지어진 커다란 회색 건물을 둘러싼 폴리스 라인 안에서 손전등을 든 형사들, 과학수사 대원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다. 외투 없이 하얀 가운만을 입은 여러 명의 사람들은 한쪽 구석에 모여 웅성대고 있었다.
검은 세단 한 대가 숲 속을 비집고 미끄러져 나왔다.
현장에 도착한 디엘은 서둘러 차에서 내려 동서남북으로 주변의 정황을 한 눈에 담았다.
마른 가지 위에 낮 동안 내렸던 흰 눈을 담고 있는 나무들은 추위에 떨어선지 다 같이 손이라도 잡고 있듯 빼곡히 숲 속을 채우고 있었다. 얼어붙은 호수의 한쪽 구석엔 누군가 깨서 던진 얼음 조각들이 널려있고 그 옆에서 찰랑이는 물소리를 내는 동그란 물웅덩이를 더 크게 만들기 위해 손에 입김을 불어가며 도끼질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얼굴을 그어대는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왔다.
숲도 나무도 호수도 사람들도 모두 추위에 떨 때 오로지 커다란 회색 건물만이 추위를 모르는 듯 흔들림 없이 굳건히 땅 위에서 버티고 있었다.
디엘은 사건 파일을 들여다보는 한 명의 형사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밀러 형사, 사상자는?”
“엇, 근처에 계셨어요? 어떻게 이리 빨리 오셨어요?”
“사상자는?”
디엘은 그의 질문에 대답할 필요가 없다는 듯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첫 번째 질문을 다시 던졌다. 형사는 살짝 벌어진 입을 급히 다물고 진지한 자세로 사건을 담은 전자 파일을 건네며 답했다.
“아! 네. 부상자는 따로 없고 사망자만 둘입니다. 시신이 많이 망가져서 신원을 밝히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폭발물은?”
“지금으로선 그게 사실 이 사건의 가장 큰 의문입니다. 폭발물이 없습니다. 다만 현장을 둘러본 바에 의하면 시신이 있던 자리에서 정확히 폭발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 됩니다. 시신의 상태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직격탄으로 맞은 상이거든요. 많이 망가졌어요. 이 정도의 폭발이 일어나려면 흔적이 발견 되어야 맞는 건데 아직도 그랬을 만한 뭔가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위치는?”
“일단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디엘과 밀러 형사는 호숫가를 뒤로 한 채 우뚝 서 있는 거대한 회색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걸어가며 계속 말을 이었다.
“지하에 있는 클리븐 소장의 개인 연구실 아래쪽인데 이곳은 연구소 직원들 중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곳이라는 게 클리븐 소장의 증언입니다. 소장 자신도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소장실에서 직접 연결되는 문이 벽으로 덮어져 있거든요. 언제쯤 벽을 발랐는지는 비파괴검사로 확인을 해야 알 수 있을 겁니다.”
밀러 형사는 대꾸 없이 앞만 보며 걸어가는 디엘이 자신의 보고를 듣고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살짝 반응을 살피고자 그녀의 얼굴 앞을 기웃거렸다.
“듣고 있으니 계속하세요.”
“아, 네. 지금으로서 가장 눈 여겨 볼만한 점은 누군가 드나들 수 있는 출입구가 호수, 그러니까 물속으로 연결이 된 비밀 통로가 있다는 거죠. 뭔가를 타고 드나들었을 텐데 그런 건 없어요. 수중 다이빙도 한 가지 방법이긴 하지만, 아무튼 이미 호수 밑에서도 작업을 하기 위해 도끼로 얼음을 깨고 있습니다.”
디엘이 우뚝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도끼?”
“현재로써는 장비가 도끼뿐이라 시간이 걸리고 있지만 조만간 지원 팀이 올 때 제대로 된걸 가지고 올 겁니다.”
그제야 다시 걸음을 옮기는 디엘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전에라도 뭔가 발견이 된다면 금방 보고가 들어오겠죠. 아직은 폭발의 원인이 불투명하다는 것 빼고는 특이사항이 없습니다.”
연구소 안으로 걸어 들어온 디엘과 밀러 형사가 길고 어두운 복도를 지나 끝에 다다르자 비밀 통로처럼 지하로 내려가는 은밀한 계단이 보였다. 그 계단을 따라 한 층 걸어 내려가자 폭발물에 강타당해 시꺼멓게 그을린 채 작동을 안 하고 고집을 부리며 서 있는 엘리베이터가 하나 있었다.
“이 엘리베이터는 클리븐 소장의 개인 연구실로 연결되는 전용 엘리베이터입니다. 소장만이 움직일 수 있었죠.”
밀러 형사가 엘리베이터 문을 양 손으로 열자 쉽게 열렸다. 그는 허리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보며 앞서 내려간 요원들의 거동을 살피며 외쳤다.
“이봐, 다들 거기 있나?”
“어이! 얼른 내려와 보라고! 아직 건드리질 못하고 있잖아. 거기 정비 팀은 온 거야?”
“헬기가 출발 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아무래도 날씨 때문에 좀 지연되는 거 같아. 그래도 지금쯤이면 오고 있는 중일 테니 이따 도착하면 같이 올라오자고, 일단은 우리도 로프타고 내려갈 테니.”
그의 소리가 메아리치며 지하에까지 퍼졌다.
“일단 내려가도록 하죠.”
디엘이 먼저 로프를 잡으며 말했다.
작업 중이던 요원들은 막 도착한 디엘과 밀러 형사를 반기며 다가왔다. 그 중 한 명의 요원이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디엘에게 말을 걸었다.
“폭발음은 엄청나게 컸다는데 지하에서만 폭발이 이루어 졌다는 게 참 신기하죠. 지금 지나 오신 현관과 복도는 깨끗하잖아요.”
“그것 말고 또 다른 특이 사항은 없나요?”
디엘이 물었다.
“시신이 하나는 너무 망가졌고 그나마 나머지 하나는 알아볼만 한데 그래도......”
디엘은 그의 진술을 듣는 동시에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귀에 꽂힐 만한 더 이상의 특이점은 들리지 않았는지 그녀의 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