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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왕을 죽여라
작가 : null
작품등록일 : 201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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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들이 모이는 밤 2
작성일 : 18-07-09     조회 : 276     추천 : 0     분량 : 4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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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트라페.”

  마치 로봇 같은 윤나래의 혼잣말에 슈트라페가 비웃으며 대답했다.

  “관리국의 고귀한 뱀파이어께서 날 알아봐주다니, 몸둘바를 모르겠군.”

  그렇게 이죽거리는 슈트라페를 무시하고 윤나래는 잠시 눈동자를 굴려 마치 무엇인가를 찾듯이 주위를 살핀다.

  “....엡실론은 어디있지?”

  “그 기분 나쁜 놈은 바쁘다. 그래서 내게 저 시체들의 컨트롤을 맡겼지.”

  슈트라페는 그렇게 말하더니, 트레이닝복 주머니에서 붉은 색의 작은 돌멩이 하나를 꺼내 흔들어보였다.

  그리고 슈트라페는 윤나래의 뒤에서 식은 땀을 흘리고 있던 재빈을 불렀다.

  “어이, 거기 너.”

  “응? 뭐? 나?”

  갑작스레 지적당한 재빈이 겁을 집어 먹고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자 슈트라페는 그 꼴이 한심한 것처럼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지금 얌전히 따라온다면 아까 일은 잊어주마. 그저 기개 있는 행동이라고 퉁치고 넘어가 주지.”

  아까 일이라고 한다면, 분명 재빈이 슈트라페의 고간을 후려친 일을 말하는 것일 터이다.

  “아니 난...”

  그때, 윤나래가 끼어들었다.

  “거절한다.”

  “저기요.”

  갑작스레 끼어들어 멋대로 거절하는 윤나래. 그리고 그걸 보며 어이없어 하는 재빈.

  “흥. 네가 뭔데 끼어들어 결정하는 거냐. 뱀파이어 계집.”

  딱 재빈이 하고 싶던 말이었지만, 그 말을 대신 한 작자가 자신을 납치하려 했던 자라는 것이 영 꺼림칙한 일이었다.

  한편, 그러거나 말거나 윤나래는 기계적인 말투로 슈트라페에게 응답한다.

  “권리는 있다.”

  “그 빌어먹을 종족 회의 하수인으로서의 권리 말인가?”

  슈트라페가 으르렁 거리지만 윤나래는 전혀 쫄아 드는 기색이 없었다.

  “종족회의는 모든 종족을 대표, 너 역시 네 종족의 일원이라면 거기에 따를 의무가 있다. 하지만...”

  “그딴 거, 난 인정한 적 없다.”

  슈트라페가 그렇게 잘라 말하지만 윤나래는 얼굴 표정 하나 안 바뀌고 말을 마쳤다.

  “....네가 인정할리 없다는 판단은 타당.”

  “흥...”

  슈트라페는 코웃음을 치더니 다시 재빈을 보며 소리쳤다.

  “그래서, 어쩔꺼냐! 새끼 뱀파이어!”

  결국, 윤나래에게 맡기고 뒤로 물러나서 상황을 본다는 재빈의 판단은 소용없는 것이 된 모양이었다.

  “아니, 잠깐만? 나 데려가서 뭐 어쩔건데?”

  그러자 돌아온 대답은 재빈을 벙찌게 만들었다.

 

  “동료로 만들거다.”

 

  “...원피X냐?”

  그러나 슈트라페는 그런 재빈의 반응에도 개의치 않았다.

  “지금 온 다면, 꽤 좋은 대우를 약속하지. 손도 대지 않는다. 하지만 거절하면 시체로 만들어서 몸뚱이만 가져가도록 하지.”

  그 말을 듣자, 재빈의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재빈은 기본적으로 눈치가 꽤 빠른 편이었다.

  동료로 만들려는 자, 그러나 그런 자를 시체로 만들어 데려가겠단 슈트라페의 발언.

  정말 재빈이 ‘동료’로서 필요하다면, 차라리 죽여서 후환을 없앨지언정 시체를 가져가진 않을 것이다.

  ‘시체로 만들어서라도 데려간다.’ 동료로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니라 어떻게든 재빈을 데려가는, 아니, 가져가는 것이 목적.

  그렇다면 저 말은 믿을 수 없다.

  재빈은 그렇게 판단했다.

 

  “미안한데. 거절한다.”

  그렇기에 나온 재빈의 대답은 거절이었다.

  그리고 저 뻔뻔한 태도에 화가 난 재빈은 계속해서 쏘아붙였다.

  “애초에 당신들, 무슨 권리로 사람을 데려 간다 만다야?”

  그러나 윤나래의 뒤에 살짝 숨은 꼴로 센 척해봐야 통할 리가 없었다.

  “권리라면 있다.”

  “뭐?”

  그리고 슈트라페는 비아냥 거리는 태도로 말을 이었다.

 

  “네게 뱀파이어로서의 생을 준 것은 우리들이니까.”

 

  “...”

  그 말을 듣자, 재빈은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슈트라페는 개의치 않고 일장연설에 들어가 있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 없나? 빠르게 달리던 중형트럭에 치여 즉사만 겨우 면한 ‘인간’이, 겨우 두 달 만에 회복된다는 것이?”

  “...”

  저 말이 타당했기 때문은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너무 뻔뻔하기에, 되돌려줄 말을 잊은 것이다.

  “네 목숨이 붙어 있는 것... 우리로서도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만 그건 다 우리가 유출시킨 뱀파이어 혈액이 네게 수혈된 덕분이지. 그러니 넌 우리에게 목숨을 빚진 거란 말이다.”

 

  가령, 이런 상황을 가정해보자.

  강간범이 자신이 겁탈한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는 상황이다.

 

  ‘넌 나와 관계를 맺었다. 그러니 넌 내것이다.’

 

  지금 이 상황에 적절한 비유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의 몸에 멋대로 이상한 짓을 해놓고 저토록 뻔뻔한 재빈에게 있어선 그는 그런 존재로 보일 뿐이었다.

 

  “...왜?”

  대신 나온 것은, 어째서 자신이 이런 일에 휘말린 건가 하는 억울함이 묻어나는 물음이었다.

 

  한편, 재빈의 옆에서 슈트라페를 노려보고 있던 윤나래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슈트라페, 인간의 불법적 뱀파이어화의 자행을 인정. S급 추적대상으로 판별되는 것이 타당.”

  “뭐, 예상대로의 반응이군. 하지만 네겐 볼일 없다고 했을 텐데? 어이. 거기 새끼 뱀파이어?”

  다시 대화의 포커스가 재빈에게 돌아온다.

  그러나 재빈은 이제 망설이지 않았다.

 

  “거절한다. 이 개자식아.”

 

  그 시점에서, 이미 이 선택은 그에겐 선택이라 부르기에도 우스울 정도로 쉬웠다.

 

  그러나 슈트라페는 화를 내지 않았다.

  “좋아. 그럼 대화는 끝이다.”

  오히려 그런 선택을 반기는 듯, 씨익 미소지을 뿐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트레이닝복 주머니에서 아까의 그 붉은 돌을 꺼내더니 거기에 대고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

  재빈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거기에 대한 대답은 건물 밖에서 들려왔다.

 

  “캬아아아아악!”

  “키웨에에에에!”

 

  “!”

  짐승의 비명같은 외침이 건물 밖에서 들려오고, 재빈은 황급히 창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캬아아악!”

 

  건물 밖, 아까까지 힘없이 비틀거리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진 ‘구울’들이 비명을 지르며 건물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구울들은 서로를 밀쳐대면서도 빠르게 건물로 남김없이 진입했다.

 

  그때, 옆에서 들려오는 윤나래의 목소리에 재빈의 정신이 돌아왔다.

  “슈트라페. S급 추적대상 관련 규정에 따라, 여기서 ‘처분’.”

  그렇게 중얼거리는 윤나래의 손엔 언제 꺼냈는지 권총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타앙!

  그리고 곧바로 윤나래의 총구가 불을 뿜고, 그 탄환은 한치의 어긋남없이 슈트라페의 머리에 직격한다.

  그러나.

 

  틱!

 

  “...?!”

  사람 머리에 총탄이 맞았을 땐 다양한 소리가 날테지만 적어도 저런 싱거운 소리는 절대로 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피격당한 장본인, 슈트라페는 이마가 살짝 긁혀 피가 배어나오는 것 외에는 별다른 상처가 없다.

  그나마 그 상처도 순식간에 시간을 되돌리듯 사라져 버렸다.

  “권총탄 정도론 내 머리를 부술 수 없다. 뱀파이어 계집.”

  그리고 그는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재빈과 윤나래를 향해 다가온다.

  “캬아아아아아!”

  그리고 어느새, 건물을 올라오고 있는 구울 들의 목소리는 상당히 가까워져 있었다.

  “어, 어떻하지?!”

  재빈은 한심한 표정과 목소리로 식은 땀을 흘리며 윤나래와, 지금 다가오고 있는 슈트라페를 번갈아 보았다.

 

  그에 대한 윤나래의 대답은 간단했다.

  “도망쳐.”

 

  팍!

 

  “켁?!”

  난데 없이 그녀에게 가슴팍을 얻어맞은 정재빈의 의문에 찬 비명소리.

  그리고, 그 타격과 동시에 그녀의 다리가 재빈의 다리를 뒤로부터 걸어 넘어트렸다.

  “어어어!?”

  위쪽과 아래쪽에 각각 반대 방향에서 가해진 힘에 재빈의 몸은 뒤로 넘어가고 재빈의 바로 뒤엔 뻥 뚫린 창가가 있었다.

  그 결과는 당연히 건물 밖을 향한 추락이었다.

  “뭐야아아!”

  비명과 함께 손을 미친 듯이 휘저으며 추락하는 정재빈.

  그 경악에 찬 눈에 보인 것은, 순식간에 멀어져가는 윤나래의 감정없는 얼굴이었다.

 

  쿠웅!

  짧지만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던 추락이 끝나고, 재빈은 땅바닥에 정면으로 충돌했다.

  “갸아악....!”

  건물 5층 높이, 그것도 뒤통수부터 떨어졌음에도 재빈은 즉사하지 않았다.

  목 아래의 몸도 제대로 움직인다.

  이것이야 말로 그의 상식을 벗어난 일, 그렇기에 그의 몸이 이젠 인간의 것이 아니라는 증거가 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크으윽... 저 망할 여자가...”

  재빈은 아직도 웅웅 울려대는 뒤통수를 부여잡으며 주춤주춤 몸을 일으킨다.

  주위엔 아무도 없다. 구울들은 이미 다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건물 안쪽에선 구울들의 비명, 그리고 총성이 간헐적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젠장. 도대체 지금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 거야, 라고 중얼거리려던 재빈의 입이 멈춘다.

  지금 그녀가 자신을 난장판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조금 극단적인 방법을 썼음은 확실했으니까.

  “...씨X.”

  복잡하게 머릿속에서 요동치는 생각들은 아무도 듣지 않는 욕설이 되어 재빈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재빈은 애써 정신을 가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분명 도망치는 것일 터이다. 살면서 주먹다짐도 몇 번 안 해본 재빈이 어떤 도움이 될 리가 없었으니까.

  윤나래도 그걸 알기에 지금 그에게 분명 도망치라고 했던 것일 터이다.

 

  “제기랄... 나도 아는데...”

 

  하지만, 정말 그래도 되는 것일까.

  남자가 여자를 구해야지, 같은 시대착오적 사고방식 탓은 아니다.

  지금 자신을 납치하고자 하는 자, 그리고 기괴하게 생긴 괴물들.

  그것들이 들어찬 건물에 윤나래는 홀로 남겨져 있다.

  정재빈을 홀로 도망치게 하고서.

 

  자신은 그런 그녀를 남겨서 도망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을 자신에게 되뇌이는 정재빈.

  하지만 동시에, 그는 너무나 평범했다.

  평범한 사람이 좀비 비슷한 것들과, 총에 맞아도 꿈쩍도 안하는 괴물을 보면 싸우겠다는 생각은 못할 것이다.

 

  자신을 위해 위험에 홀로 남은 소녀를 구하자, 혹은 자신은 무력하니 위험으로부터 벗어나자.

  어느쪽이건 평범하게 ‘인간적’인 의견일 터.

  그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재빈은 아직 정확히 몰랐지만 그런 고민을 하는 재빈은 적어도 아직 ‘인간’범주에 들어있는 것일까.

 

  “하아... 돌겠네.”

  짧은 시간 동안 넘쳐흐르던 생각은, 그 혼잣말과 함께 정리되었다.

  사실, 아직도 재빈의 심장은 요동치고 손발은 떨리고 있었지만, 적어도 마음은 확실히 정했다.

 

  “...분명, 지원은 오긴 오는거겠지?”

 

  그리고 재빈은, 건물 벽에 기대져 세워져 있던 붉은 색 크로우 바 (통칭 빠루) 하나를 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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