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회귀자의 그라운드
작가 : 소별왕
작품등록일 : 2018.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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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작성일 : 18-02-23     조회 : 326     추천 : 1     분량 : 5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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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막전 종료와 함께 시야가 빛에 물들었다.

 

  그리고 그 빛이 꺼질 즈음, 나는 경기가 시작되기 전의 위치에 서 있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공부를 해서 스펙을 쌓는 게 어때요?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도 있는 법이니까요.”

 

  옆에서 면접관이 떠들어대고 있었다.

 

  아, 그래. 이 사람과 대화하는 중이었지.

 

  “예. 안 그래도 학원을 여기저기 알아보는 중입니다. 죄송하지만 저 이 다음에 약속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나는 면접관에게 적당한 맞장구를 쳐주면서 자리를 이탈했다.

 

  건물은 언제 사람들이 죽었냐는 듯 활기 넘치고 시끌거렸다.

 

  그야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죽은 자들은 기억이 사라졌고, 시간은 1초도 흐르지 않았으니까.

 

  1층 로비에 도착해 잠시 그 광경을 바라봤다. 죽음의 경기는 잊히고 모두들 일상적 삶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일상의 유지를 위해서라면 당연히 기억 못 하는 게 낫겠지.”

 

  그런 면에서는 꽤나 배려 넘치는 시스템이다.

 

  발을 돌려 지하통로로 내려갔다. 집으로 돌아갈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였다.

 

  “아아, 귀찮게 제가 왜 이걸 따라가야하는 거에요? 지점 방문은 김 사원 시키면 되잖아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나이퍼 잭, 나왕춘이었다.

 

  “불평하지마라, 왕춘아. 좋게 좋게 생각해. 현장퇴근할 수 있으니 좋잖아.”

 

  “아, 제발. 선배님! 이름말고 직급으로 불러달라니까요!”

 

  술 마실 때도 자주 짓던 표정으로 툴툴거리던 잭, 하지만 나를 모르는 그는 그저 지나쳐갈 뿐이었다.

 

  탈락자에게는 두 번째 기회가 없다. 이제 잭은 유니버설 그라운드와는 전혀 상관 없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미련 없이 그를 지나쳤다.

 

 

  *

 

 

  조금씩 집에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이 빨라지더니 어느새 나는 달리고 있었다.

 

  몇 달 동안 눌러본 적 없는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황급히 누르고 문을 열어젖혔다.

 

  “어머니! 아버지! 수현아! 저 왔어요!”

 

  따뜻한 음식 냄새가 나를 먼저 맞이했다. 그리고 부엌에서부터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가 계실까? 정말로 어머니가 저 너머에 있을까?

 

  영겁과도 같은 순간의 기다림이 끝나고, 벽 너머에서 어머니가 나타났다.

 

  “왔니, 아들.”

 

  선하게 웃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자, 무언가 울컥하고 올라왔다.

 

  회귀 전의 지구인팀은 본선에서 연달아 패배했다. 그 바람에 내 가족들은 외계인의 노예가 되어 버렸고 이후로 얼굴은 커녕 연락조차 하지 못 했었다.

 

  “왔으면 온 거지 뭐 이리 큰 소리를 내?”

 

  부엌에서 퉁명스러운 아버지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수현이는 아직 학원에 있는데, 무슨 일이니? 설마 면접 붙었어?”

 

  큰 소리를 내며 들어왔더니 좋은 소식이 있다고 오해하셨던 모양이다.

 

  무언가 말을 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말없이 어머니를 꽉 껴안았다.

 어머니는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나를 맞안아주었다.

 

  “힘든 일이라도 있었니? 괜찮아, 괜찮아. 마음껏 힘들어해도 돼. 기회는 앞으로도 있잖니.”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내 등을 토닥여 주었다.

 

  “면접에서 떨어지기라도 한 거냐? 사내자식이 뭐 그런 걸로 울어?”

 

  아버지가 툴툴거리는 목소리로 나를 채근했다. 나는 간신히 목소리를 내었다.

 

  “아뇨.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기분이 좀 이상하네요.”

 

  “면접을 한 번 보니까 부모님이 얼마나 힘들게 너를 키웠는지 알게 된 게지. 알았으면 이제부터라도 잘 해 임마.”

 

  하지만 대화 내용과 달리 내 등을 두드리는 아버지의 손은 다정하기만 했다.

 

  따뜻한 가족의 품 속에서 나는 그제서야 실감했다.

 

  과거로 돌아왔다는 것을.

 

 

  *

 

 

  “하아….”

 

  낯설면서도 익숙한 내 방의 침대에 드러누웠다. 어머니가 매주 볕에 말리는 이불에서는 기분 좋은 햇살 냄새가 났다.

 

  배는 포만감으로 든든했다. 오랜만에 맛본 어머니의 요리는 오랫동안 지속된 심리적 허기마저 날려주기에 충분했다.

 

  “…좋다….”

 

  너무 좋았다. 되찾은 이 소중한 일상이.

 

  그렇기에 이번에는 결코 잃지 않을 거다. 내가 반드시 지켜내고 말겠다.

 

  각오를 새로이 다지며 허공을 향해 명령어를 내뱉었다.

 

  “그라운더창 소환.”

 

  명령어를 이용해 그라운더 창을 소환하자 나에게만 보이는 검은 창이 허공에 떠올랐다.

 

  검은 창에는 [권속], [스킬], [아이템]이라는 세 가지 탭이 있었다.

 

  먼저 [스킬] 탭을 선택해 스킬 창을 불러냈다.

 

  [기본 스킬], [고급 스킬], [특수 스킬]이라는 소분류에 따라 스킬목록이 떴다.

 

  ‘일단 기본 스킬을 확인해볼까.’

 

  기본 스킬창을 불러내자 익숙한 스킬들이 눈에 들어왔다.

 

  [체력], [침착함], [반사신경].

 

  기본 스킬은 사격에 필요한 육체 능력들을 구분해 놓은 것이었다. 스킬레벨에는 내가 기본적으로 가진 육체 능력이 반영되어 있었다.

 

  [체력]은 근력과 폐활량 등의 육체적 힘을 상징하는 스킬이었다.

 

  ‘단순히 장비 무게가 늘어나는 것에서부터 반동 억제, 사격 자세 유지까지 전반적인 사격 기술에 영향을 주는 좋은 스킬이지.’

 

  체력은 LV.10이 찍혀 있었다. 성인 남성의 평균적인 체력 수치였다.

 

  [침착함]은 쉽게 말해서 멘탈, 정신력과 관련된 스킬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하는 것은 전투에서 결코 손해볼 일이 아니야. 손끝의 떨림을 보정해서 명중률에도 큰 연관이 있기 때문에 저격수들이 선호하는 스킬이기도 하고.’

 

  침착함은 LV.64가 찍혀 있었다. 회귀 전의 경험 덕분이리라. 그리고 그렇기에 더 이상 포인트를 투자할 필요가 없었다.

 

  ‘그건 체력도 마찬가지. 체력은 현실의 수행만으로도 충분히 올릴 수 있으니까.’

 

  물론 찍어서 손해볼 일은 없는 스킬들이었다. 하지만 최정상의 그라운더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기본 스킬 하나하나도 확실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찍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마지막 세 번째 스킬인 [반사신경]이었다.

 

  손가락을 들어 [반사신경]스킬을 터치했다. 그러자 작은 설명창이 떠올랐다.

 

  [반사신경 : 신경의 힘. 남들보다 빠른 속도로 반응할 수 있게 해준다.]

 

  다시 말해서 민첩성, 반응 속도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스킬이었다.

 

  반사신경은 LV.1이 찍혀 있었다.

 

  ‘이 스킬을 극한까지 갈고 닦는다면 발사된 총알을 아주 잠깐이나마 육안으로 볼 수 있다고 하지.’

 

  그리고 그런 부분이 나의 ‘특수 스킬’과 궁합이 잘 맞았다.

 

  ‘특수 스킬’은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본선에 돌입하면 해금되는 강력한 스킬이다. 기본 스킬처럼 공통되는 스킬이 아니라 사람마다 다른 고유의 기술들이었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아주 강력했기 때문에 전투의 승패를 좌우하는 필살기 급으로 취급되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그라운더들은 특수 스킬에 맞춰 고급 스킬과 일반 스킬을 찍었다.

 

  ‘최후의 20인들도 그런 식으로 특정 분야에 특화된 그라운더가 대부분이었어.’

 그리고 내 특수 스킬을 더욱 강력하게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 스킬이 바로 [반사 신경]이었다.

 

  [반사 신경] 옆의 + 표시를 터치했다.

 

  [100포인트를 사용해 ‘반사 신경’ 스킬을 업그레이드하시겠습니까?]

 

  ‘물론.’

 

  [‘반사 신경’ 스킬이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창의 스킬 이름 옆에 ‘LV.1’이라는 글자가 ‘LV.2’로 바뀌었다. 그와 동시에 창 맨 위의 가용 포인트의 숫자가 3450으로 줄었다.

 

  ‘하나 더 찍을까.’

 

  기본 스킬은 찍을 때마다 비용이 100포인트씩 늘어난다. 첫 업그레이드는 100, 두 번째 업그레이드는 200이다.

 

  ‘아차, 그 전에 고급 스킬을 먼저 확인해 봐야지.’

 

  스킬 창의 소분류 탭을 [고급 스킬]로 바꿨다. 목록에 내가 찍을 수 있는 고급 스킬들의 이름이 떴다.

 

  [민간인 학살]

 

  [저격수의 호흡법]

 

  [스나이핑 마스터리]

 

  [흔들림 없는 왕좌]

 

  고급 스킬은 기본 스킬과 마찬가지로 패시브 스킬이었지만 획득 매커니즘이 달랐다.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3가지 능력치가 제공되는 기본 스킬과 달리 고급 스킬은 습득을 위해서는 특정 요구 조건을 충족해야 했다.

 

  예를 들어 내가 얻은 [민간인 학살] 스킬은 ‘무기를 들지 않은 그라운더 100명을 죽여라’는 달성 조건이 있었다.

 

  이런 숨겨진 조건을 충족하면 해당 스킬이 구매가능 목록에 뜨는데 이것을 ‘해금’이라 불렀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전부 다 필요한 건 아니지. 일단 저 [민간인 학살] 스킬은 우용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어.’

 

  [민간인 학살] 스킬은 아무런 무기도 파밍하지 않은 그라운더에 대해 피해량이 증가하는 스킬이었다.

 

  이제부터는 어중이떠중이들은 걸러진 제대로 된 경기가 열릴 것이다. 그 경기에서 저 스킬이 제대로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는 보기 힘들었다.

 

  ‘[저격수의 호흡법], [스나이핑 마스터리] 이 두 스킬도 필요 없어. 내 특수 스킬을 생각해보면 나는 저격수보다는 돌격병에 어울려.’

 

  생각이 거기까지 진행되자 불현듯 내 실책을 깨달았다.

 

  ‘아차. 그러고보니 이번 개막전에서는 포인트 버는 거에만 눈이 멀어서 고급 스킬 해금에는 신경을 안 썼구나.’

 

  이건 실책이었다. 하지만 그 댓가로 3천 단위의 포인트를 벌었으니 아주 손해만은 아니었다.

 

  ‘포인트는 충분하니 다음 경기부터는 해금에 신경을 더 쓰도록 하자.’

 

  그리고 내눈은 네 번째 스킬을 향했다. [흔들림 없는 왕좌]. 이건 처음 들어본 스킬이었다.

 

  ‘누군가 한 번이라도 찍어봤다면 최후의 20인에게 정보가 알려졌을 텐데?’

 

  손가락을 들어 스킬을 터치했다.

 

  [흔들림 없는 왕좌 : 다른 그라운더들에 대해 위압감과 카리스마를 분출합니다.

 

  * 해금 조건 : 개막전에서 2등과 2배 이상의 성적 차이를 벌리며 1등할 것.]

 

  “오….”

 

  나도 모르게 작은 탄성을 흘렸다.

 

  ‘이건 대박인데?’

 

  딱 나에게 필요한 스킬이었다. 최후의 그라운더들 중에서도 꼭대기를 차지할 카리스마를 제공해줄 스킬이었다.

 

  ‘2등과 두 배 차이라…. 아무도 이 조건을 충족한 적이 없었던 건가? 보고가 안 되어 있을만도 하네.’

 

  손가락을 들어 스킬 옆의 +표시를 눌렀다.

 

  [1000포인트를 사용해 ‘흔들림 없는 왕좌’ 스킬을 획득하시겠습니까?]

 

  고급 스킬은 일반 스킬과 달리 가격이 비쌌다.

 

  ‘하지만 그 만큼의 효능이 있지. 스킬을 획득하겠다.’

 

  [‘흔들림 없는 왕좌’ 스킬을 획득하셨습니다.]

 

  스킬 창의 [흔들림 없는 왕좌] 스킬 옆에 ‘LV.MAX’ 라는 글자가 추가되었다.

 

  ‘1레벨로 마스터인 스킬이었군. 뭐, 나쁠 건 없지.’

 

  예상 외의 수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스킬 창을 껐다.

 

  그라운더 창은 다시 한 번 세 가지 선택지를 보여줬다.

 

  [권속], [스킬], [아이템].

 

  [아이템]탭에는 아직은 볼 일이 없었다. 아이템은 경기 시작 직전에 들르는 것으로 충분했다.

 

  내 손가락은 [권속]창을 클릭했다.

 

  [권속을 선택해 주십시오.]

 

  글귀가 떠오르며 내가 킬한 325명의 사진이 쫙 나열되었다.

 

  하지만 내가 권속으로 삼을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씨익, 나는 미소지으며 한 사람을 선택했다.

 

 

  *

 

 

  저녁 무렵, 여동생이 집에 돌아왔다.

 

  “어, 오빠. 오늘은 일찍 왔네.”

 

  일 년 만에 본 여동생의 얼굴이 반가웠지만, 수험생의 피곤에 찌든 얼굴을 보자 입이 막혀 버렸다.

 

  “그러고보니 아파트 앞에 비싼 차가 와서 오빠 찼던데 혹시 뭐 죄 지은 거라도 있어?”

 

  “응? 비싼 차?”

 

  때마침 초인종이 울렸다. 인터폰 너머에는 김권태의 비서실장이 와 있었다.

 

  “이정욱님. 대한 건설사 김권태 사장님께서 찾으십니다.”

 

  “엄마! 대한 건설 사장이 오빠 찾아!”

 

  호들갑스런 동생의 외침에도 나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올 것이 왔구나.’

작가의 말
 

 3화보다 재밌는 4화, 4화보다 재밌는 5화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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