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나에게 붙어 다니는 바이안과는 다르게 일주일 내도록 론은 혼자서 도시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가 찾고 있는 사람은 그 일주일동안 코빼기도 볼 수가 없어서 론은 슬슬 지겨워 지고 있었다.
“자주 출몰한다고 하지 않았나? 빨리 끝내고 나도 쉬고 싶은데 쉬지를 못하네.”
머리를 벅벅 긁으며 귀찮음을 한껏 내비치고 있지만 론의 눈은 어떤 때보다도 날카롭게 주변을 훑었다.
케리프가 계속 숨기고 있지만, 특정 사람을 찾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 생각했던 부분을 수정해야 할 정도다.
멀리서 뒷모습 밖에 보지 못했지만, 작은 체구의 여자라는 것과 짧은 단발의 검은 머리카락을 하고 있다는 증거만으로도 쉬워보였다.
특히 이 도시에서 검은 머리카락을 하고 있는 사람은 딱 한명 뿐이라는 것을 하루 만에 금방 알 수 있었고 꽤 유명인이라 더했을 것이었지만, 그가 외지인이라는 것 때문에 그녀를 아는 사람들에게 자칫 잘못해서 경계할지도 몰라서 자세히 물어볼 수도 없기도 했다.
어디에 사는지 잘 못 물었다가 쫒겨 날 수도 있어서 무작정 자주 출몰하는 곳을 중점으로 반복적으로 찾는 것이 전부였다.
최대한 지상인들의 생활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되는 것이 그들의 법도라 더 한다.
일이 끝나고 한 숨 돌리고 있는 사내들이 모여 있는 곳에 밝은 톤의 목소리가 섞여 귀에 들려왔고, 론은 그 쪽 방향으로 몸을 틀고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오~ 있다 있어.”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천천히 술집 밖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한창 신나게 떠들고 있는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그들이 말소리가 자세히 들렸다.
“아, 글쎄 내가 쉬는 날 자식들이랑 놀아주지 않는 다고 어떻게 용돈을 끊을 수가 있냔 말이야.”
술잔을 테이블에 쾅 내리치는 중년인에게 세이나는 혀를 찼다.
“쯔쯔, 그게 아니지, 허구헌날 틈만 보이면 술 마시러 나가는데 누가 좋다고 하겠어.”
“크크크 그러게 내가 작작 마시랬지.”
자기일이 아니라고 재미있어 하던 다른 중년인이 그 중년인에게 술을 따라주자 세이나는 황당하게 쳐다보며 일침을 날렸다.
“그러면서 술을 따라주면, 설득력이 없는데?”
“우하하하하”
모두가 재미있다며 큰 소리로 웃자, 정작 웃지 못하고 있는 중년인의 등을 토닥여주며 세이나는 사뭇 부드러운 어조로 달래주었다.
“자고로 마누라의 바가지는 신 급이라잖아. 잡혀 살기 시작하면 끝인 거지. 다 자업자득인겨.”
분명 달래주는 것 같은데 말에 뼈가 있다 보니, 더욱 땅을 파고 들어가는 그의 멘탈에 옆에 있던 중년인이 등짝을 세차게 후려갈겼다.
“크하하 맞는 말이네. 맞는 말이야.”
그 타이밍에 그들의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모두는 그 그림자의 주인을 쳐다봤다.
“이야~ 재미있어 보이네요. 저도 함께 해도 될까요?”
“오~ 자넨가? 괜찮지 괜찮아. 자자 앉게.”
갑자기 사이에 낀 이방인에 세이나가 갸우뚱하자 다들 이미 안면이 있는지 편하게 설명해줬다.
“축제 때부터 이곳이 마음에 든다고 장기적으로 머문다고 하던 여행자야. 몇 번 대화를 하다가 이 총각이 참 성격이 좋아서 금세 친해졌지.”
“그려?”
세이나는 뭐 그러든지 말든지 라며 그를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고, 다시 분위기는 무르 익어갔다.
분위기에 맞춰서 통성명을 가볍게 하려고 했던 론은 자신을 거의 상관하지 않는 세이나의 모습에 무안해져버렸지만, 다들 세이나가 원래 그런 성격이라며, 중재해주었고, 론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세이나를 틈틈이 관찰했다.
“오냐~ 잘 걸렸다.”
“으헉!”
오늘 제일 우울해 하며 술을 마시던 중년인은 갑자기 무서운 표정으로 두 팔을 걷어붙이며 나타난 자신의 아내에게 귀를 잡혀 그대로 끌려갔다.
론이 일행에 낀지 몇 분 되지 않은 순간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다들 사라진 그와 별다르지 않게 집으로 귀가해야 해서 졸지에 론과 세이나 젊은 사람들만 덩그러니 남아버렸다.
론은 생각보다 빨리 좋은 타이밍이 왔다며 쾌재를 불렀지만, 심드렁한 표정으로 입을 뗀 세이나의 반응이 더 빨랐다.
“그래서? 나한테 볼일이 뭐야?”
“응? 볼일이라니? 나는 그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 여행잔데?”
능글거리는 미소를 가득 머금고 대답하는 론을 가만히 보며 세이나는 피식하고 비웃어줬다.
“지랄하네. 나 개인적으로 돌려 말하는 거 안 좋아해. 나 찾아 온 거 뻔히 보이니까. 본론만 꺼내줄래?”
이미 알고 있다는 세이나의 눈빛을 마주한 론은 자신도 모르게 오싹하며 전율이 온몸을 감싸는 것을 느꼈다.
“흐음.. 내가 왜 굳이 일부러 아가씨를 찾아왔다고 하는 걸까나? 내가 뭐라고.”
세이나는 자신을 시험하는 듯 훑어 내리는 론의 시선과 재미있어하는 입 꼬리가 올라간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처럼 보여도, 네 눈은 은근히 나를 관찰하듯 훑어보고 있으니, 나에게 볼일이 있다는 것쯤은 금방 눈치 채.”
“오~”
자신은 숨긴다고 숨겼는데, 잘도 눈치 챘다.
세이나는 매우 귀찮아하면서 빠르든 늦든 자신을 찾아 올 것이라 예상을 해서인지, 빨리 볼일을 끝내려했다.
“그래서 그 대단하시다는 귀족님들이 무슨 연유로 현자도 아닌 나를 찾아 왔을까?”
순간적으로 론은 짓고 있던 웃음을 싸악 거두었고, 반대로 세이나가 능글맞은 미소를 지어주었다.
“재밌는 아가씨네.”
“현자를 찾아서 무엇을 확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한번은 나한테 올 거라는 건 이미 예상했어.”
론이 입을 열 타이밍을 뺏어가며 테이블에 손가락을 톡톡 치며 말을 했다.
“축제 전날인가? 그 날에 케리프씨의 반응이 평소와는 좀 달라서 조금 생각해 보니 혹시 하며 귀족이 떠오르더라고, 그리고 오늘 딱 나타나네. 당신 보자마자 귀족이라는 거 알겠던데?”
“아가씨. 왜 내가 귀족이라고 잘라 말할 수 있는 거야? 귀족은 평생 볼까 말까 하는 사람들이잖아.”
그만의 장난스러움이 없어진 진지한 태도로 세이나를 대했다.
“조금만 관찰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데? 여기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로브를 입고 있지만 슬쩍 보이는 소맷단만 보더라도 대륙에는 볼 수 없는 재질이야.”
론의 소맷단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꼬집어 주니, 론은 절로 소맷단으로 손이 간다.
“아무리 이곳이 작다고 해도, 도시야.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녀. 차이를 모를 수가 없지. 게다가 그것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나고 자라며 만들어지고 자리 잡은 행동거지도 무시 못해. 여행자인척 자연스러워 보여도, 미세하게 각이 잡혀있어. 당신.”
이번에는 검지로 론의 전체적인 느낌으로 가리켰다.
“응. 귀족보다는 기사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리겠다. 슬쩍 보인 손바닥에 상당히 두터운 굳은살이 가득하더라.”
손을 쫘악 펴 다른 손으로 톡톡 건드리는 흉내를 내니, 론은 쉬이 입이 떼어지지 않아 경청밖에 할 수 없었다.
“굳은살이 잡혀있는 상태를 보면 검 같은 것을 쥐고 살았다는 거지. 내 할아범이 모험가였어서 잘 알아. 게다가 아무리 로브로 가려졌다고 해도, 곧은 자세와, 균형 잡힌 체구에서 자리 잡은 근육이 상상이 되네. 어때? 만족스러운 답이었어?”
어깨를 으쓱이며 부정해봐라 하는 세이나를 지긋이 보던 론은 그녀를 인정해야했다.
결과를 떠나서 지금까지 만나본 이들 중에 제일 독보적이었고, 이정도까지 알아챘다면 숨길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세이나를 존중의 차원에서 정중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정식으로 나를 소개하겠소. 카시어스 로트론, 백작 위를 가지고 있으며, 그대의 추측대로 기사가 맞소.”
그리고 론은 그녀에 대한 감탄을 숨기지 않고 물었다.
“케리프를 만났을 때, 지상에서 만나본 이들 중에 제일 똑똑하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아가씨가 더하군.”
“으음.. 그건 아닌데.”
머쓱해서 제 볼을 괜히 긁적였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다들 머리가 좋은 가 싶을 정도야. 그런데 내가 귀족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무섭지 않나?”
같잖은 질문이라 세이나는 씨익 웃었다.
“내가 별종이라는 소리는 참 많이 듣거든. 신기하다던가, 무섭다던가, 그런 것은 전혀 없어. 애초에 관심이 없어. 게다가 믿는 구석도 있고...”
자신만만하게 말하던 세이나는 끝에서 말꼬리를 흘리며 작게 스토커라는게 문제지만이라며 중얼댔다.
“믿는 구석?”
“내가 처음에 들이라고 했잖아. 이 곳에 내려온 귀족이 최소 두 명이라고 결론 내렸는데. 그거.”
세이나의 대답에도 론은 전혀 이해를 못했다.
그리고 무언가 찝찝함이 느껴질 타이밍에 론에게 가장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바이안은 론에게 으르렁 대다가 세이나의 옆으로 다가가 가지고 온 물 잔을 건네주며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부드럽게 바꿨다.
“알고 있었어?”
세이나는 걱정스럽게 보는 바이안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응. 처음에야 어두워서 몰랐다지만, 진작에 귀족이라는 건 눈치 챘어.”
갑작스러운 바이안의 등장에 론은 지금 이 상황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첫사랑이자 약혼녀에게 가 있을 바이안이 왜 이곳에 있는지와 바이안에게 말하지 않고 일을 하고 있는 이 상황이 들켰다는 생각이 동시에 와 버려서 바로 판단이 서지 않았다.
론이 나타나기 바로 전에 바이안은 세이나가 물을 필요로 하자, 자신이 가지고 오겠다며 주점 안으로 들어갔었다.
그리고 나오는 도중에 론이 세이나와 마주 앉아 있는 상황에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몰래 쫒아 온 것인가 했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조금 지켜보며 상황파악을 하다가 참지 못하고 바로 다가갔다.
“..저기 내가 갑자기 머리가 안 돌아가는데...”
“왜 네가 세나랑 마주하고 있는지 말해.”
“..!!”
론은 마모된 문처럼 삐그덕거리며 바이안에게서 세이나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처음과는 다른 시선과 말투로 물었다.
“제..제수씨?”
“누가 제수씨얏!”
바이안이 가져다준 물을 홀짝이던 세이나는 그대로 론에게 들고 있던 잔을 집어 던졌다.
이마에 정통으로 맞은 론은 이마를 감싸고 끄응 앓았다.
“하아악~”
론이 괴로워하든 말든 전혀 상관하지 않으며, 바이안은 지금 상황에 대해 재촉했다.
“아 그러니까, 이 곳에 확인해 봐야할 인물이 케리프 뿐이 아니었다고.”
절대로 바이안의 뒤끝이 무서워서 열심히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면서도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한명이 더 있었는데 그게 저 아가...제수씨일 줄 누가 알았나? 확인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니까, 너 배려한다고 혼자 움직인 거지.”
세이나는 자신을 또 제수씨라고 부르는 부분에서 옆에 놓여있는 다른 빈 잔을 스윽 들어보였다.
“..세나가?”
론은 세이나가 자신에게 다시 집어 던지려고 하자 움찔하고 있을 때, 바이안은 혼자 심각하게 생각에 잠겼다.
“응. 찾아온 목적을 굳이 안 물어 볼 테니까. 난 아니야.”
세이나는 지금 분위기에 본능이 경종을 울려대며 왠지 매우 귀찮아질 것이 확실해지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다.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며 돌아가는 세이나의 행동에 바이안과 론은 서둘러 뒤따라갔다.
하지만 세이나는 귀찮은 건 질색이야를 반복적으로 중얼거리며 둘을 완전히 무시했지만 론이 세이나의 앞으로 튀어 나와 걸음을 억지로 멈추게 했다.
“뭐여.”
절로 사투리가 튀어나온다.
“잠깐 잠깐. 귀찮은 거 한~개도 없어. 응? 아주 단순한 방법이니까.”
세이나의 정체가 친구의 약혼녀라는 것을 알게 된 론은 세이나에게 부탁하듯 애원하는 모습이 되어버렸다.
“론”
바이안이 세이나의 옆에 서서 오히려 론을 막자 론은 인상을 썼다.
“아, 진짜. 피해 주는 일은 아니잖아. 오랫동안 없었는데, 새삼스럽게 갑자기 나타나겠어? 아닐 확률이 제일 큰데. 그리고 어차피 이게 반응하지 않으면....아.......”
론은 자신의 품에서 무언가의 장식의 일부인 것 같은 조각을 꺼내들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 것은 론뿐만이 아닌 바이안도 마찬가지였다.
그 작은 조각은 왜 이제 꺼내주었냐고 호소하듯 은은하게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갑자기 찾아온 정적이 셋의 사이를 감싸고 길게 지속이 되었다.
한참을 눈만 끔뻑거리며 장식을 들고 있는 론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어떻게든 믿기지 않는 지금 상황을 정리하며, 지금 자신이 취해야 할 행동을 바로 이행했다.
오른 손을 가슴에 얹고 세이나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고개를 숙여 기사의 예를 표했다.
“소신 카시어스 로트론. 저희의 주군이시자 주인이시며, 하늘의 눈과 귀이신 대현자님을 뵙습니다.”
500년 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주인이 이제라고 나타날 것이라 예상하지 않았던 론은 고개를 조아리며 지금 이 순간에 자신이 모실 주군을 뵙고 있다는 희열과 떨림, 긴장감에 작게 흥분했다.
그런 론과는 다르게 바이안은 어마어마한 충격에 사로잡혀 버렸다.
그래서 론보다 늦은 타이밍에 힘겹게 세이나의 앞에 무릎을 꿇고 예를 표했지만 차마 입은 떨어지지 않았다.
“..뭐라는 거야. 난...”
완전히 달라진 둘의 태도에 한껏 뭐라고 하려던 세이나는 갑자기 말끝을 흘리며 뒤로 주춤 물러나자, 세이나의 이상함을 먼저 알아챈 바이안은 고개를 들고 세이나를 확인하고 서둘러 세이나를 부축했다.
한 손으로 머리를 짚고 비틀거리고 있었던 세이나는 바이안을 거칠게 뿌리치며 소리 질렀다.
“시끄러 시끄러 시끄럽다고.”
“세나!”
바이안은 아직도 비틀거리는 세이나를 걱정하며 다시 다가가려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시끄럽다며 소리를 지른 것이 자신들을 향해서가 아닌 어딘가의 허공인 듯 했다.
그와 동시에 자신을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 팔을 휘저어 온힘을 다해 거부하고 있었다.
히스테리를 부리듯 하는 세이나의 행동에 당황하는 둘과는 다르게 세이나는 머리에서 울리는 소리에 힘들어 하고 있었다.
[..직은 아니야.]
[조금만...더..]
[...지금은 안 돼.]
세이나는 자신의 머릿속을 헤집는 목소리에 잔뜩 화가 났다.
“닥쳐. 쭉 말 들어줬잖아. 계속 가만히 있었잖아. 머리아파 그만해.”
강하게 내뱉은 세이나는 식은땀을 흘리는 자신을 걱정하고 있는 둘이 원인임을 알자마자 두통을 털 듯 붕붕 머리를 털고, 둘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따라오지 마. 가까이도 오지 마. 알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되기 싫어.”
황망해하고 있는 둘을 그렇게 놓아 둔 채로 세이나는 도망치듯 둘에게서 멀어졌다.
그리고 론은 서둘러 세이나를 뒤쫓으려다가 한 팔로 자신을 가로막는 바이안의 꽉 쥐어진 손을 보고 쫓는 것을 포기했다.
“괴롭냐?”
“아프다..”
“후.. 그래. 오늘은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