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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규 이세계 단편 13
작가 : 류규링
작품등록일 : 2018.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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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壓倒)-1 부제- 기사. 왕녀.
작성일 : 18-03-27     조회 : 466     추천 : 0     분량 : 4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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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국의 훈련장, 넓은 공터에 표적이 그려져 있는 나무통만 이곳저곳 널려져 있는, 어떻게 보면 쓸쓸히 느껴지기도 하는

 훈련장의 한가운데, 짧은 빨간 머리에 온몸에 근육이 울긋불긋한 남자가 괴성을내며 허공에 칼을 내지르고 있다.

 

  "흡..!"

 

  "흐읍...!"

 

 소리를 내지 않는 훈련이라도 하는 것일까, 힘이 잔뜩 실린 검을 휘두르면서도 아랫입을 꽉 깨물고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수십번의 칼이 허공을 베어갈 때 즈음, 찰랑거리는 금발과 귀풍스러운 옷, 화려한 액세서리를 주렁주렁 온몸에 달고 있는 소녀가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파시온, 훈련중이신가요?"

 

 남자는 놀란 듯 다급히 칼을 손에서 내려놓고는 여자에게 대꾸했다.

 

  "카리나 공주님! 공주님께서 이런 누추하신 곳에오시면 안 됩니다!"

 

 과하다 싶을 정도의 큰소리로 파시온이 카리나에게 호통쳤다.

 

  "후훗, 괜찮지 않나요? 어차피 오늘은 공휴일이고, 공휴일에는 저도 공주를 조금 쉬고 싶은걸요."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 말아주십쇼, 공주님"

 

  "뭐 어떤가요? 아, 참 파시온. 공휴일에는 훈련장 사용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는건 알고있겠죠?"

 

  "...... "

 

  카리나를 꾸짖으려 열었던 파시온의 입이 아무 말도 못하고 공기만을 삼킨채 굳게 닫혔다.

 

  "공주님.. 그, 저, 이건..."

 

  "비밀로 해드릴게요, 대신 저한테도 아무 말씀 하시지 않기로 약속하시는 거예요?"

 

  ".......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파시온. 왜 항상 휴일에까지 훈련장에 나와 훈련을 하는 거예요? 파시온은 규율이라면 목숨을 걸고지키려 드시면서, 왜 훈련장은 항상 규율을 어기면서까지 오시는 거죠?"

 

  "......."

 

 파시온은 시선을 바닥으로 떨구고는 아무말이 없었다.

 

  "말하기 싫다고 하시면 됐어요, 어차피 큰 규율을 어긴 것도 아니고, 그저 국왕 폐하께서 왕국에 대한 충성이 너무 넘쳐나는 사병들을 위해서 쉬는 날에는 확실히 쉬라고 처벌도 없는 규율을 만들었을 뿐이니까요."

 

  ".....그래도 제가 규율은 어긴 것은 어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는 말아요, 파시온이 나라를 생각해서 그러는 마음은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요."

 

  ".....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공주님."

 

  "아, 참! 오늘 하루 공주는 쉬고 싶다고 했잖아요 파시온!"

 

  카리나가 앙탈 부리듯 빼액거리며 파시온에게 소리쳤다.

 

  "아니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공주님은 태어나서 돌아가실 때까지, 공주님 이십니다."

 

  "어차피 저는 폐하의 친자도 아닌걸요."

 

  "........죄송합니다, 제가 괜히 공주님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 같네요."

 

  "아니요 파시온, 괜찮아요. 어차피 오라버니 두 분 덕에 제가 왕위에 오를 가능성도 없고, 저는 그저

  왕국 생활을 만끽하고 언젠가 어딘가의 이름 모르는 귀족이나 왕족에게 정략결혼으로 팔려갈 운명인걸요."

 

  카리나는 언뜻 들으면 비꼬는듯한 말을 무표정하게 해댔다, 하지만 파시온은 카리나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할 뿐,

 그것에 아무 불만도 품고 있지않는다는 것을 연거푸 들어와서 잘 알기 때문에, 그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대신 파시온은 이따금 공주가 자신의 처지를 말할 때마다 짓는 암울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요 파시온, 그런 표정 짓지 말아요."

 

  "공주님...."

 

  "또, 또!!"

 

  "아."

 

  파시온이 당황한 듯 손을 허공에 휘적댄다.

 

  "됐어요! 파시온 한테 어려운 걸 시킨 제 잘못이죠, 뭐! "

 

  카리나는 익살스럽게 소리쳤다.

 

  "그나저나 카리나 공주님, 그래서 이곳은 어 연일로..?"

 

  "참, 파시온도! 당연히 파시온을 보러 온 것이지요. 별다른 이유가 있겠어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만... 다른 일이 있어서 오신 것은 아니지요?"

 

  "아니랍니다~ 정말로 파시온이 보고 싶어서 온 것 뿐이예요~"

 

  파시온은 머릿속으로 겨우 기사단의 일원일 뿐인 자신을 보러 공주님께서 제 발로찾아오신 것 자체가 문제라고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참아냈다.

 

  "그렇다면 목적을 이루셨으니 이제 궁으로 돌아가시죠,"

 

  "이런 미녀가 자기를 보러 왔다는데 설레지도 않아요!? 너무하네! 정말."

 

  카리나가 새침하게 소리쳤다.

 

  확실히 카리나는 미녀 중에도절세의 미녀다. 이목구비가 조화를 갖추어서 수려한 느낌이 들고 적당히 부드러워 보이는 촉 촉한 볼살,이마는 넓었으며 찰랑거리는 머릿결은 동쪽제국의 비단과 같았다.

  특히 깊은 바닷속을 바라보는 것만 같은 검파란 색의 반짝이는 눈동자, 이 눈동자 덕에 주변국에서 카리나공주를 얻기 위해서 귀족과 왕족들이 본국을 치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아름다운 눈동자였다.

  그녀가 입으면 아무리 허름한 옷도 드레스처럼 화려해졌고, 그녀의 목에 걸리는 목걸이는 한낱 조개껍데기 목걸이라도 국가의 보물처럼 반짝였다.

 

  그런 그녀이기에 파시온이 카리나에게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용납할 수 없었고, 왕국이 용납하지 않았다.

 

  "공주님, 그런 언동은..."

 

  "아, 알았어요! 정말로 꽉 막혀있다니까요!"

 

  카리나는 등을 돌려왕궁 쪽으로 발을 옮겼다.

 

  "가시는 겁니까?"

 

  "예~ 공주님은 이제 왕궁에서 어딘가에 계실 왕자님을 기다릴 시간인걸요~ 파시온도 적당히 하고 들어가서 쉬시길 바랍니다~"

 

  "예. 그럼.."

 

  말이 끝나기 무섭게 파시온은 검을 다시 치켜들고는 다시 허공에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파시온이 수천 번의 칼을 더 휘두르는 사이에, 하늘에는 해는 저물고 달이 떠오르려 하고 있었다 .

 

  "벌써 해가 진 건가..."

 

  파시온은 무거운 발걸음을 터벅터벅 옮기며 집까지 힘겹게 걸어갔다, 분명 몸은 피곤해 보였지만 두 눈에는

  피곤하다는 느낌보다는 무언가에 불타는 듯 하는 눈을 하고 있었다.

 

  "후.."

  '공주님을, 나의 카리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나는 힘내야 해.'

  남자는 침대에 누워 매일의 맹세를 다시금 되새기며 눈을 감았다.

 

 

  "....경비는 ?"

 

  "좌측 시녀 방 복도에 넷, 후측 정원에 여섯, 알현실에 일곱, 그리고 왕과 왕자, 왕녀의 방앞 복도와 문 앞에 각각 열넷, 여덟명 씩입니다."

 

  "좋아, 그럼 시작하지. 브렛."

 

  "예."

 

  달이 중천을 막 넘어갈 때 즈음, 왕궁의 외벽에서 검은 천을둘러 입은 남자 둘이 밀담하고 있었다.

 

 

  왕녀는 오늘따라 잠이 잘 오지 않았다, 평소와 같은 파시온의 쌀쌀맞은 태도 때문일까, 아니면 홍차를 너무 많이

  마신 탓일까, 저녁에 읽은 잡설(雜說)이 너무 자극적이었기 때문일까, 동부제국에서 비싼 값에 수입해온 비단으로 만든 침대에서도 몸을 한참 뒤척이다, 답답한 마음에 작은 창문 너머로 빛나는 만월만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쓸쓸하다..."

  왕녀는 창문 하나 너머로 혼자 쓸쓸히, 화려하게 빛나는 달을 보며 조금의 동질감을 느끼며, 쓸쓸한 마음이 들어

  눈가가 촉촉해졌다.

 

 

  "툭."

 

  왕녀의 뺨에 한 방울이슬 같은 눈물이 흐르고 있을 때, 무거운 것이 바닥에 내동댕이 쳐지는 둔탁한 소리가

  침실의 문 너머로 작게 들려왔다.

 

  "툭. 툭 . 툭.. "

 

  둔탁한 소리는 점점 빈도가 짧고 점점 가까워졌다,

 

  "경비?"

 

  왕녀는 경비병을 큰 소리로 불렀다. 위급한 상황 이였지만 경비를 부르는 목소리에는 품위가 있었다.

  하지만 경비는 대답이 없었다.

 

  '.....?'

 

  왕녀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는 문 앞으로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곧이어서 네 차례 "툭" 하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여덟 번...? 설마.."

 

  "똑, 똑."

 

  왕녀가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문에서 귀를 떼어내자, 둔탁한 노크 소리가 가볍게 두 번 들려왔다.

 

  "누구... 시죠?"

 

  "왕녀님을 뵈러 왔습니다."

 

  분명 경비병의 목소리는 아녔다, 왕녀는 경비들과 꽤 친분을 가지고 지내왔기 때문에 경비의 목소리라면

  알아보지 못할 리가없다.

 

  "....들어오세요."

 

  왕녀는 달리 도망갈 방법이 없다 판단하여 대화를 시도하려 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중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로 남자는 허락을 구한 후 문을 조심히 열었다.

 

  "그래서, 공은 누구시죠? 어 연일로 소녀의 침실에...?"

 

  왕녀도 바보는 아니었기 때문에 눈앞에 검은 천을 둘러 얼굴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남자가 자신의 침실에

  무엇을 위해 왔는지 모르는 건 아녔다, 그렇지만 왕녀는 물었다.

 

  "아, 공주님을 마중 나온 일개 하인에 불과합니다. 가시죠."

 

  "누가 저를 보고 싶어 하신단 말씀이신가요? 죄송합니다만 그런 연락은 받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이런 밤중에

  여성의 침실에 이렇게 갑작스레 방문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 봅니다만.."

 

  "저희가 사정이 넉넉치 않아 결례를 범한 점은 지극히 죄송합니다만, 부디 용서해주시고 얌전히 따라와 주시길 바랍니다."

 

  남자는 얌전히, 라는 말에 특히 강세를 주어 예의 있게 말했다.

 

  '아무래도 지금은 그냥 따라가는게 좋을 것 같네요.'

 

  "이번에는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분명 그쪽 주인분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가보도록 하지요."

 

 

 

 

 

 

 

 

  오전에서 오후로 넘어갈때즈음, 파시온은 집앞이 소란스러워 잠을 깼다.

 

  '으윽... 뭐야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 ?'

 

  "야 이 자식아! 네가 그러고도 기사단이냐!"

 

  "개자식이!"

 

  "내가 너같은새끼 밥맥일라고 세금내는줄알아!"

 

  이 층 침실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니 여러 명의 군중이 파시온의 집 앞에서 농성을 치며 항의하고 있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파시온은 급히 옷을입고 대문을열었다.

 

  "나왔다! 이 개자식아!"

 

  "죽어 이 자식아!!"

 

  "아니, 여러분 진정하십시오, 무슨 일입니까?"

 

  파시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군중 속 한 남자가 나와 파시온에게 돌을 던지며 말했다.

 

  "뭐? 무슨일? 장난해!? 왕녀님이 납치당하셨잖아! 설마 기사단이란놈이 지금까지 퍼질러 자느라 그것도 몰랐단 말이야?"

 

  파시온은 눈을 땡 그렇게 뜨며 놀랐다.

 

  "네?! 왕녀님이 납치를 당하셨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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