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길
“니가 조동길이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멀대같은 놈이 나를 쏘아 보고 있다. 한 눈에 보아도 좋은 일은 아닐 것 같은데 아마 내 소문을 듣지 못했나 보다. 만약에 들었다면 저리 건방진 눈으로 나를 쏘아보지는 않을 텐데.
“니 조동길 아이가?”
다시 묻는 녀석의 뒤로 다섯 명이 더 보였다. 그 중 한 놈의 낯이 익다. 동네에서 몇 번 봤던 놈인데 재수를 한답시고 입시 학원에 다니던 놈이었다. 소위 재수생 패거리들. 재학생들 중에 좀 논다 하는 애들을 불러들인다더니 그 노는 애들 중에 나도 끼어 있었나 보다.
“와?”
“니 내 좀 따라 온나.”
시작이다. 재수생의 재학생 길들이기.
입한 한지 이제 열흘인데 벌써 서열을 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느 학교든지 마찬가지 재수생과 재학생들의 기 싸움이 시작된 것이었다.
“진짜 따라 가까?”
내가 묻자 녀석이 고개를 돌렸다.
“야가 뭐라 카노?”
사뭇 위협적인 표정이다. 겁을 주겠다는 의도겠지만 저 표정에 겁먹을 것 같으면 부랄 두 쪽이 아깝다.
“따라가면 후회 할긴데.”
녀석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다. 알아듣는다면 다행이고 못 알아들으면 운이 없는 녀석이다. 물론 그 운이 없음은 몸으로 확인을 할테고.
“까불지 말고 따라 온나.”
알아듣지 못했다. 녀석이 몸을 돌릴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것을 본 우리 반 실장 원석이가 다가왔다.
“동길아. 우짤라고 그라노? 가지 마라.”
원석이의 눈에 걱정이 가득하다. 상대는 재수생에다가 여섯 명이나 되니 걱정이 될 법도 했다.
“괘안타.”
원석이의 어깨를 툭 쳐준 뒤 녀석의 뒤를 따랐다.
나는 1학년 1반이다. 건물로 보면 제일 좌측에 있는 교실이었고 녀석들이 간곳은 1학년 12반 옆의 화장실이다.
학교 안에서는 최대의 우범지대 중 하나인 화장실은 약한 학생들에게는 공포의 장소다. 하지만 내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화장실로 들어가자 담배를 피우는 놈들이 보였다. 모두가 재수생들이다.
조금 전 나를 부르러 왔던 녀석이 주둥이에 담배를 문 채로 나를 내려다 본다. 키 하나는 장난 아니게 큰놈이지만 눈빛은 아직 멀었다. 저런 눈빛 가진 놈 치고 쌈 잘하는 놈 없다.
“야! 니 좀 논다미.”
녀석을 한 팔로 벽을 짚고 나를 내려다 봤다. 지금 따귀를 한 대 때려 주면 녀석의 머리는 화장실 벽과 부딪친다. 따귀 맞는 것 보다 벽과 부딪치는 충격이 더 클게 분명했다. 싸움을 좀 할 줄 아는 놈이 저런 자세로 시비를 붙일 리는 없다.그렇다면 둘 중에 하나다. 녀석은 싸움을 잘 못하거나 내가 겁을 먹어 손을 먼저 쓸 것이라고는 생각 하지 않는 것이었다.
입장을 바꾸어 보면 나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었다. 제 놈들 숫자가 여섯이나 되니까.
“니 이름 뭐고?”
이름을 묻자 녀석이 의아한 눈빛을 보인다. 하긴 끌고 오는 녀석들 마다 겁을 먹었을 테니 이름을 묻는 내 행동이 이상하게 느껴지긴 할 것이다.
“와? 장형준이다. 내가 니 보다 한 살 많으니까 형이라 불러라. 알았나?”
같은 학년끼리 형 같은 소리 하고 있다.
“형준아. 니는 두 가지 잘 못을 했다. 첫 번째로 내 잠을 깨운 기고 두 번째는 이까지 델꼬 온기다. 알았나?”
“이 새끼가 뭐라 카노?”
녀석이 오른팔을 든다. 키가 큰 만큼 팔도 길다. 따귀라도 때릴 자세다. 제대로 자세를 잡아도 될까 말까 한 녀석이 왼 팔은 벽에 기댄 채로 오른팔을 들다니 뒈지게 맞고 싶어 환장한 놈이 분명했다.
녀석의 손바닥이 반쯤 왔을 때 팔을 뻗었다.
빠박!
“컥!”
녀석이 거품을 물었다. 벽에 부딪친 충격이 생각보다 큰 모양이었다. 그 모습에 다른 녀석들의 표정이 굳었다. 제 놈들 편이 한방에 게나 품어야 할 거품을 품어대고 있으니 긴장할 수밖에.
지금이 찬스다. 싸움의 기본은 기선제압이다. 형준이라는 놈의 모습을 보고 이미 얼어 있는 놈들을 제압하는 것은 말 몇 마디면 충분하다.
“졸만한 새끼들아. 담배 안꺼!”
고함 한방에 몇 놈은 급히 담배를 던지고 한 놈은 어디에 꺼야 할지 몰라 허둥거린다. 떼거리로 몰려 있을 때 무엇이 이점인지도 모르는 놈들이다. 저런 놈들이 숫자만 믿고 몰려 다니다니 한심하다.
어! 근데 한 놈의 자세가 이상하다. 다른 녀석들은 그야 말로 차렷 자세인데 한 녀석만 짝다리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하나뿐이다.
“너 짝다리. 다리 접어주까.”
눈에 힘 좀 주고 위협하니 짝다리를 짚고 있던 놈이 엉거주춤 똑바로 선다. 지금이라도 달려들까 말까 고민하는 것이 역력했다.
“자신 있으면 한번 덤벼 보든지.”
“아...아이다.”
“아이기는? 푸닥거리 할라고 불렀는거 아이가?”
아무도 대답이 없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겁이 나서 하지 못한다. 이게 바로 기선제압이 주는 효능이다.
“너거 잘 들어라.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난 조동길이다. 그라고 웬만하면 학교에서 사고 안칠라 칸다. 나는 장군 먹고 싶은 마음도 없고 일진하고 싶은 마음도 없데이. 그러니까 너거끼리 잘 의논해가 다시는 부르지 마래이. 아랐나?”
녀석들이 힘 없이 고개를 끄덕일 때 등뒤에서 서늘한 느낌이 들어 몸을 돌렸다.
‘저건 뭐고?’
엄청난 덩치에 시커먼 얼굴. 난 우리 학교에 흑인이 입학했는지는 정말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