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말을 하다가 론은 손가락으로 케리프를 가리켰다.
“게다가 너. 이미 대충 눈치 챘잖아.”
그의 말에 케리프는 나직이 한숨을 뱉었다.
“소인이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세이나님께 부드럽게 대하시는 엘라이어님과, 카시어스님께서 아까 전에 뱉으신 주인이라는 단어가 귀에 박히더군요. 잘은 모르나, 찾고 계시던 분이 세이나님 이셨고, 세이나님께서 혹, 높으신 분이시지 않을까 추측해 봤을 뿐입니다.”
이놈의 입방정이라며 자신의 입을 한번 막고 바이안의 눈치를 한번 슥 살피던 론은 진지하게 세이나에게 물었다.
“네가 똑똑한 것은 이해가 가거든? 그런데 저 녀석까지 저 정도인데, 혹시 이 도시 사람들 수준이 다 저러냐?”
“그럴 리가 없잖아.”
세이나의 대답에 납득하며, 론은 다른 의문을 케리프에게 던졌다.
“어이. 케리프. 너 실은 귀족이지?”
“....네?”
엉뚱하게 튀어나온 말에 케리프는 반응이 늦게 나왔다.
“확실히..”
바이안 마저 인정하는 듯해 보이자 지금 무슨 소릴 들은 거냐 싶어졌다.
“이것들이 뭐라는 거야.”
세이나가 황당해하자 론이 덧붙였다.
“처음에야 당돌하다 싶기도 했지만, 전혀 기죽지도 않고, 할 말 다하는 것도 그런데, 특히나 저 여유로운 모습 봐봐. 마치 귀족생활에 익숙해 보이잖아.”
케리프는 속으로 어디에서 뭐가? 라며 부정했지만, 입으로는 나오지 않았다.
“귀족들 생활이 어떤 건지도 모르는 나한테 물어본다고 대답이 나오냐? 비교할게 없는데, 오히려 내가 너한테 물어보자. 너 귀족 맞냐?”
세이나의 갑작스러운 태클에 이번에는 반대로 론이 황당해졌다.
“갑자기 나는 왜?”
“능글거림은 기본이요, 저렴한 말투에, 사람 속은 박박 긁어대지. 귀족들의 기품? 그건 어따 팔아 드셨어? 반. 쟤 원래 저래?”
론에게 따져들던 세이나는 바로 바이안에게 질문의 답을 구했다.
“위에선 더 심해.”
“기사라며. 저런 성격에 잘도 기사 해 먹고 있네.”
“우리 팀에서도 미스터리야.”
자신의 앞에서 대놓고 까는 둘을 보던 론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게 중얼거리며 투덜댔다.
“아...예 예. 저 귀족도 기사도 아닙니다. 아주 보기 좋네. 보기 좋아. 꿍짝꿍짝 천생연분 나셨어요. 저러니 약호..”
혼자 만면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궁시렁 대던 론은 그 이상 궁시렁 댈 수 없었다.
들리지 않게 했다고는 하지만 바이안의 귀에는 똑똑히 들려와서 혹시라도 세이나가 들을 까봐 마력을 운용해서 그대로 론을 날려버렸기 때문이었다.
소파에 앉아있던 론이 갑자기 휙 하고 날아가 벽에 쿵하고 박히자 세이나와 케리프는 동그래진 눈만 끔뻑댔다.
“흐아아~~~”
바닥에서 신음을 흘리는 론과는 다르게 바이안은 아무렇지 않게 손을 탈탈 털며 세이나에게 빙긋 웃어줬다.
“아무 일도 아니야.”
“....아니네.”
“...아니군요.”
자리에 돌아와서도 끙끙거리는 론만 빼고 셋은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자리에 일어나 케리프와 헤어졌다.
집무실에서 나와 복도를 걷던 바이안은 세이나에게 놓고 온 것이 있으니 조금 있다가 돌아오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다시 케리프의 집무실로 찾아 들어갔다.
“엘라이어님?”
“케리프. 하나 부탁이 있다.”
“어떤 것입니까?”
자리를 정리하고 있던 케리프는 마침 세이나가 마셨던 빈 찻잔을 들고 있었다.
“그거.”
“?”
그 이상의 말도 없이 자신이 들고 있는 찻잔을 가리키고 자신을 빤히 보는 바이안의 의중을 이해 못해 고개를 갸웃 하다가 혹시 하며 바이안에게 찻잔을 뻗었다.
“..드릴까요?”
“고맙다.”
케리프의 허락과 동시에 낚아채듯 냉큼 받아든 바이안이 잔에 남은 세이나의 입술자국을 확인 한 후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바로 나가버리자 케리프의 머리에서 바이안의 이미지가 순식간에 정정되었다.
“무서운 분이 아니시라 상당히 귀여운 분이실지도... 세이나님을 좋아하고 계시다는 티 다 나시는 분이시네. 하하하”
시원하게 웃던 케리프는 흐뭇한 미소로 그를 응원하기로 마음을 먹고, 세이나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자택에 놀러 왔을 때, 사용했었던 그녀의 물건들이 어디 있나 찬찬히 뒤져 한쪽에 모아두었다.
바이안과 론이 옆에 붙어 다니는 일상이 어느새 한 달이 흘러 둘이 완전히 익숙해진 세이나는 오늘은 도시로 놀러가지 않고 집 옆의 언덕의 나무 그늘에서 뒹굴었다.
워낙 외진 곳에 집이 있다 보니, 오고가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 바이안과 론은 편하게 수련을 할 수 있었고, 이 날도 여지없이 웃통을 벗어던진 채로 땀을 흘리고 있었다.
“저 근육이 꿈틀하는 것 봐라. 아주 살아 있네.”
심드렁한 감탄사를 읊으며 평화롭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를 만끽하고 있자, 론이 자신의 옆으로 기어와 대자로 누워 숨을 돌렸다.
“저 자식을 언제 한번 이겨보냐.”
“무리 아냐?”
간단히 결론 내려주자 론은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그건 그렇지.”
“반을 이기는 것은 무리래도, 충분히 강해질 수는 있잖아.”
세이나의 말에 론은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수련하다보면 검술이야 늘겠지만, 가지고 있는 마력의 양이나 능력은 정해져있는데 어떻게 강해져?”
“그럼, 론은 어떻게 기사가 된 건데?”
“그야 우리 집안은 대대로 무가 집안이기도 하고, 내 능력도 전투에 용이하잖아.”
그동안 둘의 수련을 지켜보고 궁금한 부분을 물어보면서 내린 결론을 전했다.
“용이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좀 비효율적이야.”
“어떤 게?”
진지하게 세이나에게 물어보자 세이나는 론과 시선을 맞췄다.
“발상의 전환 부족.”
“흐음..”
자신의 말에 곰곰이 생각을 해보지만 이해를 못하는 듯이 보이는 론에게 알기 쉽게 설명을 시작했다.
“귀족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의 정해진 틀에 너무 묶여 있다고 봐. 대체적으로 가지는 능력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는 어느 정도의 신체적인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마력을 가진 이들 대부분이 가능하다는 것은 알겠고, 능력의 구분을 크게 두 가지로 한다면”
론이 잘 볼 수 있게 손가락 두 개를 쫙 폈다.
“자기 자신의 신체 자체의 특성. 예를 들면 눈으로 잡을 수 없는 빠름이나, 어마어마한 괴력 같은? 자기 자신의 신체를 중심으로 뻗는 능력들이 첫째.”
세이나는 손가락을 하나 접으면서 끄덕이는 론을 확인하며 다음 말을 주욱 이었다.
“그리고 론의 능력처럼 자신의 손이 닿는 무기물을 변형시킨다던지, 그 외의 특성들이 자리를 잡고 있잖아.”
“그렇지.”
“물론,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바람이나 불을 일으킨다거나, 물을 얼리는 그런 능력은 상상 속의 세계로 고이 날려주시고, 물론 생명 전반 적으로 관련 된 능력도 같이 날려 줘야지.”
양손으로 멀리 던지는 시늉을 하는 세이나에 론은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런 능력 있으면 나 좀 줘라. 크큭”
“물론! 반이야. 뭐... 나도 잘 모르겠지만 완전히 사기캐릭터니까 넘어가고.”
“큭큭”
세이나가 짚는 부분에서 론은 재밌어 하며 크게 웃지 않으려 이를 물고 웃었다.
바이안이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그가 황족이기도 했지만, 하늘의 주인인 황제폐하의 능력을 물려받은 것은 세이나에게는 설명해주지 않아서 저리 말하는 것이었다.
“능력을 사용하는 방법이나, 방식들 전부 물려받기만 했지? 평화로운 세상이다 보니 그런가, 대대로 내려오면서 단단히 굳어진 것이 오히려 단점이 된 거야.”
손가락으로 머리를 톡톡 치며 세이나가 말을 길게 잇자, 론은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진지하게 경청하는 론에게 자신의 옆에 있던 주먹정도 크기의 돌을 집어 들고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예로, 전투에서 싸우다가 검을 잃어 버렸을 때나, 손에 없을 때 주변의 사물이나, 물건을 집어 변형시키는 것, 검 외에도 활이나 기타 무기들을 만드니 무기가 동이 날 일은 없지만, 그 변형시킨 물체가 애초에 가지고 있는 성질은 변형 시킬 수 없잖아.”
“모래로 검을 만든다고 그 검이 철 같이 단단해지지 않지.”
세이나가 집어내는 자신의 능력을 추가로 대답하면서 쥐어진 돌을 만지작거리는 론에게 고개를 저어주었다.
“아이들을 이해해봐. 그리고 상상하면 가능해. 모래가 되기 전에는 뭐야?”
“모래?”
“아주 오랜 시간 바람이나, 비에 쓸리고 뜯겨 부서지면 그 돌이 작아져 자갈이 되고, 그 후의 끝에는 모래가 돼.”
그리고 검지 손가락으로 돌을 가리켰다.
“......”
고찰하는 론의 미간이 좁아지는 모습에 턱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말을 정리한 세이나는 다시금 돌을 가리켰다.
“음... 나도 잘은 설명을 해주지 못하겠지만, 흙에도 철은 있다?”
“??”
그녀의 말의 내용을 전부 이해 할 수는 없지만, 허투루 말을 하지 않을 것을 아는 론은 돌을 쥐고 있지 않은 왼손으로 바닥을 쓸어 흙을 한 움큼 집었다.
“흙에 섞여서 보이지 않을 정도의 가루로 되어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 가루만 걸러 내봐.”
론이 집중할 수 있게 세이나는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그러자 론이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세이나가 알 수 있을 정도로 론의 이마에서 땀이 주륵 하고 흘러내렸고, 한참의 시간이 흘렀을 때, 엄청 작지만, 동그란 구슬이 흙 위에서 꿈틀하고 올라왔다.
“겨우 그걸로 성공할 줄은 몰랐는데. 대단하네.”
세이나의 칭찬에도 불구하고 론은 숨을 몰아쉬면서 완전히 지쳐버렸다.
흙이 구성하고 있는 물질들과 성질들을 알 정도로 지식이 발달이 된 것이 아닌 세상이라 쉽게 이미지가 떠오르지도 못할 텐데도 론은 어떻게든 성공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 어마어마한 마력을 소비해야만 해서 완전히 지칠 수밖에 없었다.
세이나는 그런 론이 늘 장난기가 가득하기만 한 기사가 아니라 머리도 상당히 좋다며 감탄했다.
“미쳤다. 이거..”
바이안은 자신만 빼고 둘만 떠들자 살짝 뾰로통했지만, 지금의 둘을 방해하지 않고 세이나의 옆에 바짝 앉아서 자신의 친구를 가만히 지켜봐줬다.
“자~ 성공 한 김에 그 돌을 이용해 봅시다.”
손뼉을 짝 치며 다음으로 넘어가자는 세이나의 말에 만들어진 코딱지만한 구슬을 감상하던 론은 서둘러 옆에 대충 늘여놓은 자신의 상의의 주머니에 소중하게 집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