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프로젝트 나르키소스
작가 : 도아
작품등록일 : 2018.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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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디엘-내가 이곳에 온 이유
작성일 : 18-03-20     조회 : 392     추천 : 2     분량 : 6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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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곳에 온 이유>

 

 “315-3호는 즉각 포이보스로 복귀하시오.”

 

 315-5호 사고 통제자로부터 전달된 텔레파시였다.

 

 -으으으윽!!!

 

 315-2호 감각 통제자가 315-3호의 통각을 자극했다. 그녀는 한 순간 참을 수 없는 극심한 통증을 느꼈지만 즉시 몸을 움직이더니 사방을 더듬거리며 무언가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315-4호 기억 통제자의 방해로 인해 집 구조며 물건이 놓인 위치며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마치 실성한 여인처럼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그 와중에 그녀가 붙들고 있는 정신 줄 하나는 자신이 여기 온 이유를 마음에 새기고 새기고 또 새기는 것뿐이었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휴를 살리기 위해서야. 우리는 휴를 사랑하고 있어.’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휴를 살리기 위해서야. 우리는 휴를 사랑하고 있어.’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휴를 살리기 위해서야. 우리는 휴를 사랑하고 있어.’

 

 자신이 그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사랑하는 감정뿐이었다. 그들이 그 마음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면 그녀를 방해하는 것을 주저할지도 모른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한 가지 사실을 온 마음에 가득 담고 그 넓은 미아의 집을 여기저기 들쑤시며 다니고 있었다. 315-5호의 사고 통제 탓에 주방에는 없을 것이 분명한데도 아무 생각도 없이 서랍을 열고 닫고 찬장을 열고 닫는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했다. 게다가 감각 통제자가 어디를 자극하는지 주방을 나왔을 땐 발을 디딜 때마다 불덩어리 위를 걷는 것처럼 살갗이 타 들어가는 고통을 느꼈다. 그 탓에 무릎을 땅에 대고 바닥을 기어가며 거실을 배회해야 했다.

 

 그러던 중 거실 한 구석에 시체처럼 늘어져 있는 진짜 미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315-3호는 남은 의지로 온 정신을 집중해 흐트러진 주파수를 모아 미아가 발산하는 주파수를 잡아 말을 걸었다.

 

 “시계...... 시계...... 아니, 아니”

 

 315-3호는 얼굴을 찡그리며 도리질을 치고 다시 전달했다.

 

 “종이와 펜......”

 

 (‘티비 밑...... 두 번째 서랍......’)

 

 미아의 영혼 없는 생각이 뇌파를 타고 315-3호의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다행히 사고 통제자는 315-3호의 사고를 방해하는데 집중하고 있어 미아를 내버려두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315-3호는 황급히 몸을 움직여 거실 한 켠에 놓인 티비 앞에 다가가 수납장을 열어 종이와 펜을 집어 들고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시계가 급합니다.’

 

 315-3호는 엉망으로 날려 써진 종이를 자신이 가져 온 작은 상자 안에 넣었다. 그리고는 같은 말만 되풀이하다 그 자리에서 풀썩 쓰러져 버렸다.

 

 ‘내가 여기에 온 이유는 휴를 살리기 위해서야. 우리는 휴를 사랑하고 있어. 내가 여기에 온 이유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거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던 315-3호는 급기야 발작을 일으켰다. 온 몸을 부르르 떨며 입안에 거품을 문 채 두 눈이 뒤집히기도 했지만 그녀의 입에선 계속해서 같은 말이 되풀이되어 흘러 나왔다.

 

 “내가 여기에 온 이유는...... 으으으윽 으윽, 휴를...... 으으으윽, 그만해...... 우리는 휴를 사랑하고 있어.”

 

 만신창이가 된 그녀의 손에 꼭 쥐어진 상자. 갑자기 그 상자의 틈 밖으로 환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주변을 밝힐 만큼 강한 빛이었다. 그 순간 315-3호의 위아래로 흔들리던 동공이 확 뒤집히더니 눈이 번쩍 뜨였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몸을 튕겨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거짓말처럼 손목시계가 하나 들어 있었다. 그녀의 눈은 흰자만이 드러난 채라 앞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손을 더듬으며 시계를 집더니 서둘러 손목에 찬 덕에 온 우주의 정기라도 받은 것처럼 다시 기운이 넘쳐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미아는 여전히 수면제에 취해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지만 뜬 눈으로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315-3호가 지나간 자리마다 고통을 이겨내며 방울방울 흘린 땀방울의 흔적이 그 모든 상황이 꿈이 아니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잠시 후 흐릿한 인영이 미아의 눈앞에 나타났고 그 후로 미아는 정신을 잃었다.

 

 ***

 

 다행히도 315-3호는 기력이 회복됐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다른 통제자들의 방해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쓰러져 있는 미아를 당장 수습해야 했다. 315-3호는 정신을 잃은 채 축 늘어져 있는 미아의 등과 무릎 사이에 양손을 넣고 가벼이 안아 올렸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중력을 이기지 못한 미아의 목이 처량하게 땅을 향해 떨구어지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315-3호가 그것을 인지했을 땐 미아의 몸이 공중에 부유하듯 편안하게 떠 있는 자세를 유지했다.

 

 그녀가 걸어가는 곳마다 주변의 사람들이 얼음처럼 멈추고 그녀가 등 뒤로 지나가자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다시 제 갈 길을 가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그것은 디엘이 315-4호 기억 통제자를 미아의 무덤에서 만날 때 본 것과 같은 현상이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옮겨 315-3호가 찾은 곳은 도시 한 가운데 자리한 높다란 건물이었다. 그 건물을 지켜 선 안전요원 2명과 안내자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얼음처럼 멈춰 섰다. 315-3호는 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누구도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그녀를 제지하지 않았다. 사방이 유리로 된 높다란 빌딩 안으로 들어섰다. 주변에 몇몇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 또한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멈춰서 있었다.

 

 건물의 중앙에 선 315-3호는 미아를 가운데 바닥에 그려진 육각형의 모형 그림 안에 뉘이고 시계의 버튼을 일련의 공식이 있는 것처럼 눌렀다. 그리고 위쪽을 향해 고개를 올려다보자 천장이 양쪽으로 열리더니 그곳에서 나타난 커다란 날개를 가진 3명의 여자들이 쏜살같이 날아 내려와 미아를 데리고 열린 천장을 향해 사라져버렸다.

 

 안도의 한숨을 들이키고 315-3호가 밖을 나섰을 땐 이미 밖은 새벽이 오고 있었다.

 

 금빛이 감도는 골드코스트의 바다가 한 눈에 들어왔다. 바다의 수평선은 떠오르는 태양 빛에 주변마저 노랗게 타올랐고 그 빛을 등에 지고 나타난 또 다른 이들이 315-3호의 앞으로 다가섰다.

 

 -으악

 

 반격이나 대응을 할 여유도 주지 않고 다가선 한 남자가 그녀의 손목을 틀어쥐었다. 그러자 그들의 뇌파가 315-3호를 자극했고 그녀는 온몸이 마비된 채로 그들에게 속절없이 끌려가고 있었다.

 

 ***

 

 -부아앙~

 -끼이이익—

 -콰광

 

 휴는 급정차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경찰서를 나와 집을 향해 달리는 그의 차를 갑자기 나타난 검은 세단 4대가 앞 뒤 양 옆에서 막아 세웠기 때문이다.

 

 휴의 차는 급정차의 반동을 이기지 못하고 선 자리에서 반 바퀴 돌아 앞에서 막아 세운 자동차와 충돌해 후방 범퍼가 너덜거릴 정도로 찌그러졌다. 그나마 크게 다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휴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본능적으로 차문이 잠겼는지 확인했다. 자신을 코너로 몰아세운 4대의 차 안에서 검은 정장의 남자들이 내려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휴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멀쩡한 거트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고 경찰서를 다녀오는 길에 일어난 사고였다. 이 상황이 단순 사고가 아니란 것은 분명했다. 그렇다면......

 

 ‘거트가 꾸며낸 일일까?’

 

 함께 해온 연구를 혼자서 성공시킨 것에 대한 질투심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과학자들도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눈뜨고 못 볼 것은 분명하니까. 하지만 그는 그저 과학자일 뿐이다. 최소한 그가 아는 거트는 스스로 이런 일을 벌일 만큼 배포가 큰 사람도 아니었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휴의 마음은 곧 이들을 피해야 한다는 데에 도달했다.

 

 ‘경찰서가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그 쪽으로 달릴까?’

 

 어차피 그들에게 협박 따윈 필요 없을 거란 걸 직감했다. 이겨낼 수 없는 큰 세력이었다.

 

 ‘도대체 저들은 누구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무엇을 위한 이들인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푸른 물질을 탐내는 자들이다.’

 

 그렇다면...... 지금 사실상 위험에 처한 자는 자신이 아니라 미아일 수도 있었다. 푸른 물질은 미아가 가지고 있으니까.

 

 휴는 미아에게 전화를 걸려고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그 순간 자신을 향해 다가오던 자들이 걸음을 멈추더니 일제히 그들의 차로 발걸음을 돌려 그곳을 떠났다.

 

 이상했다. 그들은 갑자기 어디를 가려는 것일까? 이유야 어찌됐든 그들이 떠나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휴는 다시 핸들을 잡고 범퍼가 부서져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는 차를 끌고 칼바람을 가르며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자신보다 앞서 달리는 엄청난 속력의 검은 세단 3대가 눈에 들어왔다. 휴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그 순간 휴는 알았다.

 

 그들이 자신의 집을 향해 가고 있다는 걸, 푸른 물질을 가진 미아를 향해......

 

 미아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남자답게 마음을 추슬러야 하는데 걱정이 앞서는 그의 마음에 불안감은 더 커져갔다. 다급한 마음에 이미 경찰에도 연락을 다 해 본 상태지만 그녀와 동행중인 경찰은 없다고 했다. 집에 도착해 그녀가 없는 것을 확인하기도 전에 이미 실종 신고를 해 놓은 상태지만 경찰은 진술을 하러 경찰서로 오라고 보채기만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찾아야 한다는 마음만이 휴의 생각을 움직일 뿐이었다. 하지만 해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모든 게 뒤죽박죽 엉켜버려 무엇이 문제며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이 지금처럼 무능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던 갓 같았다. 그는 밖으로 나섰다. 간밤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어느새 시간은 이른 새벽녘의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 때 휴의 흐트러진 정신을 집중시키는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자 표시를 보니 미아의 전화였다.

 

 “미아! 어떻게 된 일이야 무사한 거야?”

 “전 괜찮아요. 달링, 당신 목소리를 들으니 제 귀가 녹는 것 같아요.”

 “지금 어디야?”

 “지금...... 여기는...... 당신과 떨어져 있어 나를 슬프게 하는 곳, 출렁이는 물살이 내 마음도 출렁이게 하네요.”

 

 그녀의 언어 선택은 이상했지만 목소리는 상당히 침착했다.

 

 “당신 다치진 않았어? 아프지 않아?”

 “제가 다쳤다 한들 당신 마음만큼 다쳤을까요, 제가 아프다 한들 당신 마음만큼 아플까요?”

 

 평소의 미아 같지 않은 말이기도 했지만 지금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말은 더욱 아니었다.

 

 “무슨 말이야?”

 “파랑새의 새장은 왜 꼭 내 마음 속이어야 하는거죠? 내 어깨에 와 살포시 앉는 파랑새는 동화 속에서만 살고 있나요? 나 헝클어진 그대 머리 위에 집 짓고 살고픈 한 마리의 새인데, 달콤한 목소리로 날 그렇게 불러주던 당신은 왜 내 마음속으로 들어와 버렸나요? 날개 짓하며 그대에게 달려가 안길 수 있는 햇살 따가운 들판으로 달려가고 싶어요.”

 “미아......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 이제야 새장 밖으로 나왔는데, 아직도 당신을 그리워해야 하다니......”

 

 -쾅

 

 둔탁한 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휴의 귓속으로 들어왔다.

 

 “미아! 미아!”

 

 -뚜뚜

 

 ‘미아 도대체 이 말들은 암호인 거야 뭐야? 도대체 당신 무슨 말을 한 거야?’

 

 수화기 너머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할 수도 없었다. 상상이 드는 내용은 너무도 끔찍해서 생각하는 걸 멈추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미아가 위험한 것이 분명했기에.

 

 그녀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는 가슴을 쳤다. 지켜줄 수 없는 현실이 미워 가슴을 한 번 내려쳤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한계를 느껴 또 한 번 가슴을 세게 내려쳤다. 그리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는데 그때 그는 저 멀리 하늘 어딘가에서 피어오르는 파란 구름을 보았다.

 

 ‘그녀가 울고 있다. 그녀가 바다 한 가운데에서 파란 눈물을 흘리고 있다.’

 

 푸른 물질과 섞인 그녀의 눈물이 공기와 닿아 파장 효과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었다.

 

 휴는 그곳을 향해 운전대를 틀었다. 자신이 밟을 수 있는 최대 속력을 내기 위해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부아앙

 -덜컹덜컹

 -드르륵~

 

 거친 엔진 소리와 노면을 튕기는 바퀴소리가 어우러져 다급한 휴의 마음을 대신 호소라도 하듯이 시끄러웠다. 하지만 간밤의 무리를 이겨내지는 못했다. 찌그러진 차체에서 튀어나온 날카로운 모서리가 바퀴를 찔러댔고 낡은 신발처럼 너덜너덜 해진 차는 결국엔 얼마 달리지 못하고 기능을 상실했다.

 

 “제발...... 지금은 안 돼! 조금만 참자 응? 힘 좀 내 보라고!!”

 

 답답한 마음에 어르고 달래고 사정도 해봤지만 자동차는 더 나아갈 의지가 없어 보였다.

 

 뜨거운 태양이 몸을 비비고 하늘로 올라가는 이른 아침, 급기야 휴는 도로 밖으로 나서더니 출근길에 접어든 자동차 한 대를 몸으로 막아 세웠다.

 

 “당신 뭐 하는 짓이야?”

 

 삿대질을 하며 멈춰 세운 운전자를 향해 다가간 휴는 그의 멱살을 쥐어 잡았다. 휴가 있는 힘껏 그의 상체를 차량 밖으로 당기자 운전대에 앉아 있던 젊은 남자는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속절없이 질질 끌려 나오고 말았다. 그의 얼굴에 당혹과 두려움이 역력히 묻어났지만 사과를 할 마음도 시간도 그런 종류의 여유 따위는 휴에게 없었다.

 

 -부르릉~ 콰아아앙

 

 죄 없는 평범한 회사원을 내치고 잡아든 운전대는 시원하게 잘도 달렸다. 휴는 그 길로 그녀가 울고 있는 바다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자동차는 최대 속력을 웃돌았다.

 

빌리이브 18-03-21 01:09
 
* 비밀글 입니다.
  ┖
도아 18-03-21 05:40
 
* 비밀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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