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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그라운드
작가 : 소별왕
작품등록일 : 2018.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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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작성일 : 18-02-23     조회 : 319     추천 : 1     분량 : 5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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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사 건물의 1층에 도달할 때까지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죽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도망쳤을 것이다.

 

  ‘그마저도 얼마 가지 못 했겠지만….’

 

  로비로 나온 나는 통유리로 된 정문 너머로 상황을 살폈다. 내가 가야하는 곳은 대로 건너의 서린동이었다.

 

  오 미터 가량의 인도 너머로 8차선 대로가 펼쳐져 있었다. 대로에는 주인 잃은 차들이 아무렇게나 엉켜 있었다.

 

  ‘저 차들을 엄폐물 삼아 건너갈 수 있을라나.’

 

  잠시 생각해봤지만 역시나 무모한 판단이었다. 아무리 개막전이라 경쟁자들의 수준이 낮다해도 총격전이 벌어지는 전장에서 대로를 건너는 것은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부근의 지하철 역에라도 가야 하나….’

 

  마땅한 수가 없을까, 싶어 주변을 둘러보니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아래를 향하고 있는 표지판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종각역 지하통로’

 

  “오, 럭키.”

 

  대한 건설의 본사와 종각역은 지하 통로를 통해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망설이지 않고 지하통로로 발을 옮겼다. 작동이 멈춘 에스컬레이터를 밟고 내려가자 긴 통로가 나를 반겼다.

 

  소음에 귀를 기울이며 조용하게, 하지만 가능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광고 소음마저 사라진 지하통로는 적막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서린동 방향은…. 6번 출구.’

 

  약도를 통해 목적지를 확인하며 계속 발을 옮겼다.

 

  1번 출구의 코너를 막 돌았을 때, 멀리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재빨리 벽 뒤로 몸을 숨겼다.

 

  발자국 소리는 내가 들어온 입구와 반대쪽인 3번 출구 근방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벽 뒤에 몸을 숨긴 나는 조용히 최적의 순간을 기다렸다.

 

  발자국 소리는 들렸다가 멈췄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자기 발자국을 죽이면서 귀를 기울이는군. 센스는 있어.’

 

  하지만 너무 단순했다. 걷고 멈추는 발자국 소리가 반복되고 있었다.

 

  열 발자국을 옮기고, 한 번 멈췄다. 또 다시 열 발자국을 옮기고, 멈췄다.

 

  그 다음 열 발자국이 시작될 때, 빠르게 몸을 엄폐물 뒤에서 빼 상대를 조준했다.

 

  개머리판을 견착하고 총구를 45도 아래를 향하게 하는 전진 자세로 발자국을 떼던 대적자는 나를 보고 황급히 총구를 올렸다.

 

  하지만 총구가 제대로 나를 향하기도 전에 내 총알이 먼저 허공을 갈랐다.

 

  타앙.

 

  [250킬]

 

  총성이 지하도의 벽을 울렸다. 거대한 울림이 멀리 사라질 때 쯤 대적자의 몸도 시체가 되어 땅에 닿았다.

 

  재빨리 다시 몸을 숨겼다. 총성의 소음이 완벽히 사라지고 내 청력이 회복될 때까지.

 

  시체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가방만 집어 엄폐물 뒤에 몸을 다시 숨겼다.

 

  ‘챙길만한 건... 수류탄과 진통제 정도군.’

 

  습득한 가방에서 몇 개의 아이템들을 내 가방으로 옮기고 다시 발을 옮겼다.

 

  6번 출구의 바깥에는 20층짜리 은행건물이 서 있었다. 출구의 계단에 몸을 누이고 건물 안을 살폈다.

 

  로비에는 아무도 없었다.

 

  움직이는 이가 없음을 확인한 뒤, 일단 몸을 숨기기 위해 은행 건물에 몸을 들였다.

 

  “처참하구만.”

 

  선민은행, 이라는 로고는 탄흔들로 반쯤 부서져 있었다.

 

  아마 이 곳에서도 총격전이 벌어졋을 테지. 시체가 사라지는 시스템이 아니었다면 피가 강을 이뤘으리라.

 

  ‘뭐 내가 남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가까운 문을 열어 화장실에 몸을 숨겼다.

 

  “지도.”

 

  손목 위로 홀로그램 지도가 떠올랐다.

 

  경기구역은 서린동과 다동 일대로 표시되어 있었다. 기존의 전체 구역의 남서쪽 귀퉁이였다.

 

  사방에서 좁혀오는 소멸은 길어도 30분 이내에 서린동과 다동을 제외한 전 지역을 집어삼킬 것이었다.

 

  내 위치를 표시하는 마커는 서린동의 오른쪽 귀퉁이에서 반짝거렸다.

 

  ‘안전한 곳으로 들어왔지만 그래도 조금 더 중심지로 가는 게 좋겠지.’

 

  이동계획을 세우고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왔다. 건물의 후문을 찾아 문을 열고 나오기 직전, 다시 한 번 은행의 로고가 눈에 들어왔다.

 

  선민은행. 선민은행 종로본점.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다. 내가 이걸 어디서 들어봤더라….

 

  ‘아, 스나이퍼 잭!’

 

  문득 섬광 같은 기억이 머릿 속에 떠올랐다.

 

  스나이퍼 잭.

 

  그라운더 연합 자리에서 알게 된 그 사내는, 술만 마셨다하면 자기의 공적을 줄줄 읊어대던 귀찮은 술버릇이 있는 사내였다.

 

  ‘여러번 들었던 것 같은데…, 뭐랬더라.’

 

  선민은행, 선민은행, 선민은행….

 

  다시 한 번 섬광처럼 기억이 떠올랐다.

 

 

  - 그 때가 개막전이었어. 어쩌다 선민은행 종로본점 꼭대기에 올라갔는데 거기에 마침 스나이퍼 라이플이 있더라고? 그 때부터 이 스나이퍼 잭님의 신화가 시작됬다는 거 아니냐.

 

  - 그 때 니가 죽었어야 내가 술 마실 때마다 이런 고문을 안 당했을텐데.

 

  - 뭐야 이 새끼야? 나랑 저격으로 붙어볼래?

 

 

  그래. 이 건물의 옥상에 저격총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놈은 그걸로 개막전에서 1등을 기록했다고 말했다.

 

  ‘저격소총이라.’

 

  꽤나 구미가 당기는 장비였다. 그것도 지금처럼 경기구역이 한 쪽에 치우쳐 형성되었을 경우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기회다.’

 

  망설임은 짧았고 결단은 빨랐다. 나는 계단으로 발을 옮겼다.

 

  ‘잭…. 다시 보겠네.’

 

  잭은 예선의 마지막 경기에서 저격을 당해 죽었었다. 그의 미간을 꿰뚫은 건 바로 나였다.

 

 

 *

 

 

  혹시라도 부비트랩이 설치되어 있나 주의하며 조심스럽게 옥상문을 열었다.

 

  선민은행의 종로본점 옥상에는 직원들을 위한 휴식처가 형성되어 있었다.

 

  음료 자판기 몇 대와 테이블 몇 개가 엘리베이터 앞에 배치되어 있었고, 열린 문 너머 실외로는 작은 녹지공원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의 벤치에 잭이 앉아 무언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저기 있군.’

 

  회귀 전에도 그는 나에게 죽었었다. 이번에도 그렇게 된다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운명은 반복된다, 뭐 그런 건가. 네 운명도 얄궂구나.’

 

  나는 K-2소총을 들고 놈의 머리를 겨누었다. 그리고는 지체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총성과 함께 잭은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251킬]

 

  옥외정원으로 나와 잭의 시체에 다가갔다.

 

  잭의 목에는 선민은행 사원증이 걸려 있었다. 이를 확인한 난 실소를 금치 못했다.

 

  ‘여기 사원이었어?’

 

  녀석이 이곳 옥상에서 저격총을 찾은 이유를 알만했다. 항상 휴식을 취하던 곳이었으니 눈에 띄는 건 당연하다.

 

  이내 스나이퍼 잭의 시체가 사라졌다. 회귀 전의 그는 비록 본선 진출 전에 탈락하긴 했지만 제법 이름을 날리던 스나이퍼였다. 하지만 이번엔 그럴 기회조차 없었다.

 

  ‘섭섭해하지는 마라. 내가 네 대신 열심히 할테니까.’

 

  나는 무심히 눈을 돌려 그의 무릎 위에 놓인 케이스를 확인했다.

 

  길쭉한 금속제 케이스에 소중히 담겨있는 그것은,

 

  “K-14 저격소총.”

 

  케이스에서 K-14를 꺼내들었다. 저격소총 중에서는 가벼운 편에 속한다고는 하나, 그래도 저격소총은 저격소총. 묵직한 무게가 내 팔을 내리눌렀다.

 

  저격소총을 구했으니 남은 건 자리 잡기였다.

 

  좁혀진 경기 구역은 전체 경기 구역의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생존자들은

  서쪽과 북쪽에서부터 몰려들 것이었다.

 

  “그럼 그 방향으로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옥상을 쭉 둘러봤다. 사방이 허리춤까지 올라오는 안전담으로 둘러쌓여 있었다.

 

  저 담들을 넘어 아래쪽을 사격하기 위해서는 높은 포지션이 필요했다.

 

  ‘게다가 엎드려 쏠 거면 시야각도 생각해봐야 하니까….’

 

  이것저것을 고려한 뒤에 나는 정원 한 구석의 거대한 에어컨 실외기 위에 자리를 잡았다.

 

  각도상 건물의 바로 아래는 보이지 않지만 세종대로 사거리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좋은 위치였다.

 

  바람은 불지 않았고 태양은 머리 바로 위에 떠 있었다. 저격하기에는 꽤나 좋은 조건이었다.

 

  “좋아. 그럼 시작해볼까.”

 

  저격소총의 양각대를 펼치자 24인치 총열이 햇빛을 받아 늠름하게 빛났다.

 

  입에서 나도 모르게 탄성이 흘렀다. 총신을 쓰다듬자 단단하고 싸늘한 침묵이 전해져 왔다.

 

  ‘암살자 그 자체라는 느낌이구만.’

 

  그 서늘한 아름다움을 조금 더 감상한 뒤에 실외기 위에 엎드려서 자세를 잡았다.

 

  접안 렌즈에 눈을 대고 12배율 스코프의 다이얼을 돌려 지상의 목표물들이 적당한 크기로 보이도록 조절했다.

 

  마침 스코프 너머로 대로를 뛰어가는 목표가 하나 포착되었다. 싸움을 피해 달아나는 것인지 피가 흐르는 어깨를 꽉 누르고 있었다.

 

  “후우….”

 

  천천히 숨을 내쉬며 목표를 조준했다. 중력에 따른 낙차를 고려해 목표물보다 한참 위를 노렸다.

 

  숨을 멈추고 내 심장 박동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장거리 저격은 발사 시의 미세한 오차가 탄착 시의 수십 센티에 가까운 오발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격발의 순간은 심장 박동과 박동의 사이가 최적의 순간이였다.

 

  지금이다,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음속보다 빠르게 날아간 탄은 순식간에 목표의 머리에 꽂혔다. 쓰러진 자는 총성조차 듣지 못 했을 것이다.

 

  [252킬]

 

  종로대로를 서성이는 이들은 모두 머리에 바람구멍을 하나씩 선물받았다.

 

  [265킬]

 

  종로대로는 완전히 나의 구역이었다.

 

  [277킬]

 

  가끔씩 건물의 창가에 비치는 생존자들도 빼놓지 않았다.

 

  [289킬]

 

  개중에는 나를 향해 사격을 가하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일반 총으로는 600미터도 넘는 이 거리를 맞추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300킬]

 

  생존 인원대가 15% 아래로 떨어졌다.

 

  [307킬]

 

  경기 구역이 다시 한 번 좁혀졌다. 선민은행 종로본점은 그 구역 내에 들어가 있었다.

 

  [310킬]

 

  [313킬]

 

  [315킬]

 

  "후우..."

 

  참고 있던 숨을 내쉬며 탄알집을 장전했다. 아직 탄환은 30발도 넘게 남아 있었다.

 

  [경기 구역이 좁아집니다.]

 

  [6%의 인원 생존 중]

 

  "지도."

 

  손목의 홀로그램이 지도를 띄웠다.

 

  서린동은 크게 4개의 블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중 내가 있는 곳은 가장 우측 블럭이었고, 기존의 전투 구역에는 포함되어 있는 지역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음 전투 구역은 우측에서 두 번째 블록뿐이었다.

 

  "남은 탄환만 다 쓰고 이동해야겠어."

 

  머즐 플래시가 다시 한 번 빛을 발했다.

 

  [320킬]

 

  [324킬]

 

  [2%의 인원 생존 중]

 

  경기는 곧 끝날 것이었다. 하지만 괜히 늑장을 부리다 소멸에 휘말리는 것만은 사양이었다.

 

  K-14를 두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때, 뒤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들렸다.

 

  콰앙-.

 

  [325킬]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옥상 출입구는 화약으로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습격을 대비해 옥상문에 수류탄을 이용해 달아놓은 부비트랩이 폭발한 것이었다.

 

  [1%의 인원만이 생존해 있습니다. 경기 종료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마지막 킬을 기록한 모양이네.”

 

  상황이 우습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해서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 나왔다.

 

  [생존자 전원에게는 3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개막전이 곧 종료됩니다.]

 

  325킬에서 나온 3250포인트에 생존 포인트까지 더해서 총 3550포인트.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다. 아니 굉장한 성적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는 역대 최고점일 것이다. 회귀 전의 최고점은 1700점대였으니 1500점 이상 갱신한 셈이었다.

 

  몸을 일으켜 종로대로를 내려다봤다. 파괴된 도시, 침묵하는 거리. 그것들은 점점 빛에 휩싸이고 있었다. 생존자들은 현실로 돌아갈 것이었다. 마치 경기 자체가 없었던 것처럼.

 

  “이제 시작이야.”

 

  앞으로 본선 까지 남은 경기는 다섯. 거기서 난 살아남아야 한다. 아니 최고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미래가 변할테니까.

작가의 말
 

 3화도 재밌게 봐주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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