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밤의 왕을 죽여라
작가 : null
작품등록일 : 2018.7.6
  첫회보기
 
괴물들이 모이는 밤 6
작성일 : 18-07-23     조회 : 248     추천 : 0     분량 : 8129
뷰어설정열기
기본값으로 설정저장
글자체
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안돼, 피...!”

  그리고, 윤나래가 재빈에게 소리치며 달려가려던 그 순간.

  엡실론의 몸뚱아리가 폭발했다.

 

  콰아앙!

 

  “!”

  갑작스레 덮쳐오는 열풍에 윤나래는 반사적으로 얼굴을 가리며 주춤거렸다.

  그러나 곧 자신의 임무를 떠올리며 황급히 재빈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

  폭발의 범위는 대단하진 않았다. 콘크리트 벽을 뚫을 수준도 아니었고 어지간한 수류탄의 위력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폭발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엡실론의 몸에 붙어 있던 재빈의 상태는 한눈에 보기에도 심각해 보였다.

  “크르...크윽... 커어...”

  일단 팔과 다리는 붙어 있었다.

  그러나 관절이 있을 리가 없는 부분 여기저기가 지그재그로 꺾여있었고 피부는 갈갈이 찢겨져 나가다시피 하고 있었다.

  폭발을 정면으로 받아낸 몸통과 얼굴의 상태는 더욱 심각하여, 간신히 몸에 붙어있는 옷엔 피로 물들지 않는 부분이 없었고 얼굴은 거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 였다.

  “...정재빈!”

  윤나래는 황급히 그쪽으로 달려가 바닥에 누워 신음하는 그의 옆에 무릎을 꿇었다.

  “...신생 변이 뱀파이어의 일반적인 회복력의 범위를 넘었음. 유효한 응급처치 수단... 대처 방법은... 대처 방법은...”

  그리고, 드디어 그녀의 무표정이 무너졌다.

  그녀는 지금 당황하고 있었다.

  ‘그’가 그녀에게 맡겼던 임무다. 엡실론이 임무 대상에게 먼저 접촉하게 한 것 뿐만 아니라 겨우 도망친 끝에 그 결과가 임무 대상의 폭사라니, 그녀에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던 일이었던 것이다.

 

  그때, 그녀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솔직히, 조금 놀랐습니다.”

  “!”

  윤나래가 뒤를 돌아보자 그쪽엔 엡실론이 먼지 한 톨 묻지 않은 깔끔한 모습으로 여유 있게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열화판 분신이었다곤 해도 설마 완전히 제압해버릴 줄은... 음. 일단 ‘현장 심사’에선 합격이라고 쳐도 될까요?”

  “엡실론...”

  그녀는 홀린 듯, 적개심에 가득찬 목소리를 흘리며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엡실론에게 덤벼들 것처럼 자세를 낮추며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엡실론은 거기에 긴장하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은 채 여전히 능글맞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그 친구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그 몸에 집어넣은 피는 이 정도로 주인을 죽게 내버려 둘 물건이 아니거든요.”

  “뭐라고?”

  우드득...

  “!”

  뒤에서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소리에 윤나래는 재빈 쪽을 돌아보았다.

  “크륵... 크으으으....”

  여전히 피칠갑에, 바닥에 누워있는 정재빈.

  그러나 그의 몸이 이상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우득! 콰직!

  “크아아아아!”

  몸의 뼈가 요동치며 부러지고 꺾였던 부분이 제멋대로 맞춰지기 시작했다.

  피부가 꿈틀거리며 찢어졌던 부분이 좁혀들고, 상처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재빈이 눈을 떴다.

  “...있을 수... 없는 일...”

  윤나래는 한 층 더 멍해진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크아아아아아!”

  찢어질 듯 한 외침과 함께 재빈의 몸이 스프링처럼 튀어 올랐다.

  그리고 마치 네발 달린 짐승처럼 양 팔과 양 발로 바닥을 짚은 자세로 전환, 아직도 멍해져 있는 윤나래를 지나쳐 곧장 엡실론에게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엡실론은 미소지으며 손을 들어올리더니, 그 손끝에서 붉은 빛의 고리로 된 ‘진’을 형성했다.

  촤라락!

  다음 순간 허공에서 수십개의 붉은 빛의 덩어리가 떠오르고 각각의 덩어리에 붉은 빛을 뿜어내는 ‘채찍’이 뽑아져 나와 그 절반이 재빈에게 날아든다.

  촤악!

  “크아아아악!”

  그리고 그 빛나는 채찍들에 순식간에 결박당한 재빈은 바닥을 구른다.

  한편 그 채찍의 절반은, 윤나래에게 날아들어왔다.

  “!”

  윤나래는 황급히 몸을 피하려 했지만 사방팔방, 전후좌우에서 날아드는 붉은 채찍들을 피할 길이 없었다.

  “큭!”

  결국 그녀 역시 붙잡혀버리고 말았다.

  “뱀파이어를 제압하는 데엔 이 ‘감응 결속’이 가장 좋답니다? 배워둬서 나쁠 건 없을 겁니다.”

  엡실론은 마치 학생을 대하는 선생처럼 부드럽게 중얼거린 후 가볍게 손뼉을 쳤다.

  “자, 슬슬 일어나시죠? 슈트라페님.”

  찌걱...

  그러자, 그때까지 쓰러져 있던 슈트라페에게 박혀있던 크로우바와 윤나래의 나이프가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스스로 뽑혀 나왔다.

  뇌와 척수에 박혔던 쇳덩이들이 사라지자 슈트라페가 신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크으으... 제기랄 이 더러운 뱀파이어새끼들에게 내가...”

  이를 바득바득 갈며 중얼거리는 슈트라페를 보며 엡실론이 쓴웃음을 짓는다.

  “그러니까 아무리 어린 상대라고 해도 관리국, 너무 얕보지 말라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할 말이 없군. 실수를 인정하지.”

  의외로 담담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슈트라페가 완전히 일어나는 광경을 보자 윤나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슈트라페는 그쪽엔 눈길조차 주지 않으며 엡실론에게 물었다.

  “그래서, 결과는?”

  “합격입니다. 아직 미숙하긴 하지만 ‘최초의 피’의 연결은 제대로 작동하는 모양이에요.”

  “...좋아해야 할지 모르겠군.”

  “좋아하셔야죠?”

  매달려 바둥거리는 재빈, 아연실색하는 윤나래 두 사람을 무시한 채 두 사람은 담담히 대화를 나눈다.

  “크아악! 캬아아악!”

  그때, 다시 한 번 재빈이 몸부림치자 엡실론은 그제서야 그가 생각났다는 듯 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일단 발작 상태론 데려갈 수가 없겠군요.”

  그러더니 그는 재빈의 머리에 손을 뻗어 마치 쓰다듬듯이 머리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엡실론이 무언가를 중얼거린다.

  그러자.

  “캬아아... 컥! 쿨럭!”

  포효를 내지르던 재빈의 눈이 크게 치켜떠지고 그는 발작적으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커억... 쿨럭! 크으... 도, 도대체 뭐... 이건 또 뭐야!”

  “....”

  갑작스레 완전히 제정신으로 돌아온 재빈은 여전히 멍청한(윤나래 기준) 목소리로 매달려 있는 자신의 상황에 놀라고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재빈씨. 당신은 합격했어요.”

  “뭐? 합격?”

  재빈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미소 지으며 다가오는 엡실론을 보더니 공포에 질려 바둥거리기 시작했다.

  “크윽... 이건 뭐야! 이거 놔! 이 개자식아!”

  “흐음... 아예 재워두는 게 좋았으려나요?”

  그때 그 모습을 절망에 휩싸여 바라보던 윤나래가 드디어 다시 입을 열었다.

  “네놈들... 뭘 할 생각이지?”

  윤나래는 조용히, 그러면서도 적개심을 가득 담은 채 엡실론에게 묻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참으로 심플했다.

  “그걸 왜 제가 당신에게 말해야 합니까?”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젓는 엡실론을, 윤나래는 그저 망연자실하게 바라볼 수 없었다.

 

  “그럼 나에게 말하는 건 어때? 엡시.”

 

  “!”

  “!”

  그때, 낮선 목소리가 그들이 있는 공간 사방팔방에서 울렸다.

  그리고 그들이 발 딛고 있는 바닥이 심상치않은 소리를 내며 울리기 시작한다.

  쿠르르르...

  콰아앙!

  이윽고, 그 바닥이 갑작스레 무너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제기랄!”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면서 비명을 지르는 재빈, 당황하며 욕설을 내뱉는 슈트라페.

  그러나, 윤나래의 얼굴엔 희미하게나마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제타님.”

  그 목소리, 그녀가 애타게 기다리던 구원자의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엡실론의 얼굴에서도 희미한 미소가 스쳐지나가는 것은 누구도 보지 못했다.

 

  “...오셨군요. 그리운 형제.”

 

  콰르르!

 

  “크으으...”

  5층의 바닥은 완전히 박살이 나고 재빈은 콘크리트 무더기와 함께 바닥에 떨어져 신음을 흘리고 있다.

  그로서는 지금 상황은 이해되지 않는 일 투성이었다. 엡실론에게 고문을 당해 기절했다 깨어나니 자신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도 모를 빛나는 끈 같은 것에 묶여있고, 이제 진짜 끝났다 싶었더니 난데없이 바닥이 무너져 내려 이 꼴인 것이다.

  그나마 어째서인지 박살이 나고 있었을 몸도 상처하나 없이 멀쩡해진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크윽... 이번엔 또 뭐야?”

  ‘발작’했을 때의 기억은 그에게 남아있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그에겐 자신이 발작했었다는 기억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네가 정재빈이군.”

  “응? 네?”

  그때 애써 몸을 일으키던 그의 앞에서 들려온 허스키한 남자의 목소리에 재빈은 고개를 들었다.

  그곳엔 코트부터 셔츠, 바지까지 온통 검은 색으로 칭칭 두르고 있는 장신의 남자가 있었다.

 

  “이야기는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내 이름은 제타. 저기에 있는 얼빵한 녀석의... 상관이라고 하지.”

  목소리 자체는 약간 허스키한 느낌이 있는 미성으로 꽤 멋있는 목소리였으나 그저 지금이 지루해 견디지 못하겠다는 권태가 짙게 배어있는 어조였다.

  제타는, 남자인 재빈이 보기에 짜증나도록 잘생긴 그 얼굴이 무색하게 인상을 구기며 재빈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나래.”

  그리고 제타는 재빈의 반응을 기다리지도 않고 저 한 구석에서 어느새 일어나 있던 윤나래를 불렀다.

  “네. 제타님.”

  “이 녀석 데리고 빠져. 올라오는 길에 차 대놨으니까 본부로 데려가.”

  제타는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내 윤나래에게 던졌다.

  그녀는 그 키를 받아들더니 고개를 살짝 숙이며 제타에게 감사를 표했다.

  “알겠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

 

  “그렇겐 안 되지!”

  콰앙!

  우렁찬 외침과 함께 저 한쪽에 쌓여있던 콘크리트 더미가 폭발하듯 솟구치고 그 안에서 슈트라페가 뛰쳐나왔다.

  “아, 그래. 늑대 꼬맹이도 있었지.”

  제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젓더니 느릿느릿 그쪽을 향해 돌아섰다.

  “크오오오오!”

  콰콰콰콰!

  그리고 곧바로 제타를 향해 맹렬히 돌진하는 슈트라페. 그 사이엔 콘크리트 파편이나 철골 따위가 어지러이 널려있었지만 슈트라페는 마치 불도저처럼, 그것들을 몸으로 분쇄하며 제타에게 뛰어들었다.

  후우우웅!

  이윽고 슈트라페의 주먹이 공기를 찢어발기며 제타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짜악!

  그러나, 주먹이 닿기 전, 제타는 왼쪽 손등을 휘둘러 그 팔을 간단히 쳐낸다.

  그리고 달려오던 가속도를 완전히 멈추지 못한 슈트라페 턱에 제타의 오른 주먹이 솟구쳐 들어왔다.

  빠악! 빠악! 콰직!

  재빈으로선 전혀 눈으로 쫒아가지 못할 만큼 빠르게 슈트라페의 얼굴에 삼연속의 타격이 작렬한다.

  “커억!”

  순식간에 얼굴뼈가 함몰된 것도 모자라 한쪽 눈이 안와에서 튀어나온 슈트라페가 신음소리를 흘린다.

  그 끔찍한 광경에도 제타는 멈추지 않고 한발 앞으로 디뎌 슈트라페와 밀착하더니 오른 주먹에 체중을 실어 그의 명치에 타격을 가했다.

  콰앙!

  그 주먹에 온 체중이 집중되어 지근거리에서도 충격을 극대화한 일격에 슈트라페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뒤쪽으로 튕겨져 나가 버렸다.

  “...”

  실제로는 수초에 불과했던 시간, 재빈은 그 광경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과 윤나래가 기습까지 해가며 고생고생하던 괴물, 그러면서도 일시적으로 제압했을 뿐인 저 괴물을 제타는 몇 번 후려친 것 만으로도(격투기에 문외한인 재빈이 보기에는) 벽에 처박아버린 것이다.

  그때였다.

  촤아악!

  갑자기 방 구석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불온하게 꿈틀거리더니, 마치 실체를 가진 듯한 검은 장막이 튀어나와 제타를 감싸듯 덮쳤다.

  “쯧...”

  파악!

  그러나 제타가 혀를 한번 차며 성의없이 팔을 한번 휘두르자, 그 검은 장막들은 순식간에 먼지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난 장난하러 온 게 아니다. 시덥잖은 장난질은 그만두지. 엡시.”

  “아하하... 오랜만이니 가벼운 인사를 한번 드려봤습니다. 제타님.”

  그렇게 말하고 있는 엡실론은 용케도 먼지한톨 묻지 않은 멀쩡한 모습으로 여유있게 이쪽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오랜만이라... 글쎄, 난 네가 한 100년 쯤 있다 슬금슬금 나올 줄 알았으니 별로 오랜만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걸.”

  “아하하... 그러셨나요?”

  그리고 엡실론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정장 안쪽에서 무언가를 뽑아들었다.

  “!”

  그와 동시에, 제타 역시 코트 안쪽에서 무언가를 뽑아 엡실론을 겨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총성이 울린다.

  타앙!

  타앙!

 

  티잉!

 

  허공에서 금속조각이 충돌하는 소리가 들린 후, 아주 잠시, 정적이 찾아온다.

  재빈은 숨을 죽이면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엡실론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대구경 권총의 대명사, 데저트 이글. 물론 재빈에게 있어선 그냥 권총으로 보였지만.

  그리고 제타의 손에도 똑같은 물건이 들려 있었다.

  “가볍게 팔 한쪽을 떼어내 드릴 생각이었는데...하나도 안 녹스셨군요?”

  “당연하지.”

  제타는 그렇게 시큰둥하게 대답하고 여전히 총구를 엡실론 쪽으로 향한 채 담담히 말을 이었다.

  “인사는 여기까지 하고 하던 일을 하지.”

  그리고 제타는 잠시 눈을 감고 한숨을 쉬더니 엡실론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그런 그의 눈동자가 어느새 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법이냐, 무법이냐, 삶이냐, 죽음이냐, 선택해라. 엡실론.”

 

  “그 대사는 역시 안 바뀌네요. 좀 참신한 멘트는 없나요?”

  “닥쳐 이 새끼야.”

  엡실론은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가벼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저 말고도 그 말을 들어야 할 분이 한 명 더 계시는 것 같은데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건물 한 구석에서부터 거대한 포효가 울려퍼졌다.

  “으워어어어!”

  “질긴 놈,”

  어느새 다시 일어선 슈트라페였으나, 그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저, 저건 또 뭐야?!”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 재빈은 이제 웬만하면 놀랄 일도 없을 거란 생각을 접고 경악하고 있었다.

  우득...

  콰직...

  그의 터질 듯 한 근육이 한 층 더 부풀더니, 진짜로 옷을 터트리고 튀어나오고 있었다.

  드러난 살갗에선 검붉고 억센 털이 빽빽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의 험악한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지더니 입부분이 돌출되기 시작, 마치 개과 짐승의 주둥이와 같은 형상을 하기 시작했다.

  전신의 뼈가 꿈틑대고 요동칠때마다 그의 골격과 체구가 급격하게 변형되기 시작했다.

  어느새 완전히 털로 뒤덮인 그의 손과 손가락은 더욱 굵어지고, 끝에선 짐승 같은 갈고리 발톱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촤아악!

  이윽고, 걸치고 있던 모든 옷이 찢겨져 나가고 드러난 것은, 거대한 붉은 늑대.

 

  그러나, 재빈은 3m에 가까운 이족보행 늑대 같은 것은 듣도 보도 못했다.

 

  “우오오오오오!”

  “크윽!?”

  늑대의 포효소리에 재빈이 다급히 귀를 막은 것도 잠시, 그는 난데없이 목덜미를 잡아채는 힘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여기서 물러난다. 휘말리면 죽어.”

  “어? 어? 물러...느아아아악!”

  윤나래의 목소리에 의아해했던 것도 잠시, 재빈은 마치 몸이 던져지는 것 같은 충격과 바람을 가르며 낙하하는 감각에 비명을 질렀다.

  윤나래는 재빈을 붙잡고 지상을 향해 뛰어내린 것이다.

  그리고 바닥을 향해 낙하하는 두 사람의 뒤로, 거대한 굉음이 울려퍼졌다.

  콰앙!

  “으아아아!”

  건물이 박살나버리는 것만 같은 굉음에 쫒기며 느끼는 낙하하는 느낌은 재빈에겐 그 어느 어트렉션보다 실감나고 심장이 떨리는 체험이었다.

  쿠웅,

  잠시 후, 윤나래가 착지하고 그녀에게 붙잡혔던 재빈 역시 바닥에 떨어졌다.

  물론 붙잡혀 떨어지고 있던 상태에선 제대로된 착지는 바랄수도 없었지만.

  “크으으...”

  “안 죽어.”

  꼬리뼈가 진동하는 듯한 아픔에 눈물을 글썽이는 재빈을 한번 흘끗 쳐다본 윤나래는 한숨을 쉬며 아직 쥐고 있던 그의 옷깃을 위로 잡아당겼다.

  “크으,,, 케엑! 야! 야!”

  “빨리 일어나.”

  “일어났어!”

  그제서야 윤나래는 얼굴이 보라색이 되어가던 재빈의 셔츠자락을 놓았다.

  “후우... 근데 괜찮겠어? 우리만 도망치면...”

  “괜찮아.”

  변함없이 무감정한 목소리에서도 미묘하게 자신감이 느껴지는 걸 보니 이제 자신도 슬슬 그녀에게 적응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재빈이었다.

  “아무튼, 따라와. 제타님 말대로 일단은 본부로 이동한다.”

  “그 관리국 본부 말야?”

  “당연한 걸 쓸데없이 묻지 말길 바래.”

  “...”

  일침을 맞은 재빈이 입을 다물자 윤나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뒤를 돌아 뛰기 시작했다.

  아주 잠시 멈춰선 채 그녀의 등 뒤를 못 미덥게 바라보던 재빈이었으나 곧 자신의 처지와 조금 전의 개고생을 떠올리고는 한숨을 쉬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 어쩔수 없지.”

  그리고 이미 저 앞으로 가고 있던 윤나래를 따라잡기 위해 걸음을 서두르며 그녀를 불렀다.

  “야 같이...가?”

 

  그때, 재빈은 자신의 몸이 뭔가 이상해 졌음을 느끼고 말꼬리를 흐렸다.

 

  발이 천근같이 무겁다.

  머리가 어지럽다.

  어쩐지 숨을 쉬는 것도 힘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윤나래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정재빈? 왜...”

  “이...거, 뭐야? 몸이... 왜...”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재빈의 몸이 앞으로 기운다.

  털썩.

  잠시 후, 재빈은 바닥에 고꾸라져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맨위로맨아래로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9 괴물들이 모이는 밤 6 7/23 249 0
8 괴물들이 모이는 밤 5 7/23 273 0
7 괴물들이 모이는 밤 4 7/23 276 0
6 괴물들이 모이는 밤 3 7/17 260 0
5 괴물들이 모이는 밤 2 7/9 277 0
4 괴물들이 모이는 밤 1 7/9 277 0
3 일상이 비일상으로 2 7/7 248 0
2 일상이 비일상으로 1 7/6 274 0
1 전야 7/6 406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