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검은 병자
작가 : 자전거탄구름
작품등록일 : 20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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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먹는 동굴 -2-
작성일 : 18-03-08     조회 : 244     추천 : 0     분량 : 2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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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 피가 흙 속으로 스며들었다. 뱃속에서 흘러나온 창자는 뉘엿뉘엿 지고 있는 햇빛을 받아 시뻘겋게 빛나고 있었다. 산짐승도 자신이 죽어가는 것을 아는 지 살고자 발버둥치진 않았다. 그저 산짐승은 눈만 껌뻑거리며 가늘게 숨을 내뱉을 뿐이었다.

 

 무심코 헛구역질이 나왔다. 숲길 사이에 쓰러진 노루의 모습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이 노루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소년에겐 알 길이 없었다. 그때 노인이 나직하게 말했다. “……놈이 가깝다.”

 

 노인은 쭈그리고 앉아 노루를 살피더니 덤덤히 숲길로 들어갔다. 날은 저물기 시작해 숲은 어두웠고, 흙은 피가 배어 비릿한 냄새가 풍겼다. 그럼에도 노인은 거리낌이 없었다. 익숙한 듯 그는 표정변화 하나 없었다.

 

 소년은 그런 노인을 바라보다 휘청휘청 그를 따라갔다. 흙바닥은 빗물을 잔뜩 먹어 걷기가 힘들었었다. 나아가다 진흙에 다리가 빠졌고, 진흙탕에 처박힌 동물 사체에 걸려 넘어질 뻔하기도 하였다. 그때마다 소년은 흠칫 숨을 삼켰다.

 

 노인이 소년을 흘끔 바라봤다. “……괜찮느냐?”

 

 소년은 고개를 내저었다. “괜찮습니다.” 힘찬 음색이었다. 자신은 조금 놀란 것뿐이라는 듯 소년은 진흙을 파헤치며 다시 열심히 노인을 따라갔다. 노인도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묵묵히 앞을 나아갔다. 그러다가 노인이 다시 소년을 흘깃 바라봤다. 그러곤 휙, 하고 소년에게 나무막대 하나를 던졌다.

 

 “……이건?” 소년이 막대를 받아 들곤 비스듬히 고개 기울였다.

 

 “횃대다. 날도 어두우니 불을 지피거라.”

 

 노인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특별한 억양이 없는 그의 말투가 오늘따라 더욱 딱딱하게 느껴졌다.

 “……그렇군요.” 소년은 작게 중얼거리곤 부싯돌을 탁탁 두들겼다. 가져온 마른 풀에 연기가 피더니 소년은 능숙하게 횃대에 불을 붙였다. 모두 노인에게 배운 것들이었다.

 

 작았던 불씨는 점차 커져 주변을 환하게 비추었다. 흙탕물도 나뭇가지도 모두 똑똑히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긴장됐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그때 노인이 걸음을 멈췄다. 노인의 눈이 가늘어지더니 그가 허리춤에서 검 한 자루를 뽑아들었다. 손때가 묻은 낡은 검이었다. 노인은 그 검을 아래로 천천히 기울이더니 저 앞 어둠을 가리켰다.

 

 동굴이었다. 석순이 빼곡히 늘어선 것이 눈에 보였다. 그 모습이 마치 사람 아가리 같았다. 아가리를 벌리고 먹잇감이 들어오길 기다리는 것 같았다.

 

 소년은 갑자기 한기를 느꼈다. 저 동굴에서 불어온 찬바람 때문이었을까, 아님 어젯밤 비가 세차게 쏟아져서일까, 소년은 마른 침을 삼켰다.

 

 둘 다 아닐 것이다. 아마 저 께름칙한 동굴 때문이겠지. 소년은 다시 동굴을 바라봤다. 그러자 입구로 통하는 구멍이 보였다. 그 구멍은 시꺼맸다. 그저 까맣게 구멍이 뚫려만 있어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소년은 뒤로 주춤거렸다. 묘하게 등골이 서늘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순 없었다. 소년은 검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노인에게 말했다.

 

 “……여긴 것 같습니다.”

 

 “그래…….”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노인도 검을 부여잡고는 천천히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소년도 노인의 걸음에 맞춰 발을 움직였다.

 

 동굴은 어두웠다. 횃불이 있었음에도 불빛은 멀리 가지 못하고 사라졌다. 발치엔 피가 흥건했고, 여기저기 어린아이 시체들이 보였다. 그것들이 역한 냄새를 풍겨 소년은 미간을 찡그렸다.

 

 “우리가 잘 찾아온 것 같구나…….” 노인이 시체들을 보며 말했다. 노인의 눈빛엔 감정이 서려있지 않았다. 그의 눈은 탁한 빛을 띠고 있었다. 죽은 몸뚱이들이 익숙한 듯, 노인은 이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듯했다.

 

 그 차갑고 무미건조한 모습에 소년은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으나 입을 뻐끔거리는데 그치고 말았다.

 

 소년은 노인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살이 보였다. 수염은 머리카락과 같이 허옇게 물들었고, 이마엔 커다란 흉터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것들이 노인이 어떤 세월을 거쳤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멈추거라.” 노인이 말했다. “무언가 있는 것 같구나.”

 

 노인은 검 날을 세우곤 저 앞을 바라봤다. 어둠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노인은 저 어둠을 꿰뚫어 보는 듯 했다. 소년도 검을 부여잡곤 몸에 바짝 힘을 주었다. 차디찬 바람이 뺨을 스쳤고, 종유석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그때, 훅, 하고 공기 가르는 소리가 퍼졌다. 소년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른 채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정신이 아득해졌고, 이명이 들렸다. 소년은 다시 몸을 일으키며 검을 잡았다. 그러다 머리에서 뜨거운 게 흘러내리는 것을 알아차렸다.

 

 ……피? 소년은 당황할 틈도 없이 피를 닦아냈다. 그리곤 닦은 피를 털어내며 주위를 살폈다. 저 앞엔 횃불이 떨어져 있었다. 바닥엔 말라붙은 시체들이 굴러다니고 있었고, 동굴 벽면엔 그림자들이 출렁거렸다. 노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소년은 떨리는 어깨를 진정시키며 다시 저 앞을 바라봤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인기척 하나 없었다. 동굴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들렸던 바람소리나 물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였다.

 

 절뚝.

 

 어디선가 다리 끄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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