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모자이클
작가 : Ulyss
작품등록일 : 2018.7.23
  첫회보기
 
1.26. 반가움은 잠시. 다시 조여 오는 긴장감
작성일 : 18-08-13     조회 : 339     추천 : 0     분량 : 5046
뷰어설정열기
기본값으로 설정저장
글자체
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교문을 나서면서 아돌프와 눈이 마주쳤다. 아돌프의 미소는 분명 다른 아이들에게 지어준 것과는 크게 다르진 않았다. 하지만 그 눈빛만큼은 나를 도발하는 듯 야비하게 빛을 내고 있다.

 

 “카렐. 너도 없으면 받아가. 티켓에 여유가 있거든.”

 

 “아니. 괜찮아. 나도 형한테 몇 장 받았어. 고맙지만 사양할게.”

 

 나는 최대한 시크하게, 하지만 예의와 자존심을 모두 지키는 어투로 정중히 사양했다. 하인츠도 내게서 받았다면서 사양을 했고, 뒤이어 주자나 차례가 온다. 아돌프는 한없이 젠틀한 목소리로 주자나에게 말을 꺼낸다.

 

 “주자나. 나와 함께 일등석에서 편안하게 경기를 즐기지 않을래?”

 

 나는 주자나의 반응이 짐짓 궁금하여 귀를 기울인다.

 

 “미안해. 아돌프. 난 이미 티켓이 있어서 사양할게.”

 

 ‘하하핫!! 잘 했어 주자나!! 바로 그거야! 거절은 바로 그렇게 단칼에 하는 거지.’

 

 아돌프는 무안하게 티켓을 쥔 손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석상처럼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있다. 그의 얼굴은 웃고 있지만 마치 뭔가에 크게 한 방 얻어맞은 듯, 넋이 나가 보인다. 나는 그에게 한 방 더 먹인다.

 

 “주자나 뭐 해? 빨리 와. 밥 먹으러 가자.”

 

 주자나는 평소 그녀의 행동처럼 차갑게, 혹은 매몰차게 아돌프 휙 고개를 돌려 내게로 걸어온다. 굳어있는 아돌프는 고개만 움직여 나와 주자나를 쳐다본다. 그의 눈이 불꽃처럼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다.

 

 ‘아이고. 고소하다~~’

 

 어제 벵큐에게 한 방 얻어맞은 느낌이 절로 치유되는 느낌이다. 나는 예의상?, 아돌프에게 사뭇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곤, 주자나와 함께 식당으로 걸어간다. 내 뒤통수가 아돌프의 불타는 눈길로 인해 화끈거린다. 하지만 이보다 기분이 좋을 순 없다.

 이후 일주일 동안, 아돌프 주변의 모든 이들이 일등석 티켓을 받곤, 잔뜩 들떠서 그에게 아부를 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돌프는 썩 기분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어도, 적어도 내 눈에는 그의 패배감에 젖은 눈빛이 확실히 보였다.

 

 

 ***

 

 

 어느새 형의 경기 하루 전인 금요일 저녁이 왔다. 나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미리 끊어 놓은 외박증을 들고 형과 함께 그룬돌프 문지기 방으로 달려간다. 그곳에는 그리운 얼굴들이 기다리고 있다.

 

 “아버지! 아가타 고모! 파블라 고모!”

 

 실로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다. 하긴 살면서 이렇게 오랫동안 가족들과 떨어져 지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과한 반가움에 목에 무언가 걸린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울컥했다. 파블라 고모가 아버지한테 매달려있는 나를 보면서 한 마디 톡 쏜다.

 

 “어머. 얘는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아직 애네.”

 

 여전히 얄미운 파블라 고모. 하지만 저런 공격적인 그녀의 말투조차 너무 그리웠다. 그렇다고 내가 안 받아칠 위인은 아니지.

 

 “어머. 고모는 아직도 처녀여서 그런지 여전히 아름답네요.”

 

 딱-

 

 노처녀인 고모의 심기를 살짝 건드렸더니 역시나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럼에도 기분이 전혀 나쁘지 않았다.

 아가타 고모의 자녀인 친척 동생들은 중학교 학기 중이라 이곳에 오지 못해서 아쉬웠다. 하지만 모처럼 만난 가족들과 체르니가 아닌 다른 아나키에서 만나니 기분이 색다르다.

 우리는 가족들을 위해 데겐하르트에서 형이 제일 좋아하는 식당으로 가서 식사를 한다. 그동안의 안부를 물으며 수다를 떤다. 우리는 마치 모두가 짠 듯이 형의 내일 경기에 대해선 일절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그저 예전처럼, 다함께 외식할 때처럼 일상 대화를 하거나 내 학교생활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눌 뿐. 하지만 와인에 살짝 취한 아버지가 결국 그 무언의 금기를 깨버리고 만다.

 

 “그나저나 알로이스. 내일 네 상대는 그 재수 없는 폴터가이스트 가문인데 박살 낼 준비는 됐냐?”

 

 “모르죠. 저는 그저 최선을 다할 뿐.”

 

 “에이 녀석. 하여간 심심한 놈이라니깐. 이럴 땐 그냥 ‘그 망할 가문의 얼굴에 먹칠을 해주고 오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거야. 헬릭 전투 선수가 좀 그렇게 패기 있게 내질러야지. 이건 원~”

 

 형은 역시나 미소만 짓는다. 확실히 형은 심심한 놈은 맞는 것 같다. 나는 아버지에게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물어본다.

 

 “아버지. 아버지도 그 가문에 대해서 잘 알아요?”

 

 “어? 자~~알 알지 아주. 알지 말아야 할 것까지. 흠흠. 뭐 자세한 건 말 할 수 없다만, 그 가문의 음흉한 실험이 잘 될 수 있도록 우리 보안 업체가 보호해 주고 있어. 어떻게 보면 우리 회사 최고의 고객인 셈이지. 쳇.”

 

 “음흉한 실험이라면, 그 키메라 연구요? 아버지도 키메라 본 적 있어요? 그럼?”

 

 “험험.. 본 적 없어. 봤더라도 못 봤다고 해야겠지. 알려고 하지마라. 서부 아나키 연합 내에서 1급 기밀사항이니까. 알려고 하면 다쳐.”

 

 “그렇게 무시무시하면 내일 형한테 큰 일 있는 것은 아니겠죠?”

 

 “예이~ 이놈아. 말이 씨가 된다고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라. 우리 가문의 힘은 혁명가 자끌린과 같은 속성이라고! 어떻게 보면 우리 가문이 그놈들을 보호해 주고 있는 셈이지! 암~ 그렇고말고!”

 

 하긴 아버지 회사에서 보안을 담당하고 있으니, 아주 좋게 보면 그렇다고 볼 수도 있다. 내가 볼 때는 그냥 보안 요원으로 고용당한 것 같지만. 게다가 난 어차피 아버지 가문이 아닌 엄마 쪽이니 별 상관은 없지만.

 우리는 형의 컨디션 조절을 위해 일찍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는 짧은 만남이 많이 아쉬웠다. 그래도 내일 형의 깔끔한 승리 후에 다시 온가족이 회포를 제대로 풀 수 있다고 위안하며 군말 없이 일어난다. 우리는 가족들을 숙소로 바래주었고, 아버지가 헤어지기 전에 우리에게 한 마디 한다.

 

 “카렐. 내일 저녁 먹고 정문으로 와라. 경기장으로 안내 해 줘. 그리고 알로이스. 내일 경기장에서 보자. 쫄지 말고 박살 내버려. 푹 자라.”

 

 별 거 아닌 것 같이 툭 던진 말이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나름 아버지 식으로 형을 격려한 것이라는 것을.

 

 드디어 토요일 저녁. 형의 경기가 몇 시간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하인츠, 주자나, 헬가, 그리고 란드라 선배와 함께 모여 있다. 벵큐가 거절한 티켓 한 장을 누구를 줄까 고민하던 끝에 이전 경기에서 자신한테 표를 주지 않았다고 삐졌었던 란드라 선배에게 줬다. 란드라 선배는 게를락 출신이지만 형이 너무 섹시하다는 이유로 게셰보다 알로이스를 응원하는 사람이라, 오히려 믿음?이 간다. 나는 문지기 방에서 만난 가족에게 친구들을 한 명씩 소개했다. 역시나 파블라 고모가 살짝 비꼬듯 말을 꺼낸다.

 

 “어머. 얘는 학교 다닌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여자를 세 명이나 데리고 왔니? 누가 네 여자 친구야?”

 

 나는 가볍게 고모의 말을 무시했지만 란드라 선배가 대답한다.

 

 “어머~~ 고모님. 안녕하세요. 저는 카렐의 동아리 선배이자 알로이스 선배의 빅 팬인 란드라라고 해요. 호호호. 그나저나 고모님이 왜 이렇게 젊고 예쁘세요? 저는 알로이스 선배의 누나인 줄 알았어요. 호호호.”

 

 나는 순간 란드라에게 티켓을 준 것을 잠깐 후회했다. 그래도 그 철없는 고모가 란드라의 아부에 기분이 좋았는지, 둘이서 하하호호 난리법석이다. 아버지는 그 옆에서 주자나와 헬가에게 별 시답잖은 농담을 던지고 있다.

 

 “게를락 여자들은 굉장히 남자답게 선이 굵은 인상이라고들 하는데, 그것도 아주 옛말인가 보군! 여기 청순가련한 아름다움의 표본들이 내 눈앞에 두 명이나 있는 걸? 하하핫!”

 

 저런 말 같지도 않은 아버지의 농담이 부끄러워서 내가 끊으려는 찰나. 주자나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꺼낸다.

 

 “카렐 아버님. 여기 제 친구 헬가는 그 청순가련하게 아름다운 게를락 여학생이지만, 저는 체르니 아나키 출신이에요.”

 

 “오! 그래? 역시 악센트에서 체르니의 향기가 느껴지는구만! 하하! 주자나라고 했나? 우리 체르니 아나키 출신 예쁜 학생은 어디 도시에서 왔는가?”

 

 아이고... 아버지를 말리고 싶지만 고맙게도 주자나는 곧잘 아버지의 말에 대답을 해준다.

 

 학교를 지나 경기장으로 가는 길. 형의 저번 경기 때보다 학생들의 관심과 열기가 훨씬 더 뜨겁다. 게를락 아나키 출신 선수와 게를락 안에 있는 학교 학생간의 경기여서인지, 일반 관중들도 상당히 많다. 다만 저번 경기와 다른 점은 형을 상징하는 검은색 복장보다 게셰를 상징하는 짙은 초록색 복장들이 훨씬 많다는 것. 그룬돌프에서 열리는 경기라 형에겐 홈 어드밴티지가 있어야 했지만, 상대는 하필 게를락의 영웅. 그래서 분위기가 마치 어웨이 경기인 것 같다. 초록 물결 속에서도 우리 일행은 새까만 복장으로 당당하게 관중석으로 들어간다.

 관중석에서 바라본 경기장의 풍경역시 온통 초록빛이다. 짙은 초록색이 굽이치는 곳곳에 거대한 초록색 깃발들이 펄럭인다. 깃발에는 뭔가 멋들어진 머리 세 개 달린 동물이 그려져 있었는데, 아마 폴터가이스트 가문의 상징이 아닐까 싶다. 누가 봐도 키메라의 형상이기 때문.

 

 ‘나도 형을 위해 저런 가문의 상징을 힘껏 휘두르고 싶은데. 가만. 아버지 가문의 상징이 있나? 딱히 본 적이 없는데.. 쳇. 현대판 귀족 가문들만 저런 상징을 내세워서 저렇게 잘난 척 하는 건가? 이참에 아버지한테 검은 독수리를 가문의 상징으로 만들라고 추천할까? 아.. 난 어차피 엄마 가문사람이지...’

 

 지루한 대기시간동안 이것저것 의미 없는 잡생각만 하고 있다. 하품이 나오는 것을 겨우 참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나는 별로 유쾌하지 않은 무리들을 보게 된다. 바로 아돌프와 그 주변의 벵큐와 아이들 그리고 같은 반 친구들. 그들은 벵큐를 필두로 엄청난 응원을 펼치고 있다.

 

 “폴터~~ 가이스트!! 게~~~셰!!!! 워!! 워!! 워!! 오~~~”

 

 다행히 우리와 조금 떨어진 곳에 있기에 그리 시끄럽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부는 나팔소리와 함성소리가 뾰족한 송곳이 되어 나를 찔러대는 느낌마냥 거슬린다. 아돌프의 옆에는 고급스러운 짙은 초록색의 옷을 입은 어른들이 앉아있다. 아마도 그 잘난 폴터가이스트 가문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 옆에는 그룬돌프의 교장 선생님이 그들과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또 다른 몇몇 선생과 교수들도 초록 옷을 차려입고는, 그들 주변에서 호시탐탐 얼굴 도장을 찍을 기회만 엿보고 있는 듯.

 

 ‘쳇. 게를락 유명 인사들이라 교장에 다른 선생들까지 나와서 아부하고 있구만. 다행히 엔조 교수님은 저기 안 계시군. 역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교수님이야. 아니. 장님이라 관람을 못해서 안 오신건가?’

 

 홈인데 홈이 아닌 관중석 분위기. 게다가 형을 과거에 가르쳤거나, 현재 가르치는 선생, 교수들까지 초록색 옷을 입고 있으니..

 형이 문득 안쓰러워 진다.

 

 

 
 

맨위로맨아래로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44 1.43. 마무리, 그리고 새로운 시작 (2) 9/7 416 0
43 1.42.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9/6 367 0
42 1.41.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 9/5 362 0
41 1.40. 꿈과 현실 사이의 갈등 9/3 362 0
40 1.39. 가설 증명 8/31 340 0
39 1.38. 요상한 손님들 8/30 362 0
38 1.37. 반전의 반전 8/29 349 0
37 1.36. 사실 증명 8/28 333 0
36 1.35. 첫 경험, 그리고 의도치 않은 사건 8/27 355 0
35 1.34. 최후의 발악 8/24 386 0
34 1.33. 발악 8/23 425 0
33 1.32. 어디 생각대로 되는 일이 있을까? 8/22 378 0
32 1.31. 다시 찾아온 마음의 안정 8/21 358 0
31 1.30. 별 거 아닌 이유 8/20 362 0
30 1.29. 최후의 일격 8/17 366 0
29 1.28. 냉정한 분석가 8/16 363 0
28 1.27. 이렇게 허무하게? 8/14 355 0
27 1.26. 반가움은 잠시. 다시 조여 오는 긴장감 8/13 340 0
26 1.25. 이상기후 감지 8/10 318 0
25 1.24. 누가 이 설렘에 초를 치는가? 8/9 357 0
24 1.23. 오랜만의 휴식 8/8 361 0
23 1.22. 거품이 꺼질 징조 8/7 344 0
22 1.21. 절정, 정점, 최고조 8/6 348 0
21 1.20. 타오르는 사막 8/3 367 0
20 1.19. 고마워 형 8/2 365 0
19 1.18. 다시 찾은 행복 8/1 333 0
18 1.17. 들통 7/31 329 0
17 1.16. 아이디어는 우연히 찾아와 불꽃처럼 타… 7/31 316 0
16 1.15. 속성의 비밀 7/30 350 0
15 1.14. 본격적인 수업 시작 7/30 366 0
 
 1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