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가 처음 자신에게 가장 가지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물었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던 황후는 펜이라 말을 하자 처음으로 황제가 프로포즈 했을 때 준 펜이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 펜의 투명하게 되어있는 둥근 꼭지 안에는 금실이 들어가 있었다.
황제가 준 부적인 머리카락이었다.
황후는 늘 불안할 때나 큰일을 하게 될 때마다 그 부적을 품에 가지고 다녔다.
그런 황후를 가만히 지켜봐주던 황제는 다시금 손을 들어 황후의 손을 마주 잡았고, 둘은 기사들의 호위 하에 현궁으로 향했다.
각자 서로의 생각과 각오를 다지며 의식이 거행되는 신성한 장소, 여신의 품이라고도 불리는 거대한 홀에 한명, 한명 모여들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한쪽에서도 아무도 모르게 작은 움직임이 있었다.
새벽에 몰래 빠져나갔던 세이나는 보무도 당당히 어두운 계단을 내려가 감옥에 도착했다.
“여~ 오랜만일세. 론. 아니, 카시어스경? 뭐라고 불러줄까?”
세이나는 감옥 안에서 허이짜~ 몸을 풀고 있는 론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어 줬다.
론은 갑자기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헛소리가 들리나하며 귀를 후벼 파면서 고개를 돌리고 그대로 돌이 되어버렸다.
“응? 뭔가 반응이 약하다?”
헛소리가 아니라는 듯 다시 한 번 들리는 목소리와 세이나의 등장을 확인하자마자 론은 화들짝 놀라 당황했다.
“뭐야 뭐야! 네가 여기 왜있어? 여기가 어디라고 온 거야? 아니.. 어떻게 온 건데? 아..아니지 여기에 온다는 뜻이 뭔지는 알고 온 거야? 아주 불가에 뛰어드는 나방처럼 사지로 넙죽 오면 어떻게 하냐고!”
세이나는 허둥거리는 론을 키득거리며 웃어주다가 이내 급 정색했다.
“알고 왔고, 난 충분히 멀쩡해. 그리고, 진정해. 카시어스경.”
처음 보는 세이나의 위엄에 론은 흠칫했다.
한 번도 없었던 분위기, 그녀에게서 카리스마인지 커다란 위압감이 론을 덮쳤다.
“......”
“지금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도 아니까 간단히 이야기 하자.”
“...얼마나 알고 계신 겁니까?”
표정도 말투도 완전히 바꾼 론은 세이나에게 정중히 물었다.
“둘이 나를 위해 애쓴 이유들, 그리고 이곳에 올라오게 된 상황은 대충. 현재 너와 바이안이 떨어져 있는 거?”
“그렇습니까?”
“아무리 나라도 전부 파악하긴 힘들어 애초에 천공의 땅이라는 것은 생전 처음이기도 하고, 와보니 곧 의식인가 뭔가를 한다고 하지를 않나, 아! 여기 와서 하나 놀란 것은 있다.”
왼손을 주먹을 쥐어 오른손바닥에 탁하고 치며 정말 놀랐었다는 표정을 보였다.
“바이안 황족이었어? 상당히 놀랐다? 케리프씨도 그건 말하지 않았고, 우와 내 과거가 어땠길래, 황족이랑 약혼했었다니?”
놀랐다는 말에 잔뜩 긴장했던 론은 나중에 나온 그녀의 말에 작게 실소했다.
“놀라셨다는 것이 그것입니까?”
“응!”
해맑게 대답하는 그녀의 모습에 론은 완전히 긴장이 풀려버렸다.
“크하하하 언제 생각해도 역시 재미있다니까.”
힉힉 거리며 진정하려고 애쓰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감옥을 훑는 세이나에게 집중했다.
“그.. 건너편이 바이안이 있었던 곳이야.”
“그래?”
그리고 감옥 문이 열려있는 방으로 들어간 세이나는 그 주변을 훑어봤다.
정리가 되지 않고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고문도구들과 굳어있는 핏자국들, 그리고 몇 개의 도구들에는 언뜻 살점으로 보이는 부분도 보였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의 발밑에 있는 검은 끈 같은 것을 집어 들었다.
“바보 멍청이..”
“세이나...”
그것을 자신의 품안으로 넣은 세이나는 더는 볼 것 없다며 다시 론이 있는 감옥 쪽으로 이동했다.
“그 플로아라는 년, 무식하니? 아주 욕심이 산하나 만들 기세야.”
“뭐... 심하지.”
“바이안이 얌전히 당하고만 있는 건 아마도 나를 걸고 협박이라도 했겠지. 단순하지만 아주 잘 먹히는 방법이잖아. 특히 바이안 같은 성격에는.”
론은 세이나 몰래 그녀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지금 바이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가 걱정이 되어서였다.
그리고 세이나의 반응으로 보아 중요한 부분은 아직 모르는 것 같았기에 작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근데 진짜 궁금한데. 어떻게 올라온 거야? 그리고 여기까지 어떻게 무사히 왔고?”
다시 말을 편하게 바꾼 론은 진심으로 궁금해지는 부분을 물었다.
“응? 잘~. 천공의 땅으로 올라온 건, 케리프씨가 가지고 있는 통행구를 이용했지. 나도 마력은 있다? 그리고 뭐 들키는 순간에는 틈틈이 내 능력을 새삼 활용해서 빠져나갔고”
“하?”
놀라는 론에게 세이나는 부가 설명을 넣어주었다.
“내가 예전에 말했을 때 그랬잖아. 별거 아닌 능력도 생각하는 방법에 따라 그 능력의 쓰임은 천차만별이 될 거라고. 너도 내 말을 듣고 실력이 상당히 늘었다고 좋아했었지. 나야 뭐~ 내 능력을 깨달은지 얼마 안 되어서 사용하기가 상당히 버겁지만..”
혼자 만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잡담은 끝내자.”
이제는 본론으로 가야할 시간이다.
“이제 어쩔 생각이야?”
“플랜C.”
“플랜C?”
“무작정. 단순하게. 한방.”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론에게 이죽거렸다.
“늘 내 목숨이 우선시 되는 것. 대현자. 나를 죽인 세력들에게 나를 숨기고 있기 때문에 잘 못하면 주변을 동조시켜서 가짜로 몰려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 둘의 생각이지? 그건 나도 있을 수 있다고 동의해. 론. 그거 알아? 때론 단순하게 밀고 나가는 것이 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어.”
쪼그리고 앉아 있던 자세를 편하게 바꿔 차가운 바닥에 앉고 마저 입을 열었다.
“핵심은 신성한 의식. 남에게 보이기 좋아하는 돌은년 덕분에 황제폐하, 여러 귀족들, 기사들이 모두 모이잖아. 내 예상인데 그년은 아마 현자의 돌이 대현자를 상징하는 형식적인 단순한 보석이라고 생각하는 듯하지만.”
돌은년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꿰고 있다는 당당한 말에 답은 나왔다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니 그 상황과 그걸 노리려고. 여태껏 대현자가 되기 전에 모두 죽임을 당했었겠지. 만일 그 곳에 적이 숨어 있다고 해도 내가 그 돌을 가지고 그 자리에 바로 올라버리면 아무리 적이라고 해도 오히려 함부로 못하게 될 거야. 현자의 돌을 가지기 전에야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그 당일을 이용해서 증인들을 만들고 올라서면 무용지물이 된다고.”
단순하게 한방이라고 하는 말과는 다르게 나름의 정리가 되어있었다.
“...그 말뜻의 의미는 알고 하는 거지? 여태껏 싫어했잖아. 그렇게 되면 돌이킬 수 없어.”
“나에겐 든든한 기사님이 있잖아.”
자리를 털고 일어난 세이나는 손가락으로 창살을 톡톡 건드렸다.
“이거 없애버려.”
그 말과 동시에 론은 창살을 손에 각각 쥐고 마력을 운용했다.
그러자 마력의 영향을 받은 창살이 형태가 일그러지며 떨어져 나갔고 모양을 바꿔갔다.
론의 능력은 물론 그 물체들의 성분은 변하지 않지만, 다른 형태로 변환하는 능력이었다.
론의 손에서 꾸물꾸물 바뀌던 그 창살은 이내 어두운 색의 두 개의 검으로 형태변환을 완료했고, 구멍이 난 곳으로 걸어 나왔다.
“오늘로서 말을 편하게 하는 것은 끝이네.”
그리고 그는 자세를 바로 고쳐 잡았다.
“나 하이론 세이아나는 그대 카시어스 로트론경에게 처음으로 명한다. 나의 검과 방패가 되어 나의 뜻을 따르는 기사로써 나를 지켜라.”
론은 검을 옆으로 치우고 오른손을 주먹을 쥐어 심장 쪽으로 가져다 댄 후,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모든 것은 하늘의 눈과 귀이시며, 존귀하신 대현자 세이아나님의 뜻대로. 카시어스 로트론이 주군을 뵙습니다.”
세이나는 무릎을 꿇고 예를 다하고 있는 론에게 조심히 물었다.
“카시어스경. 함께 해왔던 동료들을 벨 수도 있고, 죽여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어. 괜찮겠어?”
세이나의 걱정 어린 음성에 론은 걱정하지 말라며 믿음직한 미소를 지어 올렸다.
“저희들은 기사입니다. 언제 어느 때고 있을 수 있는 상황. 문제없습니다. 저희들은 그저, 주군이 가시는 길을 지킬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