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rrrrrrr’
이른 아침 호텔 밖을 나서려는 디엘의 전화벨이 울렸다. 알렌 형사로부터 온 전화였다. 호수 안에서 자신을 끌어당기던 미지의 힘과 빛에 대한 탐색을 마치고 보고를 하러 전화를 건거라는 생각에 얼른 받아들었다.
“네, 디엘입니다.”
디엘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가 어수선한 목소리로 말했다.
[“반장님! 별일 없으시죠? 시드니 잘 도착하신 거 맞죠??”]
“알렌? 비행기는 어제 도착했는데 지금 전화해서 별 일 없는지 묻는 거예요?”
[“뉴스에서 비행기 실종사건이 떠들썩해서 말이죠. 반장님이 어찌나 걱정되던지 가서 잘 도착했단 연락도 없으셔서 확인 전화하는 겁니다.”]
“비행기 실종이요?”
[“아직 모르세요? 지금 뉴스에서 난리 났는데, 사우스 퍼시픽 항공사 비행기가 상공에서 감쪽같이 사라졌어요. 소형 여객기긴 해도 승객이 100여명 정도는 된다던데요.”]
”그렇군요. 저는 잘 도착했으니 걱정 말고 호수 안에서 뭐가 나왔는지나 얘기해 봐요.”
제 관심사가 아니라는 듯이 디엘은 그 뉴스에 별 호기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무튼 다행입니다. 반장님 목소리 들으니 안심이 되네요. 그나저나 호수 안은 깨끗해요. 아무것도 없어요. 제이미 부대장님이 같이 겪은 게 아니었다면 아무도 믿지 않았을 걸요? 흑상어 부대에서 회오리팀 말고 다른 팀까지 동원해서 아침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수색했는데 아무 것도 나온 게 없어요. 다들 방금 전에 철수했고 저도 본부에다가 보고까지 마쳤습니다.”]
“일단은 그렇다고 하니, 흠, 알겠어요. 저는 지금 나가 봐야 하니 별 다른 용건 없으면 다음에 통화해요. 시드니 일정은 최대한 빨리 마치고 돌아갈게요. 가서 뵙도록 해요.”
[“네, 알겠습니다. 조심히 마치고 돌아오십시오.”]
디엘이 서둘러 호텔에서 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어느덧 차는 굽이굽이 북쪽 해안선을 따라 달렸다. 그녀는 휴를 만나기 위해 가는 길이었다.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디엘의 뺨을 스치며 햇살과 함께 사라졌다.
잠깐의 여유를 타 뉴스 검색을 하던 디엘은 실종된 여객기에 대한 속보를 클릭했다.
[태평양 상공에서 실종된 여객기의 탑승자 명단이 방금 전달됐습니다. 들어온 소식에 따르면 실종된 여객기 탑승객 중에는 국제사이언스학회의 임원인 나이석 박사를 비롯해 그의 연구팀 10명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들 모두가 대한민국 국적으로 사후 나라를 빛낸 인물 사전에 오를 만큼 명성이 있는 과학자들입니다. 나이석 박사의 경우는 테슬라 대회에서 수상을 한 이력을 가진 한국인이기에 국가의 상당한 인재 손실로도 볼 수 있는 상황이라 대한민국과 외교적 마찰까지 우려가 되고 실정입니다.
실종자 명단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사우스 퍼시픽 항공사 대표 마샬 블룸이 오늘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모든 실종자들에게 깊은 애도와 함께 사과를 전하는 모습입니다......]
***
그 날 오후도 헤이즐 박사는 여느 때처럼 휴에 대한 정신 감정 리포트를 작성하고 있었다.
한 가지에 집중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자꾸 의문점 하나가 머릿속을 맴돌고 그녀의 집중을 방해했다.
그녀는 생각했다.
‘나르키소스는 그의 과거와 무슨 연관이 있는가?'
자신에게서 받은 편지와 사라진 편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는 헤이즐도 머릿속에서 그것들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큰 수확이 있었던 것은 확실했다. 시간이 어느덧 2년이 지나가는데 지금에 와서 그 동안 숨겨왔던 이야기를 했다는 건 아닌 척 해왔지만 사실은 그도 많이 지쳐있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했다. 또한 정부에서 다른 병원으로의 이송 절차를 밟으려 한다는 말을 흘려듣지는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헤이즐 박사의 생각에 그는 지금 당장에 고집을 멈추고 기억 재생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아직 무언가를 아니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아니면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아니 어쩌면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 일지도 모른다.
이 모든 벌어진 일들을 해결할 방법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날이 갈수록 조급함에 힘들어지던 시기였다. 하지만 다음 면담 시간에 그 사라진 편지에 대해 더 자세히 이야기를 나눠 작은 단서라도 찾을 수 있기를 실낱같은 희망을 기대하며 리포트를 써 내려갔다.
손은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지만 머리는 한 가지 생각에만 집중하고 있을 때 팩스 머신에 불이 들어오고 빨간 불이 깜빡이다 종이 한 장을 토해냈다.
헤이즐 박사는 반사적으로 집어 든 종이를 들여다보며 흘러내려가 콧잔등에 걸쳐진 안경을 손끝으로 톡하고 들어올렸다.
‘담당 경관 ‘다코타 리’의 도착 예정 시간??’
그제야 아직 들여다보지 않은 서류철들을 뒤적거리다 또 다른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국제공조수사 관련 협조 요청서? 이게 언제 온 거야?”
글의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헤이즐 박사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그 시각 전화벨이 울렸다.
“닥터 헤이즐입니다. 말씀하세요.”
병원 입구 차량 통제실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미국에서 수사관이 오셨습니다. 성함이 ‘다코타 리’ 라고.”
“예?”
고개를 들어 시계를 한번 쳐다보고는 한 손에 들린 종이 한 장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제 사무실로 안내해주세요.”
***
헤이즐과 디엘이 마주 앉았다.
헤이즐 박사는 의문스러운 표정을 감추고 디엘을 자리로 안내했다. 자리에 앉은 디엘은 꼿꼿하게 편 등이 푹신한 소파에 기대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편하게 앉으시죠. 비행이 길어 피곤하실 텐데.”
“아닙니다. 호텔에서 잠시 쉬었다가 오는 길이라 괜찮습니다.”
“수사 공조문의 내용을 읽어봤습니다. 그러니까 수사 협조 요청이라는 게 미아 스탈의 시신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한 작업 때문에 휴 스탈 환자를 만나고 싶으시다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미아는 제 친구였습니다. 그래서 장례식 모든 과정에 저도 참여를 했기에 관에 누워있던 미아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네요. 분명 그 안에 있을 텐데......”
“아...... 친구 분이었는 줄은 몰랐습니다. 많이 놀라셨겠네요.”
“괜찮습니다. 갑작스럽긴 하지만 아무튼 절차상 필요한 것이라니 하긴 해야겠는데 지금 휴 스탈 환자는 기억상실도 그렇지만 노이로제가 극심해서 그 소식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뭐 피할 수는 없는 일이니 일단은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말하는 내내 헤이즐은 주먹을 폈다 오므렸다 하는 것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많이 혼란스러운 듯 해 보였다.
“그럼 휴 스탈 환자와도 이미 아시는 사이겠군요.”
“물론이죠. 비록 그 사람은 예전의 저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떻게 대신 소식을 전해주시겠습니까 아니면 저와 만날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 주시겠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