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프로젝트 나르키소스
작가 : 도아
작품등록일 : 2018.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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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디엘-붉은 해안가 사건
작성일 : 18-03-24     조회 : 337     추천 : 1     분량 : 5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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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해안가 사건>

 

 “뭐, 뭐지......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당장 갑판위로 끌고 올라와!”

 

 그 남자는 또 다른 남자에게 다급히 소리치며 갑판위로 허둥지둥 도망치기 시작했다. 큰 키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우스운 꼴이었다.

 곧 그녀의 눈물이 떨어짐과 동시에 볼을 타고 흐르는 피와 바닥에 흘려진 위스키가 만나 갑판 아래는 어느새 붉은빛과 푸른빛의 물이 섞이고 넘쳐나 가득 차게 되었다. 순식간에 그들 모두가 물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밀쳐대며 계단 쪽으로 헤엄쳐 하나 둘 갑판 위로 올라갔다.

 

 315-3호는 의자에 묶인 채 자꾸만 가라앉으려는 몸을 간신히 부지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뒤로 묶인 손을 등 위쪽으로 움직여 자신의 브래지어 훅을 풀었다. 그러자 실리콘 패드 안에 숨겨져 발견되지 않은 작은 병 하나가 미끄러져 나왔다. 물위에 뜨다 말고 그 병이 가라앉으려 하자 그녀는 의자에 무게를 싣고 물속으로 따라 들어가 한 모금의 물과 함께 그 작은 병을 입 속으로 넣어 깨물었다. 조각난 병 조각이 입술을 찔러 피가 났지만 흘러나온 푸른 물질과 함께 입 속으로 삼켜져 들어갔다.

 

 315-3호는 갑판 위에 남은 남자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오다시피 요트 위로 올라왔다. 그제야 젖은 몸을 힘겹게나마 가눌 수 있었다. 그녀는 폭포 같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사람이 얼마나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당신들은 몰라. 스스로 해낼 줄 안다는 게 고작 약자를 이용해 강자에게 기생하는 건가? 평생 당신들보다 강한 자 밑에서 허우적거리며 인생을 보내겠지. 동정심조차 들지 않는 더러운 족속들, 후훗~ 그런데 어쩌지? 이제 푸른 물질은 없어, 없다고! 그러니 더 이상 휴를 괴롭히지 마. 그는 이제 푸른 물질을 만들지 못해.”

 

 “어째서?”

 육중한 남자가 물었다.

 

 “그는 기억하지 못할 테니까.”

 

 남자들은 그녀가 흘리는 파란 눈물이 파장을 일으키며 요트 안을 채워가는 것을 보며 몸을 떨었다. 두려운 광경이었지만 꼭 그래서만은 아니었다. 급작스레 추위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315-3호가 공포에 떨어선지 그녀의 불규칙한 체온 변화로 인해 주변 공기마저도 추웠다 더웠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눈앞에 벌어지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그들의 눈에는 정말 재앙과도 같았지만 빠져나가기엔 이곳에서 육지까지는 나름 거리가 있었다.

 

 “대장, 저 여자 좀 어떻게 해봐요. 이러다 요트가 정말 가라앉겠어요.”

 “당신이 눈물을 그친다면 해결될 일인가?”

 부하의 말을 듣고 육중한 남자가 315-3호에게 물었다.

 

 “말 그대로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 내가 더 이상 울지 않아도 이미 공기 중에 퍼진 양 만으로도 이 요트를 가라앉히는 건 시간문제니까. 하지만 날 그냥 보내주겠다고 약속하면 여기서 눈물을 그치도록 해 보지, 그럼 당신들은 약간의 시간이라도 조금 벌 수 있을 거야.”

 

 “좋은 상황은 아니군.”

 또 다른 남자가 중얼거렸다.

 

 요트 안은 점점 그녀의 파란 눈물로 채워지고 있었다. 그 때 지금껏 보았던 세 남자 외에 희끗한 머리의 남자가 족제비 같은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선상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더니 성큼성큼 그녀 앞으로 다가와 붉은 머리채를 휘어 잡고는 그녀의 상반신을 바닷속으로 떨어뜨릴 양 요트 밖으로 끌어내며 말했다.

 

 “지금 당장 눈물을 멈추고 해결책을 찾지 않는다면 더 이상은 너에게 공기가 필요 없게 될 거야.”

 “내가 당신 면상을 봐 버렸는데도 날 살려둘 건가, 미스터 크로포드? 그럴 거 같지 않은데?”

 

 봐선 안 되는 인물이었는데 싶은 생각이 들자 웃음이 나왔다. 그녀는 그를 알고 있는 눈치였다.

 

 "어서 해결책을 제시, 헉”

 

 순간적으로 그 남자는 호흡곤란 증세를 일으키며 얼굴이 온통 빨개진 상태로 바닥에 쓰러질 듯 사타구니를 부여잡았다. 그녀는 발을 뒤로 뻗어 뒤꿈치로 그의 중심부에 있는 약점을 세게 걷어차고는 어렵사리 몸을 바다 속으로 던질 수 있었다.

 

 하지만 바닷물은 잔인했다. 그녀의 손에 묶여진 튼튼한 밧줄이 무거워 몸이 가라앉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손목에서 피가 나도록 그녀는 손을 비틀어 댔다. 지금 죽는 것 보단 손에서 피가 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작은 손은 온통 살갗이 벗겨져 피투성이에 너덜너덜해진 천 조각처럼 흐늘거렸다. 손이 너무나도 아팠다. 비명을 지르려 하면 바닷물이 그녀의 입 속으로 마구 공격해 들어왔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피범벅인 손에서 밧줄을 풀어내고 그것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동안 그녀는 수면위로 올라가 공기를 한 움큼 들이마셨다.

 

 ‘헤엄쳐야 한다.’

 

 그들의 요트가 물속으로 가라앉을 동안 그녀는 파도와 바람에 몸을 맡기고 육지를 향해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그들이 쏘는 총성이 귓가에서 터지는 듯 했지만 두려울 것이 없었다. 오로지 한 가지 생각만으로 육지를 향해 돌진하는 동안 그녀를 가둬 놓았던 요트는 가라앉고 있었다.

 

 한 남자는 그녀를 죽이기 위해 총질을 해대기도 했으며 또 다른 남자는 그녀를 잡기 위해 물속에 뛰어들어 뒤 쫓아 오기도 했다. 요트 안에서 넘쳐 나던 파란 물은 바다로 넘쳐흐르기도 했고 파란색의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피어오르기도 했다. 이런 현상이 그녀 주변에서 일어나는 동안 쉴새없이 헤엄을 쳐 드디어 해안가에 도달할 수 있었다.

 

 무슨 생각으로 이토록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했는지는 그녀도 잘 모른다. 다만 사람의 힘으로는 해낼 수 없는 신의 기운이 인간 속에 내재되어 있다는 걸 그녀는 믿었던 것뿐이다. 드디어 금빛으로 빛나는 백사장에 발이 닿았다. 아름다운 풍경과 평화로워 보이는 사람들 속으로 그녀는 몸을 들이 밀었다. 하지만 인어의 다리에서 여인의 다리로 아직 변화되지 못한 것처럼 기력이 다한 그녀는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누군가로부터 도움의 손길이 오는 듯이 느껴졌다. 흐릿한 시야에서 다가오는 어느 손길이 물었다.

 

 “당신 총상을 입었군요.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죠? 피를 너무 많이 흘리고 있어요.”

 

 귓가에 울리는 누군가의 말소리 뒤로 선명하게 보이는 한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만 보였다. 그 많은 사람 중에 단 한 사람만 보였다. 환영이 아니었다. 그가 눈앞에 있었다. 사무치도록 사랑하면서도 평생을 그리워한 그의 모습이었다.

 

 “보고 싶었어요......”

 

 한 때 그녀를 설레게 했던 운명을 기다리는 반딧불에 대한 이야기보다도 훨씬 감동적인 한마디가 그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나도 보고 싶었어.”

 

 하지만 그녀는 과거가 그리웠다.

 이제 그녀는 그가 ‘보고 싶다.’

 

 그녀의 몸은 차갑게 식어가고 골드코스트는 그렇게 핏빛으로 번져가고 있었다. 파란 구름을 따라 달려 온 휴는 붉은 색으로 물든 모래사장의 골드 코스트에서 그녀를 발견했다. 다가와 그녀를 안자 찬 기운이 확 느껴졌다. 몹시 추웠다. 그녀는 몸을 바르르 떨며 더듬거리는 입술로 알아들을 수 없는 몇 마디 말을 내뱉었다.

 

 ‘당신은 나의 햇살, 황혼...... 나의 별’

 ‘이제 나는 어둠이 되어 가나요......’

 

 그것이 끝이었다. 그녀의 마지막이었다. 가슴에 묻기에는 아직 너무도 사랑하는데 파란 눈물이 메마른 그녀의 파란 눈은 초점을 잃은 채 눈을 감지 못하고 파란 하늘을 향해 있었다. 손으로 그녀의 눈을 감겨주기엔 차가운 그녀의 손목을 내려 놓기엔 아직 그는 그녀에게 할말이 너무나도 많은데 뜬 눈은 더 이상 그를 바라보지 못하고 차가운 손은 더 이상 그를 잡지 못했다. 어느 새 주변에 모여든 기자들과 관광객들 그리고 현지인들까지 핏빛으로 번진 바닷가에 서서 휴와 315-3호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녀의 식어진 차가운 기운으로 인해 하나 둘 추위에 떨기 시작했으며 곧 하늘에 모여든 파란 구름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지구상에서 처음으로 맞는 푸른 눈이었다. 모두의 머리위로 푸른 눈이 떨어지는 진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모두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푸른 눈은 그녀의 슬픔이자 그녀의 눈물이었다. 그녀의 슬픔을 모두가 맞고 있었다. 한번도 눈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것이 원래의 눈 색깔인가하고 의심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눈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겐 슬프지만 아름다운 잊지 못할 기억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

 

 한참 후에 비엘이 천천히 눈을 떴다. 315-4호를 보고 의연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녀의 의연함 속엔 슬픔이 있다는 것을 비엘은 느낄 수 있었다.

 

 “알아요. 이 사건.”

 

 모를 수가 없었다. 몇 해 전 전세계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붉은 해안가 사건’. 지금도 미궁에 빠져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사건이다.

 

 ”그녀는 나르키소스였군요” 비엘이 나지막이 말했다.

 

 “우리 모두에게는 삶의 이유가 있죠. 그리고 그 안의 많은 것들은 사랑이라는 것으로 집결되죠. 이렇듯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그들의 삶을 바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과정 속에서 사랑의 힘이 얼마나 크고 대단한 건진 느낄 수는 있지만 옳고 그름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는 걸 깨닫는 것도 중요하겠죠.”

 

 비엘은 속이 울렁거렸고 머릿속은 텅 빈 마냥 공허했다. 자신이 경험한 누군가의 기억은 비엘의 감정을 힘들게 했다. 기억 속 그녀는 누군가를 미치도록 사랑했고 그녀 또한 그 누군가에게 생명만큼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기억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의문점이 떠올랐다.

 

 과연 휴가 사랑한 이는 누구일까......?

 

 “그런데 그녀가 죽기 전 휴는 그녀를 찾아 헤맸을 뿐 함께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제 기억 속에 그의 기억까지 함께 있는 거죠?”

 

 “그가 원했어요. 그녀가 어떻게 죽었는지 누구에 의해 죽었는지 진실을 알기 원했으니까. 나르키소스에 대한 기억까지 살아났으니 어떻게 해서 그녀의 기억까지 갖게 되었는지는 휴가 기억을 찾으면 더 잘 알게 될 거에요. 이제 나머지 일은 당신 몫이에요.”

 

 “근데 왜 제게 이들의 기억을 보여 준거죠?”

 

 “당신이 저를 지켜줘야 하는 이유, 그 푸른 물질이 제 몸 속에도 있거든요. 저는 포이보스의 소속이었지만 나르키소스의 멤버라는 사실을 그들이 알아버렸어요. 푸른 눈물은 우리 나르키소스의 표식이에요. 디엘, 당신 절 지켜줄 수 있는거죠? 그렇죠?”

 

 미소를 모를 것 같은 그녀가 생긋 웃어 보였다. 디엘도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그녀에게 미소로 답했다.

 

 ***

 

 휴가 듣지 못한 315-3호가 그에게 하고자 했던 마지막 말이 비엘의 머리 속에 맴돌았다.

 언젠가는 그에게 들려줄 수 있기를 바랬다. 그녀의 아름다운 마지막 감성을......

 

 내가 사랑했던 그 애는 구름 안에 스며있다 가늘게 내비치는 한 가닥 빛 줄기처럼 따사로운 눈길로 감싸 안아주던 그런 아이죠. 두 눈을 찌르는 눈부신 햇살이기 보다는 그 애를 떠올리면 고요한 풍경 속에서 나를 젖게 만드는 아련함이 있어요.

 

 내가 사랑했던 그 애는 파도가 쓸고 간 오팔 빛 모래 자국처럼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내 안에서 머무르는 그리운 아이죠. 닿을 수 없는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말지만 황혼 속에서 나는 그 애를 보아요.

 

 내가 사랑했던 그 애는 비오는 밤 올려다보는 하늘에 숨은 별처럼 멀리 있어 보이지 않아도 늘 곁에서 바라보던 착한 아이죠. 차가운 빗방울이 어깨에 와 닿을 때에도 그 애를 떠올리면 부서지는 별빛이 내게로 떨어지는 걸 난 느낄 수 있어요.

 

 내가 사랑했던 그 애는 아프게도 이제 함께가 아니에요. 기억 속으로 소용돌이치는 바람을 붙잡아서라도, 가슴속에서 파도치는 바다를 달래서라도, 나 떠나가는 그 손길을 붙들고 싶지만 내 안에 빛나던 소중한 그 애는 멀리 사라져 가네요. 이제 나는 어둠이 되어 가나요.

 

 미안해요. 잘 가요.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닌데 그 애의 이름을 부르고 싶은데

 황혼 속에서 두 눈이 젖어요.

 아직도 내 가슴에 별이 떨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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