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 봐야 할 사람이 생겼어.”
“방금 혼잣말로 한, 세나라는 사람?”
론의 물음에 바이안은 대뜸 으르렁 거렸다.
“세나라고 부르지 마.”
“에엥?”
다짜고짜 자신에게 살기를 뿜어대자 어이가 없고 황당하다.
영문도 알 수 없이 고스란히 살기를 받은 론에게 바이안은 살기를 거두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던 소중한 사람. 내 전부였던 아이.”
바이안이 저렇게까지 말을 하는 사람은 론이 알기에 딱 한사람밖에 없었다.
대륙에 내려와 알게 된 그의 과거에 있으며, 이미 죽은 약혼녀라는 소녀였다.
그것까지 생각이 맞물리자, 당장은 어찌된 영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죽었다 생각한 그녀를 이 곳에서 발견했고, 아마도 그는 멍청할 정도로 밤이 되어 모두 집으로 들어가 텅빈 도시를 아침이 될 때까지 찾아 다녔을 것이다.
“또 찾아다닐 거냐? 일일이 찾아다니면 끝도 없을 거다.”
“......”
바이안은 론의 말에도 이미 바로 나가서 찾아다닐 계획이었다.
“이 곳이 아무리 작아도 도시야. 그렇게 힘들게 찾지 말고, 차라리 이틀 뒤 열리는 축제에서 찾아.”
“축제?”
“그래. 이 곳 사람들이 이번 축제를 무척이나 좋아한다던데, 거의 대부분이 나와서 즐긴다더라. 그러면 찾기 더 쉽지.”
그래도 바로 나가려는 그를 어떻게든 설득시키며 눈을 붙일 수 있게 해서야 간신히 억지로 재울 수 있었고, 론은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아~ 그냥 내가 해야겠네.”
그리고 그대로 조용히 케리프가 자주 있는 집무실로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은밀하게 움직였다.
실은 론은 바이안에게 중요하게 할 말이 있어서 그를 기다렸던 것이 더 컸다.
하지만 오늘 본 바이안의 모습에 생각을 바꿔 이번 일은 자신이 혼자서 알아서 하기로 결정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케리프에 대한 것이었는데, 증거도 없고 반은 그저 자신의 촉이기도 한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엄청 똑똑한 녀석이라고 생각했지만, 한 번씩 만나서 본 그의 행동에서 몇 가지가 걸렸다.
지상인들이 귀족이라는 자신들을 두려워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케리프는 단순하게 무서워서 떨고 있다고 하기에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이 조심했고, 시선을 한 번도 맞추지를 못했다.
첫 만남에서는 그렇게 잘도 눈을 맞추고 말을 하던 녀석과는 너무나도 다른 행동에 오히려 반대로 이질감을 느꼈다.
지상인들과 자신들은 격리 되어 있는 것과 다름이 없는데, 무엇이 켕길 것이 있을까? 연결 될 것이 전혀 없기에 오히려 의심이 증폭되었고, 케리프의 의중을 알려고 그를 숨어서 관찰 해 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축제 하루 전 날에 세이나는 할아범의 폭풍 잔소리를 피해서 오랜만에 케리프의 저택으로 걸음을 했다.
그런데 도착한 후 본 저택의 분위기가 묘했다.
보통 자신이 나타나면 고용인들이 반갑게 맞아주며 케리프가 있는 곳으로 자신을 안내 해 주었던 이들이 오늘 따라 보이지 않았고, 마주쳐도 경직 되어 있는 것이 이상해서 고개가 절로 갸웃한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라며 금방 생각을 접고, 어차피 케리프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기에 편하게 집무실로 향했고, 기분 좋게 문을 활짝 열었다.
“놀러왔어요~”
갑자기 들리는 밝고 씩씩한 세이나의 목소리에 케리프는 화들짝 놀라며 튕기듯 의자에서 일어나 세이나의 등을 떠밀었다.
“으응?”
“어서 돌아가세요. 그리고 한동안은 이 곳에 찾아오지 말아 주세요.”
갑작스러운 축객령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케리프?”
그의 이름을 부르며 얼굴을 돌려 그를 보자 그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주변을 살피기에 바빴다.
그리고 자신의 등을 더욱 힘을 주며 밀어댔다.
“자세한 설명은 다음에 해 드리겠습니다. 어서요. 이러다 들키겠어요.”
세이나는 처음 보는 그의 이상한 행동에 의문스럽지만 굳이 멈춰 서서 물어 보지 않고, 그대로 그의 저택에서 나와 터벅터벅 걸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거의 없는 곳으로 방향을 잡고 방금 전의 상황을 곰곰이 정리해보았다.
“내가 나타나자마자 쫒아내는 행동이 참 어색하단 말야...”
작게 인상을 쓰며 팔짱을 끼고 왼손의 검지 손가락으로 팔을 톡톡 쳤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행동은 누군가를 의식하고 눈치를 본다는 건데, 여기서 케리프씨가 겁까지 먹고, 눈치를 볼 정도로 케리프씨 보다 높은 사람은 없는데... 게다가 들킨다고? 누가? 나? 내가 뭘 숨긴다고 들켜? 들켜서 곤란한 게 있지도 않은데?”
살짝 고개를 갸웃 하다가 이내 작게 쓴 인상이 진해졌다.
“그 보다 높은 신분이면, 딱 하나, 귀족밖에 없겠네. 게다가 나랑 케리프씨만 알고 있는 비밀 이래봤자, 마을 재건에 내 아이디어를 그에게 토스 했었던 거잖아. 지금은 도시라고 부를 정도가 되었지만 그게 귀족에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건데... 들킨다는 말이 지칭하는 것은 사람이니까, 거기에서 오는 케리프씨와 나의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호칭이라면 현자. 귀족이 내려와서 다짜고짜 현자를 찾는다고? 위쪽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대륙은 조금만 머리가 좋으면 다들 현자라고 부르는데, 그런 사람들이 은근히 많은 대륙에서 굳이?”
매우 황당해 하며 세이나는 이내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어쨌든 케리프씨의 행동에서 보면, 귀족이 현자를 찾는 이유가 좋지 못한 것이거나, 아니면 아예 몰라서겠네. 귀족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으니까 그 존재만으로도 벌벌 떠는 게 이곳 사람들이니, 어찌 될지 알고 함부로 말 하겠어. 게다가 여기서는 케리프씨가 현자인데 멀쩡한 걸 보니까 딱히 나쁜 의도는 없어 보이네. 뭐, 나야 당연히 무지하게 귀찮아 질 것 같으니까 안 들키는 게 제일 좋지만.”
그렇게 생각의 마무리가 되자 갑자기 케리프에게 많이 미안해졌다.
분명 그는 자신을 지키려고 무던히도 애쓰고 있는 것이 잘 느껴져서 눈앞에 그가 없어도 머쓱해졌다.
“그냥 말 하지, 똥 줄 타겠다. 난 그 현자라는 호칭을 받으면 사람들이 의지하는 것들이 괜히 귀찮아서 다 떠넘긴 건데...”
입으로는 그리 말을 하지만 세이나는 속이 쓰려왔다.
귀찮다는 말로 포장을 했지만, 그 말 속에는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하지만 정작 그녀 자신도 그 이유를 자세히 알지는 못하는 아이러니한 것이었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할아버지만이 자신의 그런 상태를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진짜 귀족이 나타났고, 만약 현자를 만나는 것이 목적이라면, 빠르든 늦든 보게 되겠네. 케리프씨는 거짓말이 어색한걸.”
한편, 세이나를 급하게 쫒아내듯 내 보내고 저택에 완전히 나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케리프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 쉴 수 있었다.
그때 갑자기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순식간에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싸악 가시며 창백해졌다.
“우리한테 들키면 안 되는 게 뭘까? 저 아가씨?”
론은 밖이 보이는 창틀에 걸터앉으며 이미 사라져서 보이지 않는 밖으로 손가락을 가리켰지만 그 것만으로도 충분히 케리프에게 전해졌다.
“카...카시어스님.”
공포에 질려서 벌벌 떨고 있는 케리프에게 진득한 미소를 보내며 론은 더 무섭게 목소리를 내리 깔았다.
“네 놈은 우리가 누구를 만나러 왔는지 잘 알지 않나? 그런데 네가 아니라 저 아가씨를 숨기는 이유라...”
일부러 말끝을 흐리며 케리프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렇다는 것은 현자는 네가 아니고 저 아가씨라는 거네?”
마지막 말에 크게 움찔하는 모습을 확인하자 확실해졌다.
“물론 네 녀석도 현자라고 생각이 되지만, 이 도시에 우리가 몰랐던 한명이 더 있었다고도 생각 할 수 있지. 숨기는 이유까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야.”
“어..언제부터 계셨습니까?”
용기를 쥐어 짜내어 물어 보자, 의외로 친절하게 대답이 들려왔다.
“멀리서 뒷모습 밖에 보지 못했지만. 들키면 안 된다며 떠미는 모습부터?”
그러자 케리프는 그대로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땅에 박으며 조아렸다.
“미천한 저희들이 귀족님들께 속이고 숨긴다 하여 무엇이 좋겠습니까? 소인은 단지 고귀하신 분들의 의중을 알지 못하여 두려워 그리했습니다.”
“흐음...”
나직한 소리만 들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론에게 케리프는 간절하게 물었다.
“어찌하여 현자를 찾아 무엇을 확인하시는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알려줄 이유는 없어.”
하지만 원하는 대답은 듣지 못했다.
“그래서 아가씨는 어디에 사나?”
그러자 케리프는 고개를 팍하고 들어 똑바로 바라보며 부탁했다.
“그녀만은.. 그 분만은 놓아두실 수는 없겠습니까? 감히 귀족님을 속인 죄는 겸허히 받겠습니다.”
론은 고집스러우면서도 의외로 강단 있는 그의 모습에 감탄을 하면서도 거절했다.
“그건 안 되겠군. 확실히 우리의 목적을 알려 줄 수 없으니 그런 행동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우리들도 우리들만의 이유가 있어. 굳이 한 가지만 알려 준다면, 그대들에게 어떤 해도 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래도 알려주지 않을 건가?”
그제서야 얼굴색이 조금 펴졌지만, 케리프는 그렇다고 전혀 굽히지 않았다.
“그 분만은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왜 저렇게까지 고집을 부리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저리 고집스러우면 물어봐도 절대로 알려주지 않을 것이 뻔했다.
“됐어.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지, 못 찾을 것도 아니다.”
케리프에게 더 볼 것도, 물을 것도 없어서 론은 미련 없이 문을 열고 집무실을 빠져나가다 잠깐 멈추고 고개를 돌려 케리프를 다시 봤다.
“그리고, 우리들이 그리 쉽게 누구를 벌하고 죽이고 하는 인간들 아니야.”
문을 닫고 복도를 걸으며 론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 진짜로 일거리 하나가 늘어버렸네.”
론이 나가자마자 케리프는 그대로 축하고 바닥에 퍼져버렸다.
“세이나님... 부디 당신에게 해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밖에 못해 죄송합니다.”
케리프가 저렇게까지 세이나를 감싸고돌며, 론마저 그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는 이유는 하나였다.
세이나가 사소한 일에도 밖으로 나서기를 극도로 꺼려하는 것을 케리프 그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9년 전, 어렸던 그녀가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이 곳으로 이사를 오던 때 처음 보았던 그녀는 아무 반응이 없는 인형이었다.
늘 외곽의 언덕에 혼자 앉아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그녀가 신기하기도 했고, 호기심이 들어 옆에 앉아서 말을 계속 걸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좋아져가는 그녀와 어느새 친해져 알게 된 것은 공적인 것에 그녀 자신이 집중이 되는 것이 생기면, 극도로 싫어했다.
가끔은 그것을 무서워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래서 자신이 먼저 나서서 그녀 대신을 자처했다.
세이나가 마음 편하게 자신의 생각을 펼칠 수 있게 해주고 싶었고, 그 미소를 지켜주고 싶어서 시작한 것이 어느새 모두는 케리프를 영주이기 전에 현자라고 부르게 된 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