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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더스의 손
작가 : 천상인
작품등록일 : 2018.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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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더스의 손 1부
작성일 : 18-02-12     조회 : 391     추천 : 0     분량 : 10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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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더스의 손 1부

 

 

 빳빳한 어제를 잃은 차표 한 장, 내 마음의 주머니 속 깊이 구겨 넣으며 굴곡의 노선 위에 몸을 실었다. 차창을 스치는 풍경처럼 시절을 비스듬히 베어 문 별 빛, 이제와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내가 닿아야 할 목적지는 그 어디에도 없었는지 모른다. 내가 머무는 곳은 언제나 긴 노선 위의 버스가 잠시 정거하는 경유지에 불과했으므로, 그곳에서 나는 늘 짧은 세월 함께 덜컹이며 왔던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다시 익숙해져야 할 경유지의 낯선 사람들을 맞이하곤 하였다. 퍼질 것 같은 걸음의 버스가 역에 들어서자 사람들의 관절에 굽은 어둠 일으키며 들어오는 달빛, 제각기 다른 생의 봇짐 들고 버스에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 또는 발을 구르며 아직 오지 않은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나는 잠시 커피 한 잔 들고 그들 주위를 기웃거려 보는 것인데, 그럴 때마다 커피는 왜 멱살을 잡듯 목구멍을 누르고 혀끝엔 씁쓸함이 남는 것일까? 한 번도 엔진 소리를 멈추지 않았던 내 세월의 바퀴, 그 닳고 닳은 바퀴가 나를 데리고 경유했던 수많은 정거장들이 시린 허공 속에 별빛처럼 번지는 밤, 막 버스에 오르는 저 느린 율동의 그림자들, 저들은 지금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

 

 버스를 타고 역으로 오는 동안 내가 탄 버스는 현주 누나와의 추억이 묻어 난 곳을 몇 군데 지나쳤다. 그곳에 있던 의미들, 하얀 백지 위에 불면의 밤을 빌어 적어간 내 뜨거웠던 시간들, 그 모든 것들이 밀려 온 파도에 허물어지는 모래성처럼 의미를 잃고 사라져 갔다.

 

 버스에서 내린 나는 우두망찰 버스가 사라져 가는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도 내리라고 강요하지 않은 버스에서 스스로 내렸으면서도, 마치 한바탕 실랑이 끝에 질질 끌려 밖으로 내동댕이쳐진 것처럼, 정신은 이곳저곳 뜯긴 매무새처럼 헝클어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역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진정으로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캄캄한 은하계 속에서 그저 태양이 비추어 반짝이는 수많은 별처럼 보였을 뿐, 살아있어 느껴야 하는 것은 오로지 혼자뿐인 것 같았다. 벌써 역 정문에 걸린 대형 시계의 시침은 내가 버스에서 내려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동안 한 바퀴를 다 돌았다. 하지만 나는 그 시간이 수십 년, 수백 년 아니 세월로 비유할 수 없는 영원한 세계 속에 서 있는 듯했다. 내 걸음은 마치 발 닿을 수 없는 허공 위를 너울거리며 떨어지는 잎 새처럼 느리고 불안했다. 잎 새가 닿을 곳은 발 딛고 우뚝 설 수 있는 땅이 아니라, 바스라기는 절규로 으스러져야 할 바닥인 것처럼, 하지만 나에게 그것은 마지막 희망이었다. 허공 속을 허우적이는 고통보다 차라리 바닥이라도 좋으니 그곳에 닿아 막막함이라도 지우고 싶었다. 대합실로 들어가기 전 막 도착한 기차의 육중한 무게가 동공을 눌렀는지 나는 잠시 휘청거렸다. 어디서부터 끊겼는지 알 수 없는 내 세월의 단면들이 떠올랐다. 그 어디선가 툭 끊겨 버린, 그 끝은 레일의 절단면처럼 구부러지고 날카로웠다.

 

 

 

 “손님, 뒤에 사람들이 기다리잖아요. 표를 끊으실 건가요?” 컴퓨터 자판 위에서 한참 분주하던 손이 멈춘 여직원의 미간이 좁아졌다.

 

 “죄송합니다.” 나는 통제권을 벗어나 더듬거리는 손으로 겨우 지갑에서 만 원짜리 두 장을 꺼내 홈 속으로 내밀었다.

 

 “손님?”

 

 “아! 네.”

 

 “어디로 가실 건데요?” 내가 말없이 멍하게 서 있자 여직원은 구긴 인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럼에도 뭐라고 대꾸할 수 없는 나는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

 

 “손님, 생각나지 않으시면 잠깐 옆으로 비켜 주시던가요.”

 

 “죄송해요. 여기서 기차를 타고 나아갈 수 있는 곳이라면 아무 곳 이래도 좋습니다.” 나는 평소답지 않게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

 

 차창 너머로 지나는 풍경들을 바라보며 슬픔도, 분노도,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차는 얼마나 달려 나갔을까? 나도 모르게 잠깐 잠이 들었던 건지 어지러운 의식 속에 머문 나의 기억을 현실로 되돌려 놓기 위해 나는 정신을 집중했다. 잠들기 전 어둠 속에 묻히고 있던 풍경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 풍경처럼 나의 기억들도 조금씩 잊히기를 소망 했다.

 

 기차에서 내리자 역내를 비집고 들어온 찬바람 속에 들어찬 농도 짙은 어둠의 무게가 느껴졌다. 나는 그 무게를 털어내느라 잠깐 흔들렸다. 몸을 틀어 왼쪽으로 난 골목길로 접어들자 그곳은 마치 검은손이 골목을 비틀어 쥐고 있는 것 같았다. 날이 좀 더 어두워지면, 손아귀의 압력도 증가하여 골목은 이내 뒤틀리고, 중심부 어딘가 툭하고 끊어질 것만 같았다. 곧이어 골목길 양 사이드에 줄줄이 늘어서 있던 유리벽 조명등이 켜지자, 골목은 낯선 도시에 버려진 나만큼이나 초라한 자태로 은밀한 곳에 숨겨두었던 치부를 드러냈다. 유리벽에 비친 젊고 날씬한 여자들은 고급 백화점에 진열된 탐스런 복숭아 같았다.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둥근 복숭아의 곡선을 부드럽게 애무하다가 어느 순간 단맛의 예감이 느껴지는 지점에서 모든 이성을 버리고 한입 깨물어 먹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오빠! 거기 멋있게 걷는 오빠! 왜 그리 헤매고 다녀?” 낯선 곳의 이질감 때문에 나는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여기 평택역 처음이야? 오빠?” 수많은 사연들을 역내에 풀어놓고 기차가 떠났지만 또다시 꼬리를 물고 역내로 진입한 기차소리가 골목에 부딪혀 으스러지고 있었다. 내 기억 속엔 아직도 현주 누나의 체취가 남아있건만 가증스러운 내 욕정은 눈치도 없이 빳빳하게 고개를 쳐들었다.

 

 

 

 “오빠! 그렇게 돌아다녀 봤자, 그 보지가 그 보지야! 뭘 그리 꾸물대는 거지? 서비스만 잘 해주면 되는 거 아니야?” 그곳이 보일 듯한 짧은 원피스를 입고 유리문 뒤에 서 있는 여자들의 입에도 걸친 것이라고는 달랑 팬티 한 장뿐인 것 같았다. 나는 육체도 정신도 그렇게 발가벗고 훤히 드러내 놓은 여자들을 보기가 민망해서 빳빳하게 쳐든 나의 그것과는 반대로 고개를 푹 숙였다. 나의 걸음은 현주 누나와의 추억 속에서 빙빙 돌고 있던 내 기억의 보폭만큼이나 느리게 여자들 주위를 서성거렸다.

 

 

 

 “저 오빠 아직도 저러고 있데이.” 나는 골목을 다시 한 번 돌고 아까 골목 입구에서 호객하고 있던 그녀 앞으로 다시 돌아왔다.

 

 “오빠! 그냥 이리 들어와요. 제가 잘해 드릴게요.” 그녀는 남자라면 누구나 탐낼 몸매와 얼굴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 또한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아 딱 내 손바닥 안에 가득한 포만감으로 머물 수 있는 사이즈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그녀를 따라 들어가지 않았다.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내가 벌써 어둠 속을 한 시간이나 방황한 것은, 숙기가 없어서도 여자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도, 섹스를 하기 싫어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오빠 누구 찾는 사람 있는 거야?”

 

 “글쎄, 내가 그렇게 보여?” 짧은 원피스 한 장 달랑 입고 있는 여자 앞에서 나는 당당하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나는 비스듬한 자세로 물었다.

 

 “너처럼 쭉쭉 빵빵 샤방샤방 말고 약간 통통하다 싶은 정도에 키는 내 머리 하나만큼 작고,”

 

 “어이구 대단한 인물 납셨네!. 여기서 이상형을 구하는 거야? 여기에 그런 여자 있으면?”

 

 “아니 그냥 혹시나 해서.”

 

 “뭐 빚이라도 청산해주고 데리고 살 거야?” 그녀가 타박을 하자 나는 더욱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얼굴이 후끈거렸다. 골목이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인지 내가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옆 쪽 다른 포주 집은 벌써 손님 계시를 했는데 옆집 여자들보다 자신이 더 날씬하고 예쁘고 풍만한데도 아직도 오지 않는 손님 때문에 자존심이 상한 게 분명해 보였다. 거기다가 나 또한 들어오지 않고 무슨 애인구함 광고 같은 이야기나 하고 있으니 짜증이 안 난다면 이상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 앞에서 더 이상의 선은 넘지 않겠다는 듯 불편한 속내를 참고 있는 티가 뚜렷했다.

 

 

 

 “오빠 꼭 아까 오빠가 말한 그런 여자랑 해야겠어?”

 

 “응,”

 

 “오빠 애인이었어?” 나는 순간 숨이 막힐 듯 답답했다.

 

 “애인은 애인이었지. 그것도 나보다 두 살 연상.”

 

 “그게 무슨 말이야?” 물 컵을 들면 말하지 않아도 물을 따르고 술 컵을 들으면 술 따르라고 하지 않아도 술을 따라야 하는데, 그녀는 척한 내 말에 척하고 알아듣지 못했다.

 

 

 

 ********

 

 “어머나! 여기 왔으면 달콤한 여자 입술을 빨아야지, 어디서 쓰디쓴 술을 빨고 온 거래?”

 

 그녀는 한 시간이 지나서 다시 나타난 나를 보자 헤어졌던 반가운 친구를 만난 듯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나는 그런 그녀가 마치 꿈속의 사람처럼 느껴졌다.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져도 그 어둠을 밝혀주는 불빛들은 언제나 건재했다. 그 불빛이 아무리 흐리고 초라한 것이었던들, 내가 던져진 이 어둠 속보단 나았다. 내게 현주 누나는 저 거리를 무수히 밝히는 빛들 중 하나에 불과했을까? 하지만 그렇게 치부하기엔 그 빛 알갱이 하나가 꺼진 자리에는 마치 우주가 된 듯 광활한 어둠이 펼쳐졌고 또한 깊었다.

 

 담벼락에 가린 귀퉁이, 빛도 사람들의 발자국도 기차 소리도 드나들지 않는 그곳엔 슬픔처럼 눅눅한 공기를 먹고 자란 이끼와 이따금 부딪혀 온 바람의 흔적만 금이 쫙쫙 갈라진 모습으로 가득했다. 좁은 골목에 쌓인 어둠은 이제 고체가 된 듯 내가 감히 들 수 없는 질량으로 변해 거리를 무겁게 누르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 어둠 속을 추락하여 지상 아래로 처박힌 것 같았다. 보도블록 하나의 경계로 이곳은 어둠, 저곳은 밝음, 여기서 몇 발짝만 걸음을 옮겨 보도블록 저편으로 가면 그곳엔 일상의 사람들이 살아간다. 보편적인 삶이 그곳에 있다. 그리고 여긴 낯선 삶이 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이곳에 대해 낯설거나 아파하지 않기로 했다. 세상 모든 것들이 어차피 하나의 경계로 이편과 저편을 살아갈 것이다. 나무의 화려한 줄기와 꽃이 위에서 피고 지고, 나무의 뿌리가 아래에서 팽창하듯.

 

 

 

 “오빠 도대체 그 짧은 시간에 얼마나 빨아댄 거야?”

 

 “응 얼마 안 마셨어.” 맥주 한 병과 소주 한 병을 섞어 마신 나는 아직 취하지 않았지만, 그 정도 마시면 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입에서도 알코올 냄새가 조금 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서비스 잘해 줄 거지?” 나도 모르게 딱 내가 마신 알코올의 양이 용기로 가장하여 솟구쳐 올라왔다.

 

 “이제야 발품 판 것이 억울한가 보지?”

 

 “미안 그래도, 여기서 네가 제일 마음에 들어. 나랑 말도 섞었잖아. 그러니 몸도 섞어보지 뭐. 마음까지 섞어 주면 더 좋고.”

 

 “어머머 이 오빠 보래!”

 

 “농담이야.”

 

 “오빠 저기 끝 보이지? 화장실 옆에.”

 

 그녀가 내 신발을 들어 신발장에 넣고 슬리퍼를 내게 건네며 문을 열자 좁은 복도가 보였다. 여인숙 구조처럼 좁은 복도를 중심으로 양 옆에 방문으로 보이는 것들이 몇 개 있었다. 복도를 걸으며 나는 가식적인 웃음 같은 인공 향을 맡았다. 복도는 어두침침했다. 천장 위엔 전구가 박히지 않은 소켓이 전구가 꽂혀 있는 소켓보다 더 많았다. 내가 살아온 세월 속에도 저렇듯 박혀있어야 할 전구가 여러 개 빠져나가고 텅 빈 어둠이 들어찬 소켓 구멍이 여러 개 있을 것이다.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서자 그녀는 곧바로 굽이 높았던 구두를 벗고 나를 따라 들어왔다. 좁은 방엔 침대가 하나 놓여 있었고, 조그만 탁상 위엔 컴퓨터 모니터와 분홍색 갓을 씌운 스탠드가 있었다. 그녀가 내 앞에 서서 손바닥을 들이밀며 “숏타임 10만 원, 스페셜 20만 원, 1시간 30만 원” 이라고 했다. 내가 긴 밤은 그럼 얼마냐고 묻자 그건 너무 비싸서 말해주지 않을 거라고 했다. 나는 어제 지역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생산직 한 달 평균 월급과 시급을 떠올려 보았다. 공장에서 한 시간 일하면 받는 2500원, 그에 비하면 여자의 몸값은 터무니없게 비싼 것이었다. 공장에서 열흘을 넘게 일해야 받는 돈, 그 돈과 이 여자와의 한 시간이 동급이라니, 싸구려 사랑이 아니라 정말로 이 세상에서 제일 비싼 여자의 몸 퉁가리가 아닐 수 없었다. 내 앞에 마주 선 그녀는 키가 10센티미터 확 줄어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10만 원을 계산했다.

 

 

 

 “그럼 오빠 준비할 동안 옷 벗고 있어.”

 

 돌아나가는 그녀에게 왜 그렇게 굽이 높은 걸 신고 있었냐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내 운동화 뒤 굽에 신문지를 똘똘 말아 넣은 적이 있었다. 그날은 그동안 폰팅 했던 여자 친구를 직접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폰 벗을 직접 만난다는 것이 설레면서도 두려웠던 나는 내 작은 키를 감추기 위해 운동화 안에 되도록 많은 신문지를 똘똘 말아 넣었던 것이다. 분홍색 빛이 드리운 방안은 어둠과 밝음의 중간 톤이었다. 그녀는 물이든 조그만 대야를 들고 들어왔다.

 

 “오빠, 뭐해요?” 나는 여자가 대야를 방바닥에 놓고 자신의 것을 닦고 있는 모습이 낯설고 민망하기도 해서 내 것을 오른손으로 가린 채 침대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연애 안 할 거야?” 그녀가 다그쳤다. 나는 그녀가 시키는 대로 대야 앞으로 가서 마치 푸세식 화장실에서 볼일 보는 자세로 앉았다.

 

 “오빠 이제 보니 이런대 처음이구나.” 나는 부끄러웠다. 그녀가 두 손으로 이미 발기한 내 것을 물로 닦아내자 나는 마치 온탕에 온 몸을 담그기 위해 들어설 때처럼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 곧이어 그녀는 내 항문도 닦아 주었다. 그 순간 나는 불현듯 정수형이 떠올랐다.

 

 

 

 그날 택시의 기름을 조절하여 현주 누나와 내가 가야산 전망대에 이를 수 있게 해 준 정수형을 나는 현주 누나보다 2년 더 빨리 알게 되었다. 그는 내가 입사했던 황금 볼링장에 나보다 몇 년 빠르게 입사하여 핀 셋팅기를 관리하고 있었다. 그때 처음 여수 역전으로 나를 데리고 간 건 정수형이었다.

 

 

 

 “형 그게 뭐예요?”

 

 “한영아 너도 이거 고추에 발라라.”

 

 “에잇! 싫어요.”

 

 “야 인마! 이거 발라야 오래 한다. 금방 싸고 나면 돈 아깝잖아. 본전은 뽑아야지.”

 

 정수형은 택시 운전을 하며 자주 동료들과 도박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도박판에 빠져 1억이란 빚을 졌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후 투신자살을 했다고 했다. 내가 그 소식을 들은 건 정수형이 죽고 나서 몇 달 후였다. 왜 이제야 말하냐고 내가 울면서 정수형 친구인 재준이 형에게 묻자 그는 너도 그리될까 봐 좀 기다렸다고 말했다. 재준이 형도 내가 실연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그런 나날이었다. 나의 소중했던 것들. 엄마, 정수형, 현주 누나 모두가 내가 손 내밀자 금으로 변해 내게 더 이상 숨결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침대에 뉘이고는 곧이어 내 것을 입에 넣고 마치 아이스크림 빨듯이 흡입했다. 처음엔 부끄러웠지만 곧이어 그녀의 뒤척임에 익숙해졌다. 나는 바다 한가운데 배를 띄우듯 나를 그녀에게 내 던져 놓고 그녀의 바다가 출렁이는 대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멀리 순풍이 불어오는 듯했다. 그녀가 내게 허락하자 나는 내 단단한 노를 그녀의 바다 안에 담그고 천천히 노를 젓기 시작했다. 내가 노를 저을 때마다 그녀는 출렁이는 신음을 튀어 올렸다. 나는 그녀가 밀어 올리는 큰 파도 때문에 이따금 온몸이 요동치기도 했다. 나는 순간 그녀의 깊은 바닥에 닿고 싶었다. 그 바닥에 닿으면 나는 더 이상 이 잔인한 세월의 허방 위에서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왜 그만 두는 거야?"

 

 "미안, 안 될 것 같아." 나는 노를 그녀의 바다에서 건져 올리며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내 몸은 땀이 범벅이 되었다.

 

 “힘들지? 이렇게 힘든 걸 남자들은 왜 그렇게 집착하는지 몰라.”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수건 한 장을 내밀었다.

 

 “그러게 말이야. 어느 누구는 섹스를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라고 하지만 나는 형벌이라고 생각해.”

 

 “설마 형벌까지야.” 이제는 그녀가 푸세식 화장실에 앉은 자세로 그곳을 닦으며 말했다.

 

 “하긴 이 짓 안 하고 어떻게 인간이 번성할 수 있겠어?”

 

 “오빠 옷 입고 기다려요.”

 

 “아니, 저.”

 

 “왜?”

 

 “30분 얼마라고 했지?”

 

 “30분이 아니고 40분에 20만 원.”

 

 “그래 그럼 우리 맥주나 한 잔 하며 이야기나 하자.”

 

 나는 이 낯선 도시의 어둠을 맨 정신으로 헤집어 홀로 여인숙 방에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그래 그럼 먼저 계산하고 올게. 냉장고에 맥주 있으니깐 꺼내서 마시고 있어 오빠.”

 

 

 

 *********

 

 “맞아 아까 오빠가 그토록 찾아다닌 애인이 궁금하네.” 나처럼이나 뜨거움의 고통이 뭔지 알 것 같은 마른 오징어 한 마리를 들고 들어 온 그녀가 말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맥주 한 캔을 원샷 했다.

 

 “뭐야 오빠! 여자보다 술이 고팠구먼.” 그녀가 오징어를 찢으며 말하자 내 가슴 어딘가에 있던 마른 추억들도 쫙쫙 찢어지는 것 같았다.

 

 “모자라면 내가 돈 더 낼게.” 나는 다시 맥주 하나를 들며 말했다.

 

 “누가 맥주 값이 아깝데?” 그녀가 오징어를 잘근잘근 씹으며 말했다.

 

 “내겐 애초에 직통 같은 건 없었어.” 나는 내 가슴 속에 있는 마른 추억 하나를 잘근잘근 씹었다.

 

 “직통이 없다니?”

 

 “모든 것이 어쩌면 경유지에 불과할지도 몰라.”

 

 “어라 오빠 점점.”

 

 “사람들은 죄다 바보들이거나 의식 불명인 것 같아. 자기들이 어디로 가는지 전혀 몰라.”

 

 “그럼 오빤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알아?”

 

 “죽음.” 모든 것이 경유지에 불과하거늘 한때 지나온 현주누나 또한 죽음으로 가는 과정 속에 있는 경유지에 불과 할 텐데. 내 생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졌다.

 

 “에이 오빠도 아무리 실연을 당했다고, 죽음을 생각하기엔 아직 너무 이르잖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야. 내가 실연당했다고 죽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죽음으로 가고 있다는 말이야.”

 

 “그런데 사실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어디 있어?”

 

 “아니 몰라. 머리로 아는 거 하고 가슴으로 절실하게 아는 거 하곤 달라. 머리는 금방 잊어버리지만 가슴은 영원히 기억하는 거지.”

 

 “어머 점점, 애인 이야기나 해보라니깐 왜 갑자가 죽음 타령이야?” 그녀가 맥주를 마시며 말했다.

 

 “미안. 그런데 궁금한 거야?”

 

 “뭐 마땅한 이야기가 없잖아. 한 판 더 할 것도 아니고. 호호” 그녀는 가식적이지도 않고 쿨하며 매우 솔직하게 말했다.

 

 “세상엔, 내 것이거나 내가 안주할 곳은 아무 곳도 없는 것 같아.”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거든,”

 

 “난 저주에 걸린 것 같아. 내가 손 내밀면 모두가 떠나버려. 그렇게 건강하던 강아지는 내가 쓰다듬으면 죽고, 그렇게 쾌활하던 사람은 병이 나고, 내가 원하면 떠나거나 죽거나.”

 

 “그건 너무 무서운 소리 같아. 우연이겠지. 평생 그러면, 그건 말이 안 되잖아.”

 

 “그러게 말이 안 되지? 정말 말이 안 되는 이야기야.” 급하게 삼킨 맥주가 목에 걸려서 나는 재채기를 했다.

 

 “젊은 사람이 왜 그래? 희망을 가져봐. 오빠.”

 

 “하하 고맙네. 눈물이 다 나려고 한다.”

 

 “그런데 오빠 애인이랑 어떻게 헤어진 거야?

 

 “다른 놈한테 시집 가버렸어.”

 

 “엥 그럼 양다리? 아니면 오빠만의 짝사랑?”

 

 "글쎄" 나는 그녀의 말대로 정말 나 혼자만의 짝사랑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 차라리 짝사랑이었다고 치부하면 덜 괴로울 것도 같았다. 나는 다시 맥주 캔 하나를 들었다. 가득 찬 질량이 느껴졌다.

 

 "오늘 맥주 바닥 날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이, 호호"

 

 "모자랄지도 모르니 몇 병 더 가지고 오던지." 내가 지갑에서 만 원짜리 두 장을 꺼내 놓으며 말했다.

 

 "그럼 오빠 일 분만 기다려. 이모한테 심부름시켜 놓고 올게.

 

 그녀가 잠깐 나갔다 들어오는 사이 나는 금세 맥주 한 병을 해치웠다. 질량이 사라진 가벼운 캔을 잡고 아귀에 힘을 주자 캔이 구겨졌다. 내 안의 모든 기억들도 사라지고 나 또한 구겨져 없어졌으면 좋을 것만 같았다.

 

 "그놈 집안에서 빚을 갚아 줬어. 자그마치 3억이라고 했어."

 

 "그럼, 그 여자 빚 갚아 준 거 때문에 그 집으로 시집 간 거야?"

 

 "뭐 그럴지도 모르지."

 

 "그럴지도 모른다니?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여자가 빚 때문에 간 것이 확실해 보이구먼.“ 나는 빚 때문에 그녀가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시집을 갔다는 사실을 끝끝내 부인하고 싶었다.

 

 "뭐 그래? 70년도도 아니고 요즘이 어떤 시댄데.“

 

 “요즘 시대엔 그럼 하루 세끼 안 먹고 사니?”

 

 “그럼 뭐 그 여자도 우리와 다를 바 없구먼."

 

 "어떻게 그녀가 너희들과 같지?" 내 목소리가 조금 커졌지만 그녀에게 나쁜 감정은 없었다.

 

 "세상에 우리만 창녀가 아니야. 사랑 없이 오로지 현실 때문에 시집가는 거라면, 그 또한 우리가 푼돈을 위해 몸을 파는 거랑 무엇이 달라?"

 

 "아니야 그녀는 너희들과 달라." 내가 사랑했던 그녀, 그녀와의 추억, 그 모든 것들을 아름답게 합리화 하고 싶은 내 마지막 자존심은 죽지 않고 단단했다.

 

 "뭐가 다른데 도대체?"

 

 "그녀는 깨끗했으니까. 그녀는 순결한 채로 그 남자에게 갔어."

 

 "아이고! 소설을 쓰세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다시 오징어를 찢었다. 내 가슴도 그녀가 찢은 오징어처럼 갈기갈기 찢기고 있었다.

 

 "만약 그 여자가 오빠를 진실로 사랑했다면, 참나 그건 오빠 정신건강에 더 나쁘겠다."

 

 "그게 무슨 뜻이야?"

 

 "사랑했다면, 그 사랑의 값어치는 3억이란 돈의 가치보다 못한 것일 테니까. 호호 어쩌다 사랑의 가치가 그렇게 바닥이 되었을까." 그녀의 말을 듣고 있자니 이젠 오징어처럼 찢어진 내 가슴으로도 모자라 나는 아까 그녀가 밑을 닦고 버린 티슈가 된 것만 같았다.

 

 

 

 *************

 

 싸구려 여인숙을 찾아 돌아가는 길은 마치 광활한 우주 같았다. 한 순간 내가 방향을 잘못 잡으면 끝없이 추락하여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다음 날 오전에 나는 어제 보았던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키가 170이 넘으면 딱이에요. 그 보다 작으면 기계 만지는데 어려움이 있거든요.”

 

 “네 전 175입니다.” 기다려도 내게 오지 않는 것들은 많았지만, 다행히 중학교 내내 자라지 않던 내 키는 내가 17살 되던 그 해, 그동안 못자란 것을 합해서 한 방에 10센티미터 이상이 넘도록 자랐다.

 

 “와 딱이네요! 신분증 가지고 사무실로 오세요.” 나는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빛 쪽으로 천천히 한 발을 내딛었다.

 

 “넌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살지 마. 넌 꿈이 있잖아. 그 꿈을 이뤄. 내가 널 놓아 주는 거야. 난 한영이 널 믿어. 넌 내가 그동안 본 사람들 중 제일 뜨거운 사람이거든.” 무수히 많은 인파들 틈에서 현주 누나의 마지막 말이 다시 한 번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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