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엘프와 함께 노래를
작가 : 초심토끼
작품등록일 : 2018.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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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리돌프라 가의 세 가속
작성일 : 18-02-20     조회 : 267     추천 : 1     분량 : 7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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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는……?’

 눈을 떠보니, 낯선 천장이었다라는 만화 같은 말을 사용할 날이 올 줄은 몰랐다. 나뭇결이 살아있는 천장에, 그 밑을 바치고 있는 통나무 서까래. 그 사이를 메꾸고 있는 건 황토일까. 은은한 주황빛이 눈에 들어왔다.

 ‘대체, 뭐지?’

 기억이 흐릿했다. 분명 자신은 일주일동안 감옥살이를 마치고 리돌프라 가로 향했을 터였다.

 

 자신은 간첩이 아니다. 이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불안했던 원준이지만, 의외로 의혹은 쉽게 풀어졌다. 어떤 로브를 입은 엘프가 구슬을 가져오더니, 원준에게 물었다.

 ‘당신은 간첩입니까?’

 지금 생각해도 웃기는 질문이었다. 설령 간첩이라 해도 예라고 할 리가 없는 질문. 당연히 원준은 아니었기에 아니라고 대답했다. 근데 그걸로 끝이었다. 정말 끝이었다. 로브를 입은 엘프는 알프레드를 보고 고개를 저었고, 알프레드는 노발대발 난리를 피웠다.

 인간 국가와의 협상은 예상대로 결렬이었다. 돈을 줘가며 원준을 데리고 갈 국가는 없었다. 애초에 이 세계 인간과는 단 하나의 접점도 없었지만 막상 버려지니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그렇게 원준은 석방됐다. 석방이라 해도 자유의 몸이 된 것이 아닌 팔에 수갑을 채운 채로 리돌프라 가까지 호송된 것이지만 일단은 석방이었다.

 “빨리 꺼져. 이래서 돈 많은 귀족들은……”

 알프레드는 원준을 리돌프라 입구에 내려놓고는 그대로 돌아갔다. 어차피 수갑을 벗으려면 그 아가씨에게 부탁해야 한다는가. 원준은 입을 앙다물었다. 그 치안관만 생각하면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혼자 남은 원준은 벨을 누르고 기다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기억이 끊겼다. 문이 열렸는지 열리지 않았는지 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원준은 어떤 초록빛을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설마 기절한 건가?’

 정황상 그게 맞아 보였다. 창문을 보니 막 내렸을 때 푸른색으로 맑았던 하늘은 어느새 노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왜 기절했는지, 어떻게 기절했는지는 아직도 모르는 일이었다.

 ‘설마 나도 몰랐던 지병이 있었다는 건 아니겠지……’

 무심코 원준은 몸을 떨었다. 그때,

 "왁!"

 원준의 앞에 얼굴 하나가 불쑥 나타났다.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커다란 밤색 눈동자. 나이는 자신보다 어릴까? 바이올렛 빛이 도는 머리칼은 끝으로 갈수록 둥글게 말렸다.

 ‘귀엽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소녀였다. 자신이 있던 소속사에도 이런 애는 보기 힘들다고 할까? 스카우트가 보면 섭외하려고 난리도 아닐 외모였다. 다만 단 한 가지 그녀의 외모를 해치는 게 있었다.

 “아가씨, 얘 일어났어.”

 소녀는 완전히 무표정이었다. 마치 포커 플레이어를 방불할 정도로 소녀의 표정은 멈춰있었다.

 "다행이네요."

 그 소녀에게 미성의 목소리가 답했다. 원준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반가운 목소리였다.

 "반가워요. 엘리온 리돌프라에요. 저를 기억하나요?"

 무심코 숨을 들이마셨다. 잊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구해주었다. 이 자체로도 잊을 수 없지만 그녀의 외모 또한 원준의 기억에 큰 각인을 남겼다. 타인의 외모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조각 같은 외모라고 표현하던가. 얼굴부터 몸의 선까지 완벽한 외모였다.

 원준은 팔을 침대에 대고 상체를 일으켰다. 하지만,

 “어?”

 팔이 후들거려 상체를 지탱할 수 없었다. 그대로 원준은 고꾸라졌다. 어안이 벙벙해진 원준은 다시 팔로 몸을 밀었지만 역시나 실패했다.

 “저릴 거야. 뒷덜미에 핏줄을 건드렸어. 오늘까지는 움직이기 힘들걸?”

 그때, 늠름한 목소리가 원준을 막았다.

 엘리온의 뒤쪽에서 한 소녀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키가 큰 소녀였다. 자신의 키와 비슷할까나? 진한 녹색 탱크톱에, 쫙 붙는 반바지, 그 위로 섬세한 근육이 단련된 복부를 노출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원준의 눈에 띄었던 건, 그녀의 풀색 머리였다. 마지막 기억에 남았던 그 초록색과 너무 닮았다.

 "실비!"

 "난 잘못 없어 아가씨. 일주일만에 돌아왔는데 웬 인간이 집 앞에 서있으면 제압하는 게 당연하거 아니야?"

 "하……"

 엘리온은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저었다.

 "왜? 내가 여기 있는 이유가 뭔데, 아가씨를 호위하기 위해서 그런 거 아니야. 혹시나 이 인간이 간첩이었으면 어떡해?"

 "간첩이 현관문 앞에 가만히 서있을까요?"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예, 그런 걸로 해두죠. 얘기 못한 저도 잘못이 있으니."

 엘리온은 말을 자르더니 원준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가씨 가지 말라니까. 위험하다고."

 "당신한테 한 방에 쓰러진 인간이 말인가요?"

 "아니, 그건……"

 "그리고 실비,"

 엘리온이 뒤를 돌아봤다.

 "제가 인간한테 질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실비는 작게 신음했다.

 "아니."

 "그럼 됐네요. 이 방에는 당신도 있고 프란도 있으니."

 "하……."

 실비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가씨 마음대로 해. 그렇게까지 고집부리면 뭔가 있겠지."

 "고마워요 실비."

 엘리온이 후훗 웃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원준을 바라봤다.

 "많이 불편한가요?"

 "아, 아니요. 괜찮습니다."

 "제 앞에서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답니다."

 엘리온은 갑자기 원준에게 다가가더니 원준의 목에 손을 대었다. 부드럽고 따뜻한 손가락의 감촉과 그녀의 몸에서 풍겨오는 은은한 난꽃 향기에 원준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la vie hana ons……."

 엘리온은 눈을 감더니 무슨 말을 읊조렸다.

 "아가씨,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조용히!"

 엘리온이 실비의 말을 잘랐다. 그러고는 안절부절 못하는 원준에게 당부했다.

 "잠시만 눈을 감으세요."

 엘리온은 계속 주문을 읊었다.

 "어, 어어?"

 원준은 눈을 감았다. 하지만 곧 번쩍 떴다. 번쩍 뜨였다. 원준은 느꼈다. 그녀가 주문을 외우면 외울수록 몸이 가벼워지는 걸…… 심지어 머릿속도 신선한 바람을 맞은 듯이 상쾌해져갔다.

 "원준 조용히……"

 "아."

 원준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자 엘리온이 웃었다.

 "그렇게 긴장하실 필요 없어요. 곧 끝난답니다.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세요. 그럼 더욱 좋답니다."

 행복했던 기억이라. 원준은 자신의 일집 시디를 받던 날을 생각했다. 비록 데모시디였지만 프로듀서는 매우 대견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봤다. 원준은 프로듀서의 그 표정을 잊을 수 없었다.

 "끝났어요."

 엘리온이 나긋이 고했다. 원준은 눈을 떴다.

 “몸은 좀 어떠세요?”

 엘리온은 빤히 원준을 바라봤다. 원준은 목을 돌려봤다. 그리고 어깨와, 손가락 하나하나 점검했다. 그러고는 탄성을 내질렀다. 근육 걸림이 모두 사라졌다. 어색함도 없어졌고, 몸의 모든 부위에 온전히 힘이 실렸다.

 "잘됐네요."

 엘리온은 원준의 표정을 보고 만족한 듯 미소를 뗬다. 하지만 상체를 뒤로 빼려던 엘리온은 갑자기 휘청거리더니 원준의 가슴팍으로 얼굴을 묻었다.

 “어?”

 그러고는 자신도 당황한 듯 소리를 내뱉었다.

 "아가씨!"

 뒤에서 실비가 소리쳤다. 금방이라도 달려올 듯한 표정이었다.

 “괜찮아요, 실비.”

 하지만 엘리온은 실비를 제지했다.

 “아아, 죄송해요. 요즘 기도를 하더니 조금 피곤하네요. 실례했어요.

 엘리온은 고개를 들더니, 조심히 상체를 뒤로 뺐다. 엘리온의 얼굴은 붉어져있었다. 원준은 그저 어안이 벙벙한 채로 얼어있을 뿐이었다.

 "아가씨 정말 왜 그러는 거야? 저 인간한테 세뇌라도 당했어? 프란 너 정령술 좀 할 줄 알지. 아가씨, 좀 봐봐."

 “재미없는 농담이네요 실비.”

 프란은 묵묵히 엘리온에게 물 컵을 넘겼다. 엘리온은 고맙다고 대답하고 물을 마셨다.

 "그럼 대체 왜 그러는 건데. 말 좀 해봐."

 "실비, 상급정령을 본적 있나요?"

 "음…… 숲에서 한 번 봤을까나?"

 "그는 상급 정령을 넷 이나 옆에 데리고 있었다고 하는군요."

 "뭐?"

 실비가 소리쳤다.

 "아가씨 농담도……"

 "제가 농담을 싫어하는 거 알잖아요?"

 "상급 정령은 평범하게 사는 얘들한테는 평생 마주칠 일이 없다고!"

 "그래요. 그는 근데 넷 이나 옆에 두었다고 해요."

 실비는 말도 안 된다는 듯 엘리온을 바라봤다.

 "실비 그는 천부적인 콘트렉터에요. 최소한 저 이상으로."

 실비는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다.

 "아무리 듣는 것 보다 직접 보는 게 빠르겠죠."

 엘리온은 고개를 돌렸다.

 "원준, 죄송하지만 정령들을 한 번 더 불러주시겠어요?"

 "예?"

 "피곤하겠지만 부탁할게요!"

 엘리온이 눈동자를 반짝였다. 원준은 느꼈다. 그 눈은 처음 자신을 캐스팅하던 프로듀서의 눈과 닮았다. 무언가를 보여줄 거라는 굳은 믿음을 가진 눈. 저 눈에는 무조건 답해야한다는 걸 원준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원준은 할 수 없었다.

 "저기…… 죄송하지만 정령이 뭐죠?"

 “예?”

 엘리온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잠시 동안 방안이 정적에 휩싸였다.

 “정령을 몰라? 이래서 인간은.”

 실비가 혀를 강하게 찼다.

 “아니요.”

 갑자기 엘리온이 실비의 말을 끊었다. 엘리온은 무언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실비, 인간이 정령을 모르는 게 아니에요. 아무리 무지한 그들이라도 이 대륙의 질서인 정령을 모를 수는 없어요. 정령을 모른다는 것은 그 외의 존재……”

 원준은 숨을 삼켰다.

 “원준 당신은 어디에서 온 거죠?”

 장내가 얼어붙었다.

 

 ***

 

 방안의 원탁. 원준은 실비와 엘리온 사이에 어색하게 끼어 앉아있다. 실비가 흘끔흘끔 노려보는 게 불편하기 그지없다. 엘리온 왈, 힘을 많이 써서 서있기 어지럽다고 했나? 무엇 좀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그러자 프란이 다과를 가져왔고 티타임이 이루어졌다.

 “저는 사실 다른 세계에서 왔습니다.”

 ‘으아.’

 원준은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자신이 말하고도 부끄러운 말이었다. 실비의 저 어이없다는 표정, 다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군요. 납득했어요.”

 하지만 엘리온은 고개를 끄덕이고 얌전히 차를 마셨다.

 “아가씨, 저런 말을 믿는 거야?”

 “못 믿을게 뭐가 있나요?”

 “아니 못 믿는 게 당연하잖아. 다른 세계라니.”

 사실과는 다르지만 실비의 말은 지당했다. 자신도 누군가 ‘저 다른 세계에서 왔어요.’라고 한다면 실비와 같은 말을 할 것이었다.

 “실비, 제 앞에서는 거짓말을 못한 다는 거 알잖아요? 그는 지금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하지만 다른 세계라니, 들어 본적 없는걸.”

 “저도 처음이에요. 하지만 정령은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니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는 거죠.”

 엘리온이 다시 차를 홀짝였다.

 “그리고 원준이 다른 세계의 존재라고 생각한 건 단순히 원준의 대답 때문만은 아니랍니다.”

 실비가 조용히 눈으로 계속 말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아까 그의 몸에 잠시 닿았을 때, 그의 그릇을 느꼈습니다.”

 엘리온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의 그릇은 완전히 달랐어요. 오목한 게 아닌 마치 평평한 접시같은 게 있었답니다.”

 “그게 무슨……”

 실비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갑자기 엘리온은 원준을 돌아봤다.

 “원준, 방금 전에 정령이 무엇이냐고 물어봤죠?”

 “아 예……”

 "우리는 정령을 세계의 파편이라 여기고 있어요. 전설에 의하면 창조신은 자신의 몸을 깎아 세계를 만들었다고 하죠. 정령은 그 창조신의 파편이자, 세계의 파편인 것입니다."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겁니까?"

 "예, 보이진 않지만 분명 정령은 우리 주의에 있습니다. 특정 상황이 되면 보이기도 하고요."

 원준은 무심코 주위를 둘러봤다.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안보이실 거예요."

 엘리온이 웃었다.

 “더불어 상급정령을 보셨다 했죠?”

 그 동물들을 말하는 건가? 원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급정령은 정령 사이에서 태어난 특수한 개체들이랍니다. 보통은 조용한 곳에 숨어 살아요. 아까 실비가 말했듯이 평범하게 사는 엘프들은 평생 동안 한 번도 못 보는 게 대부분이에요.”

 "그 사람 잘 따를 것 같은 동물들이 말이지……"

 원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쨌든 상급 정령을 만났다는 건 말 안하시는 게 좋습니다. 그들과 계약을 맺은 엘프들은 엄청난 힘을 얻으니까 말이죠. 그들을 찾으려고 혈안이 된 조직도 있으니까요."

 "엄청난 힘?"

 "단적으로 이런 거예요."

 엘리온이 원준에게 손을 뻗더니 손바닥을 펼쳤다.

 "와!"

 그 손바닥 안에서 푸른 불꽃이 솟았다.

 “아까 당신을 치료한 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걸 우리는 정령술이라 부르죠. 상급정령과 계약을 맺은 자들은 더 큰 힘을 쓸 수 있답니다. 그래서 그들의 의사는 신경 쓰지 않고 강제로 계약하는 자들도 존재하죠.”

 엘리온이 손바닥을 접었다. 그러자 불꽃은 깔끔하게 소멸되었다. 원준은 불꽃에 완전히 홀려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제 본제로 넘어가서, 실비 그릇이란 뭐죠?”

 실비는 지목당할 거라 생각 못했는지 과자를 먹다 어깨를 들썩였다.

 “그게, 그러니까. 어떤 존재의 감정이라 할까. 아니면 마음이라 할까. 그 정령술을 쓸 때 사용하는 기관이라며.”

 “예 맞아요. 정확히 말하면 한 존재의 내면이에요. 크던 작던 힐레니아의 생물들은 모두 그릇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그 모양은 정령을 담기 위해 오목하지요. 쉽게 얘기하면 정령이라는 물을 담기 위한 그릇이라고 보시면 편합니다. 왜냐하면 힐레니아에서 태어난 존재들은 모두 정령 없이는 살아갈 수 없으니까요.”

 실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릇 모양이 평평하다는 건 무엇일까요?”

 “설마, 재는 정령이 없는 곳에서 태어났다는 거야?”

 “그릇의 모양을 보면 그렇게 유추할 수 있어요. 그런 가요 원준?”

 원준은 소름이 돋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온이 엄청난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 일줄은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이상하잖아. 아까 아가씨가 재 옆에 상급정령이 넷 이나 같이 있었다며 그릇이 평평한 애가 어떻게 상급정령을 끌어들여.”

 엘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비가 그런 질문을 한다는 걸 이해한다는 표정이었다.

 “실비, 어떤 존재의 그릇이 클수록 더 많은 정령에게 기원할 수 있다는 건 알죠?”

 “그렇지.”

 “하지만 그릇이 크다 해서 정령이 모이는 건 아닙니다. 왜일까요?”

 “글쎄……”

 “정령은 그릇 속으로 빠지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정령술은 정령의 힘을 빌리는 거니까요. 그들도 피곤하겠죠. 또한 큰 그릇일수록 안정적이기 힘듭니다. 정령들을 안정적인 그릇을 선호합니다. 담은 그릇이 도중에 파괴된다면 정령들도 무사치 못하기 때문이죠.”

 엘리온은 잠시 숨을 고르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우리가 음악을 하는 것도, 상급정령과 계약하는 것도 내면의 안정을 원해서죠.”

 엘리온이 차를 홀짝였다.

 “그렇다면 그릇이 평평하고 내면이 단단한 존재를 만나면 정령들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실비가 침을 삼켰다.

 “짐작하는 그대로에요 실비. 그런 내면을 가진 존재에게 정령은 저절로 끌려오게 되는 거죠. 즉 원준은 천부적으로 콘트렉터의 자질이 있는 겁니다.”

 엘리온은 확신에 찬 얼굴로 선언했다.

 “그럼 잡담은 그만 하고 원준의 실력을 한 번 보도록 할까요? 그래야지 당신도 납득하기 쉬울 테니.”

 “아니 난……”

 “실비도 궁금하죠. 다른 세계의 음악.”

 실비는 입을 다물었다. 부정은 아닌 모양이었다.

 “원준, 연주 부탁드려도 될까요?”

 원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온의 치료로 온몸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충분히 연주할 수 있었다. 다만,

 “죄송한데, 제 기타는 어디 있죠?”

 “기……타? 아, 원준의 악기. 그게……”

 “네 악기라면 네가 자고 있을 때 창고에 넣어났어.”

 원준은 벌떡 일어났다.

 “던진 건 아니겠지? 습도는 어때? 막 물이 샌다거나 코가 막힐 정도로 건조한다든가 그런 건 아니겠지?”

 “뭐가 있을 줄 알고 던져. 터지면 어떡하려고.”

 실비는 순간 원준의 기세에 눌렸지만 곧 세침이 대꾸했다.

 “실비, 빨리 가져와요.”

 “알았어, 알았다고.”

 실비가 투덜거리더니 바로 밖으로 나갔다. 실비는 원준이 과자를 하나 다 먹었을 때쯤 돌아왔다. 실비의 왼손에는 원준의 기타가 쥐여있었다. 원준은 바로 달려가서 낚아채듯 기타를 가져왔다. 기타 가방의 볼을 비비는 원준.

 “변태.”

 어디선가 그런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그러면 부탁드릴게요.”

 원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준은 다리에 기타 가방을 올려놓고 잠금장치를 풀었다. 엘리온과 실비가 그 장면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원준은 쑥스러움을 느끼면서 기타를 꺼냈다. 감옥에 있을 때는 만지지 못했으니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무게감이었다.

 “뭐야 그게 악기야?”

 실비가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무언가 흥미가 있는 표정이었다. 원준이 튜닝을 할 때는,

 “설마, 그걸로 악기의 음을 맞추는 거야?”

 소리라도 지를 기세로 격하게 반응했다. 엘리온도 눈을 반짝이며 기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했던 곡으로 괜찮죠?”

 “예 원준. 좋을 대로 하세요.”

 원준은 1현에 손을 갖다 댔다. 원준은 확신했다. 이 연주는 성공이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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