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프로젝트 나르키소스
작가 : 도아
작품등록일 : 2018.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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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서로-네가 잊은 사람
작성일 : 18-03-19     조회 : 370     추천 : 2     분량 : 4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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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잊은 사람>

 

 ‘내 날개는 실패작이었다.’

 

 ‘나는 독수리보다도 멋진 날개를 가졌지만 예전엔 참 쓸데없는 날개였지. 곱사등이처럼 등에 짊어지고 또 거적때기 따위로 숨기고 다녀야만 했으니까. 위에서 아래로 내려갈 땐 낙하산의 역할은 충분히 했지만 진짜 새처럼 바닥에서 위로 도약하는 힘이 약했지. 날개가 이렇게 큰데도 마치 닭처럼 비둘기처럼 파닥거릴 뿐. 그래서 난 죽음으로 버려져야 할 존재였어. 온갖 고통을 감내하면서 견뎌냈지만 난 그들의 실패작일 뿐이었으니까. 그런 나를 살려 준 이는 이명희 박사였고 또 그런 나를 거둬 준 이가 그녀의 아들들이었다. 그들은 내가 잃어버렸던 너를 포함한 가족의 기억을 되살려주고 나에게 살아갈 이유를 주었지. 내가 지켜야 할 사람이 아직 있다는 걸 알려줌으로써. 그리고 그건 나에게 충분한 이유가 되었고 실험을 당하던 날들보다도 더 혹독한 재활과정을 거쳐 날기 위한 연습을 해왔기에 오늘 같은 날, 내가 너를 구할 수 있었다. 난 그것만으로도 내가 지금껏 살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단다. 지금 이 순간을 지난날의 고통이 안겨준 선물이라 여기며...... 그러니 슬퍼하지 않아도 돼.’

 

 “오빠! 서준 오빠!”

 

 그를 부르는 서로의 목소리는 떨렸다. 괴로웠기 때문이다.

 

 자신은 잊고 지냈던 어릴 적 잃어버린 오빠. 돌아온 나의 오빠. 온갖 고통과 아픔으로 가득 찬 그의 과거를 차마 들여다 볼 용기조차 안 날 만큼 괴로운 날들이 순식간에 서로의 머릿속으로 채워 들어왔다.

 

 ‘대체 누가? 왜? 오빠를??’

 

 ***

 

 테이블 앞에 앉아 있는 서로의 맞은편에 이석이 팔짱을 끼고 골똘히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시간의 연장선인지 아주 자연스럽게.

 

 -딱!

 

 이석이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멍한 표정으로 맞은편에 앉아 있던 서로가 화들짝 놀라 몸을 추스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정신 안 차릴래? 무슨 딴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야?”

 “여긴 어디죠?” (‘이게 뭐지? 꿈...... 꿈이었나?’)

 

 생각해보니 꿈이 아닌 게 오히려 이상했다. 날개를 가진 서준 오빠라니......

 

 “사람이 앞에서 얘기 하는데 꾸벅꾸벅 졸아!”

 “죄송해요, 꿈인 거 같긴 한데, 아니, 아니 꿈을 꿨는데...... 꿈에 죽은 오빠가 나왔어요. 근데 너무 진짜 같아서 기분이 좀 이상해요.”

 

 서로는 좌우로 머리를 흔들며 혼란스러움을 달랬다.

 

 “이리 와봐.”

 

 이석의 말에 서로가 머뭇머뭇하자 그는 성큼 다가와 그녀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고는 마치 머리 결을 쓰다듬을 듯이 손을 천천히 머리 위로 가지고 올라갔다.

 

 “아야! 이게 무슨 짓이죠?”

 

 이석이 서로의 머리를 쓰다듬다 말고 흰 머리카락을 뽑으며 말했다.

 

 “네 흰 머리까지도 좋아한다는 표현.”

 

 자신의 얼굴을 서로에게 가까이 들이밀며 한 마디 더했다.

 

 “심지어는 이런 새치도 관리를 안 하는 앤데 누가 널 좋아해? 그러니 생각 잘 하라고.”

 

 서로가 이석을 알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누가 널 좋아하냐고 물었지 널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고는 말 안 했는데 뭘 그렇게 째려봐 근데? 더 있는 거 아니야??”

 

 서로는 이석의 팔을 자신의 팔꿈치로 ‘툭’ 하고 걷어찼다.

 

 “야식 먹자.”

 “배 안 고파요.”

 “뭐 안 먹었잖아.”

 “그냥 집에 가겠다는 뜻이에요. 두 번 말하게 하지 마세요.”

 “그럼 한 번만 말하면 되잖아. 어차피 먹을 건데.”

 “싫다는 뜻인데 이해 못하셨어요?”

 “그걸 내가 어떻게 이해하냐?”

 “똑똑하신 분이 의외네요.”

 “똑똑한 건 너도 마찬가진데 네가 더 의외다. 아직도 파악 못했어?”

 “뭘요?”

 “내가 먹겠다고 하면 먹는 거잖아.”

 “드세요 그럼.”

 “내가 ‘너’ ‘랑’ 먹겠다고 하면 ‘너’ ‘랑’ 먹는 거잖아. 우리 사이에 규칙 있는데 네가 그걸 벌써 잊어버린 거 같아서 난 그게 너무 의외네. 공부도 잘하게 생긴 애가 말이야.”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해 서로. 너 공부 잘하지?”

 

 서로는 가늘게 뜬 눈초리로 이석을 쳐다보았다.

 

 “근데 표정이 왜 그래? 공부 잘하게 생겼다는데. 왜 공부 못해?”

 “공부 잘하는 거랑 잘하게 생긴 건 또 뭔데요?”

 “하기야 얼마 전에 다 알아들은 것처럼 뭐든 시키는 대로 다 하겠다고 얘기하더니 지금에 와서 다른 소리 하는 거 보니 공부 잘하는 거 그거 다 허울이야 허울. 헛 똑 똑. 사실은 하나도 이해 못했어. 하나도 못 알아듣고 말이야.”

 “헛똑똑이라는 말은 살면서 처음 들어보네요.”

 “나니까 그런 얘기 할 수 있는 거야. 그리고 사실은 너 공부 되게 못하게 생겼어. 근데 그거 말고도 못하게 생긴 거 하나 또 있어.”

 “제가 뭘 또 못하게 생겼는데요?”

 “대답해도 돼?”

 “안-”

 “연애”

 

 뭔가 좋지 않은 소리가 나올 것 같아 안 된다고 말하려 했지만 이석은 그녀의 대답을 기다려 줄 리 없었다.

 

 무례함에 가까운 이석의 태도는 서로로 하여금 갈수록 불쾌감만이 팽창하게 만들었다.

 

 서로의 앞으로 해산물 샐러드가 놓여졌다.

 

 (‘일부러 이러기도 쉽지 않은데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

 

 짧은 순간이었을까? 어쩌면 조금은 긴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동안 서로의 머릿속으로 서서히 침투하려던 이석에 대한 의심을 떨쳐내 왔건만 성큼 들어와 버린 그에 대한 의심이 확신에 찬 이유로 자리 잡는 시간 말이다.

 

 지금껏 자신을 박대하며 자극해 온 그의 말과 행동들, 그리고 지난 수업 시간에 강의실에서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자니 자신이 왜 그것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감정의 주파수’...... ‘초감각의 소유자’...... ‘우리는 만들 수 있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런데 분출해야 마땅한 서로의 감정은 그 순간에도 너무나 이성적이었다.

 

 “이제야 알겠네요.”

 

 “뭘?”

 

 “말도 안 되는 이유 갖다 대면서 공동 연구 하자며 관심을 보이는 이유요.”

 

 “그게 뭔데?”

 

 “다른 여자라면 뭐 맘에 드니까 사귀고 싶다 아님 너랑 한번 자고 싶다 정도로 받아들였겠죠. 근데 교수님은 둘 다 아니잖아요.”

 

 “아니면 뭔데?”

 

 “목적, 이용 수단 처음부터 저 이용하려는 거 아니었어요? 교수님의 연구를 위해서.”

 

 “우와 진짜 넌 여자가 어쩜 이렇게 매너가 없냐? 말을 그냥 막하네 내가 너랑 진짜 친해지고 싶어서 이러는 거면 어쩔 건데?”

 

 “교수님은 뭐 외계에서 왔어요? 여학생이랑 그냥 적당히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사람 마음 들었다 놨다, 감정가지고 장난치고 하면서 진심이라고요? 차라리 주변에 괜찮은 여자 있으면 소개받고 싶어서 그랬다고 하죠. 그럼 믿어주는 척이라도 했을 텐데 말이에요. 교수님 연구에 응할 생각 없어요. 저는. 그 말인즉슨 교수님의 연구 제물로 바쳐질 생각이 없다는 말입니다.”

 

 “너는 무슨 여자가 이렇게 돌 같고 나무 같냐?”

 

 “저는 남자들한테 꼬리치려는 본능 같은 거 없어요. 그 따위 거 가지고 살 만큼 여유가 없었거든요. 남자들이 관심 보이는 거 정말 피곤해요. 사람들이 제발 절 여자로 좀 안 봐줬으면 좋겠어요. 교수님도 마찬가지고요. 이러나저러나 저는 이제 둘 다 싫으니 저희 공동 연구는 여기까지입니다. 전 이만 가겠습니다.”

 

 서로가 의자를 뒤로 밀어 자리에서 일어서려 할 때 이석의 전화벨이 울렸다. 그리고 전화를 받은 이석의 담담했던 표정이 잠시 굳어지려 할 때 이번엔 서로의 전화벨이 울렸다.

 

 “받지 마.”

 

 정훈의 전화였다. 서로는 그의 말을 무시 한 채 핸드폰으로 손을 가져갔다.

 

 -쾅!

 

 “받지 말라면 받지 마!”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치는 이석의 손이 부들거렸다. 말없이 놀란 서로의 눈은 한 층 더 커져 테이블 위에서 흔들거리는 그의 주먹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네 성격 알거든. 삐딱한 거. 그래서 내가 일부러 더 삐딱하게 나오는 거야. 나 원래 이런 사람 아닌데 너한테만 이러는 거야. 정훈이가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내가 꼭 말해야 돼?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너는!”

 “......”

 "네가 나랑 정면 승부를 하려 들면 난 뒤에서 네 허를 찌를 거고 네가 돋친 가시 따위로 나를 막으려 들면 그 가시 돋친 줄기를 잘라 버리고 다시 새살이 돋아나길 기다릴 거야. 그러니까 나한테 반항하지 마. 왜냐면 넌 내 말 들어야 하거든.”

 

 갑자기 서로는 이석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의 말이 너무도 서늘하여 그녀를 굳어버리게 했다. 심지어 그의 눈빛엔 바라만 봐도 베일 것 같은 날이 깃들어 있었다. 머릿속에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 말들이 무슨 뜻인지 어떤 의도인지 추측할 만큼의 의지도 상실하게 만들었다. 그저 간담이 서늘했다.

 

 “그거 알아? 키다리 아저씨는 키가 커서 키다리 아저씨가 아니야. 길게 늘어선 그의 어두운 그림자 때문이지."

 

 (‘이 사람 뭐지?’)

 

 “나는”

 

 이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은 사람이야.”

 

 천천히 걸음을 움직이는 이석은 서로의 등뒤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런데도 서로는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 볼 수가 없었다. 그를 마주하지 않는 것이 현재로써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어였다.

 

 (‘대체 이 사람 누구지?’)

 

 “나는”

 

 이석의 손끝이 서로의 어깨를 스쳤다. 언제 쥐었는지 알 수 없는 그의 목소리보다도 서늘한 얇은 주사기가 그의 손가락 사이에 들려 있었다. 가느다랗고 뾰족한 차가운 무언가가 그녀의 목덜미를 순간 아프게 했다. 하지만 그것을 채 느끼기도 전에 기이한 액체는 그녀의 가는 핏줄기를 타고 뇌 속으로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그것이 목적지에 도달하는 시간은 짧았지만 그의 마지막 귓가의 속삭임이 서로의 귀를 통해 들어오는 시간만큼은 주어졌다.

 

 “네가 잊은 사람”

 

 나약한 꽃송이가 꺾이듯 서로의 고개가 아래로 꺾였다.

 

 ***

 

 서로는 수술대 위에 누워 있고 그 앞에 수술복을 입고 선 이석이 읽고 있던 서류를 앞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프로젝트 카르토스 앤 플룩스’

 ‘실험 대상 317-1호 해서로’

 

 무심히 그 서류의 제목을 내려다보던 이석은 이내 서로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는 침착하게 수술 도구들 사이에서 매스를 하나 집어 들고 그녀의 눈을 향해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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