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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왕을 죽여라
작가 : null
작품등록일 : 201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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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들이 모이는 밤 1
작성일 : 18-07-09     조회 : 276     추천 : 0     분량 : 7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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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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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시간은 흘러 하늘엔 노을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각, 한 주택가로부터 산 위로 뻗은 비탈길 끝엔 건축회사의 파산으로 공사가 중지된 아파트 단지의 건설현장이 있었다.

  정재빈은 지금 그 폐건물 중 하나에 있었다.

  “...”

  그리고 그는 지금 눈앞의 소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여리여리한 몸에 걸친 맵시 좋은 슈트.

  단정하게 뒤로 묶은 흑발의 포니테일과 짙은 검은 눈동자는 노을의 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난다.

  갸름하고 작은 얼굴에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며 자리 잡은 고운 이목구비.

  조금 차갑고 딱딱해 보이는 인상마저도 눈 내린 고산의 절경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아름다운 자태.

  마치 장인이 혼신의 힘을 다해 빚어낸 인형 같은 소녀였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아직 창틀조차 설치하지 못한 창가 너머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요?”

  “...”

  이번에도,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의 ‘뛰어’라는 명령 이후, 이곳으로 피신할 때까지 그녀는 한마디 말도, 한번의 눈길도 재빈에게 향하지 않았다.

  “저기... 일단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감사하긴 한데, 저... 누구 시죠?”

  “...”

  “아까 그 사람들은 누구죠?”

  “...”

  “저기요?”

  “...”

  이 정도면 분명 고의적인 무시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자 결국 재빈의 목소리도 조금 더 올라갔다.

  “저기요?! 정말 죄송한데 뭣 좀 물어도...”

 

  “두 가지 이상을 동시에 묻고 거기에 대답하는 것은 의사전달에 비효율적인 방식. 그러니 좀 닥치고 있길 바래.”

 

  “...?!”

  드디어 소녀가 반응했다.

  재빈과 비슷하거나 좀 더 어려보이면서 초면에 거리낌없이 반말하고 있단 점과 그 내용이 뭔가 거슬리긴 했지만 어쨌든 대답한 것이다.

  그리고 소녀는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돌려 재빈을 바라보았다.

  “상황 정리 및 속행 방식 결정 중. 너의 방해는 그것을 비효율적으로 만들고 있다. 그러니 닥치고 있길 바래.”

  “...”

  그 아름다운 얼굴과 목소리가 아까울 정도로, 그녀의 목소리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말을 거는 재빈에 대한 짜증도, 고민하고 있는 듯한 주저함도, 전혀 없었다. 마치 컴퓨터가 만들어낸 음성을 출력하고 있는게 아닐까 할 정도로 억양도, 감정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목소리 뿐만 아니라 재빈을 바라보는 눈에도, 어떠한 표정이나 감정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 위화감 넘치는 모습에 재빈은 할 말을 잊었다.

  게다가 사람을 이리로 끌고와 놓고 계속 무시하더니 이젠 입을 다물라 말하는 그녀에게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싶은 것도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드디어 소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예정과는 다르지만, 임무 완수의 필요성은 변하지 않았다.”

  “네?”

  그렇게 말한 소녀는 몸을 돌려 재빈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그의 앞에 멈추어 섰다.

  “...”

  그러자 어째서인지, 재빈은 자신보다 머리하나 작은 그녀에게서 알수 없는 위압감을 느끼며 움츠러들었다.

 

  “내 이름은 윤나래. 이형인자 보유자 관리국 한국 본부 소속 및 국장 직속 2급 요원.”

  “...뭐라고요?”

  “잘 부탁해.”

  방금 그것이 자기소개였던 것일까, 그러나 재빈에게 있어선 그건 소개도 뭣도 아닌, 이해하기 힘든 단어의 나열일 뿐이었다.

 

  “...잠깐만요? 어디라고요?”

  “이형인자 보유자 관리국, 줄여서 관리국. 한국말로 했을 터이다.”

  “...그게 뭔데요?”

 

  “이형인자 보유자를 관리하고,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며, 인간과의 공존을 추구하는 기관. 그것이 이형인자 보유자 관리국이며 나는 거기에 소속된 요원.”

 

  “...”

  거기까지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건지, 윤나래가 다시 입을 다문다. 물론 재빈에게 그것이 설명이 될리 없었따.

  “아니 뭔 국어사전입니까? 일단 그 이형인자 보유자가 뭔데요?”

  “지금부터 설명할 예정이었다. 네가 말을 끊지만 않았어도 벌써 끝났겠지. 그러니 닥치고 있길 바래.”

  맞물리는 듯 하지만 전혀 이어지지 않는 대화에 먼저 지친 것은 재빈이었다.

  “하아... 알았어요. 다물고 있을게요.”

  “타당한 판단이야.”

  윤나래는 기계적인 말투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정재빈. 너는 2019년 8월 26일, 즉, 어제를 기점으로 A형 이형인자 보유자로 최종 판정. 그 내용은 종족회의 및 이형인자 보유자 관리국에 등록되었다.”

  “...”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단어를 말하는 그녀에게 딴지를 걸고 싶은 것을 재빈은 애써 참아낸다.

 

  “여기서 A형 이형인자 보유자라는 것은, 통상적으로 ‘뱀파이어’를 의미함.”

 

  “...뭐라고?”

  판타지에서나 나올 법한 단어를 진지하고 담담하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재빈은 자신도 모르게 반말을 입에 담고 말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아까 낮에 겪었던 납치 기도극, 거기에서도 같은 단어가 들렸던 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일반 인간들에게도 충분히 알려져 있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뱀파이어란...”

  “아, 아니 아는데, 잠깐만 기다려봐! 생각 좀 정리하고!”

  다시 설명을 이어가려 하는 윤나래의 말을 손을 저어 멈추게 하고 재빈은 필사적으로 머릿속을 회전 시켰다.

 

  재빈은 특별히 머리가 굳거나, 지독히도 현실에 집착하는 ‘꼰대’같은 성격은 아니다.

  적당히 노는 걸 좋아하고, 적당히 만화나 소설, 영화도 좋아한다.

  어린 시절엔 좋아하는 만화를 보며 일상생활에 무리 없을 정도로 망상에 잠기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적당히’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난데없이 뱀파이어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아하 그렇군요! 난 뱀파이어였군요!’라고 답할 정도로 순진무구하지 않았다.

  이미 21살이 된 재빈의 머릿속엔 ‘상식’의 존재가 꽤 큰 비중을 가지고 있었다.

  ‘뱀파이어는 판타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이 단순한 상식은 재빈 역시 마찬가지로 가지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재빈은 위협을 느끼면 풀숲에 머리만 처박고 안심하는 칠면조가 아니었다.

  분명 아까 낮에 겪었던 일들은 전부 현실이었다.

  그것을 직접 생생하게 보고 듣고 (고통을) 느꼈던 것은 분명히 자신이다.

  거기에서 눈을 돌리고 현실도피를 할 만큼 재빈은 나약하지 않았다.

 

  그러나 윤나래는 그 침묵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것인지 한 발짝 다가오며 손을 들어올렸다.

  “믿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은 타당. 필요하다면 증거를 보여주겠다. 그러니 잠시 닥치고 있길 바래.”

  그리고 그녀의 들어올린 희고 고운 손에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기괴한 무엇인가가 솟아올랐다.

  촤악!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아까 엡실론에게서 보았던 칼날 같은 금속의 손톱이 솟아나왔다.

  “히이익! 돼, 됐어! 필요 없어! 믿을게! 믿는다니까?!”

  머릿속에서 이미 트라우마가 된 낮의 기억이 플래시백된 재빈이 필사적으로 물러나며 손을 저었다.

  그러나 어쩐지 윤나래는 그 모습이 더 미심쩍었던 것인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긍이 너무 빨라서 오히려 의문. 정말로 믿는 건가?”

  윤나래가 그렇게 말하며 한 발짝 다가오자 재빈이 질겁을 하며 한 발짝 뒷걸음질 쳤다.

  “진짜라니까?”

  “너는 얼마 전까지 평범한 인간. 또한, 뱀파이어의 실존여부를 몰랐을 터, 그런데도?”

  “그런데도!”

  “지금 이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거짓말은 아닌가?”

  “아, 아니, 내가 왜 벗어나?”

  “...”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판단은 타당하다. 여기서 벗어나봐야 도망칠 순 없으니 얌전히 관리국의 도움을 받으며 닥치고 있길 바래.”

  “...”

  왜 마지막에 저런 험한 말을 매크로처럼 끼워 넣는 것인지 재빈은 의문이었다. 한편 거기까지 말한 윤나래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처럼 다시 몸을 돌려 창가로 향하려 했다.

  그런 그녀의 발을 붙잡은 것은 다시 날아온 재빈의 질문이었다.

  “저기... 윤나래씨?”

  “왜.”

  “혹시 너도 뱀파이어야...?”

  “그렇다.”

  윤나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한다.

  “...그럼 혹시, 너 피를 마시는 거야? 아니, 나도?”

  수많은 판타지 소설, 영화, 만화 등에서 나오는 뱀파이어라고 한다면 역시 흡혈을 하는 존재일 것이다.

  물론, 그렇게 묻고 있는 재빈 자신 역시 뱀파이어라고 하는 것 같지만.

  한편, 그 질문을 들은 윤나래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뱀파이어는 피를 마시지 않는다. 그건 왜곡된 이미지.”

  “어?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일반적으로 알려진 뱀파이어는 흡혈과 뗄레야 뗄수 없는 이미지 일 터, 그렇게 생각한 재빈이 눈을 찌푸리며 뭔가 말하려 하자, 윤나래는 한마디를 덧붙이며 그의 말을 차단했다.

  “정확히는, 뱀파이어는 절대로 피를 마셔선 안된다.”

  “응? 안 되는 이유라도 있어?”

  “나중에 설명. 지금은 귀ㅊ... 경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방금 귀찮다라고 말하려던 것이 분명하다고, 재빈은 생각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그걸 물고 늘어질 정도로 재빈은 끈질긴 성격은 못되었다.

  대신, 재빈은 자신의 처지를 좀 더 확실히 파악하기 위해 다른 것을 묻기로 했다.

  “음, 그런데 뱀파이어는... 난 잘 모르지만 태양빛에 닿으면 불타거나 하지 않았나?”

  태양빛에 약하다, 그게 어느 소설이건 영화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뱀파이어의 특징이며 재빈 역시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은 물론이고 윤나래도 한낮의 거리를 돌아다니면서도 괴로워하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죽진 않는다. 실제론 그저 조금 컨디션이 나빠 질 뿐.”

  “...”

  그리고 윤나래는 거기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대신, 혈액이 자외선에 노출되면 빠른 속도로 기화. 그러니 출혈에 주의하길 바래.”

  그러고 보니 엡실론이 팔에 냈던 상처, 거기서 흘러나온 피는 맹렬한 수증기와 함께 사라져 버렸었다.

  그리고 그 기억을 떠올리니 재빈은 그 상처를 낸 장본인도 떠올랐다.

  “그럼, 아까 낮의 그 놈들은 뭐야?”

  그 질문에 자연스레 대답하려던 윤나래는 무언가를 눈치 챈 듯, 말을 하려다 말고 재빈을 노려보았다.

  “거기에 대답하기 전에, 너 왜 반말이냐.”

  그제서야 재빈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말을 놓고 있단 것을 눈치챘다.

  “아, 아니, 뭐... 그쪽이 먼저 반말 했잖아...요?”

  일단 겉보기에는 여려보이는 그녀의 모습이었지만 그 무감정한 눈에서 느껴지는 이유모를 압력에 재빈은 말을 흐렸다.

  “...알겠다, 내 어휘 선택에 의한 반응이라면, 이것 역시 내 행동의 결과이므로 내가 감당하는 것이 타당하다.”

  윤나래는 또 무엇인가를 홀로 납득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곤 말을 이었다.

  “그들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이형인자 보유자, 통칭 ‘이종족’들의 사회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말하곤,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재빈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이 세계에는 인간 외에도 지성을 가진 4개의 종족이 있다.

  현대에 들어와 그 존재를 알고 있는 극소수의 인간들로부터 ‘이형인자 보유자’라는 공식 명칭을 받은 그들은 인간에 비하면 절대적으로 소수였기에 인간사회에 섞여서 사는 것을 택했다.

  그런 이종족들과 인간 사이의 공존을 위해 만들어져 각 종족의 대표자들이 갈등을 조정하고, 이종족들을 관리하며 통치하는 기구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종족 회의’였다.

 

  “그리고 ‘종족회의’의 법을 집행하며 이종족들을 관리하는 기관이 바로 ‘관리국’이다.”

  “경찰 같은 거구나.”

  “...대충 비슷.”

  무언가를 더 말하려다 그렇게 퉁쳐버린 느낌이 강했지만 재빈은 그냥 잠자코 듣고 있기로 했다.

  그리고 윤나래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렇게 종족회의가 만들어진 것이 대략 70년 전, 그러나 모든 뱀파이어, 모든 이종족들이 그것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개중에는 인간과의 공존을 거부하고 오지로 들어가버린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거기까지라면 문제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들 사이에 섞이는 것을 기생, 혹은 굴욕으로 간주하는 이들이 문제였다.

  게다가 이들은 한발 더 나아가, 인간보다 우월한 자신들이 인간에 의존하는 것은 말도 안되며, 그것을 뒤집고 더 우월한 생물종인 자신들이야 말로 지구상의 정점에 오를 자격이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 중 가장 유명하고 악랄한 자들이 바로 그 둘, 엡실론과 슈트라페.”

 

  “...그럼 그 악랄하다는 놈들이 왜 날 노리는 건데?”

  “몰라.”

  “...”

  윤나래는 잠시 생각해보려는 척조차 하지 않고 즉답했다. 그러나 곧, 재빈의 시선을 받고는 말을 덧붙였다.

  “관리국은 네가 입원해 있을 동안 네 혈액을 확보해 검사했고, 뱀파이어로 판정해 보호하기로 결정했었다.”

  어쩐지 뒤에 덧붙인 말이 더 길어지는 것 같은 기분에 재빈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 임무를 맡은 게 나고, 임무 수행을 위해 ‘서둘러’ 가던 도중 네가 공격받고 있는 걸 목격, 구출하여 지금 여기서 본부의 지원을 기다리고 있는 것 뿐. 놈들이 왜 널 노리는지에 대한 정보는 없음. 다만...”

  “다만?”

  “네가 엡실론과 엮인 이상 넌 더 이상...”

  “...”

  재빈은 침을 삼키고 뒷 말을 기다린다.

  그러나.

  “이것도 나중에 설명. 지금은 정신 집중이 필요.”

  이번에도 그녀는 말을 아낀다. 혹은, 생략한다.

  “너 그냥 귀찮은 거 아냐?”

  드디어 슬슬 짜증이 올라오려고 하던 재빈이 한마디 쏘아붙인 그때였다.

  “?!”

  탁!

 

  난데없이, 윤나래의 손이 재빈에게 날아들어와 그 입을 틀어막았다.

 

  “으읍?!”

  곱고 부드러운 손의 감촉이 쓸데없이 생생하여 얼굴이 빨개진 재빈.

  그가 당황하여 뭐라 말하려 했으나 윤나래는 손을 떼지 않았다.

  대신, 여전히 건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누군가 오고 있어.”

  “!”

  그 말을 듣자, 재빈의 뇌리에 엡실론과 슈트라페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손을 뗄 테니, 닥치고 있길 바라.”

  그렇게 속삭이는 그녀의 숨결이 재빈의 얼굴을 간지럽힌다.

  그러나, 지금은 거기에 부끄러워 할 심적 여유가 재빈에겐 없었다.

  “...”

  재빈은 가만히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시선을 본 윤나래 역시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천천히 그에게서 손을 떼었다.

  아직 윤나래의 향기가 감도는 공기를 들이 쉬며, 재빈은 긴장한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

  “누가...? 설마 그 엡실론?”

  “닥치고 있으... 일단 확인한다.”

  윤나래는 그렇게 말하곤 몸을 낮춘 자세로 천천히 폐건물의 창가를 향해 접근하고는 고개를 들어 창 너머를 살펴보았다.

  그리곤, 짧게 한마디를 남긴다.

  “...상황이 좋지 않아.”

  “뭐?”

  재빈은 불안한 마음을 품으며 윤나래를 따라 창가에 접근, 자신도 밖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눈을 크게 뜨며 경악이 짙게 배인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저...게 뭐야?”

  창가 너머에선 기괴한 모습을 한 인영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크으으....”

  “어어.... 으으...”

  “크륵...”

  “키릭... 케에에...”

  이질적인 신음소리지만, ‘그것들’은 ‘인간의 형태’를 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은 아니었다.

  하나같이 여기저기 찢어진 남루한 옷차림.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비틀대며 다리를 질질 끄는 걸음걸이, 힘없이 축 늘어진 채 덜렁거리는 양 팔, 헤 하고 벌린 입과 초첨 없는 눈을 가진 ‘인간의 형태를 한 무언가’였다.

  그 수는 어림잡아도 30명 가까이.

  그리고 그들은 천천히, 재빈과 윤나래가 숨은 건물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구울.”

  그때, 옆에서 속삭이듯 말하는 간지러운 목소리에 재빈의 정신이 돌아왔다.

  “구울?”

  재빈이 그렇게 묻자, 윤나래는 이 와중에도 담담한 목소리로 돌아와 설명을 시작했다.

  “구울, 혹은 회생시(回生屍) 시체를 움직이는 1급 금지 마법.”

  “...”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재빈에게 있어선 저것은 그냥 좀 어디 아픈 인간 정도로 보였다.

  “...저게 마법이라고? 저건 아무리 봐도 사람...”

  그러나 그 말에 대답한 것은 윤나래가 아니었다.

 

  “그렇겠지. 재료가 인간의 시체니까.”

 

  “!”

  몇 시간 전 재빈이 들었던 굵고 거친 목소리가 어설픈 한국어 억양으로 뒤에서 말을 건네왔던 것이다.

  “?!”

  “....”

  두 사람은 그것이 날아온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 있던 것은 붉은 스포츠 머리에 붉은 트레이닝 복을 입은 거구의 남자.

  슈트라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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