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들어와, 열려 있어.”
서로가 이석의 연구실로 들어섰다.
이곳은 다른 교수들의 개인 연구실들에 비해 단조롭다 못해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연구실. 고개를 돌려보니 그래도 한 쪽 벽면은 책으로 꽉 차있다. 면적도 꽤 넓다.
“저 찾으셨어요?”
의자를 뒤로 젖혀 비스듬히 누운 채 손은 머리 뒤를 받치고 발을 책상 위에 올려놓은 이석의 모습이 보였다. 그가 대답대신 서로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이번 학기 장학금 수여자는 또 해 서로 학생인가?”
“네.”
서로의 짤막한 대답을 들은 이석은 굽혔던 허리를 일으켜 자리에서 일어나 바퀴 달린 의자를 굴렸다. 빙글 돌며 미끄러져 온 의자가 서로의 앞에 멈춰 섰다. 이석은 팔짱을 낀 채 고갯짓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무슨 뜻이에요?”
“머리가 나쁜가?”
“네?”
이석의 말이 너무도 황당했다.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앉아, 꼭 말을 해야 알아들어?”
‘아니, 뭐 이런 또라이가......’
멀뚱히 서 있는 서로의 앞에 성큼 코앞까지 다가온 이석은 두 손으로 가벼이 서로의 양 어깨를 눌러 의자에 앉혔다. 그러한 그의 행동이 그녀를 또 한 번 당혹시켰지만 서로는 뻣뻣하게 고개를 든 채 그를 응대했다.
“왜 부르셨어요?”
이석은 서로가 앉은 의자를 살짝 밀어 책상 앞으로 굴렸고 책장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너한테 부탁할게 있어서.”
이석은 두터운 원서들로 가득한 책장에서 마구잡이로 책들을 꺼내 서로 앞의 책상위로 쌓아 올렸다.
“이번 내 연구에 네가 참여를 좀 해야겠다.”
“이게 부탁인가요?”
서로의 목소리는 건조했고 표정은 떨떠름해 보였다.
“아니.”
도대체가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매번 예상을 깬다.
“난 그래도 우리가 초면이라 나름 정중하게 표현한 거고 그러니까 부탁이라기보다는 네가 비록 학생이긴 해도 공동 연구자가 될 사람 으로써 존중을 해 준거지. 그러니 사실은 부탁이 아니고 어쨌거나 네가 해야 하는 거야.”
“제가, 뭘요?”
“이번 테슬라 대회에 공동으로 나간다, 우리.”
“공동? 왜요?”
“올림픽 선수만 애국하란 법 있어?”
양손을 주머니에 꽂고 선 이석은 고개를 아래로 젖힌 채 마치 눈에서 레이저라도 발산하듯 서로를 쏘아보고 있었다.
서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늘 그러는 것처럼 이맛살을 찌푸렸다.
“너랑 내가 애국 한번 하자. 공동 작품으로 공동 1등.”
‘테슬라 대회에서 공동 1등!?’
마치 고양이 눈처럼 서로의 동공이 일순간 커졌다 작아졌다.
학생 신분으로는 출전도 힘든 대회가 아닌가? 어렵사리 공동 참가를 하게 됐지만 본선에선 1등은커녕 심사위원들의 관심을 받기에도 부족할 만큼 다른 훌륭한 작품들이 많을 터였다. 대자보 앞에서 그의 연구물을 폄하했던 상황을 떠올리면 자존심이 상하긴 했지만 수업을 듣고 나선 생각이 달라졌다.
텔레파시와 기억의 이식이라...... 연관성이 있는 듯 없는 듯, 하지만 그의 작품과 함께라면 관심을 한 몸에 받을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자신의 작품은 아직 기억의 이식에 대한 이론까지만 정립된 상태, 이석은 이미 1차적 문제인 연결고리를 찾았다고 했다. 그러니 그가 텔레파시를 실현시킬 수만 있다면 실로 대단한 성과를 이루는 것이리라.
공동 1등, 가능성이 있어보였다.
“이제부터 네 교제와 수업은 따로 있어. 교실에서 받는 수업은 잊어. 앞으론 나와의 연구가 네 대체 수업이 될 거야. 이 책들이 네 교제고 수업은…… 음……”
이석은 자신의 연구실을 한번 둘러보더니 핸드폰을 들어 만지작거렸다.
“너도 보이겠지만 여긴 이렇게 텅 비었다. 어차피 난 임시직이라 내 연구실은 집이야.”
‘딩동댕’ 서로의 핸드폰 메시지 음이 울렸다.
“지금 거기, 메시지 확인하도록.”
이석은 나갈 태세로 재킷을 집어 들었고 서로는 그 자리에서 급히 메시지를 확인했다. 이석의 집 주소였다.
“오늘은 수업 끝나고 7시까지 내 집으로 온다. 혼자!”
‘혼자?’
당연히 혼자겠지만 서로에겐 이 모든 상황이 당황의 연속이었다.
“대한민국에서 테슬라 대회 나가는 사람 너랑 나밖에 더 있어?”
어딘지 모르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서로를 보고 이석이 한 마디 더했다.
“걱정하지 마. 난 교수, 넌 학생. 연구 이상도 이하도 아닐 테니까 이상한 상상은 하지 말도록!”
말을 마치고는 먼저 연구실을 걸어 나가는 이석.
“아! 이제 도서관은 갈 필요 없어.”
갑자기 멈춰 서 문 앞에서 홱 뒤돌아 서로의 앞에 있는 책상 위에 쌓인 수북한 책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 있는 원서들은 빠른 시간 내에 섭렵하고 나머지 필요한 건 네 뒤 책장에 다 있으니 여기서 나갈 필요 없을 거야. 나올 땐 그냥 문만 닫으면 돼.”
-쾅
이석은 그렇게 나가 버렸다.
서로는 이석의 부름으로 그의 연구실을 온 후 몇 마디를 했던가. 생각하거나 의견을 피력할 기회도 없이 그냥 속절없이 당하기만 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교수의 공동 연구 제안에 거절이란 옵션은 있을 수가 없다. 서로 자신에게도 좋은 기회인 것은 분명하다. 그의 연구물을 비웃었던 자신이 한 없이 작아지는 순간에도 서로의 손엔 벌써 책 한 권이 들려있었다. 그리고 그 내용들을 빠르게 머릿속으로 집어넣고 있었다.
***
이석의 집은 경비가 삼엄한 팬트하우스라고 했다.
“원래 돈 있고 똑똑한 사람들은 다 좋은 데서 사는 거지 그게 뭐 대수라고 소문이 나서 내 귀에 까지 들어와.”
빛에 반짝이는 창문으로 에워싼 높다란 빌딩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았다.
“멋지긴 하네.”
서로는 빌딩 현관을 향해 걸어가다 무심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세월이 많이 지났는데도 최신형 브랜드처럼 세련된 옛날의 그 시계가 6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30분이나 일찍 왔네.”
혼잣말을 하며 걷다 빌딩 앞을 지키는 두 남자가 자신을 막아서는 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
“아야!”
마치 외국 대통령이라도 호위할 만한 임무를 가진 코가 높고 머리가 노란 두 명의 덩치 큰 보안 요원이 서로를 막아 세우고 신분증을 요구했다.
‘너는 존이고 너는 샘이냐? 허세는 아주......’
서로는 신분증을 보여주기 위해 허름한 배낭에서 지갑을 꺼내들었다. 어째 이날따라 지퍼가 고장이 났는지 퍽퍽해 잘 열리지가 않아 저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두 보안 요원의 얼굴을 보자 위압감에 눌려 미소가 지어졌다. 신분증을 확인한 두 명의 보안 요원은 양쪽으로 호위하듯 서서 안내데스크가 있는 곳으로 서로를 데려갔다.
‘외국인 아파튼가? 경비원들이 왜 이래? 도둑놈은 근처도 못 지나가겠네. 좋은 아파트는 다 이런가??’
빌딩 안으로 발을 들이민 서로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실내는 가히 경이로웠다. 아름다운 유럽식 건축물이어서가 아니었다. 이 건물은 밖에서 보면 100층에 달하는 고층이지만 일단 안으로 들어오면 천장까지 100층 높이에 달하는 텅 빈 공간이기 때문이었다.
‘아~ 경비가 삼엄한 팬트하우스라더니 이래서 소문이 났구나! 저 천장의 꼭대기엔 나교수님 집만 있는 건가?’
고개를 들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걷는 서로의 표정에 감탄이 서렸다.
안내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