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의 남쪽에서도 왼편의 가장자리, 이름 없는 작은 숲의 근처에 순간 밝은 빛과 함께 두 명의 청년이 나타났다.
빛이 사라지며 나타난 그 청년들은 바이안과 론이었고, 론은 주변을 휘휘 둘러보며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상당히 구석으로 온 것 같은데?”
“오늘 해가 지기 전에 꼭 가야만 하는 곳이 있어서 그래.”
평소보다 바이안의 말투가 조금 부드럽다 싶게 느껴진 론은 바이안의 표정을 보고 그냥 입을 다물었다.
무표정에 무뚝뚝함은 기본이요, 말수도 필요한 말 외에는 하지를 않으며, 훈련 외에는 그 어떤 관심사도 없는 움직이는 골렘같은 사람이 자신의 친구인 바이안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바이안의 표정이 9년 만에 처음으로 변화를 보였다.
무언가를 참는 듯한, 그의 표정은 언제라도 울 것 같았으며, 그의 입술은 미세하게 경련이 일어나고 있었다.
“론... 하루만 임무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뭘 그걸 나한테 허락을 맏냐?”
그리 말하며 뒷머리를 긁어댔다.
“뭔 일인지는 몰라도, 단장님이 위에서 하신 말씀도 있었으니까 괜찮지 않아? 아직 해가 중천이겠다, 여기서 가깝냐?”
론의 질문에 바이안은 작게 고개를 끄덕임으로 대답을 대신했고, 론 역시 그리 많던 수다와 늘 장난스러운 표정일색인 얼굴을 진지하게 굳히며, 손으로 그의 등을 살짝 토스 하는 것으로 가자는 말을 대신해줬다.
그리고 둘은 더 이상의 말도 없이 그대로 어느 한 방향을 향해서 대쉬했다.
숲을 가로 질러 빠져 나오자 그들을 반겨주는 풍경은 아무것도 없이 그저 흩날리는 모래바람만이 불며,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하게 펼쳐진 사막이었다.
사막을 보며 잠시 멈칫한 바이안은 한번 사막을 슥 하고 훑어보다가 다시 어느 한 지점을 정하고 그대로 달려갔다.
얼마나 달렸을까, 목적한 지점에 당도하자 바이안은 달리던 것을 멈추고,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며 걸어갔다.
분명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닥에는 모래만이 가득한데도 불구하고 바이안의 눈에는 마치 무언가가 보이는 듯 했다.
“여기 이쯤에 뚱뚱한 헤넬 아주머니가 늘 맛있는 것을 챙겨 줬었고, 그럼.. 이쯤이겠다. 이쯤에 볕이 잘 드는 커다랗고 평평한 바위가 있는데, 쿠란 할아버지의 낮잠장소였어. 항상 할아버지가 잠든 틈을 타서 수염을 뽑고 날뛰는 할아버지를 피해서 도망쳤었는데...”
“......”
론은 자신에게 해주는 말인지, 회상에 젖어 떠들고 있는 바이안을 조용히 따라 다녀주었다.
그리고 바이안은 열심히 기억을 더듬어 간다고 싶었겠지만, 자신이 떠들고 있음은 물론이요, 간간이 11살의 어린아이의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쪽에 작은 냇가가 있었는데 근처 나무 숲에서 처음으로 알이라는 녀석이랑 치고 박다가 뒷목 잡혀 끌려갔었는데. 나한테는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경험들이었어. 그리고 이 냇가를 죽 따라서 올라가면....”
신나게 떠들던 바이안은 표정을 무겁게 내려앉히며 오분 가량을 걸어 걸음을 완전히 멈추었다.
그리고 꽉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녀왔습니다.”
대답해주는 이가 없는 인사말에도 불구하고 바이안은 애써 인사를 건네며 천천히 무릎을 꿇고 앉아 손으로 모래를 슥 훑었다.
“내가... 너무 늦었지? 약속 못 지켜서 미안....”
그리고는 두 손 가득 모래를 움켜쥐고 그대로 가슴에 끌어안은 채로 온몸을 들썩이며 오열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는지 한참의 시간이 흘러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며, 붉은 노을이 가득 물들기 시작했을 때쯤에서야 바닥에 누워 멍하니 지는 하늘을 응시하는 바이안의 옆에 론은 털썩하고 비스듬히 누워 앉아 입을 뗐다.
“이제 좀 괜찮냐?”
“......”
굳이 대답을 바라지도 않았던지, 론은 이내 자신도 그대로 드러누워 시선을 하늘에 두었다.
“네가 변한 원인이 무엇인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오늘이 기일이다.”
“그랬냐...”
해가 완전히 지고 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보이게 되자, 사막답게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졌지만 둘에게는 그런 것은 일체 영향을 받지 않은 듯 태연했다.
“어렸을 때 너 실종 되었을 때가 있었지? 그리고 외박한다고 하며 어딘가 가서 한참을 돌아오지 않은 일도 많았었고, 다..여기였냐? 9년 전 대 소멸사건이 있던 장소, 그러고 보니, 오늘이 그 사건이 일어 난지 딱 9년이 되는 날이네.”
가만히 하늘만을 응시하던 바이안은 스르륵 눈을 감았다.
그리고 론은 그에게 더는 말을 걸지 않고 그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았다.
9년 전, 그 사건이 터진 그날의 바이안은 11살이었다.
“어마마마”
어린 바이안은 자신의 어머니인 황후를 찾아 헤매다가 그녀를 발견하자 해맑은 표정으로 황후의 품으로 달려가 안겼다.
보통 자신이 품에 안기면 상냥하게 웃어주며 부드럽게 안아주는 황후였지만, 오늘은 무언가 분위기가 다름에 바이안은 고개를 빼꼼히 들고 갸웃했다.
“어마마마?”
마주본 황후의 표정은 심각하기 이를 수 없었으며, 무척이나 괴로워 보였다.
그런 황후의 모습에 주변을 둘러보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으니, 아무리 어리다고 하더라도 무슨 일이 있음은 그라도 바로 짐작 할 수 있었다.
“바이안...어쩜 좋으니...”
자신의 아들을 보자 참지 못하고 끝내 황후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어마마마? 울지 마세요.”
처음으로 본 황후의 눈물에 당황한 바이안은 자신의 소매로 서둘러 황후의 눈가를 닦아 주며 그녀를 달래주기 위해 신나게 말했다.
“저요~ 하고 싶은 게 생겼어요.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이 되는 거요.”
“아가...”
어째서인지 자신이 입을 떼면 뗄수록 더 안 좋아지는 듯하자 몸짓을 크게 하며 더 떠들었다.
“제가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황제라고 했는데, 그 얘가 자꾸 기사님이 제일 강하다지 뭐래요. 히히~ 그래서 저 기사가 돼서 꼭 지켜주기로 약속했어요. 그리고 이다음에 크면 신부로....”
갑자기 황후가 자신의 얼굴까지 덮으며 와락 껴안자 더 이상 떠들 수가 없었다.
“아가... 내 아가..”
너무 세게 안겨서 작게 바동거리고 있자니 황후가 품에서 놓아주었지만 양 손으로 자신의 두 볼을 어루만져주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바이안.. 그 아이 말이다... 이제 더는 볼 수 없단다.”
자신의 어머니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일까? 전혀 엉뚱한 말을 들은 듯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말씀이세요? 어마마마?”
황후의 부정에 무언가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자 황후의 주변에서 침통해하는 관료들을 스윽 돌아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황후의 뒤에서 특별한 마력으로 대륙을 볼 수 있게 되어있는 커다란 지도에 시선을 고정했다.
불안함에 후다닥 그 지도 근처로 달려가 한참을 보던 바이안은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한 지점을 가리키며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무언가 이상해요. 여기 이쯤에 카카리아 마을이 있어야 하는데.. 왜 다 모래에요?”
그의 질문에 관료들은 갑작스럽게 커다랗고 이질적인 마력의 파동과 함께 카카리아 마을도 포함하여 1초도 안되어 그 일대가 전부 사막화가 되어, 자신들이 지금 그 원인을 찾아보고 있다고 전해주었다.
하지만 관료들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아니 잘 들리기는 했지만, 이해하고 싶지 않았고, 좋지 않은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 말을 억지로 부정했다.
“거짓말 하지 마세요. 재미없어요. 이런 거...”
황후는 자신의 아들인 바이안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이내 마음을 굳혔다.
바이안이 이곳에 오지 않더라도 어차피 이번 일은 전체적으로 소문이 날 것이며, 늦더라도 알게 될 것이기에 오히려 늦게 알게 되어 오는 충격보다는 지금이 나을 것이리라, 그리고 자신의 아들이 이겨낼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래서 자신의 입으로 다시 한 번 상황을 설명해 주어서야 이 일이 거짓이 아님을 깨닫게 된 자신의 아들은 누가 보더라도 한 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싫어... 거짓말.. 아냐. 안 믿을래. 것도 그런게, 나 어제만 해도 거기에 있었단 말이에요. 다음에 내려갈 때는 생일날에 꼭 오겠다고 손가락 약속도 했다구요.”
황후의 치맛자락을 꽉 쥐어 잡고 틀렸다 말을 해달라며 온갖 떼를 쓰기 시작한 바이안은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자신의 어머니와 시선을 피한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관료들의 모습만이 대답으로 돌아오자 이내 하얗게 얼굴이 질려버렸고,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바닥에 볼품없이 주저앉아버렸다.
“....싫어......아냐... 아니야.... 아...... 아아아악~~~”
갑자기 발작하듯 비명을 내지르던 바이안은 그대로 뒤로 고꾸라지며 기절을 했다.
“황자전하!”
“바이안!”
관료들과 황후는 놀라며 쓰러진 바이안에게 달려왔고, 그곳에 늦게 도착한 황제역시 갑자기 쓰러지는 바이안을 목격하자마자 서둘러 바이안을 들어 안고, 어의를 부르라 명을 내린 후, 바이안의 방으로 뛰듯이 데리고 갔다.
바이안의 방문 앞에 황제와 황후는 들어갈 생각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시종들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황자전하께서는 깨어 나셨지만, 식사도 하지 않으시고, 창밖만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런가, 그 외에 별다른 반응은 없고?”
보고를 하고 있는 시종은 황제의 질문에 고개만을 더욱 조아렸다.
그 모습을 황제의 품에 안겨 보고 있던 황후는 안타까워했다.
“폐하, 어찌하면 좋습니까. 제가 너무한 것일까요. 그 아이에게 그 곳이 얼마나 소중한지 제가 제일 잘 알고 있었는데...”
황제는 울 것 같은 표정을 보이는 황후를 한 팔로 더 꼬옥 안아주며 나직한 목소리로 달래주었다.
“그 곳은 당신에게도 소중한 곳이지 않소. 어차피 알아야 할 일이었소. 우리가 말을 하지 않더라도 알게 되었을 것이고, 그 자리에 있었으니 알 수밖에 없는 상황일 뿐이오. 당신의 탓이 아니오.”
황제의 말에도 황후의 마음은 달래지지 않았다.
지금 자신은 그저 힘없이 황제의 품에 기대는 것밖에 할 수 없음이 그녀를 더욱 아프게 했다.
“우리의 아이이지 않소이까.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며, 스스로 털고 일어날 것이라 믿고 기다려 줍시다.”
황제는 그렇게 추가적으로 말을 해주며 황후의 이마에 조심히 키스를 해주었다.
그때 즈음에 멀리서 작은 발소리가 다다다 하며 가까이 다가왔다.
그 달려오는 발소리가 황제와 황후의 지척까지 다가오자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제폐하와 황후마마를 뵙습니다.”
어린 론이었다.
론은 바이안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허겁지겁 황궁으로 달려왔다가 황제부부가 문 앞에 있다는 것을 늦게 깨달았고, 서둘러 예를 갖추고 인사를 올렸다.
“그래. 우리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들어가 보거라.”
황제의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론은 급하게 문을 열어젖히고 쏙하고 바이안이 있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던 황제는 그제서야 황후를 데리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지금은 우리보다는 또래 친구가 더 낫겠지.. 그대도 지쳤으니, 들어가 쉬십시다.”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황후를 데려가면서 황제는 그날의 일정을 모두 취소했고, 황후와 쭉 함께 했다.
한편, 방으로 들어간 론은 자신이 찾아 왔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바이안의 모습에 아직 많이 아픈가? 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여전하자 바이안에게 가까이 다가가 볼을 쿠욱 찔러도 보고, 웃긴 춤을 춰보기도 하면서 크게 떠들어도 봤지만, 자신에게 눈길을 한 번도 주지 않고, 목석같이 가만히 있는 바이안의 행동에 작게 한숨을 내쉬며 지쳤는지 그 옆에 털썩하고 앉아 같이 멍 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