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부르는 모습을 보자, 이제 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 힘겨웠는지 서둘러 마력을 거두었다.
론은 그녀가 마력을 사용하는 모습에 그녀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무엇인지 알았다.
“카시어스경. 날뛸 준비는 됐어?”
“언제든지요.”
세이나는 능글거리는 얼굴의 론을 보자 반대로 안심이 된다.
그때 플로아는 자신을 완전히 무시하는 상황과 바이안의 변화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기사단들에게 명령했다.
“뭣들 하고 있느냐? 당장 저 오만방자한 침입자들을 죽여.”
그녀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기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세이나는 그들을 아랑곳 하지 않고 바이안에게 당부하듯 외쳤다.
“반. 거기에 딱 가만히 있어. 누나가 간다.”
말을 끝으로 두 팔을 걷어붙이는 시늉을 하면서 당당하게 앞으로 걸어 나가자 기사들이 막으려 덤벼들었다.
하지만 세이나는 눈 하나 깜짝이지도 않고 그들을 무시했고, 바로 뒤에 있는 론이 그들보다 더 빨랐다.
양손을 벌려 바닥에 손을 짚어, 순식간에 길게 마력의 줄기를 흘려보내자마자 세이나의 양 옆으로 돌 벽들이 들쑥날쑥 생겨나 플로아의 지척까지 뻗어나갔다.
세이나에게 길을 열어줌과 동시에 기사들을 한 번에 저지한 그의 능력이 오싹할 따름이다.
기사들은 솟아오르는 돌 벽을 서둘러 피했고 론은 곧 바로 등을 돌려 세이나의 뒤를 지켰다.
귀족들과 황제는 한쪽으로 피한 채로 둘의 대치를 지켜봤다.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도 들렸고, 마력과 마력에 의해 터지는 여러 소리도 들렸다.
일대 다수, 하지만 그 일은 다수에게도 거의 밀리지 않고 싸우는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줬다.
그 사이의 중심에서 세이나는 자신에게 쏘아지는 살기들도 모두 무시하며 오로지 앞만 보며 거침없이 걸어 나갔다.
“어이 거기 돌은년.”
“뭐...뭐?”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적당한 크기의 목소리에도 플로아에게 잘 들렸다.
“하~ 솔직히 말이야. 난 애초에 그 자리 관심도 없었거든? 누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도, 적당히 알아서 한다면 전혀 상관 안 했을 거야. 오히려 얼씨구나 좋구나, 잘해라~이러면 이랬겠지.”
지금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며 또박또박 말을 하는 세이나의 행태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은 누구보다도 위에 군림하고 있으며, 세상 최고의 존재였다.
그런데 눈앞의 건방진 계집은 마치 자신이 대현자 자리를 비껴줬던 듯이 말을 하고 있었다.
“저 둘은 그런 나를 이해해주려고 일부러 오명을 뒤집어쓰는 한이 있더라도 다 버리고 나를 지켜주고 있었어.”
“이이익”
플로아는 세이나를 향해서 분노의 말을 꺼내려 했을 때, 큰 폭발음과 함께 론이 세이나의 옆으로 날아와 미끄러졌다.
역시 일대 다수에는 한계가 있었는지 한방 크게 맞은 론이 입에서 피를 토했다.
세이나는 그런 론을 내려다보았고, 론은 히죽거리며, 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카악~ 퉤”
그리고는 목과 입안에 걸리적거리는 피를 한 움큼 뱉어냈다.
“나는 신경 쓰지 말라고요.”
“최대한 빨리 끝낼게.”
서로 등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굳이 시선을 마주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론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덤벼드는 기사들과 격렬히 대치했다.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적인 셈이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숫자에 어쩔 수 없이 틈이 생겨버렸고, 그 틈을 비집고 세 명의 기사가 세이나에게 달려들었다.
“세이나”
론은 다급하게 세이나에게 달려갔지만 그보다 한발 빠른 이들이 있었다.
론은 그들을 보자마자 그녀를 방어 하는 것을 멈췄다.
기사들의 검이 세이나에게 꽂히려 했을 때, 열두명의 기사들이 일제히 세이나의 뒤를 막아섰다.
카캉 카가각
쇠와 쇠의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셋은 세이나에게서 떨어졌고, 그와 동시에 잠깐의 정적이 만들어졌다.
세이나는 자신의 주변을 에워싸며 지키고 있는 열두명의 기사들을 스윽하고 한 번 짧게 훑었다.
세이나의 시선을 느낀 그들은 그녀에게 작게 목례를 했다.
“인사는 나중이다.”
“예.”
그들의 대표로 하일이 대답을 했고, 생각지도 못했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는 론에게 심술 맞은 표정을 넘겨줬다.
“네들이 숨기고 있었던 것이 이거냐?”
“미쳤구나. 네들.”
“미친 건 너희둘이겠지.”
하일의 반문에 론은 피식 웃었다.
플로아의 분노 섞인 명령과 단장의 지시로 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시끄러운 소음이 가득하자 세이나와 플로아의 대화가 들리지 않았고, 기사들은 눈앞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움직여야했다.
하지만 하일들은 론이 등장하고부터 론과 세이나 그리고 플로아를 주시했으며, 어렴풋이 전반적인 상황을 이해하자마자 자신들의 판단을 믿고 바로 세이나에게 붙었다.
“감히 주인에게 검을 겨눌 셈이냐?”
단장은 노기 짙은 목소리로 하일과 그들의 팀을 노려보았다.
“죄송합니다. 단장님. 저희들의 주인은 물욕에 찌든 년이 아닙니다.”
폭탄 같은 하일의 발언에 기사들의 틈에서 동요가 일어났다.
하지만 단장은 오히려 더 무섭게 변했고, 이내 그 자신이 검을 들었다.
그 사이에 세이나는 플로아의 지척에 다다라, 자연스럽게 단상에 올라가 눈높이를 맞췄다.
“그러고 보니까 너 같은 인간에게는 아무리 바른 소리를 해도 못 알아먹던가?”
상큼하게 웃으며 고개를 갸웃해 보이자 플로아는 미치기 직전이었다.
“무례한 년. 나는 대현자다. 감히 내가 누구라고..”
“누구긴~ 돌은년이지.”
“뭐..뭐...”
다시 병장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지만, 세이나에게까지 검을 들이밀지는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세이나가 플로아와 가깝게 있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해서 주군에게 위해를 끼칠 수 있고, 그들의 머릿속은 이미 엉망이다.
“내 말에 한 번도 제대로 반박도 하지 못하고, 펄쩍펄쩍 성만 내면서, 무례하다 감히라든가.. 말이다? 그리고 말문이 막히면 뭐..뭐.. 뿐이네? 한 번이라도 제대로 말 좀 해봐라. 주변에 들어보니까 말 잘한다던데, 너 정말 대현자 자리에 어떻게 올라와있는 거야?”
진심으로 궁금해 하다가 케리프와 자신의 상황이 떠오르자 자연스럽게 납득했다.
“아! 이렇게 까지 멍청한데 어렵게 생각 할 뻔했네. 대륙에서 다른 녀석의 지식이나, 아이디어 같은 것들 네년이 협박해서 너 인 것처럼 꾸몄구나?”
흠칫하고 떠는 모습을 놓치지 않은 세이나는 그럼 그렇지 라며 수긍했다.
“그렇다고 치더라도, 어떻게 장식이 반응을 보였을까? 그거 딱 한명한테서만 반응 한다던데. 이건 나도 모르겠네.”
“내 내가 선택받은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반응 하는 것이 당연해. 이 몸은 세상에서 제일 위대하고 존귀하단 말이다.”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더더욱 바락 대들었다.
“그..”
그 때를 놓치지 않고 마무리 한방을 위해 입을 떼려 할 때 다급한 바이안의 목소리가 세이나를 덮쳤다.
“세나!!”
한순간의 틈, 봐주지 않겠다는 듯 마력을 풀로 개방한 기사단장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날아와 세이나에게 꽂혔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대한 마력들이 부딪히며 커다란 소음이 홀 전체를 덮쳤다.
그 반동으로 단장은 그대로 날아온 반대편으로 날아갔고, 바닥에 주륵 미끄러지며 버티고 있는 바이안이 단장을 마주 노려보았다.
“....큽.. 쿨럭... 우웨엑.. 카학!”
하지만 곧 바로 바이안은 입에서 피를 쏟아내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억지로 마력을 끄집어낸 결과로 심각한 내상을 입고 피가 입으로 역류한다.
“반!!”
바이안이 쓰러지자마자 세이나는 서둘러 아직도 각혈을 멈추지 않고 괴로워하고 있는 바이안을 안아들었다.
“야이 미친놈아. 등신아. 진짜로 죽으려고 작정했어? 이게 뭐하는 짓이야? 마력을 쓰면 어쩌자는 건데? 이건 단순히 폐인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고 이렇게 쓰게 되면..”
“하아...하..세나야”
하지만 그는 오히려 세이나에게 웃어주고 그녀를 조심히 밀어냈다.
그리고 비틀거리면서 몇 번을 더 넘어지면서도 간신히 두 다리로 지탱해 서서 단장과 마주하며 그를 경계했다.
“내가 가만히 있으라니까..”
자신의 등에서 작게 들리는 그녀의 투덜거림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말려도 안 들을 거지?... 빨리 끝낼게. 죽지 마. 버텨.”
“아~”
대답과 동시에 바이안은 그대로 단장 쪽으로 튕기듯 날아갔고, 그와 동시에 세이나는 다시 플로아에게 집중했다.
“같은 편끼리 무고하게 피를 흘리는 것도 보기 좋지 않은데, 우리 확실한 방법으로 끝내자.”
“무슨...”
싱긋 웃으며 단상위에 있는 여신의 조각상을 가리켰다.
“네가 정말로 존귀하고 위대한 대현자라고 우길 테면 효과적인 방법이 있잖아. 아직 의식도 행하지 않았는데, 저 조각상의 손에 올려져있는 돌. 현자의 돌이라고 하던가? 진짜 대현자만이 만질 수 있다고 하지 아마?”
“......”
플로아는 붉은 빛을 뿜어내고 있는 그 돌을 유심히 보았다.
“저 돌을 만져보면 끝날 일이잖아. 네가 진짜 대.현.자.님.이라면.”
“흐흥. 물론이다. 내가 진짜라는 것을 보여 주마.”
어깨를 한껏 피며 플로아는 그 돌을 향해서 거침없이 손을 뻗었다.
“아! 그런데 그건 아나 모르겠다.”
“??”
“저 돌 안에 있는 쟤들이 그러던데, 진짜가 아닌 이가 손을 대면 그 순간 어머어마한 고통을 받는다는 건 알고 있지? 머리가 막 이렇게 퍼엉~”
너무나 순수하고 밝게 말하는 세이나의 목소리가 뒤에서 꽂히자마자 플로아는 그대로 동작을 멈췄다.
역시 플로아는 그 돌에 대해서 무지했다.
“응? 뭐해? 어서 잡지 않고?”
세이나가 플로아의 옆에 가까이 와 두 손을 공손히 모아 돌을 가리키며 말을 하자마자 플로아의 손은 덜덜 떨렸다.
그리고 마치 주문을 외우듯 그녀는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대현자다. 그 남자가 그랬어.. 내가 대현자가 될 거라고, 난.. 대현자야. 그 말만을 믿고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크게 각오를 다지며 플로아는 덥석 현자의 돌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1초도 채 지나기 전에 째지는 비명을 지르며 현자의 돌을 손에서 놓아버렸다.
“꺄아아아악”
바닥에 몸을 쭈그리고 앉아 그대로 머리를 손으로 쥐며 고통스러워하는 플로아를 무심하게 내려다보던 세이나는 바로 홀로 몸을 틀었다.
세이나는 다시 마력을 집중해서 목으로 끌어와 크게 소리쳤다.
“검을 버려라.”
플로아의 비명과 함께 모두 싸우는 것을 멈추고 단상을 바라보던 기사들은 세이나의 일갈과 함께 그대로 자신들의 무기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자신들을 고고하게 내려다보는 세이나를 올려다봤다.
“내 앞에서 더 이상의 무례는 용서치 않을 것이다. 너희들이 떠받들던 저 년이 가짜라는 것은 증명이 되었다. 그럼에도 검을 든다면, 나 역시 그대들에게 응당한 대우를 해 줄 것이야.”
마력이 내포 된 세이나의 위엄 섞인 목소리는 홀에 있는 사람들에게 너나 할 것 없이 모두의 어깨를 강하게 짓눌렀다.
그 침묵 속에서 검을 버리지 않고 있는 소수의 기사들인 하일팀과, 론은 자연스럽게 세이나의 주변에 둘러치듯 서서 모두에게 검을 겨눴다.
“......”
그때 자신의 단상 바로 앞으로 힘겹게 걸음을 옮겨 자신을 올려다보는 바이안과 시선이 부딪혔다.
바이안은 흔들리는 눈동자와 복잡함으로 세이나를 걱정했지만 오히려 세이나는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다녀올게.”
말을 마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플로아가 떨어뜨린 현자의 돌 쪽으로 걸음을 내딛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