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견 기사님의 순애는 역사를 쓴다.

　 현궁의 중앙 홀, 제일 상석에 앉아 한쪽 턱을 괴고 도도하게 앉아있는 여인, 플로아는 오늘도 어김없는 패션을 자랑하며 기분 좋게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오래 기다리지 않아 그녀가 기다리고 있던 것이 도착했다.

　 “바이안과 로트론을 데려왔습니다.”

　 중앙 홀의 입구에서 시종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둘은 기사도 귀족도 아닌지라 시종들도 그들을 이름으로 불렀다.

　 그 시종의 말에 플로아는 들뜬 기대감을 숨기지도 않고, 기사들이 가운데에 둘을 연행한 채로 그녀의 앞으로 데리고 갔다.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상체를 숙여가면서 자신의 앞으로 걸어오는 두 명을 주시했다.

　 생김새를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지자 플로아의 두 눈이 빛났다.

　 누군가가 설명을 해주지 않아도 누가 바이안2황자인지 금방 알 수 있었고, 자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생기고 멋있기에 달뜨는 기분이 진정할 세가 없었다.

　 키는 훤칠했으며, 딱 벌어진 어깨도 듬직했지만, 기사라서 그런지 훈련을 하며 적당히 그을린 피부색에 유독 더 반짝여 보이는 금발, 진한 눈썹, 그리고 그 눈썹 밑엔 날카로운 눈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청안과 오똑한 콧날과 굳게 다물어진 입술이 무척이나 매력적이고 그의 분위기가 신비로워 보였다.

　 플로아는 자신이 여태껏 보아왔던 미남들도 그의 앞에서는 평범한 외모가 되어버릴 정도라 느꼈다.

　 그를 보자마자 플로아는 욕심이 생겼다.

　가지고 싶다, 옆에 묶어두고 소유하고 싶다고, 지금의 자신이라면 원하는 그 어떤 것도 들어오는 자리에 앉아 있기에 눈앞의 저 생물을 제 옆에 둘 수 있으리라 그리 확신했다.

　 플로아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고고하게 고개를 치켜든 상태로 그들을 데리고 온 기사들에게 손을 위에서 아래로 한번 내렸다.

　 그녀의 손짓과 동시에 바이안과 론의 옆에 도열해 있던 기사 둘이 그들의 한쪽 어깨를 잡고 그대로 무릎을 꿇렸다.

　 “내가 누구인지 말을 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가벼운 듯한 목소리가 주변의 무거운 분위기와 대조되어 중앙 홀에 울려 퍼졌다.

　플로아 그녀 외에는 그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아니하고 오직 그녀만을 주시했다.

　 “왜 그대들을 불렀는지는 이 몸이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말을 잠시 멈추고 무릎을 꿇은 채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그를 감상했다.

　 그리고는 거두절미하고 바로 본론을 말했다.

　 “너희들의 능력이 그 어떤 이들보다 뛰어나다 들었다. 작위를 박탈당해 대륙으로 추방이라니, 이야기를 들어보니 너무나 안타깝지 않으냐? 그래서 한번 기회를 주고자 한다. 나의 기사가 되거라.”

　 입바른 소리. 하지만 론과 바이안의 귀에는 전혀 다른 소리로 들렸다

　 더럽고 경멸스러운 욕망이 들려오는 듯 할 정도였고, 물론 눈앞의 도도하게 앉아있는 플로아 자신은 숨길생각이 없는지 아니면 숨기지 못하는지 노골적으로 눈과 표정으로 다 말하고 있었던 원인도 컸다.

　 그 덕분에 홀에 있는 이들 모두도 그리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거절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것이 될 장식품의 입에서는 전혀 다른 대답이 들려와서 그 말에 한쪽 눈썹이 꿈틀하며 절로 인상이 쓰여 졌다.

　 그의 매료될 듯 한 목소리를 감상할 틈도 없이 거슬리는 말은 연달아서 들렸다.

　 “이미 처분은 내려졌고, 지금은 기사도 아닌 몸. 돌아갈 생각은 없습니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은 목소리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는 바이안에게 짜증이 일기 시작했다.

　 감히 자신의 앞에서 자신이 베풀어주는 아량을 거절하다니 괘씸하지 않은가.

　 “난 그 누구보다도 위대한 존재다. 그런 내가 하는 말이다. 내 옆에 있으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단 말이다.”

　 순간적으로 흥분한 플로아는 아차 하며 다시 자세를 가다듬었다.

　 “추방당하면서까지 대륙에 있으려는 이유가 무엇이냐? 대륙에 사는 지상인들 이라는 것들은 천하고 어리석어. 벌레만도 못한 것들이다. 이 곳에서는 거기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을 얻을 수 있어.”

　 주변에 있는 기사들은 처음으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놀란 표정을 내비쳤다.

　 대현자의 입에서 나올 것이라고 생각도 하지 못했던 말을 자신들의 주인의 입에서 적나라하게 들어버렸기 때문에 충격이 상당했다.

　 세상에서 제일 공정하다는 존재가 지상인을 내리깔며, 재물을 논했다.

　 “재물도 권력도 모두 필요 없습니다.”

　 역시나 바이안은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주지 않았다.

　 “이이익~”

　 주체 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오른 플로아는 계속해서 그에게 비슷한 말을 반복하며 들어 올 것을 강요했고, 이에 바이안은 같은 말을 돌려줬다.

　 플로아와 바이안의 한참동안 이어지는 공방을 바라보며, 중앙 홀에 좌우로 나란히 도열해 있는 기사단들은 복잡한 심정을 숨기려 애썼다.

　 특히 하일을 필두로 누구보다도 바이안과 론을 잘 알고, 서로 동고동락했던 동료들은 피가 나올 듯이 주먹을 강하게 말아 쥐며 감정을 다스리려 다른 이들보다 더 노력했다.

　 자신의 대에서 주인을 뵐 수 있기를 늘 기대해왔던 기사들이지만, 겨우 나타난 주인은 자신들의 앞에서 바이안과 론으로 기사를 모욕하고 있음은 물론이요, 지저분했다.

　 저런 이를 정녕 주인으로 모셔야 하는 것인가, 그전에 진짜로 주인이 맞는 것인가? 그런 의심만이 하일팀의 모두의 마음에 공통적으로 새겨졌다.

　 “이이익~ 감히... 여봐라. 저 두 놈을 당장 감옥에 쳐 넣거라. 내가 직접 윗사람으로서 본보기를 보일 것이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전혀 바뀌지 않는 바이안이 마치 벽을 대고 이야기 하는 듯 했다.

　 플로아는 자신이 이렇게까지 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말을 듣지 않는 것에 몹시 자존심이 상했다.

　 자신은 늘 최고이며, 최상이라고 생각해왔고, 자신의 말 하나 하나에 모든 사람들이 울고 웃고 고개를 조아리며 자신을 칭송해야 마땅했다.

　 그렇기에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바이안에게 화가 난 것이리라.

　 홀을 박차고 나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서도 화는 가라앉을 줄 몰랐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더욱 가져야겠다는 소유욕만 커졌다.

　 “네 놈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가지고 말겠다. 계속 그런 식이라면 몸뚱이라도 가질 것이야.”

　 아무도 들이지 않은 방안에서 그렇게 홀로 다짐했다.

　 로트론의 도시 중심에 위치한 큰 저택에 케리프는 쩔쩔매며 자신에게 처음으로 잔뜩 화가 나서 무섭게 노려보고 있는 세이나와 마주하고 있었다.

　 “케리프씨. 다시 한 번 물어볼게요.”

　 세이나는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탁탁 두드리며 자신의 시선을 계속 은근슬쩍 피하는 케리프를 주시했다.

　 “반이랑 론, 어디 있어요?”

　 “..글쎄요. 저도 잘 모릅니다.”

　 “케리프씨라면 알고도 남으실 텐데요?”

　 “저도 들은 바가 없습니다. 두 분께서 무언가 볼일이 있으셔서 잠시 나가신게 아닐까요.”

　 같은 질문에 같은 대답의 도돌임표에 세이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녀석들이 하루나 이틀정도 안 오는 건, 가끔 있었던 일이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어요. 하지만 벌써 일주일이예요. 그 녀석들이 내 옆에 있는 이유도 대충 알고 있는데, 그리고 특히 반은 아무 말 없이 나한테서 떨어지지 않는 놈 이예요.”

　 이제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케리프에게 세이나는 방법을 살짝 바꿨다.

　 “케리프씨 그거 알아요? 케리프씨는 거짓말을 하면 오른쪽 귀가 살짝 움직이시는 거.”

　 그녀의 말과 함께 흠칫하고 놀라 서둘러 자신의 귀에 손을 가져다대자마자 세이나는 그때를 놓치지 않았다.

　 “방금 한말 거짓말인데.”

　 “네?”

　 “제 말에 바로 손을 귀에 가져다 댄다는 것은 진짜로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나오는 행동이죠. 도둑이 제 발 저린다라고 하는 거예요. 실제로는 입술 모양이 미묘하게 틀어지는 것이 케리프씨가 거짓말 할 때 하시는 행동이구요.”

　 “......”

　 낭패였다. 세이나에게서 비밀을 만드는 것은 역시 자신에겐 무리였는 듯 싶었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발설 할 수도 없고, 아니 그녀를 위해서라도 말 하고 싶지 않았다.

　 “... 죄송합니다. 세이나님. 저는 세이나님께 드릴 말이 없습니다.”

　 세이나는 자신의 앞에 놓인 차를 단숨에 들이 키고 그대로 자리에 일어났다.

　 “오늘은 이대로 돌아갈게요. 하지만 다음에 다시 볼 때는 말하실 수밖에 없으실 거예요. 차 잘 마셨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그의 집에서 나가버렸다.

　 세이나가 돌아가고 나자 케리프는 앉아있던 소파에서 주르륵하고 미끄러져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이런 제가 어떻게 세이나님을 지켜드릴 수 있을까요..”

　 케리프의 독백이 공허하게 방안을 메웠다.

　 한편, 케리프의 자택에서 나온 세이나는 이제껏 사람들 앞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진중한 표정을 하며 도시중앙을 지나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중간 중간에 세이나를 알아본 사람들이 인사를 해왔지만 그녀는 들리지 않는지 그대로 지나쳤고, 처음 보는 그녀의 모습에 다들 당혹해했다.

　 ‘둘이 대륙으로 내려온 이유는 대현자를 찾기 위해 내려왔다는 건 알겠어. 그리고 둘의 반응도 그렇고, 계속 내 옆에 있는 이유도, 그 대현자가 나라는 확신 때문이겠지. 예전에 내 히스테리에 그 것에 대한 언급은 그 뒤로 한 번도 하지 않았지만.. 게다가 반은 내가 알지 못하는 기억에 깊이 관계되어있는 건 뻔하고, 상황이야 어떻든, 진즉에 천공의 땅으로 나를 데리고 돌아가고도 남았을 텐데 그런 반응도 조짐도 없었다는 것이 걸려. 분명 자신들끼리 무언가 있다는 거야. 대현자, 나... 어딘가에서 들리는 목소리.. 악몽.. 비어버린 기억...’

　 “기억..인가?”

　 생각을 정리하며 걷자 어느새 집에 도착해 있었다.

　 집으로 들어가니 할아범이 변함없이 자신을 반겼다.

　 “끌끌끌. 오늘은 별로 밖에 있을 생각이 안 드나 보구나.”

　 “할아범.”

　 세이나가 할아범의 맞은편에 앉자, 할아범은 평소와는 판이하게 다른 그녀의 모습에 자신도 웃음을 지웠다.

　 “할아범은 젊었을 적부터 많은 곳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것을 보고 겪고 느껴왔잖아.”

　 “그렇지.”

　 “그럼 무언가에서 도망쳐본 적 있어? 그것이 자의가 되었든 타의가 되었든, 또, 그 도망치는 이유를 알지 못해도, 있어?”

　 “아가 왜 그런 것을 묻는 게야.”

　 세이나가 무언가에서 답을 찾으려 처음으로 움직인다고 느꼈다.

　 “그런 행동도 자신이 가져야할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걸까? 외면한 것이 잘못한 걸까?”

　 계속 늘어나는 질문에 할아범은 말없이 의자를 끌어다 세이나의 옆에 앉아 손을 마주 잡았다.

　 “끌끌끌 그럼~ 있지. 이 할애비에게도 있었단다.”

　 세이나의 손을 잡고 자신이 처음 모험가가 되어야만 하면서 겪었던 일을 들려줬다.

　 “천애 고아에 돌봐주는 이 없이 자라야 했던 어린 나에게 모험가의 길을 알려준 이들이 있었지. 그들에게 살아남는 법과 강해지는 법, 오지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법등 많은 것들을 배우며 처음으로 선배가 오지의 탐색에 나를 데리고 갔을 때였단다...”

　 할아범의 따뜻하고 거친 손이 마음을 녹인다.

　 “처음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모험자의 길에 나는 잔뜩 들떠있었지. 하지만, 들어가서는 안 돼는 길에 잘 못 들어간 우리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의 마수 무리들을 만나서 속수무책으로 죽임을 당했단다. 숫자를 가늠 할 수도 없었고, 그 한 마리만으로도 벅찰 정도의 녀석이었지.”

　 할아범의 눈에 슬픔이 묻어난다.

　 “그 와중에도 나를 데리고 온 선배는 온몸이 뜯겨가도 나 하나만이라도 살아야한다며 도망칠 길을 열어주더구나.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고, 움직이지도 못했었던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동굴이었단다. 모험자들이 만들어 마수나, 맹수들의 눈을 피해 쉴 수 있는 그런 곳이었지. 주변을 둘러봐도 나 혼자였고, 온 몸을 떨며 한참의 시간이 지나자 그제야 기억이 나더구나. 내 다리로 그 곳까지 도망쳐 왔었던 게야...”

　 처음으로 할아범의 과거를 엿본다.

　 “혼란했지. 동굴의 입구를 막고 몇일 동안 나가지도 않은 채 떨기만 한 것이 다였어. 일주일이 넘었을 때 문득 생각이 들더구나. 무엇이 무서워서 그리 떨고 있었나? 잔인하던 맹수들에게 뜯어 먹힐까봐서인가, 아니면 눈앞에서 잔인하게 죽어가던 이들의 절망적인 눈빛이었는지, 그들을 버리고 나 혼자 도망친 나에 대한 어리석음인지.. 끌끌”

　 할아범 특유의 웃음이 오늘따라 슬프다.

　 “그렇지.. 내 책임은 무엇이었을꼬.. 너무 들떠있던 내가 실수로 잘 못 들어간 것이 원인인데, 죽을 것이 확실해도 그들과 함께 죽는 것일꼬? 선배가 살아남으라고 도망칠 수 있게 희생해 준 이 목숨 끝까지 살아야 하는 것일꼬?”

　 이야기를 마무리 하듯 세이나를 지긋이 본다.

　 “세이나. 이 할애비는 그렇구나. 어떤 질문에 어떤 답을 내리든지, 그것은 네 마음이 가는 대로 하려므나. 세상에는 답이라는 것이 없단다. 설령 그것이 타인이 좋지 못한다 말을 하여, 타인의 말대로 한다고 해도, 그것 역시 답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 세상이야.”

　 할아범의 오랜 아픔의 과거를 들으며, 세이나는 자신만의 생각의 세계로 발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