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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지만 청춘스토리
작가 : 사니사
작품등록일 : 2016.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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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네온사인
작성일 : 16-08-22     조회 : 771     추천 : 0     분량 : 4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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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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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주위의 불빛들이 우리들을 비춘다.

  물속에서 울리는 개구리의 소리가 배경음악처럼 들려온다.

  이제 곧 나와 그녀의 단편 연극이 길 위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내 머리속을 맴돌았던 말은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막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란?”

  “그… 네가 졸업 했잖아……?”

  “그렇지.”

  “그럼 그…”

  도저히 말할 수가 없다. 이 관계가 무너질까봐 두렵다.

  싫은 기억이 생각난다.

  점점 과거의 슬픔이 되살아난다.

  “빨리 말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눈 앞에 있는 그녀는 흥미를 잃은 듯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꼬아대었다.

  잠시 후 목도리를 고쳐 맨 다음 바닥을 바라보았다.

  아직 확실하게 결정되지도 않은 결말이 한 편의 단편영화처럼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그러니까……!”

  너무 초조한 나머지 도움 되지 않은 말을 내뱉었다.

  점점 가슴이 아파온다. 하지만 여기서 끝난다 한들 포기할 수는 없다.

  마른 침을 삼키며 마음을 굳게 잡는다.

  마음의 준비를 맞춘 후 입을 열었다.

  “나…나랑……!”

  “사귄다는 건 싫어.”

  내 말을 단호하게 가로막는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 아무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저 방금 들렸던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뭐… 뭐라고……?”

  다시 한 번 더 되묻는다.

  이 사실이 거짓이라고, 어서 장난이라고 말해달라고.

  역시 이번에도 내 착각이었는가.

  그녀는 내 반응에 화를 낸다.

  “그러니까……!”

  더 이상 듣기 싫다.

  더 이상 과거를 되풀이 하는 짓은 하기 싫다.

  *

 

  “흐하…….”

  자정이 조금 지난 새벽 불도 켜지지 않은 집안에 울려 퍼지는 힘 빠진 목소리. 그 다음 들리는 훌쩍이는 소리. 이렇게 꼴사나운 소리를 내는 사람은 이 세상에 나밖에 없을 것 이다.

  항상 사이가 좋다고 느꼈던 그녀에게 호감을 가진 나는 분위기에 이끌려 고백을 해버렸다. 아늑한 주점의 불빛아래 은은하게 퍼지던 술의 향기, 그리고 그 분위기에 맞추듯 했던 고백.

  하지만 나만의 착각이였다는 것을 알아버린 지금 그녀가 나에게 건넨 마지막 말은 지킬 수 없게 되었다.

  그녀에게 갑자기 무슨 용무가 있었다고 둘러대며 집으로 돌아와 정장도 갈아입지 않은체, 소파에 털썩 쓰러져 울고불고 한지 3시간 째, 달은 중천에 떠 비참한 내모습을 비쳐주고 있었다.

  사랑이란 언젠가는 떠나 버린다. 하지만 그것을 알고도 우리는 사랑을 한다. 과연 영원히 존재하는 것과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예쁘다고 할 수 있는가?

  정답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기억 속에서도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것도 없이, 오로지 내 마음에 좋지 않은 추억만 박아두고 가는 것을 과연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사랑을 해버린 과거의 자신, 그리고 후회하고 있는 지금의 자신,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몇 일 지나지 않아 다시 실수를 반복하는 미래의 자신.

  무의미한 무한루프다.

  집으로 돌아와 소파에 쓰러져 후회하며 자신을 다독이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살자고 생각한지 어느덧 3시간 반이 지나가고 있었다. 얼굴에 올려놓은 팔을 힘없이 내리자 소파 밑 부분에 부딪쳐 쾅 소리를 내었다. 지금은 정말로 아무생각도 하기 싫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

  과거의 내가 원했던 것은 무엇일까. 과연 끝날 것을 알면서도 사랑을 한 과거의 자신은 무엇을 바라며 있었을까. 이제와서 따져봤자 후회하는 것 밖에 더 되지 않았지만, 이것마저도 하지 않으면 골인해버릴 것 같았다.

  힘없이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소파의 등받이에 등을 기대었다. 잠시 후 힘든 몸을 이끌어 일어나자 현기증이 나를 맞이해주었다.

  어지럽고 검게 변한 시야가 되돌아오기 까지 벽에 몸을 기대었다. 몇초가 지나 현기증이 조금 가시자 그 상태로 기지개를 피며 뭉친 몸을 풀어주었다. 일어서 5~6발자국 걸어가 냉장고의 문을 열고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심호흡을 하자 방금전까지 있었던 걱정들이 사라졌다.

  뭐야 이거. 요즘 냉장고에는 이런 기능도 있는거야?

  멍하니 프레쉬한 냉장고 공기를 마시다 정신을 차려보니 돈이나가는 소리가 들려와 빠르게 냉장고에 있는 물을 찾아 꺼낸 후 닫았다. 툭 하면서 냉장고가 닫치자 저절로 한숨이 흘러 나왔다.

  옆에 뒤집어둔 컵들을 향해 힘없이 팔을 뻗자 컵들이 부딪치며 팅하는 명쾌한 소리를 내 뿜었다.

  그래. 그녀랑 처음 만났을 때에도 이 소리가 들렸었지.

  과장님에게 이끌려 처음 온 칵테일 바에서 괜한 오기를 부리며 칵테일을 원 샷 하는 나를 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던 그녀.

  더 이상 회상하면 내 마음이 부서질 것 같아 그만 두었다. 많은 컵들 중 투명한 컵 하나를 잡고 물을 따랐다. 주르륵 흐르던 물은 내손을 적신 후 바닥으로 다 흘렀다. 흘린 물을 발밑에 있는 걸레로 대충 닦은 후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컵 안에 들어있던 물은 격하게 흔들렸지만 시간이 점차 지나자 잔잔해졌다.

  복잡한 생각들을 잠시 제쳐두고 조금 미지근해진 물을 원샷했다.

  이 행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저 그녀가 가르쳐주었던 방식이 싫었던 것인가. 아무 죄 없는 것을 미워한들 무엇이 변하는가.

  몸을 앞으로 살짝 숙여 빈 잔을 두 손으로 어루만지자 바닥에 물이 떨어졌다.

  이번에는 틀림없는 내 눈물이였다.

  직접 그 사람과 연애를 해보지도 않았는데 이 눈물이 흐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죽을 만큼 사랑한 것도 아닌데 이토록 마음이 아픈 이유는 무엇일까.

  기억을 곱씹으며 지금까지의 일을 점점 지워나가자 머리 속에는 한가지의 결론만이 남겨졌다.

  사랑이란 오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물이 사라지고 없어진 컵 안에 있는 물방울이 내 자신을 비추어 주었다. 지금까지 내 얼굴을 보며, 내 자신을 관리하며 살았던 나였지만 그 얼굴은 처음 보았다.

  군대를 다녀와 늦게 들어간 대학교. 술과 놀음으로 사귄 친구들 중 내가 원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의 이런 나를 다독여줄 친구도, 내 자신의 기력도 더 이상 남지 않았다.

  조금씩 기억이 되살아나자 끝없이 꼬리를 물며 늘어지기 시작했다.

  내 손에 있던 컵은 달빛을 받아 다시 한 번 더 내 얼굴을 비추어 비참한 얼굴을 보여 주었다. 주변인들에게 잘생겼다고 칭찬받던 그 얼굴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눈을 한손으로 가리며 한숨을 쉬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눈을 스윽 닦고 아무것도 없는 천장을 보자 가슴이 아파왔다. 왼쪽 손맡에 있는 내 정장 자켓을 강하게 부여잡으며 다시 한번 더 강하게 울었다.

  그로부터 몇 십분이 지나자 더 이상 울 기력도 남지 않았다.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리자 새벽 야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 의미 없는 네온사인들이 큰 창문에 비쳐진다. 아무 의미 없는 사람들이 지나가며 웃음을 짓는다.

  아름다운 만남을 추구하는 그들을 나는 비웃을 수도, 부러워 할 수도 없다.

  그저 바라만볼 수 있을 뿐이다.

 

  *

 

  후회를 하는 도중 잠시 잠에 빠져 버렸다. 눈을 뜨며 거실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자 시간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밖에는 달이 아닌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틀림없이 지각이다. 지금 회사에 도착하면 상사에게 혼나고 풀려났다 싶으면 또 다른 상사가 와서 일처리가 느리다며 구박하겠지.

  머릿속으로 회사생활 시뮬레이션을 돌리자 너무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회사를 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 저절로 탄식소리가 흘러 나왔다.

  꾸겨진 바지를 벗어 거실 한 모퉁이에 박아둔 다리미가 담긴 박스 쪽으로 들고 갔다. 다리미를 꺼내 콘셉트에 꽂아 전원을 켰고 뜨겁게 달구어질 때 까지 조금 기다린 후 바지를 다리미질 하였다.

  무진장 덥다. 심지어 찝찝하기 까지 한다. 너무 더워 얼굴을 찡그리며 옆에 있는 큰 창문을 보자 몇몇 물방울이 떨어졌다. 어제 새벽에는 비가 온 것 같아 보였다.

  이유를 찾아내 달성감을 얻은 후 다리미질도 끝나 2배로 달성감을 느꼈다. 그나저나 레벨업은 언제 할려나.

  콘셉트에 꽂아둔 코드를 뽑고 다리미를 다시 상자안에 집어넣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바지를 후후 불은 다음 일어서 다시 입었다.

  바지도 손질이 끝났으니 이번에는 얼굴을 손질할 차례다. 아무리 어젯밤에 그런 흑역사를 만들었더라도 생판 남에게는, 적어도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얼굴을 보이면 안된다. 분명 공론화되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비웃음 당할게 뻔하기 때문이다.

  먼저 화장실에 들어가 손에 물을 묻혀 머릿결을 정리 한 다음 양치질을 시작했다. 그리고 입을 행군 후 세안으로 마무리 지었다.

  씻는 게 모두 끝난 후 뒤에 걸어진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화장실에서 나왔다. 오늘도 다시 무의미한 하루가 시작한다는 것을 깨닫자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얼굴을 닦으며 멍하니 있다가 문뜩 한 번도 한숨 쉬지 않았던 과거의 자신이 떠올랐다.

  회사가 끝나자마자 밥을 챙겨먹고 하루도 빠짐없이 칵테일 바를 다녔던 나날들. 사랑의 포로가 되어 무의미한 곳을 몇 번이나 들락날락거렸던 나날들이 과거의 나에게는 즐거웠던 것이다.

  추억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아픈 기억을 되돌아보자 마지막에 그녀가 나에게 건넨 그 말이 생각났다.

  -그냥… 친구로 있으면 안될까?-

  다시 한 번 더 세상의 잔혹함을 몸소 깨달았다. 가볍게 찼으면서 친구로 있어달라니…….

  거실에 나와 기지개를 피며 시계를 확인하자 꽤나 시간이 많이 흘러있었다. 수건은 대충 식탁 의자에 걸어 두었고 그 위에 있는 가방을 챙겼다. 그리고 소파의 팔걸이에 널려있는 자켓의 카라부분을 잡아 어깨 뒤로 넘겼다.

 

  다시 한 번 더 시작하려 한다.

  나의 의미 없는 나날들이, 그리고 약간 늦은 청춘 러브스토리가.

 

  누군가는 말한다. 다시 후회할 거라고.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나, 가람휘이다.

사니사 16-08-28 23:36
 
*골인하다 : 자살을 비유적으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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