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나는 간신히 춤이 한바탕 이뤄지고 있는 곳에서 벗어난 후 본격 먹방을 시작했다.
“하여간 아줌마들이 더한다니까. 움냠냠 내가 춤은 질색인거 알면서 쩝쩝”
간단히 들고 먹을 수 있는 노점 음식들을 한가득 입에 물며 아줌마들을 생각하며 질린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다 친하게 지내는 중년 남자들의 술판에 그대로 끼었다.
“우하하 우리 마누라가 그랬어?”
세이나는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며 투덜거리자 중년인은 호탕하게 웃었다.
“자기 일 아니라고 웃는 거 봐라.”
“너무 그러지 마. 우리 마누라가 괜히 오지랖인 건 아니잖아.”
“그렇지, 결혼하게 되면 청춘은 거기서 바로 끝이니까 더 챙겨주려고 하는 거야.”
“..엥?”
모두가 동의 하듯 고개를 끄덕이자 세이나는 매우 황당해서 격하게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누가? 내가? 결혼?”
“흐흐~ 비밀 연애 한다고 우리가 모를 줄 알어?”
“이미 영주님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소문이 파다해.”
“어떻게 하면 소문이 그렇게 난다디?”
정색하며 묻는 세이나의 전혀 예상 못한 반응에 중년인들은 움찔 했다.
“...아니야?”
“아닌데?”
“강한 부정은 긍정..이 아니구나. 저건 진짜 헛다리짚은 거다.”
세이나를 빼고 모두는 민망함에 술을 한 번에 비워버렸다.
“크~ 아깝다. 진짜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남의 인생에 아깝고 말고가 어디 있어.”
그렇게 그들과 의미가 없는 대화도 중간에 하면서 웃고 떠들자 어느덧 해가 조금씩 지기 시작하는 저녁이 되어서 세이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모두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갔다.
다들 조금 더 놀다가 들어가라 했지만, 할아범이랑 약속한 것도 있고, 혼자 있는 할아범이 걱정되어서 걸음을 재촉했다.
아직도 축제가 한창이라서 그런가, 외곽으로 빠지자마자 돌아다니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타박타박 발소리에 맞춰서 조금 더 무거운 발소리가 저벅저벅 하며 그 뒤를 따라왔다.
세이나는 걷다가 중간에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하다가 다시 걷기 시작하자마자 자신의 발걸음에 맞춰진 소리가 보폭을 맞추고 따라오는 것이 맞음을 깨닫자 그대로 가던 길을 멈추고 획하고 뒤를 돌아봤다.
확실히 자신을 따라온 것이 틀림이 없었던지, 자신의 뒤에서 가만히 서서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는 사내에게 인상을 한껏 써보였다.
“당신 뭐야?”
처음으로 자신을 향한 세이나의 말소리에 바이안은 심장이 뛰었다.
“이봐 당신 뭐냐고. 왜 따라오는 거야? 보아하니, 이 곳 사람도 아닌 것 같은데”
“아... 그..”
처음에 세이나는 할아범의 말도 있어서, 이상한 사람이지 않을까 잔뜩 경계했지만, 자신의 말에 오히려 어쩔 줄 몰라 하는 남자의 태도에 위험한 사람은 아닌 듯해서 일단은 안심했다.
그리고 반대로 설마 싶은 생각이 났다.
‘첫 눈에 반했습니다. 사귀어주세요.’
라는 진부한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라며 떪은 표정을 지었다.
우물쭈물하며 입을 달싹거리기만 몇 번 반복하는 그를 얌전히 기다려주자, 드디어 입을 열었다.
“세나.”
“..세...뭐?”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이 갑자기 자신의 이름을 짧게 부르자 깜짝 놀랐다.
“뭐여. 지금 나한테 세나라고? 당신 진짜 뭐야? 뭔데 내 이름을 그렇게 짧게 부른데? 아니, 그것 보다 이름을 어떻게 알아?”
세이나는 바이안에게 다다다 따지며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해서 잘 보이지 않는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러 가까이 다가갔다.
세이나의 얼굴이 갑자기 가까워지자 바이안의 얼굴은 자연스럽게 붉게 달아올랐다.
“그... 내가 좀 많이 변했나? 나, 반이야.”
“....?”
자신이 이름까지 밝혔는데도 세이나의 타인을 보는 눈빛과 함께 싸한 공기가 그를 덮쳐왔다.
“...아!”
그때 뭔가 알았다는 표정으로 바뀌자 바이안은 반색했다.
“몇일 전에 부딪혔던 잘생긴 놈. 그리고 오늘 축제에서 몇 번 보긴 했었지? 아~ 이름이 반이구나.”
큰 바위가 떨어져 자신의 온몸을 짓누르는 것 같은 기분이 이런 것일까.
게다가 자신을 보는 세이나의 표정이 급격하게 차가워지는 것을 목도해야했다.
“뭐야 스토커야? 설마 그때부터 계속 날 쫒아 다닌 것은 아니지? 뭐가 아쉬워서 날 쫒아 다녀? 이상하잖아.”
그리 말을 하며 세이나는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고, 그 모습에 바이안은 다급해졌다.
“세..”
“접근금지! 아는 척, 친한 척하지마. 따라오지마. 상당히 기분 나쁘니까.”
세이나는 단호하게 그대로 등을 보이고 빠르게 걸어갔다.
그때서야 바이안은 무언가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지만, 그러면서 오히려 머릿속은 더 복잡하고 혼란해졌다.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이제야 겨우 다시 마주했는데 정작 그녀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처음에는 자신이 많이 변했으니까 라며 스스로의 마음에 변호했지만, 자신의 얼굴을 보고, 이름을 듣고도 타인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정말로 세이나의 기억에는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착각했던 것이었나? 하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똑 같은 특징과 외모를 가지고 이름까지 똑 같은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녀가 진짜라는 증거가 목에 단단히 걸려있는데, 착각은 절대로 아니었다.
“.....어째서..”
황망하니 그 자리에 굳은 채로 서있던 바이안은 세이나가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 된 것을 알아채고 그녀를 붙잡으러 달리려 하다가 다시 멈췄다.
‘날 모르는데 붙잡아서 어쩌려고?’
하지만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에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바이안은 마력을 다리에 집중해서 크게 점프해 높이 뛰었다.
도시 전체가 보일 정도로 높이 뛴 바이안은 멀리서 씩씩거리며 걸어가는 세이나를 금방 찾을 수 있었고, 공중에서 발을 튕기듯 차며 이동했다.
멀리 떨어져서 작고 초라해 보이는 집으로 들어가는 세이나를 확인한 뒤에 그 집 근처에 듬직하게 서있는 나무위에 조용히 착지했다.
“세나...”
나뭇가지 위에 서서 그녀의 방인 듯 이층의 방에 세이나가 들어가 침대에 엎어져 누워있는 모습을 창으로 한참을 지켜보던 바이안은 세이나가 잠이 든 듯 해 보이자, 그제야 나무에서 내려와 집의 벽에 손을 가만히 대고 머리를 기울여 이마를 대었다.
“이것만으로도 됐어.... 세나야, 살아 있어줘서 고마워.”
“끌끌끌 자넨 뭔가?”
갑자기 지척에서 들리는 인기척과 살풋이 섞여 있는 위압감이 바이안을 덮치자 흠칫 놀라, 고개를 번쩍 들어 언제 가까이 다가왔는지 자신의 옆 벽에 비스듬하게 기대 자신을 훑어보고 있는 노인과 눈이 맞았다.
“아이고 울겠네 울것어~ 끌끌”
할아범은 바이안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있는 부분을 지적하며 들고 나온 술병을 흔들어 보였다.
아무리 감상에 젖어 있었다고 해도 바이안은 기사였다.
누군가가 이렇게까지 가까이에 다가오는 것도 알아 챌 수 없었던 것에 상당한 충격을 받아했다.
특히나 지금 그가 있는 곳은 대륙이었다.
순간적으로 느낀 위압감은 금방 사라져 한 톨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바이안은 행동을 조심하며 할아범과 마주했다.
“아 뭐하나? 이 늙은이가 술친구 좀 해달라고 하지 않는가?”
반응을 보이지 않는 바이안의 얼굴에 술병을 가까이 들이 밀었다.
그렇게까지 하고서야 바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는 대답을 듣고서 할아범은 느그적거리며 근처의 작은 언덕으로 걸어갔다.
“내 손녀딸이 이상한 놈이 따라왔었다며 승질을 내며 방으로 들어 가 길래, 왼 호랑말코 같은 놈인가~ 해서 혼내주려고 지켜봤더니, 한참동안 집 근처를 서성이며 궁상을 떨지를 않나, 울먹거리지를 않나, 아주 가관이더구먼~ 끌끌끌”
가만히 뒤따르고 있는 바이안은 할아범이 자신을 신경 쓰지도 않고 걸어가며 떠드는 말을 듣기만 했다.
“내 그래서 생각을 바꿨지. 사람이 늙으면 감만 좋아지는 가보이.. 끌끌”
의미심장한 말을 내 뱉으며 할아범은 털썩하고 언덕의 가운데에 엉덩이를 깔았다.
“여기 좋지 않은가? 이사를 와서 집을 구할 때, 세이나가 이 언덕이랑 제일 가까운 지금 살고 있는 집을 고집했었지.”
“네. 좋습니다. 닮았습니다.”
“그런가..”
세이나가 고집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렸을 때, 그녀가 살던 집도 바로 옆에 이렇게 작은 언덕이 있었고, 세이나와 항상 그곳에서 뛰어 놀았었기에 자연스럽게 닮았다는 말을 꺼냈고, 할아범은 굳이 그 말에 물어보지 않았다.
바이안이 옆에 앉자, 할아범은 다른 손에 들고 있었던 잔을 바이안에게 넘겨주며 술을 따라 주었다.
“이 늙은이의 감과 추측이라 틀릴 수도 있겠지만, 확인 차 이것저것 물어보겠네.”
“어떤 것이든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할아범은 그의 공손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내 손녀딸의 고향이 어디인지 알고 있는가?”
“작은 카카리아 마을입니다. 지금은 황폐의 사막으로 불리고 있는 곳 가운데에 있었습니다.”
“그럼 손녀딸의 이름은?”
“하이론 세이아나입니다. 지금은 17살이죠.”
세이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전혀 모르고 자신만 알고 있는 세이나의 성과 살고 있었던 마을의 이름까지 막히지 않고 정확하게 대답하는 바이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허고 혹시나 혔는디, 알고 있던 사이가 맞구먼~”
하지만 할아범은 괜히 질문을 더 했다.
“좋아하는 음식은?”
“가리지 않고 다 잘 먹지만, 특히 고기를 제일 좋아합니다.”
“끌끌끌끌”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잔에 따른 술을 입에 털어 넣자, 바이안도 따라서 마시고 이번엔 자신이 술을 들어 비어진 할아범의 잔에 술을 채웠다.
“..한 가지 여쭈어 보아도 되겠습니까?”
“무언가?”
“세나.. 할아버님의 손녀따님의 가족은 그녀의 어머니뿐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곳에 할아버님이 계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의 질문에 할아범은 인자하게 미소 지었다.
“그런가.. 어미가 있었었나?”
할아범은 오히려 자신이 몰랐던 것을 알게 된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미 예상하고 있을 테지. 그 아이는 내 친 손녀가 아니야. 내가 입양해서 키우고 있는 거라네.”
“......”
“세이나가 알아 봐 주지 못해서 상당히 놀랐겠구먼, 끌끌”
“..네.”
할아범이 꺼낸 부분에 마시고 있는 술이 쓰게 느껴졌다.
“자네가 집에까지 쫒아 와서 보인 행동들을 지켜보니 대충 아는 사이 같지는 않더구먼... 후~ 지금부터는 이 늙은이의 독백이니 가만히 들어주게나.”
다시 술잔을 한 번에 비우며 할아범은 길면서도 짧은 이야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