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주파수>
-며칠 전
이석은 동료 교수들과 회식자리에 있었다.
술에 취한 이들이 평소에는 하지 않던 저급한 말들을 늘어놓고 이따금씩 큰 소리를 내며 떠들어댈 때 그 소리보다 이석을 더 성가시게 하는 것은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에서 전해지는 미세한 진동과 작은 불빛의 연속적인 깜박임이었다.
이석은 재빨리 시계에 있는 작은 버튼들을 눌러 주파수를 보내는 정확한 위치를 파악했다.
같은 시각, 서준은 자신의 등에서부터 뻗어 나온 커다란 날개를 두 손을 합장하듯 앞으로 모아 깃털 하나하나를 손질하고 있었다. 그 때 머릿속으로 이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준아! 지금 서로 주파수 공유를 열어놨으니 어서 확인해보고 서로가 있는 곳으로 가봐!’)
여유롭게 손질을 하고 있을 땐 축 쳐진 채 움츠려있던 날개의 근육들이 몸을 쫙 펴고 일어섰을 땐 몸집의 세배에 달하는 크기로 높고 넓게 그의 양 옆으로 펼쳐졌다.
마음이 다급해진 서준은 커다란 펄럭임 세 번으로 날개의 물기를 털어내고 그대로 창밖으로 무거운 몸을 날렸다.
***
이석이 벌컥 문을 열고 나한오 박사의 사무실로 들어섰다.
그의 얼굴은 약간의 취기가 올라선지 붉은 기가 돌았지만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책상에 앉아 있던 나 박사는 고개를 한 번 들어 이석을 쳐다보고는 그의 난입이 놀랍지 않다는 듯 하던 일을 멈추지 않고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 아이에게서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한 특별한 파장이 감지됐다고 들었다. 지금 심흥수 박사의 병실에 왔다간 거 같은데 심박사가 찬 시계가 감지를 해서 알았다. 어떻게 지금까지 우리 쪽에서 감지가 안됐는지 모르겠다만 넌 알고 있었을 거라 생각하는데 왜 보고하지 않은 거냐?”
“그 아이 아버지가 알고 있는 아이가 아닙니다.”
또박또박 힘주어 말하는 이석의 목소리에서 결연함이 묻어났다.
나 박사는 그제야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이석에게 고개를 돌려 얼굴을 마주한 채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왜 나에게 거짓말을 하는 거냐?”
“거짓말이라니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를 속이신 건 아버지일지언정 저는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석이 차갑게 반문했다.
“내가 너를 속이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저도 그 아이처럼 실험 대상이 아니었던가요?”
나박사는 침묵했다.
그 침묵이 긍정의 뜻은 아니었지만 아니라고 대답할 수도 없는 애매함에서 나온 자연스런 반응이었다.
“저는 아버지를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그 아이에게 하는 일 이제 멈춰주십시오.”
“네가 나를 용서 하다니 가당치도 않다. 내가 너를 위해 지금껏 어떤 싸움을 해왔는지 너는 모른다. 오늘 네가 한 말은 못 들은 걸로 할 테니 여기서 접어라.”
나박사는 애써 고개를 돌려 이석을 외면하려 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싸워왔다는 말입니까?”
“고작 너에게 용서받기 위함이 아니었다는 것만은 확실하구나.”
“그 아이를 사랑합니다. 아버지.”
“뭐?? 지금 뭐라 했냐?”
나박사는 황망한 얼굴로 다시 고개를 들어 이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그 아이를 알면 얼마나 안다고 고작 알고 지낸 게 채 몇 개월도 안 되지 않느냐? 그런데 뭐 사랑한다고? 어떻게 그런 말을 이리도 쉽게 할 수가 있어? 아무것도 모르는 10대도 아니고 네가 지금 제정신이냐??”
“제정신입니다.”
이석의 입에서 알코올의 잔향이 새어 나왔지만 그의 말이 사실이란 것은 나박사도 느낄 수가 있었다.
“세상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한 법이다. 그것이 오래된 진리다. 거스르려 하지 마라.”
“그런 식의 변화, 세상이 왜 원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제 그만 하십시오. 도대체 그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하시는 겁니까?”
“희생 없는 전쟁은 없다고 하지 않았냐?”
“그럼 저를 희생시키십시오.”
이석의 말에 나박사의 두 손엔 힘줄이 붉어져 나왔다.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을 준 탓이었다. 그는 잠시 눈을 감고 얼굴에 인상을 드리웠다. 하지만 이내 다시 평온한 표정으로 눈을 뜨고 이석에게 말했다.
“아들아, 네가 한 때는 그 아이처럼 그들의 실험 대상이었다는 것을 눈치챘다면 지금껏 내가 해오고 싸워 온 모든 일들이 다 이 전쟁에서 너를 희생시키지 않기 위해서였다는 것도 지금쯤이면 너도 알지 않느냐.”
“아버지는 저의 감정을 희생시켰습니다. 그리고 이젠 제 영혼까지 희생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은 제가 죽을 것 같아요. 그래도 아버지께서 멈추지 않으시겠다면 먼저 저와의 전쟁에서 이기셔야 할 겁니다.”
“사내놈이 감정 따위 운운하며 이리 약해 빠져서야 어디 큰일을 해 내겠어? 네가 상대하는 건 내가 아니야! 그게 나 혼자 싫다고 되는 거라 생각하는 거냐?”
“그럼 지금껏 침묵으로도 모자라서 적극적으로 일조해 오신 아버지가 옳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적어도 네가 나에게 이게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 저는 사람을 실험하는 일이 옳다고 말해야 하는 겁니까?”
“그만 해라. 더는 듣고 싶지 않구나.”
“제발 그만 두십시오. 부탁입니다. 아버지.”
“넌 모른다. 이게 얼마나 큰 건인지.”
“사람을 실험하는 자체가 큰 건입니다. 뭐가 더 있습니까?”
“이제 와서 왜 이러는 거냐, 대체?”
“저는 한 번도 이러고 싶었던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
“그들에게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넌 이제 그만 손 떼라. 그 아인 내가 알아서 하마.”
“너무 많이 개입했고 너무 많이 알았습니다. 지금은 늦었습니다. 저는 그 아이를 지킬 겁니다. 그 애를 해하고자 하는 모두로부터 지킬 겁니다. 그러니 부디 그 모두에서 아버지는 빠져주십시오. 이게 제 마지막 부탁입니다.”
“그만 해라!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내가 말하지 않았냐?”
격해진 나 박사의 목소리가 사무실을 울렸다.
“뭘 모를 거라 생각하시는 거죠?”
“글쎄 너는 모른대도!”
큰소리로 외치며 책상을 주먹으로 내려치는 나 박사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레오도 저와 함께 그저 실험실 생쥐 같은 존재였습니까? 아버지에겐?!!”
“그게 무슨 소리냐?”
나 박사의 흔들리는 눈동자의 전율이 이석에게까지 전해졌다.
“다 압니다.”
“그게 무슨 소리냬두?”
“레오가 제 기억을 찾아줬습니다. 아버지가 저와 그 아이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다 기억이 났단 말입니다.”
“다 너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지금도 그렇고 다 너를 지키기 위함이란 말이다!!”
“무엇으로부터 말입니까??”
“무엇으로부터긴 포이보스로부터지! 그걸 몰라서 묻는 거냐?”
“저도 두려움이란 게 뭔지 알지만 더 이상은 용납할 수 없어요.”
“그 아이는 감정이 없다. 네가 원하는 사랑 따위 할 수 없는 아이란 말이다.”
“그 아이 감정이 없게 만든 사람이 아버지입니까? 하지만 어쩌죠? 실패하셨습니다.”
“실패하지 않았다.”
“저는 그 아이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아버지가 틀린 겁니다.”
“그 아이는 어릴 적 물 속에 빠졌을 때부터 서서히 감정이 사라져 갔다. 네가 본 것은 그 애의 눈물이 아니야!”
“그럼 누구의 눈물이란 말입니까?”
“그건 317-2호의 눈물이다. 그 아이의 것이 아니야.”
“317-2호 라고 부르지 마십시오. 사람입니다. 인격체입니다. 레오의 동생이고 다코타라는 어여쁜 이름도 있고 주변인들이 불러주는 디엘이라는 귀여운 애칭도 있는 착한 아이입니다. 한낱 실험체에 불과한 그런 짐승 같은 존재가 아니라고요!”
“이석아~”
나 박사는 낮게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이석은 아버지에 대한 크나큰 실망감과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에 목이 메었다.
“디엘이 아픈 것도 다 아버지 때문이 아닙니까?!”
이석에게서 울먹이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쾅
이석은 더 이상 아버지와의 대화를 이어나갈 자신이 없어 십대 아이처럼 거세게 문을 닫고 나와 버렸다.
“이석아!”
망연자실한 채 큰 소리로 아들의 이름을 부르는 나 박사의 목소리가 밖에 까지 들렸지만 그를 붙들러 나오진 않았다.
***
“저희 이거 텔레파시였죠?”
편하게 소파에 등을 기대앉은 이석이 등을 곧추세우고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물기에 젖은 서로의 짧은 머리칼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흔들거렸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감정의 주파수가 연결된 거야.”
“다 이뤄났으면서 왜 저한테 이번 테슬라 대회에 같이 참가하자고 한 거예요?”
“테슬라 대회 따위가 나에게 중요할거라고 생각하는구나. 난 그런 거에 관심 없어. 내가 관심 있는 건 너야, 해서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네 머릿속부터 발가락 세포까지.”
“그 말은......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그 말은...... 나를......”
“그래, 너를 좋아해. 그 말 맞아. 아니 우린 서로 좋아해. 그니까 내 말은 서로도 나를 좋아하고 나도 서로를 좋아하고 그니까 내 말은...... 우리 서로...... 하~”
이석이 웃음을 지었다.
“네 이름이 서로라서 그런가, 우리가 서로 좋아한다는 그 쉬운 말이 참 어렵게도 나오네.”
“교수님이 제가 아는 석이 오빠가 맞다면, 맞아요. 저도 좋아했어요. 아주 많이...... 어릴 적 일이긴 하지만 지금도 그 감정이 남아있죠. 원망과 그리움이 뒤섞여 있는 아주 복잡한 감정이... 더 알고 싶어요.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그런데 나는 우리가 다시 만난 그날을 기억하지 못해요. 왜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거죠?”
“누군가 강제로 지웠어.”
“누가요?”
“우리 아버지가.”
“아...... 왜죠?”
“왜냐하면...... 우리 아버지는 나쁜 사람이니까.”
“알아듣게 얘길 해줘요.”
“때가 되면 알게 될 거야. 지금은 너의 안전이 우선이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너 지금 위험해.”
“네?”
“하지만 걱정 마. 내가 널 지킬 거고 서준이도 널 지킬 거고 레오도 널 지킬 거고 너 스스로도 이제 널 지킬 수 있을 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어놨어 널.”
이석이 궁금함으로 가득 찬 서로의 동그란 눈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