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찍혔다.’
자율학습을 빼먹고 버스 안에서 베트콩을 만난 것은 우울한 나의 학교생활을 미리 보여주는 것과 같았다. 3학년에게 똥물을 뿌린 것과 버스에서 만난 베트콩. 재수 없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황당한 일이었다.
[동길아. 내일 보재이.]
나를 향하던 베트콩의 미소는 악마와 다를 바 없었다. 잠시 후면 조례시간이니 베트콩의 난사가 시작 될 것이고 그 희생자는 분명 내가 될 것이다.
“동길아! 무슨 일있나? 아 얼굴이 와이리 시꺼멓노?”
나에게 묻는 녀석은 같은 반 친구 석기다. 녀석은 수명중학교를 졸업했는데 중학교 때 꽤나 유명했다고 스스로 말했다.
소문으로 들은 적은 없지만 친구가 그렇다고 하니 믿을 뿐이었다. 입학 당시에 머리를 빡빡 밀고 들어온 석기의 얼굴은 압권이었다.
소위 말하는 백구. 반항의 상징이다.
대학생들이 머리를 미는 것은 나름 이유가 있다. 자신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회와 정부에 대한 반항이 담겨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석기의 반항은 이유도 없거니와 받아 들여 줄 사람도 없다.
결과는 무참히 짓밟히는 것뿐.
빡빡 밀어 버린 머리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들어오는 선생님 마다 녀석의 반항정신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 결과 질문의 타깃이 됐다. 녀석의 수준으로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좋은 결과가 있을 리가 없다. 고등학교에 들어 와서 가장 많은 웃음을 준 녀석이 바로 석기다.
“아이다.”
“니 3학년 때문에 그러제? 어제 완전 난리 났다던데.”
“괜찮다. 태규형 한테 말해 놨다.”
태규형이라는 말에 석기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긴 흑곰이라 불리는 태규형은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일대에서도 건드릴 수 없는 강자니 놀랄 만도 하다.
“니 태규형님 아나?”
“조금.”
석기가 고개를 갸우뚱 거릴 때 베트콩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손에는 평소에 보이지 않던 지휘봉이 보인다. 거무튀튀한 게 물을 먹인 것 같은 지휘봉.
따귀를 때리는 스냅을 생각한다면 몽둥이질 또한 예사롭지 않을 것, 오늘 사람을 잡으려고 마음을 먹고 들어 온 것 같다.
“차렷! 인사.”
“안녕하십니까?”
교실을 쩌렁쩌렁 울리는 인사 소리에 베트콩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가 무슨 군대도 아니고 이렇게 고함을 지를 필요까지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목소리가 작은 인사는 베트콩의 히스테리를 유발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오냐. 오늘 하루도 열심히 공부 해래이. 알았제?”
“예.”
“그리고 조동길이.”
베트콩이 나를 부른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
이제 시작됐다. 베트콩은 어제 버스 안에서 이루지 못한 한을 풀어 낼 것이다. 밤새 나에게 가할 수많은 고문을 준비 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니 자율학습 한번만 더 제끼면 그때는 쥑인데이.”
말투가 이상하다. 마치 이렇게 넘어 가겠다는 말투에 나는 급히 대답했다.
“예.”
“됐다. 앉아라.”
주택복권에 당첨이라도 된 것인가?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 넘어갈 베트콩이 아니다. 뭔가 기분이 좋은 일이 있거나 그에 상응하는 것이 분명히 있다.
“어제 영성공고 애들한테 우리 학교 학생이 구타를 당했다 카네. 퇴교시간이 비슷하니까 자꾸 부딪치고 두들겨 맞는 거 같아서 오늘부터 자율학습 30분 연장하기로 했다. 집에 갈 때 혼자 다니지 말고 여럿이서 함께 다녀라. 알았나?”
말도 아닌 소리다. 옆 학교 애들에게 두들겨 맞을까 봐 자율학습을 연장 한다는 그런 말도 아닌 소리가 어떻게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금쪽같은 나의 30분이 허무하게 소비 될 생각을 하니 보지도 못한 영성공고 놈들에게 분노가 느껴졌다.
베트콩이 나가자 석기가 쪼르르 달려왔다.
“동길아.”
“와?”
“니 근마들 아나?”
“누구?”
“11반 아들 두들겨 팬 영성공고 새끼들 말이다.”
“내가 어떻게 아냐?”
“길수라고 완산 중학교 장군 출신이란다. 그 새끼 완전 독하다고 소문났는데 못 들었나?”
그러고 보니 들어본 것 같다. 하지만 별 관심이 없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잠이다. 수업 시작 전 여유시간 20분은 부족한 잠을 채울수 있는 시간이다.
“석기야. 나 좀 잘란다.”
그렇게 책상에 머리를 묻으려 할 때 괴물 하나가 내게로 다가왔다. 얼굴은 부을 때로 부었고 울긋불긋 한 게 하마터면 친구 찬성인지 알아보지 못할 뻔 했다.
“찬성아. 니 얼굴 와 그라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