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회귀자의 그라운드
작가 : 소별왕
작품등록일 : 2018.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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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작성일 : 18-02-22     조회 : 310     추천 : 1     분량 : 5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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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개막전에서의 죽음은 진짜 죽음이 아니니까.

 

  [+10pt]

 

  시야의 오른쪽 아래에 작게 포인트가 추가되는 것이 보였다.

 

  1킬에 10포인트.

 

  죽일 수 있을 때 죽여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이것이었다. 포인트를 이용해 능력을 강화하고 아이템을 구매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꺄악!”

 

  “뭐, 뭐야? 총소리?”

 

  나는 전시실의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뒤로 하고 기자재 창고의 문을 열었다.

 

  “당신 뭐…?”

 

  탕!

 

  창고 안에서 쉬고 있던 직원은 말을 채 끝내지 못 하고 머리에 구멍이 뚫려 의자 위로 무너졌다.

 

  넓지 않은 창고는 몇 개의 테이블과 랙 선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원래라면 미니어쳐의 추가 자재나 수리도구들로 가득했을 선반에는 몇 자루의 총과 탄약만이 놓여있었다.

 

  그라운드가 열리는 순간 기존에 있던 물건들은 무기로 치환된다. 물론 모든 물건들이 일대일 대응으로 전부 무기로 치환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잡다한 물건들이 있었던 장소일수록 무기가 있을 확률이 높았고, 그것이 내가 창고 앞에서 개전을 기다렸던 이유였다.

 

  랙 선반의 장비들 중 챙겨갈 만한 무기만을 빠르게 골라냈다.

 

  “K-2…. 나쁘지 않지.”

 

  유니버설 그라운드에서 얻을 수 있는 무기들은 현지에서 통용되는 무기들이었다. 그렇기에 한국의 전장에서는 K-2가 가장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무기였다.

 

  나는 K-2를 손에 파지한 채로 창고를 나섰다.

 

  어느새 다들 도망갔는지 갤러리는 텅 비어 있었다.

 

  상관 없다. 어차피 내 목표물은 이 건물의 꼭대기층에 있으니까.

 

  엘리베이터 옆의 계단을 통해 4층으로 올라갔다.

 

  그라운드에서는 자물쇠와 같은 잠금장치도 엘리베이터와 같은 전자 장치도 모두 무용지물이 된다.

 

  4층의 문손잡이에 손을 대는 순간 그 너머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그거 총소리 맞지?”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야. 김대리, 경찰에는 전화해봤어?”

 

  “전화기가 전부 먹통이에요, 부장님.”

 

  “겁먹지 마. 아무 일 없을 거야.”

 

  나도 모르게 문손잡이에서 손이 떨어졌다.

 

  문 너머의 저들은 민간인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나는 지금 저들을 죽이려 하고 있다.

 

  손을 쥐었다 폈다. 그 끝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까 면접관은 아무렇지도 않게 죽여 놓고는.’

 

  물론 상황이 다르다는 건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이 문 안의 저들은 나와는 아무런 일면식조차 없는 이들이다. 그런 죄 없는 민간인들을 대량으로 학살하는 것은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상상조차해서는 안 될 일일 것이다.

 

  “후우….”

 

  숨을 깊게 내쉬고 마인드 컨트롤에 들어갔다.

 

  ‘개막전에서의 죽음에는 단순한 기억상실 이상의 패널티는 없어.’

 

  그라운드에서 죽는다 해도 실제 현실의 저 사람들은 아무런 피해도 없다. 그들은 언제나처럼 멀쩡히 살아갈 것이다.

 

  그건 파괴된 물건이나 건물도 마찬가지였다. 경기가 끝나면 모든 것은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다.

 

  애초에 이곳은 현실이 아니다.

 

  게다가 사망한 이들은 이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지 못 한다. 오로지 이긴 자들만이 이 경기를 기억하게 될 뿐이다.

 

  그러므로 눈앞의 사람들은 진짜가 아니라고 인식하는 편이 낫다.

 

  ‘저들을 동정하는 건 감정의 사치다.’

 

  이런 일로 머뭇거려선 안된다. 나는 누구보다도 먼저 탑이 되어야 한다. 누구보다도 많은 포인트를 모아 성장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막을 수 있다.

 내 손은 거침 없이 손잡이를 돌렸다.

 

 

 

  탕!

 

  [5킬]

 

  탕!탕!

 

  [12킬, 13킬]

 

  한발에 한명씩, 난 차분히 눈앞에 있는 이들을 정리해 나갔다.

 

  그들의 목소리와 비명에는 귀를 닫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모두 쓰러졌을 때 난 더이상 떨지 않게 되었다. 쓰러진 시체들이 허물어지듯 스르륵 사라지며 귓가에 메시지가 들려왔다.

 

  [74킬, 총합 74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후우….”

 

  나는 다음 층을 향해 발을 옮겼다.

 

 

  *

 

 

  대한 건설 김권태 사장은 책상 아래에서 머리만 빠끔 내밀어 바깥 상황을 살폈다.

 햇빛을 받은 그의 벗겨진 정수리가 반짝였다.

 

  집무실의 문은 여전히 꽉 닫혀 있었고, 그 양 옆에는 비서실장과 부비서실장이 권총을 들고 불의의 습격을 대비하고 있었다.

 

  김권태 사장은 손 안의 K-2를 고쳐쥐었다. 군면제를 받아 쓸 줄도 모르지만 그래도 부하에게서 억지로 빼앗아낸 든든한 생명줄이었다.

 

  “야! 비서실장!”

 

  김권태의 외침에 비서실장이 긴장한 얼굴로 사장을 돌아봤다.

 

  “예, 사장님.”

 

  “지금…, 너무 조용하지 않아?”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전쟁통을 불사할 정도로 계속되던 총성이 어느 순간 불길할 정도로 갑작스레 끊겼던 것이다.

 

  “그 총성 분명 아래에서부터 올라오고 있었잖아?”

 

  “예. 그랬습니다.”

 

  “아까 전엔 분명 바로 아래층에서 들렸었잖아?”

 

  “예. 맞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왜 갑자기 안 들리는 건데!”

 

  상사의 히스테리에 비서실장은 입을 굳게 닫았다.

 

  이런 상황의 김권태는 대답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화풀이 대상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는 걸 그는 긴 회사생활을 통해 알고 있었다.

 

  “쓸모없는 놈 같으니라고! 내가 너한테 한 달에 얼마를 주고 있는지 알아!”

 

  김권태는 그 뒤로도 한참을 투덜거렸다.

 

  “젠장, 이게 대체 무슨 꼴이야!”

 

  30분 쯤 전, 이상한 목소리와 함께 책상 위의 물건이 권총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머지 않아 아래층에서 총성이 들려왔었다.

 

  아래층의 비서실에 있던 비서실장과 부비서실장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집무실로 뛰어들어왔을 때는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었다.

 

  하지만 김권태는 평가에 박한 사람이었다. 반 시간도 되지 않아 비서실장은 K-2도 빼앗기고 안 오느니만 못 했을 정도의 욕을 먹고 있었다.

 

  “에잉, 맘에 안 드는 놈 같으니…. 나가서 상황이나 살펴보고 와!”

 

  비서실장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장을 바라봤다. 그의 생각에 그건 결코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회사의 위계질서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비서실장은 부비서실장에게 고갯짓을 했다.

 

  “야. 나가서 살펴보고 와.”

 

  부비서실장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이내 위계질서에 굴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부비서실장은 살며시 집무실의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타앙, 한 발의 총성이 울리고 부비서실장은 바깥으로 쓰러졌다.

 

  “흐읍!”

 

  비서실장은 숨을 들이키며 집무실 문을 향해 권총을 겨눴다. 하지만 열린 문 틈 사이로 등장한 것은 습격자가 아니라 연막탄이었다.

 

  푸쉭, 소리를 내며 연막은 삽시간에 집무실을 가득 채웠다.

 

  비서실장은 청각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집무실의 입구에서 무언가 대리석 바닥에 닿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타앙, 타앙, 타앙.

 

  비서실장은 연달아 권총을 사격했다. K-5는 삽시간에 12발의 탄약을 모두 쏟아냈고 이내 집무실에는 텅 빈 방아쇠 소리만이 요란했다.

 

  비서실장이 황급히 권총을 장전하려는 때, 타앙 소리와 함께 비서실장은 머리가 꿰뚫려 절명하고 말았다.

 

  집무실의 중앙에서 한 번 더 둔탁한 소리가 났다.

 

  “으, 으아아아!”

 

  김권태 사장은 공포를 이기지 못 하고 결국 몸을 내밀어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K-2를 난사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군사훈련조차 받지 않은 자의 난사에 맞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신 김권태는 미간에 한 발의 총알을 선물 받고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아른거리는 의식속에서 그는 한 남자를 보았다. 피묻은 와이셔츠를 입은 청년이 집무실로 걸어 들어왔다. 바로 나였다.

 

 

 

  [249킬]

 

  “후우….”

 

  나는 참았던 숨을 내쉬며 천천히 집무실의 내부에 발을 디뎠다.

 

  집무실 내부에 사람이 3명 밖에 없다는 건 사장이 안에서 하도 시끄럽게 떠들어대서 이미 파악이 끝난 후였다.

 

  연막이 사그라들자 엉망이 된 집무실이 드러났다. 대리석 바닥은 군데군데 깨져 있었고, 벽의 트로피와 액자들도 김권태의 K-2난사에 여기저기가 부서져 있었다.

 

  바닥에 흥건한 피를 피해 걸으며 아까 던진 파워드링크들을 주웠다. 연막 속에서 비서실장과 사장의 총알 낭비를 유발시켰던 것의 정체가 바로 이 던져진 드링크였다.

 

  잠시의 휴식을 위해 사장의 책상에 엉덩이를 걸터앉자 창밖으로 광화문 일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평화로운 일상은 영영 끝났다는 듯 여기저기서 끊임없는 총성이 들려왔다. 몇몇 건물에선 화염마저 치솟고 있었다.

 

  손목의 상황 표시기를 살폈다.

 

  [34%의 인원 생존 중]

 

  이 인근의 주민들은 벌써 7할 가까이 죽었다. 어떠한 설명도 없었지만 사람들은 빠르게 이 경기에 적응해 갔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지옥이 따로 없구만.”

 

  게임에서나 보던 광경, 현실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본선에서 지게 된다면 저게 현실이 되겠지.’

 

  잠시 그 혼돈의 광경을 내려다봤다.

 

  유니버설 그라운드의 개막전은 결국 1%의 승자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떨어내는 거름막과 같은 단계였다.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개막전은 몇 개의 동을 단위로 내부의 주민들을 한 구역으로 묶어 1%의 생존자가 남을 때까지 지속된다.

 

  스르륵, 발치의 시체가 조금씩 허물어져 사라져갔다. 나는 눈을 돌려 그의 시체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대한 건설 사장. 김권태.’

 

  승자들에게는 킬포인트 외에도 한 가지 상품이 주어진다. 그것은 바로 살해한 인간 한 명의 자유의지.

 

  ‘권속화라고 불렀었지.’

 

  그리고 그것이 내가 개막전을 대한 건설 본사에서 치른 이유였다. 김권태를 직접 죽여야 나의 권속으로 만들수 있기 때문에.

 

  유니버설 그라운드에서 권속이란 결국 자유의지가 없는 노예와 같은 존재. 노예의 것은 주인의 것이다.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 그 안에서도 중추를 담당하고 있는 대한 건설의 사장을 권속으로 둔다면 앞으로의 일정이 순탄할 것이었다.

 

  ‘회귀 전에는 누굴 권속으로 삼았었더라.’

 

  별 생각 없이 제일 예쁜 여자를 권속으로 삼았었던 것 같다.

 

  피식,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니야, 아니야. 그 때는 나름 현명한 선택이었어, 그것도.’

 

  개막전의 승자라 해도 그 다음 경기에서 패배한다면 기억을 잃고 권속을 잃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승자들은 욕망에 치우친 선택을 많이 내렸었다.

 

  [경기 구역이 제한됩니다.]

 

  갑작스런 시스템 음성이 나의 뇌리를 울렸다.

 

  그와 동시에 전투 지역의 외곽이 조금씩 부서져 하늘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소멸’이라 불리는 시스템이었다. 지정된 전투 범위를 제외한 모든 지역은 저렇게 천천히 바스라질 것이었다.

 

  만일 저 구역에 사람이 남아 있다면 발판이 모두 바스라졌을 때 낙사하는 수 밖에 없었다. 만일 아직까지 경기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이들이 있다면 저 소멸에 휘말려 죽게 되리라.

 

  즉, 소멸은 플레이어들의 행동반경을 좁히는 동시에 경기에 적응한 플레이어들을 선별하기 위한 장치였다.

 

  “지도.”

 

  간단한 명령어에 손목의 상황 표시기는 홀로그램 형태의 지도를 띄웠다.

 

  나는 광화문역과 종각역 사이의 청진동에 있었다. 전투 지역의 예정 범위는 대로를 건너 서린동 일대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면 또 기운 빡세게 넣고 달려볼까? 혹시라도 개막전에서 죽는다면 리더 볼 면목이 없으니까.”

 

  나는 마지막으로 김권태 사장의 시체가 있던 자리에서 탄약을 챙긴 뒤 집무실을 떠났다.

 

  창 밖에선 여전히 총성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작가의 말
 

 2화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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